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054 - 님 물건은 옥천에 갔다구요
“그런데 요청한 물건은…어디에 있나요?”
“예?”
“…네?”
“……예?”
정적.
그래 그것은 정적이라 부르기에 적합한 상황이었다.
뭔 소리야 시발 받은 게 없는데.
5중포장된 얼굴의 첫 번째 가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봤냐! 핫하! 난 타인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다고!
물론 내 감정도 조종당하고 있다.
“하토가 왔는데?”
다행히 정적은 나도 밀레도 아닌 금호의 목소리로 깨졌다.
대체 그 양반이 여기에 왜오는지는 몰라도 제발 이 정적을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를 잠시.
“계심까~ 후임한테 인수 인계를 까먹어서~”
같은 태평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다가왔다.
까먹을게 따로 있지. 뭘 까먹고 있는 거야, 이 어색한 분위기 책임져.
“별일이네요 하토 씨가 일을 까먹는다니”
“아~ 후임이 들어온 덕분에 드디어 퇴사할 수 있게되었거든요, 너무 신난 나머지.”
? 퇴사? 이즐은 널 퇴사시킬 생각이 없던데? 합의는 된 부분이니?
그런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즐의 새까만속내를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 해맑게 웃으며 밀레와 대화중인그의 모습은 어쩐지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낮은 확률로 아귈라에서 하토와 마주치면 언제나 죽상이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안타까운 그의 삶에 애도를.
“그럼 드디어 저희쪽으로 오시는 건가요?”
“어? 아, 그랬지, 일단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말이야.”
“후훗, 그럼 기다릴 게요?”
얼마나 오래 리베르타스의 담당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친분이 있어서 그런 걸까?어색하기만 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역시 유능한 인물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아직 이곳의 무력 수준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여우 두 마리와 그 둘 사이에서 꿇리지 않고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첸의 기운만 봐도 결코 약한 세력이 아님은 모두가 알 터.
그런데도 세력에서조차 스카우팅 제의를 내비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라는 소리다. 하토라는 인물이.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하토와 밀레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비집고 들어왔다.
“안녕? 반가워? 인사 아직 이었지?
난 금호라고 해.
네 소개를 들어도 될까?
이름은 에드베레?
나이는 20대? 중반?”
씨발.
진정하자 난 쫄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실제로 쫄아야 했던 그 순간에도 그녀는 딱히 나에게해를 끼치지 않고 떠났고.
바로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도 그녀는 딱히나에게 간섭하지 않고 떠났다.
그러니 지금은 더더욱 안전하다.
그래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잖아, 이 연놈들은 왜 자꾸 기척도 없이 뒤에서 튀어나와서 귀에 대고 속삭이는 건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뒤를 돌아서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근데 우리 구면이지?”
하고 싶다….
“어디서 봤을까?”
너 혹시 막 제 4의 벽 같은 거 부수는 그런 캐릭터 아니지?
“음~?”
제발기회가 한번 뿐이었고 난 이미 그 기회를 조졌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광산에서 돌 먹던 얘잖아”
다행히 연놈들의 놈 쪽에서 나의 쉐도우 심리전을끝내주었다.
아니 근데 내가 돌 처먹는 건 언제 어떻게 봤어? 그거 보면 안 되는 건데?
“아! 맞아맞아! 너구나? 반가워! 초면이지? 난 구면이야! 갑자기 막! 막! 산책 중에 엄청난 기운이 느껴져서 구경 갔더니! 네가 있었지 뭐야!”
“자살하려는 놈인가 싶었는데, 자살치고는 너무 공들여서 잠시 지켜봤었지, 그래 지금 기억나네.”
“응! 뭘 하고 있는 건가 했는데! 이야 용감한 걸?!”
“용감한 것이 아니라 뒤가 없는 거지.”
“그런가? 그런가?? 아하하하하!”
다행히도 아키야처럼 미친 새끼가 하나 더 있는 것은 아니었네.
이제 와서 갑자기 플레이어가 아닌, ‘나’에게 말을 걸고, 이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지뢰NPC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고.
-오늘자 클립 ‘금호 목소리에 쫄아서 눈썹 웨이브 추는 갤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ㅋㅋㅋㅋㅋ 얼굴 바로 굳는 거 봐 ㅋㅋㅋㅋㅋ
-1인칭으로 보는 나도 안 쫄았는데 ㅋㅋㅋ 이걸 쪼네
-야 찌린내 나
-아 진짜? 미안 빨리 갈아입고 올게
***
“해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자신감 없고 주저하는 목소리.
괴물여우를 두 마리나 거둔 조직의 리더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래 난 지금 첸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고 있으며, 그 대화의 내용은 첸이 실례를 무릅쓰고 나에게 부탁을 하는 상황.
잠시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으음 물품은 이게 다인가요?”
배송 온 물건들을 확인하며 뭔가를 열심히 찾던 밀레가 소리를 냈다.
“어, 전해 받은 박스 그대로 들고 온 건데?”
분명 일이 쌓여서 이즐이 애타게 찾고 있을 하토는 어차피 이제 곧 백수라는 꿈에 젖어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고.
“구하지 못한 물건이 있다 했는데, 하필이면 도마뱀의 꼬리였군요.”
왜 언제나 세상은 제일 귀찮고 번거롭게 굴러가는지 한탄을 늘어놓던 밀레는 첸에게 무언가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음,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아이가 상담을 할 가치가 있는 아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킹 대신 퀸을 넣고 한 턴에 두 번 씩 움직이며 폰4개 룩과 비숍 1개로 게임을 하던 사람에게 처참히 패배한 사람인데.
못 미덥더라도 인정해야하는 부분 아니냐?
하여튼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밀레는 금호와 은호를 데리고 방, 아니 음…중앙…로비?
그래 로비를 떠났다. 나간 방향을 보건데 아마도 광산 밖으로 나간 것 같다.
밀레가 자리를 비우자 자신도 슬슬 돌아가 봐야겠다며, 앞으로 잘 해보라는 덕담과 함께 하토도 자리를 떴고.
이윽고 첸과 단 둘이 남게 되었는데.
“방금 오신 분에게 이런 말을하기는 뭐하지만, 혹시 북서지부에 애착이 있으신가요?”
아, 얘네 이사준비 중이었구나. 빠른데?
“왜? 이사하게?”
그럼 조금 유능한 척을 해볼까?
“…? 어떻게 아셨나요?”
“음, 나름대로의 정보망이 있는데 너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거든. 그럼 북서지부에 오래 자리 잡은 조직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소식도 듣지 못했으니 다른 곳에서도 오래 정착을 하는 조직은 아닌 것 같고.”
따라서 자리를 자주 옮기는 조직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추론.
“그런데 자리를 얼마나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리 잡은 곳의 분위기가 좀 흉흉하지? 자리 잡은 인물들도 다 한 가닥 하는 양반들이고, 자리를 잡기에는 좀 애매하니까. 휘말리거나 더 정착하기 전에 그냥 과감하게 일찍 뜰려나 싶어서.”
이쪽은 미래를 얼추 알고 있으니 끼워 맞추기.
그 결과 나에 대한 평가는 조금 오르고, 겸사겸사 배달부지만 이후에도 아귈라의 방침 상 나는 이들을 따라 가야할 가능성이 높으니 대화도 좀 나누고, 친목도 다질 겸, 작은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가 지금까지의 흐름인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북서지부를 떠나는 것은 좋다. 떠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치워두더라도.
그럼 떠났을 때 북서지부에서의 일은 나에게영향을 끼치는가?
끼친다면 밖에서 지내던 나는 내가 간섭할 수 없는 북서지부의 일로 회차가 끝나야 하는가?
…자유 어디 갔어!
런하면 북서지부에서 해방돼야 하는 부분 아니냐!?
뭐 좋다. 그럴 수 있지.
사실 게임 소개부터가 북서지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체험하고감상하자였으니까.
뭘 하던 정말 나의 자유지만, 시뮬레이터라는 것은 시뮬레이션의 목표치에 도달하면 끝나는 것.
후, 그럼 못 떠나게 막아야하네?
“근데 굳이 떠날 필요 있어?”
그럼 일단 대충 간을 좀 보자.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말 그대로, 이곳에는 버려진 구획도 많고, 빈 땅도 많아. 참사가 세 번이나 있던 곳이니까, 사람이 많이 빠졌기도 하고, 지금도 꾸준히 빠지고 있지.”
사실이다. 한 달의 시간동안 빠지는 평균 인원은 매번가득차고 넘쳐서 대기표를 뽑아야 하는 수준.
처음에 남을 때야 무슨 마음으로 남았는지 몰라도. 3년 전 형형색색의 안개가 하늘을 덮던 날. 사람들은필시 느꼈으리라.
‘와 이거 좆된 거 아닝교?’
‘어느 날 새벽에 문득 잠에서 깨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분홍색 안개가 눈을 가득 채우더군.’
‘안개가 와 분홍색인데?’
‘나도 자네 말에 동의한다는 뜻일세.’
‘좆됐다고?’
‘응’
그 후 다른 지부로 이동하기 위해 생계를 정리하고, 표를 예약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무려 1년간 파리디수스의 전력보충을 핑계로 이동차량을 운행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난 후 다른 지부로 이동하기 위해 표를 예약했지만, 그 후 또 1년간 도로 상황이 좋지 못해서 운행을 하지 않았다.
그 후 1년 역시 그라티아가 극성이라 제대로 운행을 하지 못했다.
강경파가 득세한다고 해도 절대인구가 중립이 많은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단지 의견이 뭉쳐지지 않고, 아니 뭉칠 의견이 없고, 굳힐 의지도 없으니 그 뜻이 없어서 세력이 형성되지 않을 뿐.
중립들은 그라티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라티아는 중립들을 의지도, 용기도잃은 패배자들이라고 무시하지만, 솔직히 이런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뜻을 내세우고 의지를 불태우며 들고 일어서는 것은 소시민들의 역할은 아니잖아?
그들은 그냥 평화로운 곳에서 평화롭고 근근이 살아가고 싶을 뿐이니까.
그래서 그런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그라티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이 북서지부에는 자리가 많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솔직히 이곳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남김없이 말해주고 싶은데, 이 녀석들의 성격을 몰라서 못하겠네.
아키야 루트를 타는 동안 실수로 잘못 말했다가 그대로 루트 엎어지고 북서지부가 검은 물결에 잠겨버린 적도 있거든.
“요컨대 이사를 하기보다는 그냥 완전히 정착하고 이곳을 너희의 요람의 시작점으로 삼으면 어때?”
이들이 알지 어떨지 모르지만 페칸스와 앙귀스는 말만 잘하면 구슬릴 수 있다고.
아키야도 굳이 건드리거나 선을 넘지만 않으면 조용히 이곳에 박혀 있다가 할 일을 마치고 떠날 것이고.
“역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 하나요!?”
그러니까 사실 이 녀석들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단지, 제 의견이 옳은지 어떤지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충분히 좋은 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솔직히 모든 조건은 정말 다 좋은데 딱 하나만 걸렸거든요.
한이 너무 깊다고 할까요? 이곳에서 죽은 이들이 너무 많아요.
단순히 참사를, 참극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근본적인 무언가.
높은 이들의 욕망에 의해,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의욕심에 의해, 애처롭게 바스러져간 이들의 한이 너무 많이 묶여있어요.
그래요, 저 기둥. 저게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섣부르게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하지만 당신의 의견을 듣고 자신감이 좀 붙었어요!
밀레가 돌아오면 상의해 봐야겠어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너 시발 뭐하는 년이야?
뭘 느껴? 한? 어디 있는 뭐가 문제라고?
취소 좆됐다.이 시발 얘 지뢰잖아. 대체 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얘는 필시 지뢰다.
도화선이 어디서부터 이어져있는지 알 수 없는, 쌓인 화약의 양이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그 폭파 반경이 얼마나 넓은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북서지부 최대 최악 최고의 지뢰다.
내쫓아야…되나?
2회차를 연속으로 파국엔딩을 볼 지도 모르는데 그냥 이대로 둬?
하지만 지난 회차의 파국에서 얻은 게 좀 큰데 굳이 막아?
“얘들아”
-드디어 이쪽을 봐주는구나?
-시발 넌 바지에 똥 쌌잖아 바지 시발 늘어진 거 안보이냐? 그거 니 바지야
-응 난 그래도 바지만 갈아입으면 돼~ 넌 시바 지금 양말이랑 신발에서도 냄새남 ㅅㄱ
-응 설사라서 너도 흘러내림
-제발 이 미친 새끼들 좀 치워줘
-? 채팅창 안보고 집중하고 있었는데 얘네 지금 똥 쌌네 오줌 쌌네 가지고 싸우는 거임?
-아니 쟤가 먼저 나 놀렸음
-오; 정말 기품 있는 어른들의 대화로군요
?먼데씨발 이건 또
“야 시발 똥을 쌌는데 오줌이 안 나온 게 말이 돼?”
-아 씨~~~발 끼어들지 말고 말리거나 밴하라고!!!!!!!
-? 그러네 너 이 시발 넌 둘다 쌌잖아!
-크윽...패배를...인정한다...
“자 내가 해결했어 이제 나한테 집중해.”
중요한 이야기 할 거니까.
-우린 항상 너한테 집중하고 있었어
-우리와 너 중에서 어느 한 쪽이 천대받고 소홀이 여겨진다면 187%확률로 우리가 천대받고 소홀이 여겨지는 중 아닐까?
-187?
-응 내 꿈의 키야
-지금은?
-157!
-어...클 수 있을 거야 일찍 안자도 돼?
-어 편의점 야간 알바 중이라서 못 자
-?
“자 방금 첸이 말하는 거 들었지. 얘 먼가 이상해 막 영적인 능력이 있나봐.”
이능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이런 말 하지는 뭐하지만 영능력자 아닐까?
“아무튼 그래서 얘가 좀 위험한 것들을 알고 있나봐, 그리고 이런 애매한 정보라도 주어지면 바로 발작을 시작할 인물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
개미친또라이파충류 아키야
그리고 너희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아키야보다 사실 더 위험한 매복지뢰.
女帝(Empress Regnant)
여제라 함은.
성별이 여성인 황제를 일컫는 단어이며.
황제라 함은.
영지를 통치하는 제후를 거느리고,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
군주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권위와 지위를 지니는 군주 중의 군주.
비록 그녀에게는 다스릴 제후도, 휘하의 직할지도 없지만.
그럼에도 북서지부의 여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황제의 진노는 언제나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대로 조금만 잘 구워삶으면 이대로 북서지부에 알 박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2회차 연속으로 광탈이 날 수도 있고, 광탈이 아니어도 연속으로 파국 엔딩이 날 것 같아서, 보는너희 의견 좀 들으려고.”
-팩트)우린 전투씬만 구경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못봤다
-또라고 해도...ㅎㅎ;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