〈 4화 〉003 - 탑이 개싸움하면 보통 눈치 빠른 정글이 잘 크지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다.
기상, 출근 그리고 노동 사람을 진정하도록 만들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3단 콤보를 맞고 있자, 어제의 행동들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분위기를 확인하니 그래도 좀 기분이 나아졌다.
[ㄹㅇ 바로 100점 뚫리더라]
[먼데 야간뛰고 오니까 세상이 바꼇냐]
[겜인줄 알고 했는데 튜토리얼이었자너]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떠나서 나름 파문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그 파문을 배척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자 하고 있다.
이정도면선방했지.
이제 피지컬 원툴인 얘들이 나 대신 루미나 깨는 거 보고 배우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빨리 1000점 공략도 해달라고]
-힌트라도 줘 뭘 어쩌라는 건지는 조금 알겠는데 생각도 안했던 것들 생각하면서 하려니 머리 아프다.
>전에는 걍 스탯 잘 뽑으면 기분좋게 달렸는데 이젠 잘못하고 있을까봐 아까워서 사리게 됨 ㅋㅋ
[어제 보스전 하는 거 보면서 이능력 쓰는 법 물어볼랬는데]
-107점 2분 컷 보고 까먹음 빨리 돌아와서 이능력 강의해줘
>그러게 걔는 쓰던데
>나도 까머금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게 제일 문제야.
***
“다시 봐서 반갑다. 알아서 해주길 바랐는데, 아직 기대가 컸나보더라. 그래서 도와주러 왔다. 빨리 고인물이 돼서 내 대신 루미나 좀 잡아줘. 내 한계는 여기까진가 봐”
-ㅋㅋ절대무리지
-아ㅋㅋ개무리지
후, 이런 것들을 믿어야 한다니. 그래도 믿는다! 힘 내!
“그래서 뭐해줄까 아무 생각도 없이 켠 거라서 할 게 안 떠오르는데”
-입대 ㄱ다
-일단 뭐 있는지 알려주면 안되냐?
-ㄹㅇ 과대평가하지마라 우린 아무것도 모르니까
믿는…다고…시발…
“그래 시발 스포일수도 있으니까 번호로 한다. 1번 입대, 2번 반란, 3번이랑 4번은 비밀이다. 5번 뒤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긴 나도 모른다. 아직 골라봐”
-1
-1
-2
-3
-3
-4
굉장히 빠른 속도로 채팅이 올라가지만 2번 항목은 유독 인기가 없다.
-그거야 그쪽 팩션은 우리도 할 수 있으니까?
과연
“너희들이 한 게 과연 반란군이었을까? 그냥 군인한테 쿠사리 놓는 불한당들이 아니었을까?”
-아
-팩트밴하라고
“그냥 1번부터 차례대로 가자. 하다가 감 잡은 친구들은 알아서 개척하러 가면 되지.”
-크으 입대 가냐?
-나 전부터 저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어
***
일전에 말했듯 이 게임, 아니 시뮬레이터는 몇몇 고정요소를 제외하면 모두 랜덤이다.
대표적으로 캐릭터의 생성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랜덤요소로,
스탯부터 시작해서 특성과 체질 모두 시작과 동시에 랜덤으로 정해진다.
스탯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최소치가 있고,
임의로 가산되는 랜덤 보정치 통칭 주사위 신의 장난질이 있으며,
플레이어의 임의로 빼거나 더할 수 있는 변동치가 있다.
문제는 특성과 체질인데, 안 알려준다.
그렇기에 유저들은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캐릭터의 특성이 무엇인지,
어떤 체질을 가지고 있는지,
이미 정해진 미래를 두고 라플라스의 악마와 승률 0%의 심리전을 해야 한다.
내가 이것 때문에 좆박은 회차가 얼마나 많은지.
완벽한 공략법(으로 추정되는 것)을 알게 되고 바로 실행을 하기 위해 회차를 시작했지만,
염병 지랄 같은 특성과 체질로 조사버린 횟수만 세 자릿수가 넘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생명력 10(+7)
이능력 10(+1)
지구력 10(+0)
체력 5(+1)
근력 5(+2)
민첩 5(+4)
재주 5(+5)
적응 5(+0)
변동가능 능력치 5/5
깔끔하다. 지구력에 주사위가 붙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생명력 17이라는 든든한 수치가 초반을 감당해 줄 것이다.
아니면 이능력을 뽑아서지구력에 줘도 괜찮다. 민첩과 재주가 최대치에 가까우니 캐스터로서 육성하기보다는 파이터나 레인저로 육성하는 것이 더 좋을 테니.
-왜 이리 잘나왔냐
-아 이라믄 보는 맛이 없는 거신데
적응을 5밑으로 뽑아버리면 스킬의 활용 여지가 너무 없어지기에,
이능력 스탯을 5개 뽑아서 지구력에 투자한 뒤 시작했다.
분명 공략을 보러 온 주제에 남이 잘 될 것 같은 낌새가 보이자
바로 이 바득바득 물며 달려드는 시청자들은 깔끔하게 무시하며 기분 좋은 시작을 눌렀다.
아다리만 잘 맞으면 이전 회차에서는 도전하지 못한 플레이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한 1분 전까지는
[특성을 발견했다.]
[‘병자멸시’ - 당신은 감염자들을 혐오하며, 그들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당신의 적의와 경멸을 느낄 것이다.]
좋아 괜찮다. 어차피 파라디수스로 들어갈 예정이었고 루트가 한쪽으로 강제되겠지만 괜찮다.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변수 시뮬레이터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으니,
[특성을 발견했다.]
[‘반골’ - 당신에게 있어서 권력과 권위란 언제나 꺾어야할 대상이었다. 명령권자에게 명령을 받지 않으며, 위계질서가 확립된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다.]
특성이 하나라고는 말 안했지?
시작하고 5초 만에 일어난 일이란 게 놀랍네.
단도 주을라다가 병자멸시, 인식표 줍다가 반골.
레전드 혹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면 생명혐오 같은 거 붙지 않을까?
-반골 ㅋㅋㅋ 입대는 텃네
-병자멸시 ㅋㅋㅋ 반란군도 텃구연
-1번 2번 지우고 재투표하자
-유권자가 아는 게 없는데 뭘 투표해 돌림판이나 돌려
태평한 친구들.
우리 잠깐 배경지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가자.
전에 말했듯 버려진 희생자들,
외벽민이라고 부르는 자들과 스스로를 선택한 기득권층,
내벽민이라 부르는 이들의 갈등이 기본 배경이다.
왜 스스로를 선택했냐고?
자칭 선택받은 존재들이만이 내벽의 안쪽 낙원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신이 저런 것들을 선택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뽑았겠지.
아무튼 이러한 갈등 속에서 기득권층은 3종류로 나눠졌고, 비기득권 역시 4종류로 나뉘었다.
대충 이런 배경이면 어디에나 있을법한 온건파와 과격파 그리고 중립.
중립들은 일반시민들이기에 넘어가자.
보통 겜알못들이 이 중립들이랑 어울려서 점수를 못 먹는다.
중립들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존재들이지만 역사에는 기록되지 못하는 법이다.
비기득권에 하나가 남지? 잠시 뒤에 이야기 하겠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반골은 내벽 측 세력으로의 길 자체를 막는 특성이다.
낙원수호군 통칭 파라디수스 흔히 군대라고 부르는녀석들은 군대라는 명칭에 맞게 상명하복 집단이고,
위계질서가 명백하고,
뭐 시발 대충 반골의 상을 타고 들어가면 목이 날아가는 집단이다.
하다못해 벽창호 같은 특성이었으면 온건파 측 루트라도 노려볼 수 있는데, 반골은 여지없지.
그리고 병자멸시는 상상하신 그대로 외벽으로의 길을 밟아 부수는 특성이다.
보통 중립들이랑 붙어먹으면서 70점을 넘으려면 외벽에서 둠칫둠칫 하다가,
과격파의 자유퀘스트가 뜰 때 참여해서 적당히 군바리들 괴롭히면 70점 이상을 먹을 수 있는데,
이때 퀘스트를 주는 과격파 친구들이 [그라티아] 흔히 반군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다.
설명에서 느껴지듯이 내벽에 대한 반란 의지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일종의 슬로건으로써 감염자들을 챙겨주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나름 위계질서가 확립되어있는 조직이기에 반골만으로도 이미 애로사항이 꽃피는데 그 와중에 병자멸시? ㅋㅋ
3번.
외벽의 온건파가 여기에 속한다.
반군이 이미지를 위해 실상이야어찌되었든 표면적으로 감염자들을 챙기고 있다면,
이 친구들은 진심으로 감염자를 챙기고 있다.
정확하게는 자신들의 우리 안으로 들어오길 원하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대한다.
기득권층이었던 이가 내벽에서 내쳐지고 도망쳐온다고 해도 그들은 아마 따뜻하게 받아주겠지.
단 하나의 조건만 지킨다면.
[우리는 너희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 또한 그래야 할 것이다.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그렇기에그들은 병자멸시 같은 뻐킹레이시스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까 하나 말 안했지? 4번이다.
무려 감염자들을 위한 구호단체다.
ㅋ 시발
그러니 요컨대
“투표고 돌림판이고 나발이고 이 스탯을 가지고 리셋을 돌려야 할 판이라고”
-캬 바로 이거지 이 집 방송 잘 하네
-생,지 합30에 근,민,재 25를 가지고 리롤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 삐싱삐싱뿌슝빠숑!
공략 보러 온 거 아니냐고
사실 방법이 0은 아니다.
반드시 어느 세력에 속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무소속으로도 충분히 점수는 벌 수 있다.
오히려 무소속으로 플레이 하는 게 이들에겐 더 감 잡기 쉬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스탯이 아깝다.
중반만 넘어가도 주스탯들은 쉽게 50이 넘어갈 수 있기에 어떻게 보면 초반에 5냐 10이냐는 별 차이가없어보일 수 있지만,
초반에 5로 시작한 스탯은 중반에 50이 되고 초반에 10으로 시작한 스탯은 중반에 80이 될 수 있다.
성장의 기회의 차이가 압도적인 셈이다.
“좋다. 홀드한다. 반골에 병자멸시면 사실상 개썅마이웨이 밖에 없지만, 개썅마이웨이도 1000점 찍을 수 있는 거 보여준다. 잘 보고 배워”
-ㄹㅇ?
-난 놈이긴 해
-그러니까 남들 90점에서 좆박고 있을 때 혼자 17층찍지 ㅇㅈㅇㅈ
그렇게 나의 방송 1회차는 눈물의 똥꼬쇼가 되었다.
***
“시작에 앞서 세력구도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볼게. 어차피 한 30번 정도 5분 컷 당하면서 사망런으로 정보수집하면 얻어지는 부분이니까 대충 내가 150분아껴줬다고 생각하고 들어라.”
파라디수스는 현재 중립파가 힘이 강하다.
정확하게는 루미나가 중립이다.
온건성향에 가깝지만 망할 년 뭘 할 생각이 없다.
맨날 머릿속에 사표밖에 없어.
이거 때문에 싸움을 거는 것도 그 후 일기토로 이어가는 것도 정말 염병지랄이다.
온건성향에 가까운 이유는 단순히 온건파 측 멤버랑 친하기때문.
그러나 힘이 강한 것과 대세의견은 다른데,
중요한 윗대가리가 사표 던져놓고 수리되는 날만을 오매불망하고 있으니 결국 득세는 강경파가 하고 말았다.
-ㅇㅎ 그래서 뭐만 하면 무력 진압하러 나오는 구나
그렇다. 게다가 파워 밸런스가 온건, 중립일 뿐
대가리는 강경 쪽이 많기도 하고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내던지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
그럼 외벽은 어떨까?
이쪽도 강경이 득세하고 있다.
아니지 애초에 편의상 온건이라고 정의했지만 3번 세력은 이 출혈전쟁에 관심이 없다.
4번 세력은 더더욱 관심이 없다.
실질적으로 남은 게 중립과 강경일 뿐.
그런데 보통 비기득권 세력의 중립은힘이 없거든, 일반인이 대다수야.
그러니 강격이 득세할 수밖에.
즉, 개판싸움을 벌이기 딱 좋은 그림이 그려지고 만 것.
그럼 여기서 중립이 된 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은 뭘까?
어떤 상황에서 힘 있는 중립세력이 가장 주목받을까?
바로 두 세력이 세 세력이 되는 순간이지.
양쪽의 힘이 비등하고 온건할 때는 어중간한 개인을 개무시할 수 있지만,
힘이 온건하지 못 해서 더 이상 두 세력이 아닌, 세 세력의 힘이 비등해지는 상황.
나의 행보가 판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러니까 너희들이 맨날 손가락 빨고 구경하던 ‘2차 보급선 습격작전’ 쿠사리 놓는 것부터 시작한다.”
-오 그거 참여할 수 있구나
-스탯 아무리 좋게 뽑아도 힘들던데 가능함?
“씹가능이지. 일단 작전에서 양쪽 다 손해를 보려면 어느 한쪽도 빼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등하게 맞붙어야해.”
파라디수스는 이번 보급을 미룰 수 없다.
이미 1차 보급이 조져졌거든.
바로 플레이어가 시작하는 이곳이 1차 습격의 결과물이니까.
그라티아 역시 이번 습격을 뺄 생각이 없다.
파라디수스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그것을 엿 먹일 계략도 있고,
이정도 성공을 최소한 2번은 더 성공시켜야 세력 구도가 기울어지거든.
한 번 잡은 승기 놓칠 수는 없으니 내가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거나,
들키지 않고 간섭을 한다면 반드시 일어날 일이야.
그렇기에 난 파라디수스에 손을 들어주면 된다.
간단하게 정보를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번 습격에 한해서 비대칭이던 전략구도가 대칭으로 맞춰진다.
그럼 그라티아는 큰 손실을 보고 휘어잡은 승기가 한 번 꺾이겠지.
다만 파라디수스에게는 반쪽 동앗줄을 내려줘야한다.
그래야 그들도 손해를 볼 터이니.
그라티아에게는 파라디수스의 내부사정을 알게 끔 해야한다.
그래야 덩치 큰 적의 실상이 호가호위란 것을 알게 될 터이니.
-개새끼에 재능이 있으신가 봐요.
“아가리 해. 내가 개새끼인 게 아니라, 게임이 날 개새끼로 만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