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036 - 그렇게, 넌 너를, 난 나를, 막아섰다. 막았었다. (37/99)



〈 37화 〉036 - 그렇게, 넌 너를, 난 나를, 막아섰다. 막았었다.

-아키야-

강하게 내지르는 팔꿈치.

이어지는 철산고.

그대로 힘을 실어 세로로 돌며 내리찍는 다리까지.

파라디수스의 통곡의 벽을 가르친 게 본인이라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는 전형적인 전수 공세.

그 몸짓에 망설임은 없고, 그 공세에 주저함은 없다.

아직 안정되지 않은 자세를 기반으로 체중을 싣고 이어지는 뒤돌려 차기.

뻗어진 다리를 그대로 축으로 삼아 발차기를 이어간다.

균형을 잡는 것도, 잃고 체중을 싣는 것도, 모두 의도 하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을 입증하듯 단단하게 축이 되는 오른다리.

방금 전신을 감아 회전하며 돌려차기를 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거기에 하나 더, 왼다리도 오른다리도 왼손도 오른손도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은 없고, 자신의 제어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없다고 어필하는 발차기.

그리고 그 몸짓에는 손짓, 발짓에는 하나같이 무시할 수 없는 충격이, 파동이,힘이 실려 있다.

그래 이미 세상에 일부가 되어있는 나에게도 충격의 여파가 미칠 정도로.

화가년 보다야 할 만하지만, 역시 이 년도 나랑 상성이 맞지 않는다.

나의 이능은 세상과 융합하는 것.

그리고 이 빌어먹을 년은 자신의 주변을 자신으로 채우는 것.

도화지가 되는 능력과 도화지를 자신의 색으로 채우는 능력이라고 보면 될까?

불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체능력이 압도적인, 뇌까지 근육인  군단장을 상대로 화이트칼라를 넘어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뉴칼라의 선두주자였던 연구소장의 신체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애초에 저런 무지성 육탄전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나에 대한 모욕이야.

뻗던 다리를 그대로 축으로 삼아 다시 한 번 도약, 그리고 이어지는 내려찍기.

시야가뒤집히고, 세상이 검게 물든다.
검게 물든 시야 속에서 공간을 느끼고, 흐름을 잡고.

‘지금’

몸을 기억해내며, 감각을 되돌리고,휘두른다.

“여전히 성가시구나.”

“아핫! 너무 좋아, 역시 넌 그럴 때가 가장 예뻐.”

그 무표정, 그 무감정, 나의 세계에 어울리는 검은 빗줄기, 나의 세상에 걸맞는 무채색.

내질러지는 발차기에 그대로 노출된다.

어차피 별 의미는 없으니까.

그렇게 다시금 육체를 놓고, 감각을 놓는다.

검게 물든 세상 속.

누구보다 강렬한 너를 찾는다.

무엇보다 강렬한 너를 찾는다.

그런 너의 뒤에서 너를 삼키기 위해 팔을 내지른다.

내질러지는 것은 팔이 맞을까?

팔은 삼킬 수 없잖아

그럼 혹시 입은 아닐까?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너를 덮친다.

너의 주먹이 뱀의 머리를 꿰뚫고, 너를 삼키던 뱀은 구멍이 난 머리로는 너를 삼키지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녹아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검게 물든다.

너의 발밑 너를 끌어당기기 위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너는 당겨지지 않아….

당겨? 하지만 나에게 손은 더 이상 없는데? 이건 뭐였지?

입이었다.

그래 난 발 밑에서부터 너를 삼킨다.

 발을 들어 크게 돌려 차고, 뱀의 아가리는 그대로 잘려나가 너를 삼키지 못한다.

바닥에는 다리가 있어.

다리는 강인해.

그럼 하늘에는?

그래 그럼  하늘에 있다.

부딪힐 것 같아.

부딪혀? 왜? 들이받으면 되잖아.

그래 들이받는다. 하늘에서 일각고래가 떨어진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진다.

주먹을 뻗고, 피하고, 다시 주먹을 뻗으며 대응하는 그녀.

땅속으로 꺼진 나는 다시 튀어 올라 그녀를 노린다.

고래가 땅속으로 꺼질 수 있나?

무슨 소리야 여긴 바다인 걸?

땅이 일렁거린다.
바다가 일렁거린다.

“시발, 지랄을 한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실어 바다를 밟고 선다.

뿔만으로는 모자라다.일각고래만으로는 모자라다.

난 그녀를 삼킬 거니까.

어떻게 삼킬까?

어떻게?

일각고래는 입이 작잖아.

하지만 상어가 왜 먹잇감을 삼키는 것을 걱정해야 하지?

그대로 그녀를 물어뜯는다.

그녀의 주먹에 상어들이 터져나간다.

상어는 작아, 주먹에 터져나가서는 그녀를 삼킬  없어.

무슨 소리야 고래는 작지 않아.

그래, 고래는 작지 않다.

새끼 고래였나?

그럼  고래를 데려오자.

거대한 향유고래 그녀를 삼킨다.

“그만 튀어나와…!”

그녀가 발을 구르고, 바다가 증발해 없어진다.

고래는 바다가 증발하면 살지 못해.

왜?

고래는 땅에서 살면 안돼?

아니 상관없지.

다시금 그녀를 삼킨다.

그러나 평평한 땅에 발을 딛은 그녀의 힘은 제아무리 큰 고래라 해도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퍼엉!

고래가 터져나간다.

터져나가는 나를 본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내가 있다.

내가 많아졌으니 그녀를 삼키기도 쉽겠지?

수없이 많은 뱀의, 범의, 사자의 아가리가 그녀를 물어뜯고.

그녀는 어차피 감내해야할 상처라면 내주겠다는 듯이, 쳐낼 것과 막아낼 것을 분류해 대응한다.

터져나가는 뱀과 호랑이, 빗겨나가는 사자와 호랑이.

저 팔을, 다리를 봉해야 하는데.

그건 거대한 오징어가 해결해 줄 것이다.

육지에서?

응. 이 밑에는 다시 바다가 있거든.

땅을 뚫고 쏟아지는 오징어의 다리들.

“역시. 난. 네가. 정말. 싫어.”

 호흡에2개씩. 다리를 끊어내고, 쳐내고, 잘라낸다.

오징어의 다리는 튼튼하지 못했다.

인간은 무엇을 뚫지 못할까?

철은 어때?

철로 된 사슬이 그녀의 팔을 접어 옭아맨다.

사슬은 그녀를 묶을 수 있지만, 그녀는 묶여도 강하다.

우린 사슬로 그녀를 묶지 않았어.

그래? 날카롭고 얇은 강선이었던 거 같긴 해.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팔에 크고 작은 상흔이 새겨진다.

강선을 끊어내려는 듯이 오른손을 왼손으로 가져가는 그녀.

괜찮아 난 끊어지지 않아.

나?

그래  끊어지지 않는다.

그녀에 팔에 감긴 채로, 그녀의 목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손을?

어, 난 인간이니까.

“반가워! 시엘라~♡”

“망할 년…!”



***

-시엘라-

비가 굵어진다.


내목에 팔을 감은  그대로 조인다.

별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점이 아키야의 성격을 대변한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년.

아니지 씹어 먹으면 내가 손해다.

짓이겨 버려도 시원치 않을 년.

비가 굵어진다.

팔을 감은 검은 선을 뜯어낼 예정이었지만, 일단 아키야를 떨쳐내는 것이 먼저.

그대로 그녀의 팔을 잡아 악력으로 끊어버린다.

힘을 주자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흩어지는 망할 년.

귀찮아졌다. 왼팔에 힘을 줘 그대로 선을 끊으며 팔을 펼친다.

팔이 크고 작은 상처로 걸레짝이 되었지만 이정도 상처는 결국 전투에 지장을 주지 못한다.


비가 굵어진다.

어차피 이 주변은  채로 아키야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대충 방향을 잡아 이능력을 방출한다.

투쾅!

예상보다 강하다.

벌써 이렇게 빗줄기가 굵어졌나?

진짜 끝까지 가려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키야와 나의 승률은 반반.

그리고  승패에 생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투가 길어질수록,
나의 능력에도,
아키야의 능력에도,

점점 중간이 없어지고, 계속해서 뒤가 없어진다.

그 끝에 나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잃을 것이고.

아키야는 자신을 잃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나도 너도 그걸아니까.

그래서 우리는 끝을 보지 않았다.

나도 너도 그걸 아니까.

그래서 우리는 멀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만큼 가까웠고,

그렇게 우리는 잘 맞았다.

비가 굵어진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아는 만큼 너도 안다.

네가 아는 만큼 나도 안다.

나는 나를  알고,
그만큼 너도 잘 안다.

너는 너를 잘 알고,
그만큼 나도  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끝을 알고,
이 끝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함을 알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것을 알고,
남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끝낼 것 역시 안다.

그래, 끝은 끝이기에 끝이라고 부른다.

너에게 시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 역시 시작하지 못한다.

나에게 이제 뒤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 역시 뒤를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잘 맞는다.

비가, 굵어졌다.


눈가에 고인 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이는 빗물일까 눈물일까

손에 힘을 담아 내지른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주변을 장악하던 아키야가 그만큼공간을 내준다.

그 공간을 나로 채우고, 허공을 향해, 아키야를 향해 발을 뻗고 걷어찬다.

다시금 아키야가 물러서고, 다시  번 세상을 나로 채운다.

아키야가 형태를 되찾고, 난 나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세상에 내가 넓어져간다.

내가 세상을 좀먹기 시작한다.

빠르게 쇄도하는 장타.

그녀는 내 손목을 잡아채 옆으로 밀며 회피를 꾀한다.

그대로끌어당겨보디블로우.

끌어당겨지던 그녀는 허깨비처럼 흩어지고, 강하게 진각을 밟아 주변을 통채로 울린다.

그녀가 허공에서 튀어져 나오고, 다시 한 번 세상은 나에게 먹힌다.

그녀에게 쏘아진다.

빠르게 근접해무릎으로 그녀를 가격하고, 그녀의 몸은 터져나가며 바스러진다.

바스러진 그녀는 바스러진 그대로 하나하나 바늘이 되어, 못이 되어, 검이, 창이 되어 나에게 쇄도하고.

난 그녀를 받아낸 뒤, 온 몸으로 이능을 발산한다.

그렇게그녀는 물러나고, 난 세상을 또 다시 채운다.

“역시 너 뿐이야! 역시 네가 최고야! 너 밖에 없어! 사랑해!  숙적”

“응, 미안하지만 난 사랑하진 않아,내 숙적”

“하하핫! 괜찮아 내가 널 두 배로 사랑하면 되니까!”

“고마워 그럼내가 그만큼 널 더 미워해볼게.”

“응, 고마워”

“나도, 고마워”

그래 그렇게 넌 내 앞으로 향하는 너의 앞을 막았고.

그래 그렇게 난 네 앞으로향하는 나의앞을 막았다.

우리는 우리의 앞을 막았지만,
이제 서로의 앞에는 서로가 서있구나.

비가.
계속해서.
굵어졌다.

***



“음, 슬슬 여기까지인 것 같네.”

“안타깝게도 이 이상 지켜보는  힘들 것 같아,
루미나랑 담서는 슬슬 승부가 날 것 같네,
엄청 오래갈  알았는데 담서가 생각보다 과격하게 싸워서 슬슬 끝나가.”

그녀들의 싸움은 순조롭게 양패구상으로 이어질 것 같다.

우선 담서, 이미 안 그래도 파리한 안색이 이젠 창백함을 넘어서 파랗게 변해간다.

그리고 루미나, 아마 그녀가 이정도로 피범벅이 되어서 숨을 헐떡이는 장면은 다시 보기힘들  같다.

그리고 파라디수스.

우선 강경파 측은 이번을 기회로 잡아 북서지부의 패권을 잡아올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래서 2세대 인물들은 안 된다.

너희들 북서지부의 괴물 5마리들이 얼마나 어디까지 괴물인지를 지금 처음 봤구나?

번화가에서부터 북서지부의  지역을 장악해 나가다가 유이의 안개에 갈려나간 인원이 백은 넘는  같은데?

그리고 온건파. 이쪽은 처음부터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않았는데, 뒤늦게 활동을 시작한 것을 보니 일반인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나보다.

피치 못할 경우에는 북서지부 자체를 버릴 준비도 했던 듯한데.

아서라, 루미나는 포기해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오? 두 대장을 남겨두고 차량이 떠나기 시작한다.

그래 저 둘은 그런 인물이었지.

그리고 앙귀스. 이쪽은 처음부터 인원자체가 많지 않았는데, 파라디수스의 온건파와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방금 떠나간 차량에 실려 대부분 이탈했다.

몇몇 간부와 율을 제외하고.

아마 담서와 함께 묻힐 생각일까?

너희도이미 페칸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파악했을 텐데.

그라티아.
이쪽은 그냥 평안하다.
평화롭다는 뜻이 아니고 멍청하다는 뜻이다.

병력을 대거 손실한 파라디수스의 강경파를 습격하자며 선동하는 모습하고는,  안개가 너희를 가릴 것 같더냐?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유이의 눈깔은 뒤집어졌다.

더 이상 그녀를 막아설 것은 존재하지 않아.

그녀가 멈춰 선다면 그것은 아키야에게 먹혔거나 시엘라에게 먹혔을 때 뿐이겠지.

자 그럼 그런 유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방금 막 세피를 분해하고 지금 내 앞에 도착했다.

그래도 세피 별거 없는 고넴인 줄 알았는데,
유이의 왼쪽 눈도 파내고,
왼쪽 귀도 찢고,
왼팔도 자르고,
뭐 이리 왼쪽을 갈았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있었지만 나름 의식하고 있었나봐?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 그럼 세피의 전투는 조금 뒤에 녹화본을 돌려보면서 복기하도록 하고.

“이번 그림은 만족했어?”

“너냐? 원흉이?”


“어떤 원흉?”
“보급을 끊어서 파라디수스를 자극한 거?”
“그라티아를 급습해서 분위기를  세운 거?”
“허물을 유도해서 냉전상태를 만든 거?”
“담서의 꽃을 짓이기고 담수의 유품을 부순 거?”
“뱀을 자극해서 여제의 앞을 막은 거?”

“아니면 어떤 거? 일단 연이를 죽인 건 확실히 내가 아닌데?”

눈을 감는다.

자 역린도 찔렀고, 이 뒷일이 더 궁금해졌지만, 이번 극은 여기까지.

종막이다.

-FINIS-
[2278점]
[Thema –  오는 밤에 피는 안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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