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034 - 망가지고 부서진 것들 (35/99)



〈 35화 〉034 - 망가지고 부서진 것들

3년 전.

담수가죽은 해,
담서가 문을 닫은 해,
시엘라가 유이가 떠난 해,
페칸스가 설립된 해,
앙귀스의 사람이 줄어든 해,
그라티아의 사람이 늘어난 해,

그리고 새로하기 버튼 누르면 시뮬레이션이 돌아가는 해.

마가 낀 날이 아닐 수가 없다.

자신들의 수장의 죽음이 체제에 대한 반발로, 체제에 대한 반발이 강한 공격성으로 변한 앙귀스의 소속원들은 낙원 타도를 내걸고 그라티아로 대거 이전을 했고, 본격적으로 그라티아와 파라디수스의 사이가 안 좋아졌다.

그로인해 앙귀스의 전력은 일부 간부진에게 몰려있는 기형적인 전력구조가 되었고, 앙귀스에 남은 이들은 사실상 낙오자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전이 벌어지는 작금의 사태에도 앙귀스 측 인원은 많지 않다.

따라서 본래라면 파라디수스의 긴장감은 말이  되는 것인데.

짜잔 절대란 없군요.

파라디수스의 군인들은 안타깝지만 각 잡고 휘둘러지는 천수국 한 획이면 모두, 숙소에 쓰고 나왔을 유서에 혹시라도 오타가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라티아의 득세가 될 것이고.

즉 지금 파라디수스의 상황은 내가 예시를  총력전을 피해야할 상황에 2가지나 해당한다.

심지어 1번조차도 변수가 많기 때문에 명백하게 유리한 상황조차 아니다.

천수국이 뽑아지는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루미나가 쏘아지는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루미나를 걱정하는 것이 얼토당토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 세력의 전면전에 한 세력 측의 머리에 해당하는 인물이 혼자서 누구보다 빠르게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행위는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

그럼에도 그것이 파라디수스의 전력을 보존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루미나는 끔찍하게 게으르고 무기력할 뿐이지, 절대 무능하지 않다.
그리고 절대 멍청하지도 않고, 판단이 흐려지지도 않는다.

아주 짧은 순간 이미 그녀는 계산을 마쳤겠지.

자신은 담서와 닮았다.
담서가 잃은 것을 자신도 잃는다면 자신 또한 저런 삶을 살 것이다.
담서는 소중한 이의 유언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그럴 이가 없으니  심할지도 모르고.
따라서 자신에게 있어서 이번 싸움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가능한한 잃지 않기 위한 싸움.

그리고 자신이 잃을 수도 있는  중에서 가장 가치가 적은 것은 자신의 몸.

그러니 루미나는 지휘관으로서도 인간 루미나로서도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

그에 맞서 얼굴을 찌푸리며 치켜든 천수국을 자세를 바꿔 휘두른다.

루미나를 과소평가 했구나 담서야.
그 여자 네 생각보다 배는 괴물이란다.

투쾅!

전신을 휘감던 이능을  채로 역류 시킨 것인지, 엄청난 가속을 얻으며, 그대로 지면을 박살내며, 달려 나간다.

무기술의 최강자와 맨손 육탄전의 최강자.

천수국을 집어넣으며 창과 방패를 모두 꺼내는 담서.
루미나를 인정하고 본격적으로 근접전으로 대응하려는 모습.

“잘 봐둬, 오른손에 사복검, 왼손에 금잔화, 그리고 창과 방패를 모두 꺼내고, 각 창이 각자의 색을 발하며 날아다니는 모습. 저게 담서의 진심모드야.”

물론 지금 보는 이는 없지만.

실제로 휘둘러지는 날의 길이는 짧다고 하나 장점이라고는 레인지 밖에 없는 천수국은 근접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 비해 뽑을 때, 휘두를 때, 그리고 넣을 때.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에 검격을 집어넣을 수 있고 사복검과 함께 사용하는 것에도 큰 지장이 없다.

그리고 저 창.
각각 파란색, 빨간색, 흰색, 보라색의 창대를 가진 창.

전에 말했지 능력을 발휘해야 그 때 부터가 진짜라고.

저 창과, 방패, 그리고 사복검. 모두 담수의 유품이다. 담수가 자신의 인생을 담아서 담금질하고 두드려낸 무기.

이미 고인이 된지라 그의 정확한 능력은 알 수 없지만, 그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저 창과 방패는 OO에 존재하는 유일한 아니 4자루와 2개니까 유일은 아니지 6개밖에 안 되는 마법무기다.

쾌속의 푸른 창, 내 목을 노리던  창은 다른 창보다 빠르다. 주로 급소를 노리게 시켜놓고 할일을 하는 이 많지.

필살의 붉은 창, 내 머리를 노리던 이 창은 찔린 이의 상처를 키운다. 보통 급소에 찔리면 순식간에 장기까지 닿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역류의 흰색 창과 저주의 보라색 창, 나를 마구잡이로노리던 이 두 창은 각각 찔린 이의 이능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상처 회복을 방해한다.

그리고  방패들은 반동과 반발력을 무시하고.

사복검은 사복검이다.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구지 꼽자면 자신에게는 가볍고, 상대에게는 무겁고, 그 속도는 빠르다.

그러니 저런 정신 나간 전술을 취할 수 있는 것이지.

뒷일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크게 휘둘러지는 오른손.
그 손에 쥐어진 사복검은 상대를 감기위한 길이만큼만 늘어나 그대로 루미나를 감싸듯이 덮친다.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몰아치는 세 자루의 창.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는 퇴로에는 항상 방패가 위치해 그 활로를 막는다.

반동과 반발을 무시한다고 했지?
그대로 힘으로 밀고 나가는 행위도 쉽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퇴로에 장애가 들어서자 신체로 받아넘기려는 모습.
그걸 노렸다는 듯이 팔에 사복검이 감기는 순간 검을 당기며 형태를 되돌리는 모습.

그리고  상황에 대처하지 못할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쏘아지는 붉은 창.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그대로 뼈가 드러날 정도로 팔이 찢겨나갔겠지만, 이미 세 자루의 창으로 잔상처가 늘고 이능력도 방해받고, 그 상처가 가져와야할 손실도 예상보다 크며, 어깻죽지에 내리 꽂힌 붉은 창은 더 깊이 내리 꽂혀  근육과 뼈를 헤집어 놓겠지만.

담서는 아직 루미나를 모른다.

까드드드드드드드득!

회수되던 검과 인간의 팔이 만나서 나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없는 소리. 그 팔은 옷이 찢겨져 나갔을  생채기를 제하면 건재하다.

팍! 파팍! 팍!

창이 인간의 피부를 뚫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한 소리.

쾌속의 창은 이미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역류의 창은 이미 의도적으로 이능력을 역류시키며 싸우는 루미나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저주의 창은  깊이가 얕아  저주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필살의 창은 생채기의 깊이가 깊어졌을 뿐 역시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끌어당겨지는 사복검에서 이미 이상을 감지하고 금잔화마저 뽑아 휘둘렀지만,

팅! 티팅!

저게 어디 검과 피부가 맞닿아 나는 소리인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모습.

자 이제 좀 이해가 되니?

자신의 몸이 가치가 낮은 이유.

전략게임에서 본진을 지키는 병력과 자원을 수급하는 주요 거점, 그리고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되지는 않는 방패.

뭐가 제일 가치가 낮을까.

방패가 뚫리는 일이 있다면 패배는 확정된 것, 상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것을 모르는 상대입장에서는가치가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치가 낮은 것을 미끼로 내던지며 진정으로 가치가 높은 것을 지킨다.

그것을 이해하는 이가  파라디수스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의 판단은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답안일 것이다.

미간의 주름이 깊어지며 항상 의욕이 없고 퀭하던 눈빛에 약간의 경악과 의문, 그리고 많은 양의 분노가 담긴다.

“그런 힘을 가지고, 당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날, 당신은 다 막아낼 수 있었잖아!”

금잔화가 완전히 검집에서 뽑혀 나오고 그대로 공중에 뜬다.

허리춤을 지키던 천수국 역시 그대로 하늘로 내던져진다.

담서의 제어하에 허공에서 혼자 오롯이 그 검로를 담아내는 천수국과 금잔화, 파라디수스의 성채를 길게 그으며 그 경로 상으로 끼어  것이 분명한 루미나의 목을 향해 그 검기를 발산한다.

예상대로 경로를 막아서며 허공에 팔을 들어 검로를 차단하고 목으로 향해지는 검기는 방치한 뒤, 그대로 검 날에 팔을 베이며 담서를 향해 쏘이지는 루미나.

그런 다리를 감을 기세로 늘어지는 사복검과 접근을 막아서는 창.

제 아무리 견제를 하더라도 결국 거리를 내주지 않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아는지 방패는 이미 방어용으로 돌려졌다.

격돌까지 콤마 몇 초.

싸움은 이제  시작된 참이다.


***

-담서-

끊임없이 파란 창이 질러진다.

발이 디뎌지는 것을 방해하고, 몸에 힘이 실리는 것을 막아서며, 끊임없이 질러진다.

흰 창은 상처를 누적시키는 것은 포기한 채 루미나의 공격이 행해지는 순간만을 노려 그 팔에, 다리에 몸에 실리는 이능력을 방해한다.

보랏빛 창은 꾸준히  상처를 남기며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장기전의 포석을 쌓아간다. 쌓이는 기둥은 결코 크지 않지만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 믿으며.

푸른 창이 그저 행동을 제약하기 위해 질러진다면 붉은 창은 신경을 분산시키기 위해 질러진다.

 아무리 튼튼한 괴물이라고 해도 급소를 향해 끊임없이 가해지는 공격은, 심지어 약간의 상처만 허용해도 항상 2배 이상의 깊이를 파고드는 공격은, 결국 의식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다.

그 의식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도 결국 장기전이 된다면 빛을 발하리라.

창의 역할을 완벽히 배분한 뒤, 창으로부터 의식을 돌린다.
수없이 해온 행위 멀티태스킹은 익숙하니까 뇌의  구석에서 연산을 하도록 내버려둔 뒤, 금잔화의 경로에 집중을 싣는다.

회수한 검을 다시 뻗으며 휘두른다. 그 길이는 짧게 결코  필요는 없다. 내 애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차피 이 녀석으로는 큰 상처를 입힐  없으니까.

뻗은 검을 S자로 굽히며 회수한다.

접근해오는 상대를 방해하면서 잔 상처가 조금 더 길게 찢어지도록 긁어낸다.

주춤거리는 상대를 압박하며 금잔화에 조금 더 강한 힘을 담아 검기를 뿜어낸다.

천수국을 빠르게 되돌려 방패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경로를 틀어막는다.

천천히 조여 나가며 숨통을 틀어막아 마지막에 쐐기를 박아 넣는 것으로 승부를 보자.
하루를 온전히 갈아 넣어도 승부가 안 수도 있지만 집중력만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라는 안일한 생각을 쳐부수겠다는 듯이 은빛 기운이 신체를 감싼다.

직감했다. 그녀의 싸움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지금껏 느끼지 못한 강렬한 풍압.

그녀의 전투방식은 과격하고, 파괴적이며, 뒤를 보지 않는다.

지금 또한 그렇다.

모든 창의 공격을 아무런 대처도 없이 받아내며, 팔로 막아내는 이젠 팔로 회수되는 내 검을 막아내는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유의미한 상처를 줄 수 있어서 그나마 경계하던 진심이 실린 금잔화의 검기도 더 이상 팔로 막아내지 않는다.

가장 유의미한 상처를 줬던 천수국의 검날마저도 목에 들어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역류의 창으로 방해받는 것도 이젠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는지 역류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힘을 폭발시키며 뛰쳐나온다.

‘저 정도의 폭류를 몸으로 버티면서 뛰어 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장담할  있다. 지금은광산에 처박힌 북서지부의 여제도 저 폭류가 몸 안에서터지면 몸에 구멍정도는 뚫리고  바가지정도는 뱉어낼 것이다.

저렇게 이제야  눈이 트인다는 듯이 생기가 도는 눈으로 적의 목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큭, 당신 생각보다 더 미친년이군요.”

“응, 자주 그렇게 들었어.”

빠르게 방패를 회수해 앞에 세워 막았지만 크기가 작은 방패로는 결국충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싸움이 시작하고  시간이 흘렀지?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니 2시간은 넘게 흐른 것 같은데.

고작 2시간.

2시간 만에 간접적으로나마 타격을 허용했다.

정신이 살짝 아득해진다.

부디  미친년의 몸을 감싸는 은빛 기운이 강한 패널티를 가진 능력이면 좋겠지만.
오히려 생기가 돌고평온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후우, 당신은, 왜, 그런 힘을 가지고도…’

근력도, 속도도, 근소한 차이로 밀린다.
신체의 내구도는 압도적으로 밀린다. 난 저런 정신 나간 광인의 싸움법을 시험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결국 의지할 것은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물려준 것들과,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한 내 능력 뿐.

뱀이 몸을 감아오는 것 같은 감각. 이봐, 그거 알아? 나의 싸움도 지금부터야.

***


-루미나-

하얀 창은 번거롭다. 이능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의도적으로 발생시키던 충돌의 균형을 무너뜨려 그 반발력을 낮춘다.

하지만 그뿐, 5와 5의 힘이 부딪혀 25의 출력을 내려던 것을 20으로 깎아낸다면, 100과 100의 힘을 부딪치면 된다.
부족하다면 200과 200을 아직도 부족하다면 400과 400을 부딪치면 된다.

내 몸은, 내 능력은, 내가 타고난 것은 나를 내던지고 불태우기 위한 것이니까.

다시금 찔러오는 창을 받아내고 뽑히는 순간을 노려 쏘아진다.
지금이라면오히려 방해가 덜하니까.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고 하던가?

안타깝지만 지금의 너는 나의 살조차 취할  없어.

나 또한 너의 뼈를 취하기엔 모자라겠지만.

소모전은, 내가 원하던바야.

 진심으로,  전력으로 부딪쳐!
너의 끝은 그게 아닐 터.

난 너를 아직 잘 몰라.
하지만 너도 아직 나를  모르지.

넌 나와 닮았어. 그러니 너의 현재는 나의 미래와 닮았을 지도 모르지.
 너와 닮았어. 그러니 나의 현재는 너의 과거와 닮았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우린 더 강하게 섞여야해.
더 진심으로,  미친 듯이, 더 강렬하고, 주체할 수 없게.

방패가 내 손을 가로 막는다.

그럼 방패를 후려치면 될 뿐.

투쾅!

너의 몸은 나의 몸보다 튼튼하지 못해.
이렇게 가해지는 충격의 여파만으로 난 너를 앞설 수 있어.
넌 나를 꺾을 수 있니?

그녀의 미간은 다시  깊어지고,
그녀의 눈빛은 더 크게 타오른다.

너의 표정은 그날의 나와 닮았다.

지금 나의 표정은 어떨까?그렇게 되기 전의 너와 닮았을까?

나의  과거, 그리고 너의 더 먼 과거.

그 날 너는, 그리고 나는 빛이 났을까? 그런 나날이 이어졌다면 우리는 더 빛이 났을까?

 끝에 스스로 빛을 냈을까?

그럼 우리는 이제 늦은 것일까?

모르겠다. 우린 이미 고장이  버렸으니까.

주춤한 틈을 노려 그대로 다리를 뻗는다.
그거 알아?
발차기는 기본적으로 주먹의 배는 상회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체중 또한 싣기 쉽고, 위력을 높이기도 더 쉽지.

그 대신 균형이 무너지기 쉽고, 빈틈 또한 커지지만, 그러한 리스크는나에게는 의미를 가지지 못해.

아무런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는 나의 공격을 받아낼  있을까?

몸을 띄우고, 몸 전체에 회전을 담아, 뒤를 생각하지 않고, 내려찬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지나고.

콰앙!

귓가를 때리는 강렬한 소리.

그 짧은 찰나 창이 찔러져 온 횟수는 10번을 넘고, 경로 또한 2개의 방패를 겹쳐 막았지만.

“크흡…!”

그 정도로는 내 앞을 완벽히 막을 수 없어.

고장 난 이들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싸움.

그래도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고장 난 것은 두드리고 두드리다보면 변해.’

날이 나간 검은그 형태가 더 이상 검이 아닐지라도 영원히 부러져서 쓸모가 없는 물건일 필요는 없다.

부러진 창은 결국 다시 이어진 창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 끝의 예리함은 다시 활용할 여지가 있다.

‘너 또한 그렇고.’

그러니 넌 변할  있다.

넌 변해야 한다.

그래야 나 또한 그럴 수 있다.

“이제, 눈이 뜨였어?”

퉷.

검붉은 피가 그녀의 입에서 뱉어진다.

“네, 당신이 염병 상식이 안 통하는 괴물이라는 점이 이제 보이네요.”

드디어 눈빛에 감정이 아닌 생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의 역사는 꼬였고, 우리의 삶은 비틀어졌으며, 우리는 망가진 인간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너와, 아직 되돌릴 수 있는 나는 다르지만.

망가진 채로 부서질 필요는 없어.

힘을 끌어올려 몸을 감싼다.

두들겨 패는 것도, 두들겨 맞는 것도,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이니까.

너의 지금을 흔들고, 너의 지금을 모두 받아줄 수 있어.

더 쌔게 들어와.

너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봐.

너의 삶을, 역사를, 과거를, 현재를 모조리 부딪쳐와 봐.

용서를 바라지도, 화해를 바라지도, 행복을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말없이 묵묵히 받아내는 것은 내 특기니까.

그렇게, 공중을 날던 검이, 내 경로를 막던 검이, 그녀의 왼편에 나란히 늘어섰다.

“당신 그거 아세요?”

뭔가 온다.

“저는.”

이번 것은 확실히 크다.

“왼손잡이에요.”

“응, 그럴 것 같았어.”

푸슉!

첫 파육음.

안타깝게도 튼튼한 것엔 자신이 있었지만 첫 파육음은 내 몸에서 났네.

그럼 2막으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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