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007 - 자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참 쉽죠? (8/99)



〈 8화 〉007 - 자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참 쉽죠?

생명력10(+0)
지구력10(+1)
이능력10(+3)
체력 5(+1)
근력 5(+1)
민첩 5(+2)
재주 5(+0)
적응 5(+3)

다시 봐도 병신 같네.
아직 변동능력치는 남았지만 시발 뭘 어디에 박아 넣지?

“미리 말하는데 생명력, 체력이 낮으면 감염되는 과정에서 죽고, 이능력, 적응이 낮으면 감염 된 후에 실험이고 지원이고 뭐고 끔살당해. 이건 솔직히 유저니까 확실히 알  있는 부분이고, 걔들은 나름 추정만 하고 있을 뿐 확답은 못 내린 부분인데 이거 논리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짚어주면 100점  받는다. 800점이라고 했지? 그래서 그래.”

생명력11
지구력9
이능력13
체력 10
근력 5
민첩 5
재주 5
적응 8

근,민,재는 버린다. 지구력도어차피 쓸모없다. 체력은 10이면 커트라인이고 나머지가 좀 모자르지만 적당히 경험치  모아서 올리고 가면 되겠지?
다시 봐도 한심한 스탯이다 사람답게만 붙어도 시작하자마자 바로 감염준비만 마치고 가도 되는데 졸지에 랩업에만 30분 넘게 투자하게 생겼다.

“우선 사냥할거야. 이 상태로는 뭣도 안 되니까. 쉬면서 가볍게 해줄라 했는데 개고생하게 생겼네.”

널려있는 시신 중 유독 제복이 닳은 시신의 인식표를 포함해 몇개의 인식표를 집어든 후에 지겨운 시작지점을 벗어나 사막으로 들어갔다.
스탯은 하찮지만 그래도 전갈정도야 쉽게 잡을  있지.

***

10분정도 전갈꼬리를 뜯어낸 후 상점가로 나왔다. 내벽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 외벽의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고 가장 활기찬 곳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모지리들이 해금 못한 장비가 있다.

“그래서 친히 장비부터 하나 뚫어주러 왔어. 뚫으면서 작은 이벤트도 하나 해결해서 소소하게 경험치도 먹어지니까 참고해.”

-인식표 가져다주면 뭐 주나보네
-솔직히  내가 해금한 장비 해금하는 방법 나오면 태클 걸면서 놀리려고 했는데 인식표를 누구한테 전해줄 생각은 해보지도 못 했네
-야너두? 나두 ㅎㅎ

능숙하게 인파를 헤치고 시장의 끄트머리 전갈 꼬리가 잔뜩 걸려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대체 이 전갈꼬리 왜 모으는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알아내려고 회차를 두 번이나 때려 박았는데,  알아냈어.

“할배, 있수?”
“뭐냐 처음 보는 놈 같은데.”
“아니 그냥 요 앞에서 주워온 것들이나 넘길라고. 이쁘게 잘라왔으니까 잘 쳐줘”
“흐음, 기억엔 없는데 전에 왔던 놈이냐? 요즘 침침하구먼. 어디 보자”

전갈 꼬리가 한쪽에 잔뜩 걸려있지만 가게자체는 식료품점이다. 식료품점에서 꼬리를 매입하리라는 생각은 못하겠지. 원래라면 적당히 얼굴   비추고 호감도도 쌓고 나중에나 전갈꼬리 매입을 한다는 말을 듣고 용돈벌이로 쓸 수 있는 곳이지만, 이 세계는 게임이고 우리는 플레이어다. 스킵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넘길 수 있지. 적당히 친근하게 다가가서  번 이나 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 만으로 이 노인네는 쉽게 넘길 수 있다.

“어디 이정도면 괜찮구나, 이정도 쳐 주마 어떠냐?”

그리 말하면 노인은 손가락을 세 개를 세웠다. 300전인가. 나름 잘 쳐 준 것 같다. 사실대충 잘라왔는데.
돈을 건네받으며 슬며시 말을 꺼냈다.

“요 앞에 아무 개판이 났던데? 들었수?  반동 애들이 군바리들 쳤나본데?”

이들은 일반인 그라티아도 파라디수스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현 삶에 만족하진 않지만 안주하고, 변화를 희망하지만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양쪽 다 배척하고 조심스러워한다. 딱히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전형적인 소시민들이 이러할 것이고, 오히려 이게 정상일 테니.

“…못 들었는데. 정말인가? 오늘 있던 일인 겐가?”

미끼를 잡았다. 사실 안 물수가 없지. 오늘 손자 올라오는 날이니까.

자꾸만 말이 길어지는데. 미안하지만 이해해주길 바래.

이곳의 OO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이름은 북서낙원. 중앙과 동남서 북서로 나뉜다. 왜 북이 아니고 북서일까? 북쪽에 낙원 지부를 내리려고했는데 사고가 있었거든. 하여튼 그 사고로 인해 사별한 가족도 많고, 위험한 곳에서 지낼 수 없다며 떠나간 이들, 그로인해 헤어진 이들, 그리고 삶이 너무나도 크게 변해버린 이들.
그중에  할아버지의 가족도 있고, 그래서 손자가  멀리에 있는데 할아버지 돌보다가 데리고 가족들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어떻게 신분의 벽을 극복하고 입대하고, 또 성적도 좋아서 승진기회를 잡아 파병허가도 받고 뭐 열심히 살았고,  사이에  할아버지고 가족 내버리던 고집도 좀 접고 기회만 된다면 다시 가족들과 만나고 싶었는데.
별로 좋은 결말은 아니었네. 세상이 그렇지 뭐.

“그렇지 않을까? 정확히는 어제 같아 밤사이에 있었던 일 같던데, 내가  손님 같지는 않은데 아무도 그쪽으로 안 갔나봐?”
“으음, 처음 듣네. 혹시 살아남은 이는 있던가?”
“글쎄? 모르지 대충 보니까 밤에 있던 일 같은데 방금 일어난 일 치고는 좀 먼지가 많았고,  오래됐다고 하기엔 본 사람도 나뿐인 것 같고, 정리도 안 되어있었으니까”

떨리는 눈동자와 창백해져가는 낯빛 응 아쉽지만 예상대로야 영감. 내가 어떻게 해줄  없는 부분이라 미안해.

“무슨 일이라도 있어 영감?”
“아니, 아닐세. 별일 아니야.”

원래라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신뢰를 쌓고 그의 부탁을 듣는  정상적인 흐름이겠지만, 약간의 꼼수를 사용하면 이 자리에서 바로 목표를 달성   있지.

“아무튼 그래서 혹시라도 쓸데가 있을까 싶어서 이렇게 인식표를 가져왔다고. 보쇼, 군바리들한테 가져다주면 뭐라도 해주지 않을까? 나름 내가 수습해준 셈인데.”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돌아보는 모습. 그에 호응해 주머니에서 인식표들을 꺼내보였다.

“봐, 꽤나 많이 수습해왔다고. 이제 중앙에 가져다 줘야지.”

실제로 가져다준다고 크게 좋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뭐 실상이뭐가 중요하겠어. 이 노인은 현재 불안하고, 난 그 불안을 해결해줄  있다.
좋은 방향은 아니지만.

“혹시, 한 번 볼 수 있겠나?”
“뭘, 이것들? 상관이야 없는데 뭐 볼게 있나?”

흔쾌히 넘겨주자 떨리는 손으로 받아드는 모습. 사실 스스로도 눈치 챈 것이 아닐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흔한 일이기도 하다. 유저에게도 친절하지 않지만 NPC에게도 딱히 친절한 세계는 아니니까.

***

당연하게도 그의 손자는 이미 주검이 된지 오래고,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그저 손자의 이름이 적힌 인식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길 한참. 슬슬 말을 꺼내야  것 같아, 먼저 침묵을 부수기로 하였다.

“뭐, 아는 사람이라도 죽었소? 보아하니 소중한 사람이었나 보오.”
“……”
“뭐라 해줄 말도 없고 위로라 하기에도 모호하지만, 그 인식표 영감이 전해 줄 텐가? 마침 아는 사람의 인식표도 섞여있다면, 시신의 수습도 같이 부탁하면 될 듯한데.”

조용히 눈을 감는 모습이.
작고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끝이.
고이 억누르는 듯한 날숨이.
그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인식표를 받아들일 것이고,나와 함께 순찰대장을 찾아가겠지. 그리고 마지막 이별로 손자의 시신을 찾아 묻어줄 것이다.

***

“참고로 이 이벤트의 악랄한 점은 사전정보가 없으면 절대 달성할 수 없다는 점과, 달성하지 못하면 그 회차에서는 절대 클리어하지 못한다는 거야.  시신들 자연 증발하잖아.”

-맞네. 시발
-그러게 원래 이 타이밍이면 증발해야 하는데 왜 증발 안함?

“시작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귀신전갈 적당히 도륙하면 여기 정리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어.  새끼도 나중에 보여줄 건데, 초반에만 볼 수 있는 특수네임드라서 별로 쌔진 않은데 시작 랩업하고 오면 늦다보니까 시작스탯이 좋아야해. 나보다 피지컬 좋은 친구들은 쉽게 잡겠지만 난  되더라.”

-듣기만 하면 만나기  쉬울  같은데  못 만났지
-그러게 전갈 정리하면  나온다는 거는 전갈 먹으러 온다는 거 아님?

“맞아 전갈을 생으로 잡아서 모아놓으면 확정으로 볼  있겠지? 시간도 걸리고 스탯도 조져서 스킵했지만.”

- ㅡㅡ 리셋 안하고 스타트 꽂자 한놈 누구냐
-ㄹㅇ 난 아닌 듯
-일단 나도 아님

좆 같은 새끼들.

***

노인과 함께 순찰대장을 만난 후, 순찰대장이 이끄는 병사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러 이동했다.
어차피 이들도 보급이 제때 도착하지 않은 시점에서 대충 예상하고 있었을 테고, 나름 고넴에 속하는 할배라서 얼굴 도장도 찍혀있어서 별다른 대화나 조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라 굉장히 편하고 좋은 스탯벌이에 해당한다.
갑자기 병자멸시랑 반골 생각에 화가나고 짜증나면서 손발이 먹먹하고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하는데 진정하자.

[오지 않는 답장  완료]
[합동 장례식 – 발견]

-완료는 또 뭐고 발견은 또 뭐냐
-성공이랑 완료랑 머가 다른 거야?

“성공은 분기가 있는 녀석들, 완료는 단일 루트라고 보면 돼”

예를 들어 방금 완료한 ‘오지 않는 답장’은 노인에게 손자의 인식표를 전해주느냐 마느냐로 완료여부가 정해지는 퀘스트 같은 계열이다.
그에 비해 아까 완료한 ‘물 흐리기’는 양쪽을 다 방해했기에 팝업된 것인데.
만약 파라디수스를 전력으로 도왔다면 ‘보급로 지키미’가, 그라티아를 도왔다면 ‘보급중단’이 성공했다고 팝업된다.

-ㅇㅎ
-감이  안 오기는 하는데 이해는 가네.

“완료랑 성공의 차이는 사실 별로 안중요하니까 괜찮아. 중요한 것은 어떤 이벤트를 발생시키고 어떤 이벤트를 성공시키고 어떤 이벤트를 취소하느냐니까.”

-취소도 시켜야 해?
-뭐가 안중요하다고 하면 왜 자꾸 중요한게 2배로 늘어나냐
-ㄹㅇㅋㅋ

“요약하면 별거 아니긴 한데,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너희가 본 고넴이 루미나 뿐이니까 루미나로 예를 들어볼까?”

루미나는 말했듯이 중립이고.
온건파와 조금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사에 간섭하지 않고 하루빨리 백수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목적은 전 군단장을 찾는 것, 그리고 그녀와 대화하는 것.
그것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전군단장이 어디 있는지 어디 소속인지 알아내고, 그에 맞게 파라디수스의 행보를 차단하거나 추진하고, 루미나의 신뢰를 얻고 유도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이벤트를 달성하고 발생시키고, 방해가 되는 이벤트는 취소시키고 저지한다.

FPS 게임에서 이기려면 상대 죽여야 하고, 인질전 같은 거면 인질 데려오고 방해하는 상대 죽이고, 폭탄전 같은 거면 설치하거나 해체하고 방해하는 상대 죽이고.
똑같다. 덜 단순할 뿐.

-그게…말로 하시면 쉬운데요….
-쉬워보였는데요. 아니었습니다.

“뭐 나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 안했어. 근데 한번이라도 경험해 보면 좀 알거야. 그 전까지는 적응기간이지.”

떠들다 보니 어느새 노인의 가게로 돌아왔다.
이제 그는 이틀  열리는 합동 장례식에 참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적당히 울고 슬픔에 젖은  남은 삶을 이어가겠지. 그건 그거고  이제 내 보상을 받아야지.

“도와줘서 고맙네.”
“돕기는 뭘 도왔소. 그냥 돈 좀 벌어보려고 했는데 노인네 운이 좋았던 거지. 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힘내쇼. 못 내겠으면 그냥 잘 버텨보고.”
“…핫, 그래야지. 원래 그 아이 오면 주려 했던 건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자네 하게나. 잠시만 기다려 보게.”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이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이내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머 줌?
-드디어 새로운 장비 하나 나오냐?  방송 보면서 실시간으로 따라하고 있었어 내가 1빠따로 해금하고 바로 PVP돌리러 간다.

“이걸  번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으면, 너가 바로 내 희망이야. 루미나 퍼킬은 너만 믿을게.”

-???;; 먼데 시발 그런 말을 해
-갑자기 의욕 사라짐
-뭐가 튀어 나올라고

“자 받게나, 질은 좋을 걸세. 나름 공들인 녀석이니.”

다소 투박하게 생겼지만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검 집.
안에 납도된 검. 단조롭지만 심심하진 않은 코등이, 고풍스러운 느낌의 자루, 얼핏 보면 별거 없지만 확고하게 존재감을 내비치는 검  자루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고, 이제 내 손에 건네졌다.

“꽤나 좋은 물건 같아 보이는데 이렇게 넘겨도 괜찮소?”
“어차피 이제 주인 없는 물건일세. 쓰기 쉽진 않겠지만 이것도 인연인듯 하니 쥐어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적당히 처분해도 되네. 내 나름대로의 작별이라고 생각해주게나.”

그는 그 말과 함께 잠시 그리움이 담긴 눈으로 검을 바라본 뒤 조용히 등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매번 놀라울 따름이다. 쉽지 않은 일을 이렇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작별을 고한 뒤 남은 삶을 이어간다.
닮고 싶다는 생각은 쉬이 들지 않지만, 존경스러운 마음 역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할배 멋있네
-ㅇㅈ
-그래서 그게 뭐냐 칼 같은데  그런 무서운 말 하는거야

백문이 불여일견.
스탯을 찍기 위해 자리를 옮긴 뒤 예의 건물 앞에서 조용히 검을 뽑았다.

-이 씨발 사복검이네
-존나 현실성 씹넘치는 하드보일드 겜에서 사복검이 실용도가 있냐?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보스는  쓰더라. 이 검의 주인이 돼야 했던 남자애,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그 애가 사복검을 들게 만든 사람이 있어. 걔가 쓰는 거 보니까 존나 개사기 무기더라고. 난 이능력 보정 받으면 그래도 쓸 수는 있는데 솔직히 잘 쓰진 못하고, 이능력 없이는 써본 적도 없어.”

-존나 기대했는데 시발 도감에 똥 생겼다. 지금부터 똥으로 사람 패러 간다. 한판 붙을  와봐라.

오, 이걸 포기 안 해?  녀석도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닮고 싶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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