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033 - 거기 녹색버튼이 있죠? (꾸욱) 그게 바로 자폭버튼입...
옥상난간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금호는 굉장히 궁금한 게 많아.”
그 목소리에 꾸밈이 사라지고,
“우리 친구는 왜 이런 짓을 벌일까?”
지금껏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그 모습도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앙귀스에 악연이 있는 것일까? 담서도 율도 그럴 아이들이 아닌데.”
금호, 범 호를 사용해서 금빛 호랑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습득한 이벤트는 여우불이었다.
“그럼 파라디수스를 치우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 그녀는 금빛여우였다.
“아키야를 끌어들여서 페칸스도 견제했지?”
올려서 비녀로 고정한 머리카락.
그 색은 비녀라는 장신구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금빛.
그런 머리 위에는 얼굴만큼이나 큰 금빛 여우 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귀라는 것을 입증하듯 까딱거리고 있으며, 얼굴 옆에 있어야할 귀는 온대간대 없다.
그 눈동자 또한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듯 위아래로 찢어져 금빛과 검은빛을 띄는 여우의 눈이다.
“그래서 금호는 굉장히 궁금해. 때문에 이렇게 찾아왔어, 떠나는 마당에 이정도 호기심은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그 복장은 지극히 현대적인 분홍색 저지.
상의의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로, 상채를 숙여 나와 지근거리에서 눈을 마주친다.
바지는 검은색 돌핀팬츠.
그리고 그 뒤에는 그녀의 상반신보다 큰 금빛 꼬리.
“응? 알려줄래?”
가 9개.
“넌, 뭘,원해?”
마치 벌레가 기어가듯 귓가를 타고 오르는 간지러운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운 예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내 눈을 뚫고 내 속을 파내겠다는 듯이 일관되었고, 그 귀는 나의 반응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고 내 쪽으로 굽어져 있었다.
“각자의 이념과 신념, 이상, 소망, 원망, 그 모든 것이 맞부딪혀 뒤엉키는 순간”
“개인이, 집단이, 가진바 모든 것을 내걸고 자신이, 자신들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
“사람이, 인간이, 모든 것을 내뱉으며 맞부딪히는 그 눈부신 순간”
“오직 그 순간만을 원했어. 나는”
진짜로.
“…흐음, 재미있는 친구. 하지만 주워가면 밀레가 싫어하겠지? 아쉽지만 그럼 작별이야. 목적을 이루고 떠나길 바랄게”
그리 말하며 금호는 불꽃이 되고 불씨가 되고 불티가 되어 마침내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살았네.
밀레라고 했지? 기억해두고 시간을 돌릴 준비를 하자.
구경하다가 죽지 않게 컨디션 관리도 해야 하니까.
-[각자의 이념과 신념, 이상, 소망, 원망, 그 모든 것이 맞부딪혀 뒤엉키는 순간]
-[개인이, 집단이, 가진바 모든 것을 내걸고 자신이, 자신들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
-[사람이, 인간이, 모든 것을 내뱉으며 맞부딪히는 그 눈부신 순간]
-[오직 그 순간만을 원했어. 나는]
-크으~
-바로 클립 각
-이미 땄죠?
-무역선 출발한다~
후, 좆같은 새끼들.
[방송 송출이 종료되었습니다.]
시간은 12시. 좀 일찍 잘까?
아 그전에 커뮤니티 구경이나 해야겠다.
***
[잘못했어잘못했어잘못했어]
[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
[게임도 같이 껐다고 해줘]
-제발 혼자 보고 있는 거 아니지? 나도 보고 싶어 미안해
>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
>그렇다...우리는 존나 절대 을이다...
[나도 보여줘 미안해 잘못 했어 나도 보고 싶어]
-그냥 피곤해서 쉬러간거지? 믿고 있어 그치? 쉬다와서 다시 보여줄거지? 잘거라고? 그럼 월요일날 퇴근시간에 맞춰서 기다릴게
>지금부터 미리 숨 참는다.흐읍.
>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
[이걸 먹고튀네]
-우리의 사랑을 먹고 튀었어
>솔직히 사랑보다는 땡깡을 먹였지
>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미안해이젠정말잘할게돌아와줘
[너무 화가 나는데]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난 너무나도 힘이 없다...미안해 돌아와줘...
>맞지...얘가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원봉사하고 있는 얘한테 가서 귤까달라 사과까달라 한거였네 엌ㅋㅋㅋ
[갑자기 또 왜 갤 씹창남]
-뭔데 시발 뭐 단체로 뽕맞았냐?
>사실 뽕맞은건 네가 아닐까? 실신해있다가 이제 일어난거지
>너 절밥먹고나옴?
>절밥먹고 나와서 갤질하는 것도 레전드긴해
***
아이 좋아. 역시 사람은 타인이 불행한 꼴을 봐야 진정으로 속이 풀리는 거지.
자 그럼 이제 진짜 구경하러 가볼까.
-오후 7시 경.노바투스 지하-
녹화기능을 켜고, 방송은 키지 않는다.
세피에게 물어보니 지하를 잘 뒤져보면 극광석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사이즈가 전체적으로 맘에 들지를 않네. 죽는 거야 어차피 병으로 죽는 것보다 칼 맞아 죽는 쪽이 빠르니까 걱정 안하는데, 먹기에는너무 하나같이 크다.
우선 노리는 것은 시력강화계열의 능력.
천리안이면 베스트고.
마침후각장애와 통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시각진화도 가지고 있다.
다만 체질이 회피계열에 특화되어있어서 교전계열의 시야강화가 붙으면 좀 아쉬울 것 같은데.
아 적당한 친구를 찾았다.
그럼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면 자동진행이 풀리게 셋팅을 하고 잘 먹겠습니다.
-새벽4시. 앙귀스-
고요하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고 방에 들어가면,다시 평화롭고 조용한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겠지.
모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
그래 더는 돌아갈 수 없다.
‘오빠는 언제나 말했지’
사람은 악하지 않다고.
사람은 그 근본이 선하지 않을지언정, 마찬가지로 악하지 않다고.
사람이 선해지는 것과 악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내몰렸기 때문이고, 다른 조건이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고.
단지 세상이라는 것이 언제나 악해지려는 이에게는 가깝고, 선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멀고 험해서 그럴 뿐.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말했다.
‘선해질 필요는 없어. 악을 행하더라도 상관없고. 다만 상황에 내몰려서, 환경에 쫓겨서, 스스로의 의사나 판단이 아닌, 피치 못 해서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면 해. 항상 너의 선택으로 너의 길을 정하면 좋겠어. 그리고 겸사겸사 악하기보다는 선한 길을 걸으면 더 좋고.’
그래서 난 틀어박히기를 선택했다.
생각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와 함께하던 순간처럼 냉정해지기 위해서.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언제나 깊은 밤을 넘어 새벽이 밝아오는 순간 짤막하게잠이 들었고.
그런 육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이내 악몽과 함께 잠에서 깼다.
머릿속은 언제나 혼란스러웠고, 누군가를 향한 원망은 가실 줄을 몰랐으며, 마음속에는 항상 의문이 남아있었다.
결핍.
나라는 인물을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
결핍 속에서 태어나, 결핍된 삶을 살다가, 그 결핍을 매꾸기도 전에 더 큰 상실을 경험했다.
물건이 그러하듯 사람에게도 내구도라는 것이 있다면, 고쳐서 사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
‘분명담서라는 사람은 이미 그 내구도의 최대치가 한계의 한계까지 줄어 더 이상 수리를 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인 거야.’
천수국을 조용히 감아쥔다.
‘…가벼워’
그래,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처럼, 가볍고 자유롭다.
눈을 감고, 조용히 뽑아들고, 숨을 내쉰다.
“…”
나를 바라보는 시선. 필시 율이겠지.
그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이것이 이미 고장 난 담서라는 사람의 마지막 사용처인걸.’
내리친다.
-같은 시각. 파라디수스-
휑한 건물.
일반 병사들은 모두 피난을 시켰고, 1선에 설 수 있는 전투병과 소속 군인들만을 앞세운 채 조용히 바람을 맞는다.
“군단장님, 보고 올립니다.”
수색대장 휴드라.
존대를 하는 그의 말투가 낯설다.
가능하면 그의 진지한 존대를 듣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세상이란 것이 참 쉽지가 않다.
담서….
그래 그런 이름이었다.
그날 텅 빈 눈으로 날 바라보던 아이의 표정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그 아이는 그렇게 공허한 눈으로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난 그런 그 아이에게 죽어가던 그녀의 친족을 인계했다.
짧은 대화 후 그는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혼자 남겨졌다.
무언가 말을 건네면 좋았을까?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날카로운 감각이 몸을 스친다.
‘그렇구나, 너는 그러기로 했구나, 그렇다면 나 또한 너와 같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와 그녀는 닮았다고, 무언가 부족하고 고장 난 인간.
때문에 마지막의 마지막에 내몰렸을 때, 나와 그녀는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판단을 할 것 같다고.
난 마지막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할까?
다시 한 번 자신의 고장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상으로 되돌아가려고 할까?
아니면 남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 속에 몸을 던질까.
그리고 오늘난 알게 되었다. 필시 나의 끝도 너와 같고, 나의 선택도 너와 같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제 고민하지 않는다.
우유부단하지 않고,
의지박약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나의 끝을 먼저 간 네가 보여주고 있으니까.
체내를 맴돌던 기운이 몸을 감싼다. 와라, 나의 미래.
너의 과거로서 너를 막아 설 터이니.
-새벽 4시 30분. 노바투스 옥상-
[이능을 발견했다.]
[‘강화 - 시력’ - 당신은 얼마든지 자신의 신체를 강화할 수 있다.]
[단, 당신의 능력은 눈에 한정되어, 다른 장소에는 그 효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다.]
천리안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이정도면 관찰하기에는 좋지.
-페칸스 광산 앞-
“독이 풀렸네~”
정말이지 완벽한 독이 풀렸다,
담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아이.
진심으로 아끼는 아이.
루미나
안타깝고 애처로운 아이.
그렇기에 항상 신경쓰이던 아이.
만약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북서지부를 저울질 하는 순간이 온다면,
모든 북서지부를 내거는 한이 있어도 기필코 그 아이들을 위해 저울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소중한 두 아이는 서로 칼을 뽑았다.
그러니 나는 그 둘을 막아서야한다.
“너한테 시간을 뺏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멸망의 뱀. 빌어쳐먹을년아!!!!!!!!!!!!!!!!!!!!!!”
“나도~ 너랑 싸우는 게 속이 편할까? 우리 사이좋게 가자~? 염병할 년아”
-노바투스 앞-
“나와”
난 인간이라는 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선과 악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동일한 조건과 동일한 상황,
이득이 발생하고, 손해가 발생하고,
그 어떠한 손득도 발생하지 않는 경우까지,
언제나 선을 행하라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모든 경우를 비교했을 때 악에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을까 선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 선을 저러버리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 비율이 어떠한가.
이미 세상은 악으로 기울었다.
아무것도 행하는 않는 행위는 이미 악을 방치하는 행위와 같다.
이미 선과 악을 골라서 행하는인간에게 그 상황에 따른 선택을 인정해 줬으니 필연적으로 그들도 나의 판단을 수긍해야한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너희들은 내가 너희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도, 따라서 내가 너희에게 적의를 품는 것도,너희는 받아들여야 한다.
오만한가? 그렇다면 너희의 창을 내게로 향하면 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승리로서 입증하면 된다.
난 나의 승리로 나의 생각을, 의견을, 신념을 입증할 것이니까.
-남서거리 건물 옥상-
노바투스와 유이.
앙귀스와 파라디수스.
담서와 루미나.
아키야와 시엘라.
개판이네 진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