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040 - 소제목 말고 본제목
“잠깐만 잠깐만 도망 멈춰!”
-도망 멈춰!
-멈춰!
-도망 멈춰!
바로 런할 생각이었는데 일단 순덕이가 부르니까 잠시 생각타임.
[딸.기.조.아] : ?
“온 김에 훈수좀 두고 가!”
-? 아 왜 너만 쓰냐고
-우리 갤주 공공재거든요? 1인용 강의기계 아니거든요!?
? 이건 또 뭔
“그…다른 게 아니라 어차피 당장 뭔가 하고 계신 게 아니라면, 그…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서 막…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 이걸 말 해야 알아!?”
-말하다가 쪽팔리니까 성내죠?
-그럼 말해야 알지 소해야 알겠니?
-?
-깔깔깔 정말 웃기네요
***
생각해보면 흘러가는 방향에 맞춰서, 상황에 맞춰서 살아온 인생이었다.
무언가 소망이나 갈망을 원천으로 꼽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안 되는 것이나 힘든 것을 소거해나가는 식으로 장래를 정했고.
꿈꾸고 희망하는 것들보다는, 당장 해야 하는, 급한 것들을 위주로 해왔다.
딱히 그런 삶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생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아쉬움이나 억울함 정도는 품을 수 있는 거잖아?
나기를 원해서 난 것도 아닌데, 사는것도 원해서 사는 것이 아닌데, 그 방향성도 원치 않는 길이면, 불만정도는 생길 수 있다고생각한다.
아마 그래서 게임에 몰두한 것 일지도 모른다.
난 무언가의 서사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사람에게 공감하고 몰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독서나 영화, 혹은 드라마에도 취미가 생겼다.
요약영상이나 정리영상들도 많이 찾아봤다.
그 과정에서 게임에도 흥미가 뻗쳤다.
PC는 흔한 물건이었지만, 캡슐은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세대가 변하며 PC 게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콘솔 게임 역시 사라진 것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세월에 묻혀가던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취미는 무작정 생각 없이 접하기엔 전에 비해 무거워졌다.
일단 오프라인 스포츠경기는 없어졌다.
이제 오프라인 스포츠라는 것은 정말로 땀을 흘리고 그 해방감을 느끼기 위한 여가활동일 뿐이다.
그 외에도 많은 레저들이 가상현실에 빨려 들어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 있어서 그날의 선택은 결단코 작지 않은 선택이었다.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인줄 알고, 처음 보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에,가벼운 마음으로 본 스토리 정리 영상이었다.
새로운 기분이었다.
독서라는 것은,
영화, 드라마라는 것은.
그러한 영상매체들은 결말이 정해져있다.
다양한 장르가 있고, 다양한 과정과 결말이 있지만.
그 과정과 결말은 내가 간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물의 서사를 감상하기에는 좋았지만 나의 의지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와 잘 맞는 작품이라면 순식간에 몰입을 할 수 있었지만, 사소한 계기하나로 몰입이 비틀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나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하던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소소한 취향이, 예를 들면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 그러한 취향이 엇나가는 것만으로도 그간 쌓아온 감정이입은 쉽사리 부서졌다.
그렇기에 그 영상은 더 크게 다가온 것 같다.
우선 선택지라는 것을 나에게 부여했다.
그 자유도가 높은 경우도, 낮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명백한 질문이었다.
그간 무대 위에서의 극을 나에게 보여주기만 하던 인물이, 인물들이, 나에게 물어왔다.
그 충격은 작지 않았고, 난 조금 더 빠져들게 되었다.
단순히 생각해보자, 주인공이 중국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시키는데 오늘따라 짜장이 먹고 싶었던 나와는 다르게 짬뽕을 먹는다면?
‘에이 뭘 그런 것을 가지고’
아니 나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나한테 물어봐준다면 난 조금 더 그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간짜장이나 볶음짜장이라는 선택지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짜장이 먹고 싶었던 나에게 같은 카테고리의 선택을 가져가는 인물이라는 것만으로, 나와 그 인물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생긴다.
무엇보다 내가 한 선택이잖아? 내가 나의 의지로 나의 의사로, 비록 한낱 점심식사의 메뉴지만 무언가를 정했다.
그렇게 나와 주인공은 연결고리가 형성되고, 동질감이 형성되며, 그러한 것들이 쌓여 몰입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와 주인공은 명백하게 다른 인물이다.
때에 따라서는 신장과 체중이 다르고, 국적과 인종이 다르며, 성별, 더 나아가 종족이 다른 경우도 찾을 수 있지만,
결국 지성이 있는 생명이라는 공통점만 있다면 이입이라는 행위는, 몰입이라는 결과는 결코 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많은 게임을 접하고, 많은 게임을 즐겼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이들의 삶을 함께 했다.
높은 자유도를 가진 게임이 있는가 하면, 선택지를 주지 않는 게임 또한 있었다.
선택지가 없다.
결국 그간 내가 접해왔던 매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류인데.
그럴 터인데.
가상현실이라는 환경은 그 역시 새로운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더 빠져들고, 더 다가가기 시작했다.
[오버 더 오로라]
그래 한창열심히 가상현실을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처음과 같이 우연히 접한 영상.
제목부터 ‘아 거기까지 물어본다고?’였다.
자유도를 넘어선 ‘자유’
그것을 캐치프라이즈로 내걸고, 정제되지 않은 그저 세상 그 자체에 유저를 내던져놓는 게임.
그렇게 난 이 세상에 오게 되었다.
OO에서 난 결코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 삶에서는오직 나만이 주인공이라고 하던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생각해.
근데 주인공인 내가 나의 삶보다 다른 누군가에 삶에 더 몰두하고 집중하고 몰입하면, 그건 나의 극인가?
그야 화자는 내가 맞지, 근데 화자가 주인공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마음먹기, 생각하기 나름인 거지.
본인이원한다면 자신의 삶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고, 그 주인공 역시 자신이지만.
세상에 주인공의 자리만을 원하는 사람도 없거든, 그래 내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난 처음부터 그랬다.
내가 주인공이고내가 무언가 큰 변화를 이룩해내고 세상에 변화를 주도하고 싶었다면, 그 정도까지 인물의 서사에 빠져들었을까?
물론 나의 의사가 개입되는 것을 희망한 것은 맞지.
모순적이라고? 아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거야.
아무튼 OO는 그렇게 내 인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
이입을 넘어선 자신 그 자체의 투영.
그래 OO에서의 ‘나’는 ‘나’였다.
작품 속에 들어온 나.
작품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지만, 난 주인공에게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내가 감정이입하고, 공감하고, 동경하던 인물에게 나라는 색을 입힐 수 있었다.
이게 또 색을 입히는 것과, 아예 내가 되는 것은 감상이 다르거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인물이 있다고 가정하자, 흔히들 최애라고 부르는 존재다.
어느 날 그 최애에게 나와 안 맞는 부분이 생겼다.
작게는 사상이 있을 수 있겠지? 정치관이라던가.
크게는 음식 취향이 있을 수 있고, 부먹과 찍먹같은 것.
크고 작은 것이 반대가 아니냐고?
아니지 정치는 이야기 안하면 그만인데, 탕수육은 평생 안 먹게?
아무튼 그런 차이가 발생하면 난 그 최애에게 애정이 줄어들까?
그런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안 그런 이들도 많을 거야.
왜?
그게 대상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내가 이해해야할 대상, 내가 이해받아야 할 대상, 나와 교류하고 있는 의사를가진 존재.
0부터 만들어진 자캐라는 존재는 매력이 있지만, 이미 존재하던 나의 최애캐와는 다른 존재다.
모티브로 삼을 수는 있지만, 같은 존재는 될 수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두 자캐를 좋아할까?
자캐는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의 희망하는 대로,
자신의 취향과 의사를 반영해서,
자신이 싫어하는 요소는 배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요소로만 만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취향의 최상위호환인데,
그럼 무조건 자캐가 최애보다 더 우선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걸?
사람은 대상과 나의 차이에서 비호감도 느끼지만, 호감 역시 느끼거든.
그런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교감, 의지를 가진 생물과의 교류, 그런 것을 포함한 것이 최애를 향하는 감정이니까, 애초에 둘의 대분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나는 OO를 접하고, 플레이하고, 빠져들면서, 그러한 부분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난 나의 삶의 주인공일지언정 서사의 주역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시대를 책으로 쓴다면 영향력이 큰 인물과 작은 인물이 있겠지?
묘사가 많은 인물과, 묘사가 적은 인물 또한 있을 것이고,
분량을 많이 받은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역시 있을 거야,
인구수만큼의 책을 써낼 것이 아니라면.
그럼 난 그중에서 메이저한 인물보다는 마이너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이거야.
난, 나의 서사를 되돌아보는 것보다, 남의 서사를 감상하고 그 사람에 몰입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까.
아무튼 별쓸데 없는 말을 길게도 했다.
왜 이런 자아성찰을 늘어놓고 있냐면.
***
“와어디가서 OO한다고 말하지 마요 부끄러우니까. 당신의 종합게임에 OO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아시겠나요? 원순덕군?”
“아니이…보통 게임하면서 사고가 그렇게 이어지냐고~”
“뭐? 게임? OO는 인생이야!, 알겠어? 인생이라고!”
“? 아니 댁도 방금 종합게임이라고 뭉뚱그려말했잖아!”
-???:인생이야! 인생이라고!
-실제로 한 말 : 인생이야! 알겠어? 인생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대노 ㅋㅋㅋㅋ
-나내 인생에서 순덕이가 이렇게 욕먹는거 볼 수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함 ㅋㅋㅋㅋ
[‘명란마요김밥’님 1000원 고마워 근데 요즘 삼각김밥 비싸]
[0층에서는 최강자이던 내가 22층에서는 개좆밥뉴비!?]
“아 너희들은 그럼 고인물이냐고!”
“어? 지금인생 살다말고 뭐하는 것이지? 인생에 단 한번뿐인 시험을 치는 순간에도 도네에 대답할거야?”
“아니이~ 인생에 한번뿐인 시험이랑 OO회차랑 같냐고~”
“정신 차려! 원붕이의 삶은 이번뿐이야!, 오늘 죽은 원붕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원붕이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맞지 다음 회차에는 다음 회차의 삶이 있을 뿐, 같은 삶은 아니자너 ㅋㅋ
바로 이러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지.
처음 훈수나 두고 가라는 말에, 어차피 빈둥거릴 거라면 당당하게 빈둥거리고 싶었다.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공략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대로잘 흘러가지 않아서,
이대로 가면 최초의 목적인 루미나 대리처치를 향한 길이 너무 까마득해서,
그래서 이 방송을 통해서 유저의 질을 높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음성대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고 조언을 주면, 내가 일방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을 감상하는 것보다, 공략방송으로서의 질이 더 높을 것 같았으니까, 흔쾌히 수락을 했는데.
으드득!
“아! 그걸 왜! 아! 아아! 아아악!!!”
“진정해! 진정해! 아직 끝 아니야!”
“으아아아아아악!!!!!!!”
너ㅓ너너너너너너 오늘 주거써! 맨정시느로 사라나갈 생가근 포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