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014 - 물이 맑으면 미꾸라지는 잡혀
어떻게든 수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분위기를 풍기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척 하기를 이제 30분.
슬슬 사람이 붙기 시작한것 같다.
“확실히 진짜 개똥 불친절한 게임이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능력이 좋은 건 다행이야”
-루미나는 족히 5배는 더 쌔던데
-생명력이 400이래 ㅋㅋ 저기 구덩이 너머에 있는 지랄 지옥보다 튼튼한거 아니냐? ㅋㅋㅋ
-사복검은 언제 알려줘? 사복검은 언제 알려줘? 사복검은 언제 알려줘?
-아직도 안쳐냈냐고!!
맞다.
실로 중요하고 큰 문제다.
사실 대부분의 보스 격 고넴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의 인생에 칼집 좀 넣고,
평탄한 길 좀 갈아엎어서 험난하게 바꾸고,
그 삶을 적응하고 넘겨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정작 본인들은 별일 없었다는 듯이 과거이야기를 해주고는 하지만, 글쎄다 그냥 그들이 범상치 않은 인간들이라는 반증이 될 뿐이라고 생각해.
요는 주인공의 과거가 비록 플레이어는 알 수 없지만,보스 격 고넴들 만큼 험난하고 치열한 삶.
혹은 울퉁불퉁하고 피, 땀, 눈물 넘치는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기도하고.
삶이 평탄하더라도 타고난 재능이 다른 인물들처럼 압도적이지도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정말 압도적이고 대단한 인물이었다면 주인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깡촌 북서지부라고 해도 정말 아무도 없다고?
참고로 앙귀스의 수장은 정 반대편인 남쪽지부에서 올라온 인물들도 알고 있을정도로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다.
유통업체 직원이라서 알고 있었던 것 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남쪽 대도시 사람이 북쪽 개 깡촌 사람을 알고 있다는것은 좀 의미가 있잖아?
“즉, 주인공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것이 맞아. 그래서 지금 추적이 붙은 것도 귀신같이 눈치 챌 수 있잖아? 근데 보스들은 더괴물이었을 뿐이야.”
-고래?
-고럼 킹쩔 수 업지…
그라티아의 앞마당을 벗어나, 의심병 환자들의 거리로 돌아왔다.
이제 여기서 추적을 뿌리쳐야하는데.
“죽일까? 아니면 따돌릴까?”
대놓고 싸움을 걸 생각이면 죽이는 것이 맞다.
어차피 그라티아에는 소속될 수 없다. 절대로. 어떤 변수가 나와도.
소속뿐만이 아니라, 그라티아측 루트를 밟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죽인다는 선택지도 상관은 없다.
다만 너무 빠르게 난 너희의 적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할까?
음, 첫 목표는 이 거리에 숨어든 조직을 찾는 것, 그리고 소속될 여지가 있다면 소속되는 것.
그리고 그들은 나조차도 눈치를 못 챘을 정도로 치밀하게 숨어들어,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그들에게 호감을 사려면 역시 너무 크게 일을 벌이기보다는, 조용히 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들의 행보와 비슷한 느낌으로,
목적을 숨기고,
정체를 감추고,
행적을 흐린다.
물론 감염자를 혐오하고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정보는 이미 그라티아에게 주어졌고,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친 것은 아니지만 나라는 존재에 대해 파라디수스 역시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도내가 이룩해낸 업적에 비해 이정도면 굉장히 적은 리스크 아닌가?
심지어 혼자서 했는데?
좋아 일단은 피한방울 없이 따돌리고 봐야겠다.
-닥치고 경험치 ㄱ
-이걸 살려? 이걸 살려? 이걸 살려? 이걸 살려?
-감 잃었네
-노잼
-나
-락
-락
-나
-락
“응 그럴 줄 알았어. 안 들어줄 거야, 방송인 아니야 괜찮아, 꼬우면 다른 방송 보러가.”
-쒸,,,불,,,요즘,,,것들은,,,~!
-딱 기다려라 시발, 루미나 잡고 올테니까
-개새끼너 말고 볼 거 없는 줄 알아!!
-맞아…
-시발
“그래 잡고 오면 내 기꺼이 기만당해 줄게”
***
말했듯이 이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밖에서의 활동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다른 곳에서 볼일을 보고 잠만 이곳에서 자는 식이다.
괜히 정 들고 오래 돌아다니고 하다보면 경계가 옅어지고그러다가 실수를 하고 큰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파라디수스는 이곳에 단 1의 관심도 없었는데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도 지금까지의 이야기지만.
오늘부터 이 거리는 그라티아와 파라디수스의 심리전을 위한 전장이 되어야 하거든.
옆 골목.
사람이 적은곳에서 누군가를 따돌리는 행동은 사실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지 별 수 있다.
이 앞에서 돌아서 세 번째 빈 건물.
어딘가 번화가로 이동할 수 있으면 좋지만 어떻게든 이곳에서 승부를 내고, 내가 이곳에 숨어있다는 확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이쪽에 반군도 정규군도 모일 것이다.
이 건물에는 지하가 있다. 조금만 찾으면 발견될 곳이기 때문에 안전하지는 않지만저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그럼 그 이후 추가로 거리를 두기에는 더 쉬워지고,
그것을 반복해야만 떨쳐 낼 수 있다.
일단 인파에 숨을 곳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번 떨쳐내면 반대로 나에 대하여 수소문하기도 힘드니까.
건물 지하. 단순히 건물 지하라기보다는 짓다 말아서 마감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하수도로 들어갈 여지가 있는 곳.
물론 여기서 하수도로 들어가는 길은 없다. 부숴서 만들어야지.
뒷감당? 알바 아니죠?
마감이 특히나 더 개판이 수도하나를 잡고 부순다.
대신 유독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시간을 많이 버리면 저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좁아진다.
하수도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다.
벽에 손을 짚고 돈다. 전등이라도 미리 준비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귀한 것 무소속 일반인은 구하기 쉽지 않다. 유지비가 비싸거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렇게 어두운 곳 빛이 있으면 저들이 날 추격하는데 용이할 가능성이 있으니, 있었어도 안 썼을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찰박.
조금 더 집중해서 기울인다.
쩌벅. 차박.
확실하다. 들어왔다.
저들의 능력이 나보다 좋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는 발소리에 주의를 해야 한다.
-아 보기만 해도 냄새가 나는데 언제 나가냐
-기분이 나쁘면 무야호를 외쳐보려무나
-그만큼 기분이 좋아진단다
-야, 너도 같이 외쳐보지 않을래?
“무~야~호~”
-아 이걸 방송모드 키고 외치네
-실망이 큼
에휴 미친놈들.
***
하수도를 조용히 헤맨지 얼마나 지났을까? 위쪽에서 빛만이 들어오는 출구를 찾았다.
아무리 주변에 대해 경계하고 안 다가가려는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갑자기 하수도 뚜껑열고 누가 나오면 의심하겠지.
그래서 인기척이 특히나 더 없는 출구를 찾아서 쓸데없이 더 오래 걸렸다.
완전히 뿌리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간부터 저들도 발소리를 줄이는 게 느껴졌거든.
내가 뚜껑 열고 나가는 소리에 반응해서 내 위치를 다시 특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나가긴 해야지.
근데 여기 아직 남서쪽 거리 맞겠지?
조심스레 맨홀 뚜껑을 열고 밖을 살핀다.
번화가나 빈민가 같지는 않으니 의심병자들의 거리가 맞다.
유독 더 조용한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는 나가서 파악해 봐야 할 것 같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데 이건 어쩌지?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은데, 인벤토리도 없는 똥겜에 장비를 원 버튼으로 갈아 끼우는 기능이 있을 리 없다.
즉, 옷도 구해야하고, 장소도 찾아야 한다.
머리에도 몸에도 배였을 테니 단순히 옷만 갈아입을 장소가 아니라, 씻을 장소도 필요한데.
기본적으로 나도 다른 플레이어들도 OO를 하면서 가장 필요하고 가장 구하기 힘들어 하는 것이 거주지다.
마이 하우스가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숙박을할 곳을 구하는 것이 힘들다.
대충 당장 앞길이 막막하다는 뜻이야.
일단 뚜껑을 다시 닫아 놓고, 뭔가를 덮어서 쉽사리 안 열리도록 하고 싶지만 마땅한 덮을 것이 없네.
자리를 뜨는 것을 우선하자.
어차피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면 일단 돌아다니면서 이 장소와 거리를 두고,
내 현재 위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자.
그리고
“야 여기 아는 사람 손”
-?
-거기? 거기 어디냐면
-알려드렸읍니다.
-와 정말 도움이 되는 정보였어요!
“도움 안되는 새끼들.”
정처 없이 거리를 걷고 있자, 얼추 위치를 알 거 같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까지 외곽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외벽을 넘어가면 일반인은 위험하다.
그래도 남동쪽에는 파라디수스가 있고 낙원이 있으며, 그 너머로 중앙을 향하는 도로 또한 있다. 플레이어의 시작점 또한 그 인근이다.
북동쪽,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
페칸스와 앙귀스가 자리를 잡은 곳.
그들이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안전한 곳.
북서쪽 그라티아가 자리를 잡은곳.
그들 역시 외벽에 붙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외벽인근이 위험하다는 상식이 무안하게 정작 외벽 근처에 사람이 없는 곳은 이곳 남서쪽 거리가 유일하다.
그래도 다행히 그 덕분에 정비를 하기에는 좋을 것 같다.
조금만 더 거리를 벗어나면 이젠 개발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공터가 나를 반겨주겠지?
자칫 잘못하면 그라티아와 마주쳤을 때 무를 곳이 없으니 그래도 근처에 건물을 하나 잡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외벽 밖으로 나가는 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그래 차라리 나가자, 그게 안전하고 정비도 쉽겠다.”
어차피 또 노잼이라고 땡깡 부리겠지만 나가서 적당한 거 하나 쥐어주면 입 싹 닫겠지?
-크으 시잘알
-이번엔 뭐야? 빨리 알려줘
-크으 도감작 인정이지
***
연못.
사실 연못이라곤 해도 현실에 있는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이미지는 아니다.
딱히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도 아니다.
구태여 꼽자면 산란못 같은 느낌. 물은 그래도 보기에는 맑아 보이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
-여긴 뭐 있음?
-글게 뭐 있는 거 본적 없는데
“그냥 즉흥적으로 떠올라서. 마침 몸에서 냄새도 많이 나겠다. 히든 네임드 하나 불러 오는 법 알려주고, 그거 잡아서 도감 채우는 법도 알려주려고.”
-크으 사랑해 역시 너뿐이야!
-빛 그저 빛
-역시 난 머리 쓰는 거 보다 이렇게 뇌빼고 괴물잡는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