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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035 - 비가 내리고 / 그림자는 진다 (36/99)



〈 36화 〉035 - 비가 내리고 / 그림자는 진다

난장판.

OO를 하면서 루미나랑 담서가 맞붙는 것은 보기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어렵냐면 나도 지금 처음 봐.

기본적으로 부딪힐 일이 없는 두 사람이니까.

담서가  정신으로 날뛸 때면, 루미나는 언제나 싸움을 피한다.
득이 없고, 손해는 큰 싸움이니까.

그리고 그런 루미나와 파라디수스를 담서는 무의미하게 공격하지 않는다.
담수의 목적에 반하니까.

담서가 정신을 놓고 날뛸 때면, 언제나 시엘라가 막아선다.
시엘라와 담서는 완벽한 역상성, 결국 시엘라는 죽어가는 담서 앞에서 비를 맞으며, 검은 눈물을 흘리며, 낙원을 향해 진격하고, 루미나는 그런 시엘라를 도우면 돕지, 막아서지는 않는다.

그럼 우리 불쌍한 낙원은 지금까지 운과 상황이 좋아 유예되던 최후를 맞이하고 회차가 끝난다.

따라서 나도 처음 보는 싸움.

솔직히 루미나의 승리를 점쳤다.

압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끝까지 루미나가 우세한원사이드 게임.

그것이 내가 예상한 결과.

솔직히 전투의 상성이 좋지가 않다.

루미나의 능력은 일반 능력은 순환과 고유능력인 [아다마스]
금강석을 뜻하는 그녀의 능력은 금강석의 의미 그대로 ‘불멸’

정확하게  능력의 요점과 효과를 정리하여 서술할 수는 없지만,

저 상태의 루미나는 아마 체력 스탯이 4자릿수를 노려볼만 하지 않을까?

유이는 아직 모르지만 시엘라보다 체력이 높을 것 같지는 않고.

시엘라의 체력은 확실히 루미나보다 높지만, 그것도 능력을 발휘하기 전의 루미나지.

저 상태의 루미나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시발 저걸 뚫어?

저 사복검이, 창들이, 방패들이, 담서의 주무장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담서가 왼손잡이인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금잔화와 천수국은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담서가 왼손으로 진심을 담아 감정을 담아 모든 것을 토해내며 휘둘러야  힘이 나오는 것도 알고 있다.

근데 그게 금강루미나를 뚫어?

너무 놀라는 거 아니냐고?

말했듯이 OO에서 플레이어는 절대로 고넴들을 정정당당하게 우세에   없다.

일기토라는 것은 상대방과의 1대1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진심으로 몰아넣었을 때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일기토를 진행하면 결과적으로 둘 다 죽거나, 상대방만 죽는다.

내가 이기면 상대만 죽고, 내가 지면 상대는 자살하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날뛰다가 결국 어떻게든 죽겠지.

죽는 시점에서 상대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몰아넣는것이 일기토의 성립 조건이다.

거기에 더해서 온갖 수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약화시킨다. 아 솔직히 모든 스탯에서 밀리고, 이능력의 성능에서 밀리고, 이능력의 숙련도에서도 밀리는데, 어떻게 이기냐고 ㅋㅋㅋㅋㅋㅋㅋ

말하고 보니까 존나 사악하고 흉악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졸렬하고 아무튼 그런데.

그래서 루미나의 일기토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단 루미나한테 안 잡히고 파라디수스를 헤집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게다가 성립만 했을 뿐이지 아직 완벽한 조건은 만들지 못했다.

저 담서를 봐, 내가 어떻게 저걸 일기토로 꺾어.

그래서 대표적으로 담서전에서는 담서의 의욕을 깎아내리고, 의지를 깎아내리고, 희망을, 목표를, 삶  자체를 끝도 없이 깎아 내린다.

그런 상태에서 온갖 극독을 탄 차를 그녀에게 가져다주면, 담서는 공허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본 뒤, 조용히 차를 마신다.

맛을 음미하며, 자신의삶을 되돌아보며, 조용히.

그리곤 혼잣말을 읊조린 뒤 일기토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는 담서전은 60이상의 민첩과 넉넉한 생명력과 지구력, 그리고 90이 넘는 체력.
이 정도만 있으면 굉장히 쉽게 이길 수 있다.

그럼 도감에 기록되는 담서의 스탯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초라한 붉은 색으로 물들은 스탯들이 나를 반겨주고, 적당히 사복검에 몰려서 필살의 창에 찔리는 것만 피하면 결국 담서가 먼저 자멸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필살의 창에 찔리거나, 금잔화 혹은 천수국을 뽑는다면 내가 지겠지만, 100% 지겠지만, 그럴 의지가 없는 담서는 그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기다리며 나를 상대해 온다.

다행히 1회차만에 성공한 담서전의 끝에 그녀의 시체 앞에 무릎 꿇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솔직히 NPC들 너무  만들었어. 그러니까 시뮬레이터 소리를 하는 거지만, 정도가 있지.

유언이라고 하기는 뭐한 죽음을 앞두고 내뱉는 혼잣말은 사람을 과몰입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솔직히 루미나 일기토가 힘든 것에는 그런 감정적인 부분도 있어.

루미나와의 일기토를 위해서는 파라디수스를 개판 쳐놔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고넴들은  내 심금을 울리거든.

물론 멀쩡한 상태로 맞이하는 저 씨발년에게 그런 안타까운 마음 따위는 전혀 일렁이지 않는다.

그런 과몰입은 루미나의 시체 앞에서 하는 것으로 충분해.

나의 OO 경력이 얼마나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몰입할 때는 몰입하고, 게임할 때는 게임 해야지.

아무튼 요컨데,
저런 생기? 넘치는 담서를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말이야.

툭. 투둑. 투두두두둑.

아, 벌써? 슬슬 아키야와 시엘라의 싸움도 시작된 것 같다.

“시발 너무 진심인 것 같은데 둘 다?”

비는 시엘라의 능력, 그리고 저 검은 귀기는 아키야의 능력.

그리고 둘의 상태는 단 일말의 흙먼지도 없이 멀쩡하다.

단 한순간의 전초전도, 탐색전도 없이 바로 이능력부터 깔고 부딪히기 시작했다는 뜻.

그것도 바로 지금.

“씨발 얼마나 진심으로 능력을 켰기에 비가 여기까지 내리냐.”


‘님부스’
모든 이능력을 소실하지만, 모든 이능력을 일부 사용할  있는 능력.

이 비는 그녀의 이능력이, 그녀가 정제한 에너지가, 그녀만이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방출되어 올라가서 응집되어 내리는 것.

비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녀만이 알겠지.

그녀가 그렇게 구현했기 때문에 비가 되어 내리는 것.

따라서 내가 물려받아도 비가 되어 내리고, 다른 누가 물려받아도 비가 되어 내린다.

비가 내리는 동안 그녀의 신체능력은 주변 이능력의 농도에 따라 강해지고.

그녀는 모든 체내에 작동하는 능력을 사용할  있다.

순환, 촉진, 재생, 급류 등.

또한 그녀는 모든 체외에 작동하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강화, 가속, 경화 등.

그리고 그녀는 순수속성의 분출과 방출 계열을 사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흡수 또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비로인해 짙어지는 에너지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그 능력들은 강해지고, 그 끝에 발동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에 감긴다.

 타이밍까지 끌고 가면 보통 주변에 있는인간은 녹는다. 에너지의 농도를 버티지 못하고.

내가 쓰면 얄짤 없이 그렇게 되기 전에 파란 막대가 증발해서 없어지지만.

게다가 다른 이능력은 발동시킬 수도 없지만.

그걸 감안해도 비가 내리는 동안 강해지는 스탯의 양은 기본적으로 이능력과 적응에 비례하여 강해지고, 비가 유지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것이 나의 보통 싸대기  히트 킬의 비밀.

그래서 시엘라의 스탯은 어차피 일기토도 열기 쉬우니까 바로 확인했었는데.


생명력 ???
이능력 -
(그녀에게 이능력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지구력 ???
체력 ???
근력 ???
민첩 ???
재주 ???
적응 -
(그녀에게 적응은 더 이상 제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 씨발 뭐에요 이게?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2트 해보고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별도의 루트에서 비가 자의가 아닌 방법으로 멎는 꼴을 본적이 없는데 그냥 무한하다고 할 것이지~ 아무튼.

그런 그녀의 비는 그녀가 진심이면 진심일수록 멀리 넓게 굵게 내린다.

지금 시발 아키야와 시엘라가 페칸스 앞마당에서 싸우니까, 여기까지 닿는다는 것은.

걍 북서지부를 통 채로 덮는다고 봐도 무방하겠네.

다행히 빗줄기가 확실한 검은색이 아닌 그냥 물줄기인 것을 보니, 이능력의 여파로 내리는 비인 것 같다.

하 얼탱이가 없네.

이능력을 켜면 이능력 외적으로도 기상이 변화한다는 거잖아.

물론 주변인들이 위험해서 기우제용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리고 다가가기도 힘들정도의 귀기를 내뿜으며 광소하는 아키야.

아키야의 능력은 이미 말해줬었지?

담서와 루미나의 싸움이 2시간이 넘게 이어진 결과 이제 정말 진심담서 VS 진심루미나의 싸움에 들어갔는데,
여기는 어떠한 전초전도 없이 바로 진심싸움이다.

2시간동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담서와 루미나는 둘  살아남을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존재한다면,
저렇게 웃는 아키야와 무표정한 시엘라의 싸움에 생존자는 없을 거라는 거?



***



-2시간 전. 페칸스 광산 앞-

“그래 우리 뱀새끼는 왜. 내. 앞을. 막아서고. 있을까.”

씹어뱉듯이 내뱉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하나는 없어져야  사이잖아?”

내뱉어진 말 위로 다시 뱉어진다.

“그게 지금일 이유는?”

그 목소리에 높낮이는 점차 사라지고.

“그냥 지금이라면 네가 가장 좆같아 할 것 같아서”

그 목소리에 감정 또한 사라진다.

“하. 대체 무엇을 주워 쳐듣고 이러실까?”

“음~ 아직 듣지는 않았지”

“아직? 아지익? 변온동물새끼가 맨몸으로 자다가 돌아버렸나?”

“그럴지도 몰라, 나도 내가 돌아버린 건 아닌지 아직도 안 믿겨”

“추워서 돌아버렸는지 더워서 돌아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가서 36.5도 맞추고 자는 건 어때?”

“그럴까도 생각하고 있어 지금도.”

“그럼 꺼ㅈ…”

“근데, 이번엔 진지해야할  같거든”

정적.

무표정한 얼굴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은 점차 크기를 키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살얼음을 먼저 부순 것은 뱀.

“그래서 진지하게 뒤집어엎어 보려고”

“…”

“별다른 말은 딱히  해. 그럴 사이도 아니잖아?”

“…”

“이해를 구하지도, 양해를 구하지도, 얌전히 날 위해 돌아가 달라고도 하지 않아.”

“…”

“그냥…끝내자, 너와 나의 미적지근한 견제도 끝내고, 의미 없이 이어지던 소꿉놀이도 끝내고, 가치 없는 이곳생활도, 희망 없는 삶도, 뭐든지.”

웃는다. 그렇게 뱀은, 그림자는,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미친 것처럼, 해맑게, 우울하게, 밝게,씁쓸하게, 행복하게, 분노를 눌러 담아서.

웃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까지인가보네. 사실 난 너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

표정이, 온도가, 높낮이가, 감정이, 천천히 하나하나 없어졌다.

끝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저 오롯이 그녀만이 남았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고.

빛도 없이 그림자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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