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038 - [담서 side1] 희극 (39/99)



〈 39화 〉038 - [담서 side1] 희극

천재(天才/Genius)

보통 사람에 비해 선천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 분야, 혹은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영역에서 대가가 되거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그래 그녀는 천재였다.

다시없을 천재라 불렸던 아키야의 소실된 연구기록을 일부라고는 하나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복원했고, 그렇게 인류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그녀는 천재였다.

하지만 천재라 함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등지고,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를 뜻하기도한다.

천재는 인간을 뜻하고, 인간(人間)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에 한계가 있다.

사람 인. 사이 간.

그래서 사전에서는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래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다.

천재는 범재와 다르다.

월등하고, 탁월하며, 존재만으로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영향력에 범재는 말라죽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에 환호하고, 천재를 배척한다.
죽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살고자 하는 행동에 어찌 토를 달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녀는 천재였고, 그녀에 주변에 있는 이들은 범재였다.


***



삶에는 악재가 있다면 호재 또한 있다.
그것은 그녀에게 명백한 호재였다.

그녀를 이해해주는 이가 있었고, 그녀를 뒷받침하는 이가 있었고, 그녀를 옹호해주는 이가 있었다.

그는 그녀가 의지할 곳이었다.

그래, 천재는 세상을 이롭게 이끌 수도 있지만, 해롭게 일그러뜨릴 수도 있고,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주변의 범재들의 역할이다.

따라서그는 훌륭한 범재였다.

천재의 뒤를 따라가며, 흔들리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온전하게 그녀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발을 맞췄다.

그 과정에서 지치더라도, 상처받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결국 그런 그이를 아꼈다.
사랑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지나치게 유능한 나머지 배척받았고, 배척받은 나머지 인간관계에 무능해진 그녀는 그 감정을 몰랐지만.

분명 그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사랑했고, 그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는 천재였다.

천재일지언정 좋은 친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범재였다.

범재였기에 좋은 남편이었고, 지지자였고, 친부였다.

세상에서 등을 돌릴뻔한 천재는 그로 인해 훌륭히 세상을 이끌었고,
세상에서 등을 돌릴뻔한 소년은 그로 인해 훌륭히 성장했다.



***


삶에는 호재가 있다면 악재 또한 있다.
그것은 그녀에게 명백한 악재였다.

그날 일어난 일을 후대는 대참사라고 부른다.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그 소년은 아비를 잃었다.

그녀는 북쪽을 떠나지 못했다.

그는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고, 지지자였지만, 교육자는 아니었기에 그녀를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먼저 눈을 감아서는 아니 되었다.

그녀는 미숙했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의하지 못했고, 그저 막연하게 북쪽을 떠나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먼저 눈을 감아서는 아니 되었다.

혼자 남은 소년은 어미를 이해했다. 소년의 아비는 좋은 아비였기에.

그러나 소년 역시 교육자는 아니었고, 미숙한 그녀는 소년의 어미였다.

그녀는 눈에 드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헤집는 소년이 두려웠고, 멀어졌다.

소년은 배려심 많고 착했기에 어미를 이해했다.

그래 소년은 교육자가 아니었고, 남편도 아니었고, 지지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

그녀는 결핍을 느꼈다.

아니 결핍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감정을 용납하지 못했다.

‘존재하던 것을 잃어서 그렇다. 그러니 다시 찾으면 괜찮을 것이다.’

남자는 그와 닮았다.

그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결국 그런 남자를 택했다.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유능한 나머지 배척받았고, 배척받은 나머지 인간관계에 무능해진 그녀는 그 감정을 몰랐고.

분명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둘은 선택했고,  결실을 맺었다.

그녀는 이상했다.

채워지지 않았다.

왜?

매꿔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래서 그녀는 다른 것에 몰두했다.
불안해서.

자신을 입증하려했다.
불안하니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했다.
불안했기에.

그녀는 그렇게 가정을 버렸다.


***


삶에는 악재가 있다면 호재 또한 있다.
그것은 남자에게 명백한 호재였다.

어긋난 천재, 미숙한 천재, 불안정한 천재.

남자는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눈에띄었고, 우연히 그와 닮았으며, 우연히 그녀가 결핍을 느꼈기에, 그 인생의 활로가 틔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아니 바라는 것을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에게 충족감을 얻지 못했고, 남자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지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정을 버렸고, 남자는 책임을 버렸다.

소녀는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상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소녀는 그렇게 상처를 추스르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상처를 덧씌워 견디는 법을 배웠다.

***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다시 생기를 찾아가던 북서지부는  번째 대참사를 맞았고, 사람들은 북서지부를 버렸다.

그녀 또한 그랬고, 남자 또한 그랬다.

그러나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청년은 그러지 않았다.

청년은 버려진 소녀를 데리고 소녀밖에 남지 않은 가정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그 가정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그녀와 남자는 북서지부에서 잊혀졌다.

그래 삶에는 악재가 있다면 호재 또한 있다.
그것은 소녀에게 명백한 호재였다.

***



소녀의 삶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청년은 천재는 아닐지언정 그녀를 닮아 비상했고, 그를 닮아 훌륭했다.

아니 그보다 훌륭했다.

소녀의 이해자가, 교육자가, 지지자가 되어주었고, 비로소 소녀의 삶은 시작되었다.

소녀는 세상을 배웠다.

사람을 배웠고, 감정을 배웠고, 관계를 배웠고, 자신을 배웠다.

이미 흉터가 되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스리고 회복하는 방법을 배웠고, 상처로 부서져 열리지 않는 문을 수리하는 법도 배웠다.

굳게 닫힌 것이 아닌, 부서져서 얼리지 않던 문을 여는 방법도 배워갔다.

소녀의 주변에는 청년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있었고, 다양한 감정과 관계가 있었다.

전보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물질의 풍족과 마음의 풍족은 다르다 했던가?

전보다 풍족했고,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변해갔다.


***



삶에는 호재가 있다면 악재 또한 있다.
그것은 소녀에게 명백한 악재였다.

소녀는 청년에게 사람을 믿는 법을 배웠지만 원망하는 방법은 이미 그 흉터 깊은 곳에 새겨져있었다.

소녀는 청년에게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웠지만 감정을 밟고 억누르는 방법은 이미 부서진 문 깊은 곳에 담겨있었다.

소녀는 청년에게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홀로 고립되어 포기하는 방법은 이미 그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청년은 훌륭했지만 소녀가 되지는 못했다.

청년은 소녀를 믿고 소녀가 행복하기를 바랐지만, 소녀에게 세상은 청년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으면 결국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청년은 소녀를 옭아매며 꽃이 되어 사라졌고.

소녀는 청년의 주박에 매여 그저꽃을 피우는 썩은거름이 되었다.

그래 청년은 결국 소녀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을 희극이라 부른다.

미숙하고 불안정한 천재와 자신의 소중함을 미처 깨우치지 못한 범재.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여자와 자신밖에 모르던 남자.

훌륭하고 숭고했지만 소녀가 될 수 없던 청년과 극복하기보다는 상처받는 것이 익숙한 소녀.



언제나 비극은 남의 일이고, 남의 일은 멀며,  일은 희극이다.


그래 우리는 이것을 희극이라 부른다.

***

-새벽 5시. 앙귀스-

눈이 떠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2시간? 1시간? 30분?

내가 몇 시에 잠 들었지?
사실, 별로 중요치 않다.

피로감이 몸을 감싸지만, 이 역시 중요치 않다.

공교롭게도 나의 정신은 쉬지 않아도 되었고, 나의 이능은 피곤한 신체를 억지로 움직이기 좋았다.

몸이 무겁다.

아니, 정신이 무겁다.

속이 매스껍고, 불안하고, 아려온다.

끼니는 걸러야할 것 같다.

며칠째 거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공교롭게도 나의 육체는 영양실조로는 죽을 만큼 약하지 않았고, 나의 이능은 힘이 없는 신체를 억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밖이 소란스럽다.

아니, 정신이 소란스럽다.

그런가, 진혼제가 다가오고 있다.

벌써 오빠가 세상을 떠난지 3년이 되었다.

아직도 죽지 못했다.

그를 원망하고 싶지만, 나에겐 그밖에 없었기에 원망할 수 없었다.

그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그는 나의 모든 것이었기에 원망하지 못했다.

그를 원망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는 모든 것을 바쳐 나를 위했고, 모든 것을 내게 주고 떠났음을 알기에 이렇게 오늘도 살아간다.

그와 함께한 세상은 밝고, 아름다웠는데.

그가 떠난 세상은 이렇게 어둡고, 칙칙하다.

뱀이 내 다리를 죄어온다.

팔을 지나, 몸을 타고 올라와, 목을 죄어온다.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흐려지지만 결코 죽음을 허하지 않는다.

6시, 곧 다른 이들의 아침이 시작될 것이다.

2주 후면 진혼제도 있으니 바삐 움직여야한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포기하고, 비명을 지르는 몸을 이능으로 제어하며, 보이지 않는 앞을 감각으로 통제해 방을 나선다.

하루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

-새벽3시. 앙귀스-

눈을 감는다.

눈을 감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은 잠이 찾아올까?
고요가 나를 감싸줄까?
안식이 나에게 허해질까?

10분.

피곤해도 잠은 오지 않는다.

30분.

세상은 적막할 진데, 머릿속은 고요를 찾아 헤맨다.

1시간.

안식은 오늘도 내려오지 않고, 뱀만이 내 목을 옥죈다.

2시간.

눈이 떠진다.

내가 몇 시에  들었지?
사실, 별로중요치 않다.

거울이 눈에 들어온다.

창백한 피부와,짙은 눈그늘,  빈 눈동자와 무덤덤한 표정.

왜 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너를 위하고 너를 따르고 너를 원하잖아?

 행복한 사람일거야.

웃으라고.

챙그랑!


13일 후면 진혼제도 있으니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숨을 들이쉬는 것을 포기하고,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내버려둔 채, 이능에 의존해 방을 나선다.

지옥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