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041 - 소제목 말고 본제목
사건의 발달은 이러했다.
우선 검제는, 아니 검제는 무슨 그런 이름으로 불러주기에는 나의 경외심이 부족하다.
우선 순덕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제가 그래도 나름 방송명이 검제고, 검술에 조예가 있거나 검도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미지라는 것이 있어서, 칼 좀 잘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좋은 칼을 쓰고 싶다는 열망도 있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잔화와 천수국에 해당하는 수준의 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내구도가 무한한 무기를 가진 NPC가 담서 뿐인 걸.
그렇다고 담서에게서 뺏어온다?
첫째로 그 검을 스토리 도중에 얻으면아마 빠른 시일 내로 회차가 종료될 것이다.
담서에게 물려받던 담서를 죽이고 빼앗던 담서의 죽음은 회차의 끝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벤트니까.
둘째로 그 두 자루의 검은 담서의 고유능력 없이휘두르면 공격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직접 만져보면 알게 되겠지만, 사실 그 두 자루 날이 없는 검이거든. 티가 안 나서 그렇지.
그 사실에 순덕이는 크게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으니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럼 괜찮은 검이 나오는 루트를 추천해주기를 희망했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도감을 가장 많이 뚫을 수 있는 루트는 역시 파라디수스였기 때문에, 파라디수스를 추천했다.
그리고 그렇게 천방지축 어리둥절 좌충우돌 염병환장 파라디수스 여행기가 시작이 되고 마라따.
***
“이미 다들 정론으로 알고 계시듯이 인식표 들고 찾아가면 보급부대의 생존자로 취급받을 수 있어요.”
군 보급품도 차량 안에 상자 잘 뒤적거리면 있다.
정말 발상자체를못했을 뿐, 파라디수스의 정규군이 되는 것은 아주 쉽다.
그 후에 정식배속을 받는 것이나, 정식임무를 받아 활동하는 것이 어려울 뿐.
물론 그것은 일반 병들의 이야기일 뿐, 플레이어의 스탯이라면 어렵지 않게 임무를 받아 활동할 수 있으며,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플레이해도 알아서 스탯과 이벤트가 굴러 들어오며, 강경파의 소속으로 자연스럽게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벤트만 잘 밟으면 유이의 종료버튼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정말 정석의 정석 모든 것의 기본,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루트다.
-아니ㅋㅋ 그니까 왜 튜토리얼을 숨겨 놓냐고
[‘순덕아국이짜다’님 1000원 고마워 근데 요즘 삼각김밥 비싸]
[이게 여러분의 튜토리얼 입니다.]
-뭐에요! 돌려줘요!
OO라는 게임의 성격을 파악하기에도 플레이 스타일을 파악하기에도,어떤 면모로 보나 완벽한 기본.
대신 단점이 있다면, 유이라는 변수가 없다면 반드시 일어날 일의 연속이다 보니까 점수가 낮다.
세계에 영향을 끼친 만큼 점수를 받는다고 했으니,
유이라는 변수를 지운 세계선에서는 높은 확률로 파라디수스의 강경파가 득세하는 엔딩을 보게 되고,
몇몇 특수 이벤트를 수행하지 않으면 테마엔딩 외에는 다른 점수 나올 구석이 없어서,
시간이나 달성 이벤트 대비 결과점수가 낮은 살짝 아쉬운 루트.
무엇보다 몇 번하면 재미가 없어.
너무 뻔하거든.
적당히 진압대나섬멸대에 소속되고, 그라티아를 이용해서 앙귀스를 압박한다.
‘그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도 들고 일어날 생각을하지 않아! 사실 북서지부의 해방에는 관심이 없는 거라고!’
실상은 다르지만, 그라티아의 일반 병사들이 그런 사실을 알리가 없고, 그라티아는 아키야를 제외하면 이름만 간부인 지휘능력이 있는 일반병사와 소속만 공유하는 지휘능력이 없는 일반병사로 나뉠 뿐이다.
앙귀스와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아키야의 입장에서 별 관심이 없는 일. 따라서 아키야도 간섭하지 않는다.
그라티아의 병사들 자체가 아키야에게는 연막용 병력일 뿐이니까.
다 합쳐도 아키야보다 약하기도 하고.
그렇게 앙귀스와 그라티아의 분위기를 과열시키고, 그럼 페칸스가 합류해서 중재를 한다.
그럼 그 과정에 개입해서 세 세력을 모두 제압한다.
이게 북서지부의 이상하고, 특이한 점인데.
각 세력에 있는 몇몇 괴물들을 제외하면 전력 구도가 의외로 고만고만해.
소수 정예지만 그 소수가 지나치게 소수인 나머지 전력은 최약체지만 그 수지타산이 안 맞는, 변붕이가 추구하던 제 3의 세력에 해당하는 존재.
물론 내가 아니 변붕이가 추구하던 영향력보다는 앙귀스의 영향력이 약하지만.
뭐, 그라티아와 파라디수스가 건재하니 별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라티아 같은 경우에는 머릿수는 많다. 다만 잘 가다듬어진 정규군과는 그 결이 많이 다르지.
오합지졸은 아니지만 연합군 같은 느낌?
아마 이 부분은 우리 겜알못 친구들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매번 반란군 측 이벤트의 방향성이나 느낌이 크게 다르거든.
하여튼, 그라티아가 파라디수스와 일반 병력기준으로 우세한 선까지 올라가려면 기습이벤트를 2회 다 성공해야 하고, 그래서 이 악물고 기습이벤트를 실행하는 것.
그래서 매 회차를 시작하면 항상 그라티아의 기습이벤트를 볼 수 있다.
시작 위치도 기습이 성공한 흔적이기도 하고.
그래봤자 간부진을 합치면 파라디수스가 우세해. 그러니까 그걸 내버려 뒀지.
페칸스? 여기는…병력이 없어….
유이 혼자 북서지부 먹을 수 있는데 시엘라까지 있잖아….
아무튼 고넴친구들을 제외하면,
2번의 기습성공으로 파라디수스보다 우세해진 전력까지 끌어올린 그라티아.
하지만 사공이 많아서 전면전으로 발전할 일은 적고, 간부급 고넴이 합류하면 밀린다.
2번이나 기습을 당해 그라티아보다 밀리는 파라디수스.
하지만 지휘체계가 확립되어있는 정규군이라서 실전으로 들어가면 변수가 크고,간부급의 힘이 그라티아 보다 강하다.
그리고 앙귀스, 병력의 양은 굉장히 적지만 질이 좋은, 나머지 두 세력입장에서는 그냥 눈엣가시인데 마침 아무것도 안하고 처박혀있으니까 무시하는 그런 세력.
나름 대등하지? 아님 말고.
해서 그라티아와 앙귀스의 사이에서 분탕 좀 쳐주고, 페칸스를 끌어들인 뒤.
제대로 절차를 밟아서 진압을 시도하면, 페칸스는 이탈하고, 그라티아와 앙귀스를 한번에 잡아들일 수 있고,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파라디수스의 강경파 정식 테마엔딩인 [낙원의 전도사]를 달성할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이렇게 설명했지만, 이 루트에서는 루미나의 얼굴도 구경하기 힘들고, 아키야는 등장도 하지 않으며, 담서와 율은 플레이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다.
높은 확률로 시엘라가 데리고 사라진 것 같은데, 페칸스가 이탈하는 과정에서 잘못 시비 털면 바로 터져죽어서 그냥 갈길 가시도록 내버려 둬야한다.
안그래도 변수가 없는 루트인데 거기에 더해서 나름 북서지부의 중요네임드라고 부를 수 있는 네임드를 4명은 구경도 못하고, 한명도 얼굴보기가 힘드니 점수가 높기 힘들 수밖에.
물론 처음 하는 입장에서는 이 루트도 나름 흥미롭긴 하다.
우선 낙원의 전도사라는 타이틀 달아놓고 반란군들 처형장으로 끌고 가는 그림은 좀 그렇잖아?
참고로 온건파 측 엔딩의 이름은 [재난의 전령]
시민들이 모여서 화합하고 밝은 내일을 꿈꾸는 느낌의 엔딩 이미지를 구경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차차 설명하고, 일단 낙원의 전도사 루트를 권하고, 그 방향으로 조언을 두는 중이었는데.
“아! 니! 왜 거기서 그라티아랑 싸워!!”
“어? 얘들 반란군 아니야?”
“아아아악!!!! 당신 받은 임무가 뭐에요!!!”
“정세 파악…?”
“지금 한 건 뭐야!!!”
“기습?”
“정신차리라고!!!!!!!!!!!”
-진정해 진정해!
-갤주 화났다 화났다 어엌ㅋㅋㅋ
-정신나갈거같애!!!
그리고 이어지는 나락의 향연.
사실 여기서 순덕이도 나도 크게 잘못한 것은 없다.
그의 피지컬이 어떠하건 그는 내가 방송을 하기 전까지 80점에서 놀던 청정수를 넘어선, 오히려너무 맑아서 생물이 살 수 없는 정화수들 중 하나.
그리고 나는 전형적인 겜못스를 보면서 발악을 하고 있는 고인물 시청자.
물론 시청자들도 그냥 심심하니까 놀리려고 도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10초 정도? 그 기세를 유지하고는 사라졌다.
문제가 있다면 이중에서 진심인 것은 나 뿐 이라는 거.
“아니!!!! 아니이!!!! 아아악!!!”
-야 야야 갤주 거품문다
-어엌 거품 무는 광전사 공격력 +1
-누구한테 누가 맞았는데 ㅋㅋㅋ
“후, 좋습니다. 어디 한번 너의 꿈을 펼쳐봐.”
그래 일단 보고, 그래 보고 생각하자.
***
현 상황. 우리 순덕이는 현재 전면전을 벌이기 위한 선봉장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많은 일이 있었지.
우선 강경파의 정식 루트를 취하기위해서는 정보전을 통해 리스크를 배제하고 변수를 줄여야한다.
전력이 압도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왜 전면전을 하고 있냐고?
글쌔 그건 순덕이가 알겠지.
하여튼 전면전이 일어났고, 그 선봉장은 최근 가장 큰 활약을 한 원붕이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작중 플레이어는 아무런 뒷배경도 없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에, 어느 소속을 희망하던 나름대로의 신뢰를 쌓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하고, 그 활동의 활약상이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신뢰를 쌓기가 쉽다.
따라서 우리 원붕이는 많은 신뢰를 쌓아서 강경파이주요인물이 되어야했고, 되고자했지.
그렇게 주요인물의 자리에 가까워진 후에 한 것이 정세파악이아니라 본진급습이라서 전면전이 되었지만.
그래서 지금은 그 선봉장의 자리를 받고 강경파 세력의 우두머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뭘 그렇게 떨고 계십니까.”
“아니, 지금까지 OO하면서 본 네임드들은 다 보스처럼 보이는 잡몹이었는데,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은 정말 보스잖아.”
“아니지, 보스가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당신 상사라니까? 어깨 좀 펴봐요.”
“상사가 더 문제지! 군생활하면서 간부가 내 이름 외워서 방으로 부르는 것보다 안 좋은 일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도 1대1로”
“하긴, 근데 그래도 잡아먹겠다고 부르는 것도 아닌데, 기 좀 살립시다.”
“으으….”
본래라면 조금 차근차근 밟아가야 했을 계단을 본의 아니게 풀 악셀로 달렸다.
그도 그럴게, 파라디수스의 신뢰도작은 OO에서 제일 지루한 과정이거든. 보는 사람 입장에서.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 퀘스트와 일일 퀘스트를 좀 하고, 대련 이벤트가 일어날 때마다 타이밍 맞춰서 힘 좀 써주고, 그러다가 기회인가 싶은 타이밍이 오면 두각 좀 드러내고.
약 3주정도 그러고 있어야한다.
그래서 내가 빨리할 수 있는 훈수를 좀 뒀다.
스탯이 좀 부족할 수도 있지만, 본신의 전투력 의존도가 높지 않은 루트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래 본래라면 괜찮아야 했다.
유일한 변수는 테르미의 눈엣가시인 네임드 몬스터를 초반에 압도적으로 좋은 스탯도 아니고, 체질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잡을 수 있느냐 였는데.
역시 검제라는 별명은 괜히 받은 게 아니더라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테르미의 눈에 들었고, 혹여라도 뒤탈이 생기지 않도록 유이의 개입을 미리 배제했다.
다만 열심히 쌓아올린 빌드업을 한순간에 말아먹었을 뿐.
아니다. 이것도 즐기는 한 가지 방식이고, 다 경험이니까.
그리고 문 앞.
제 아무리 미루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결국은 눈앞에 닥치는 것, 그것이 인생.
끼-익
“흠, 왔나?”
맑고 청아한 목소리.
다소 작은 키 160cm도 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금발.
짧고 가지런하게 정리한 금빛 단발은 마치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 했고.
그 부분은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옷차림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지껏 등장했던 다른 인물들의 공허하거나, 탁하거나, 흐린 그런 눈동자들과는 다른, 유독 맑고 투명한 푸른빛 눈동자가 그녀의 외모를 돋보이게 했다.
뭐, 다른 인물들의 과거나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누...눈나...
-먼가 처음으로 어딘가 아파보이는 곳 없는 정상적인 사람이 등판했네
-강경파에 이런 훌륭한 인재가 있었다고?
[‘오늘부로’님 10000원 고마워 근데 요즘 삼각김밥 비싸]
[강경파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테르미와 나는 한몸으로 일체가 된다 테르미에 대한 공격은 나에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악 내 귀
-만원은 야쩔 수 업지...
-혹시 테르미의 의견은 들어 보셨나요?
“자네를 부른 이유는 하나. 자네가, 제 검이 되어줘야겠네.”
자 어디 수행인 없는 온건파루트의 결말을 구경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