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057 - 어 건물을 부순다고 물건이 나오지는...
생태계의 강자에게 애도를.
흔히들 이야기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도구를 사용하는지 아닌지로 나뉜다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가, 불리한 순간에 유리한 길을 찾아내고, 유리할 때 그 이점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없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저 생물은 이런 경험을 해 본적이 언제일까.
야생이라는 생태계는, 처절하고 필사적이며, 항상 치열하지만.
동시에다가오는 끝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최후를 인지하고 내려놓을 수 있으며,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추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극명하게 느껴지는 온도차.
그래 그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왔고, 살아간다.
그 끝에 발버둥을 치는 것은 대체로 인간이며, 그들은 먼 옛날부터 인간과 어울리기보다는 같은 동물들과 어울렸고, OO의 세계에 이르러서는 그 접점이 더욱 줄어들었다.
그러니 그는 이러한 경험을 이미 잊었다.
언제나 야생에서 자신은 강자였고, 치열한 다툼을 하는 이들보다는 냉혹한 죽음을 선고하는 존재였으니까.
필사적인 생존보다는, 단호한 끝을 알리는 존재.
그의 앞에서는 포식자보다 피식자가 많았고, 그의 존재는 피식자들에게 있어서 확고부동한 끝이었으니까.그러기에 충분한 능력과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시체청소부’는 처절함과도 필사적임과도 치열함과도 거리가 멀고, 이러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없을 것이다.
***
넓은 사막, 평탄한 황야, 이 어디에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 있고, 재주1짜리 버러지가 어떻게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겠냐 만은, 인간이라는 생물은 결국 답을 찾고 그 답을 적어내려가는 생물이니까.
순수속성의 방출.
인간에게는 굉장히 효율적이다.
방출은 자신의 이능력의 속성이 변하는 특징이 있다고 했지?
그럼 순수속성은 어떻게 변화할까?
순수라는 단어와 변화라는 단어가 잘 안 어울리지? 감도 안 오고? 맞아, 순수속성은 변화하지 않는속성이다.
그래서 순수속성의 방출을 소유한 이에게는 정제기관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제기관은 극광석의 기운에 신체가 침식되어 병들지 않도록 막아주고, 지켜주는 기관. 이것이 정제기관의 세계관적으로 명확한 쓸모이자 정의.
그렇게 자신의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정제하면 그 정제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신체 밖으로 방출되지 않고 쌓이게 되는데, 그 쌓인 에너지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사용하고 방출하는 것이 이능의 메커니즘 인데.
그 이능이 방출이라면 정제기관부터가 남들과는 다른 구조와 작동방식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정제기관에 맞춰서 신체도 변화하게 되는데, 화염계열의 방출은 뭐 체온이 높아도 괜찮도록 몸이 진화하고, 냉기계열의 방출은 체온이 낮아도 생존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뭐 그런 거지.
이제 순수속성이 왜 특이한 속성인지 좀 알겠지? 그래 순수속성의 소유자에게는 정제기관이 게임적의미 그대로 이능력이라는 저 파란 막대기를 회복하는 기관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않는다.
체내에 이미 자연 그대로의 극광석의 에너지가 머물고 있는데, 신체를 지키기 위한 정제로서의 의미는 이미 없고, 체외의 극광석 에너지가 체내로 들어와 신체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신체를 지키는 기관이 아닌, 그냥 이능력이라는 전투자원을 회복하는 기관.
설명하다보니 이야기가 많이 새어나갔는데 기본적으로 정제기관에 따라서 체내의 에너지의 정제된 수준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는 종을 공유하는 이상, 타인의 이능에 노출되더라도 체내에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면 이능력자끼리는 감염이 전염되지 않는다.
물론 정제기관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얄짤 없지, 이능력자의 에너지는 그나마 깔끔하게 정제되어있기 때문에 쉽게 감염이 되지는 않지만, 감염자인 이능력자의 에너지는 훨씬거칠기 때문에 쉽게 전염이 되지.
물론 쉽고 어렵고의 차이라서 이능력자가 이능을 발산하는 장소에서 일반인이 오래 서 있으면 감염자가 될 수도 있다.
이능력자가 될 확률이 조금 더 높기는 한데, 뭐 대충 이유는 감이 오지?
같은 이유로 순수속성의 이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면 인간이라는 종에게 엄청난 효율을 발휘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를 맞물려오며 더 오랜 기간 적응해오고 진화해온 야생동물들에게는 그 힘이 빠진다.
불리불리한 요소가 늘어난것이 아니냐고? 이게 또 무작정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우선 저런 생물의 근본적인 단점이 있다.
개인적인감상인데 생물의 한 종에게는 한 세대에 부여받는 적응 포인트가 한정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몸체를 키우고, 그 신체의 능력을 키우고, 극광의 기운에 적응하고, 한 생물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스탯을 모두 끌어다가 쓴 녀석은 변해버린 OO의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는 요소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맹금류의 장점이었던 시각이 그러했고, 야생동물들의 기본적인 생존기재였던 기감이 그러했다.
그 시력은 맹금류의 날카로움은 이미 온데 간데 없고, 인간의 시야와 비슷해졌고, 그 기감은 생명의 감각을 느끼기보다는 생명이 가진 극광석의 기운을느끼는 것에 특화되었다.
근데 순수속성은 뭐라고? 정제되지 않은 기운 그대로라고 했지?
그래.
녀석은 결국 야생의 동물이고.
야생의 동물들은 이런 탁 트인 광야에서 피난처조차 없이 포식자를 마주했을 때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겠지.
나는 인간이고.
인간은 제 아무리 벼랑 끝에 몰려도 살 길을 모색하고, 찾아내어, 추하게 발버둥을 친다.
발버둥에 맞아 죽을 시간이다 포식자.
***
무분별하게 이능을 흩뿌리며 정면으로 뛰쳐나간다.
빽빽한 모래먼지가 시야를 괴롭히고 녀석의 위치를 가리지만, 녀석은 이 모래먼지 한 가운데에서 아무런 단서도 기운도 없이 나를 찾아야하고, 나는 이 모래먼지 덕분에 녀석이 날개 짓하는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시야라는 것은 1차적인 요소만으로 정해지지 않기에.
색적이라는 행동은 상황의 변화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활동이기에.
녀석이 있을법한 위치.
모래먼지가 흩어지고, 그 여파가 나에게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
여우의 시체를 쌓아두면서 일일이 뽑아낸 심장을 던진다.
OO의 동물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종의 심장을 함부로 섭취하지 않는 것.
인간이 인간끼리 정제된 에너지의 결을 공유하듯이, 동물들 역시 같은 종끼리 비슷한 결의 정제방식을 공유한다.
인간이 쇄골의 사이에 정제기관이 있고, 그 기관을 통해 체내의기운을 정제하여 신체의 파괴를 막는다면, 동물들은 각각의 정제기관을 통해서 체내의 기운을 정제한 뒤 남은 에너지를 신체의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곳에 보관한다.
외부의 충격에 부서져 자신의 신체가 파괴되지 않도록 안전한 곳에.
언젠가 극복하고 이겨내서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위험한 곳에.
따라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 심장에 자신의 삶을 박아 넣고, 그 역사를 키운다. 다른 생물의, 다른 종의 삶을, 역사를 섣부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멸은 부르는 행위. 따라서 이들은 함부로 생물의 심장을 섭취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인지 아니면경험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체를 뒤지면 항상 심장만은 남아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물론 그것도 신선한 시체에 한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러한 심장만 먹으면서 진화해온 동물이나 혹은 동종의 다른 생물에게 먹혀서 없어지지만.
이러한 생태계가 이렇게 길거리에서 필넴을 만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현실에서 동물이 강해져봤자 종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지만, 여기서는 그 종의 한계를 뛰어넘고 진화와 변화를 거듭할 수 있으니까.
근데 심지어 그 환경마저 충분히 갖추어져있다. 아니 길가를 돌아다니면 이상한 사탕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니까요!?
하여튼 이렇게 모래안개 속에서 심장을 던지면 상대는 조류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날개를 내어주지 못하고 부리로 받아낸다.
이 역시 인간을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버릇일까? 동물들이 던지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폭발하지도 않고, 이 인근에는 독을 뱉는 생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북서지부의 주변에서는 투척행위의 투사체가 물리적인 파괴력은 지닐지언정, 후속타를 위한 공정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때문에 저렇게 허술하게 부리로 막아내는 것이고, 생각보다 작고 미끄러운 역병여우의 심장은 쉽사리 그 입으로 들어간다.
녀석은 이미 극광의 기운을 축척할 만큼 축척한 존재. 따라서 심장을 먹었다고 바로 이상을 느끼지도 않고, 의문만을 느끼겠지.
물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상대방이 던지는 것은 굳이 경계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신체에 무언가가 계속 들어오는 것을 경계할 수도 있다.
따라서
끼에-!
이번엔 이능이다.
그것도 네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날개에 직접적으로 전심전력을 담아 갈겨 넣은 이능이지.
대상의 신체를 침식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은 잃었지만, 대신 그 물리력은 다른 방출계열의 이능보다강하다. 그리고 대처도 없이 번거로운 것을 쳐내려는 의도로 그야말로 두들겨 주십사하고 내뻗은 날갯죽지정도라면 쉽게 괴롭혀줄 수 있지.
짙은 모래먼지 속에서 날아오는 영문 모를 물체, 그리고 그 물체보다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쉽게 구분은안가는 무언가의 물체.
물론 이능의 기운이지만 순수속성이니까. 녀석의 기감에는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공기의 변화만 느껴질 뿐.
때문에 녀석은 3수를 물려주고 시작하는 심리전에서 나를 이길 수 없다.
아직 그 피해는 크지 않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날개에 조금의 피해라도 생기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고, 다섯 번에 한 번 꼴로 이능을 섞어주기만 해도, 녀석은 사려야하니까.
이제 심장일 필요도 없다. 심장에서 꺼내온 결석을 그대로 던진다.
평소라면 경계하겠지, 하지만 방출이능의 물리력은, 그 이상함은 녀석의 삶에 없던 기억. 혹시 방금 전에 아무런 특이사항도 느끼지 못한 것은 혹여나 자신이 방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당연한 의식의 흐름.
그 결과 녀석은 명백히 다른 기운이 담긴 결석을 부리로 받아낸다.
부리로 쳐냈다가 폭발하면 머리도 위험하지만, 부리로 받아낸다면?
자신의 부리는 튼튼하고 이미 많은 것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진화한 부리의 구조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충격에 별 피해를 받지 않도록 진화했고, 그것을 삶으로서 증명했으니까.
하지만 결석이라는 것은 다른 동물의 평생이 담긴 결정체, 시각이 봉인당한 지금의 청소부는 그 크기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고, 바로 전에 일어난 충격의 양과 그 타격 부위를 생각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말았다.
옳은 판단이지, 자신의 기감에도 그 크기는 컸고, 방금 전의 피격감 또한 이 투사체의 크기가 클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의문.
연달아 날아오는 결석.
재차 삼켜지는 결석과 이어지는 의문.
대체 무엇인가?
녀석이 조금만 더 약했더라면, 조금만 덜 진화했다면, 바로 이상이 왔겠지? 하지만 녀석은 충분히 강했고, 그 독은 강한 이에게는 천천히, 늦게, 그리고 그 크기를 있는 힘껏 키워서 더욱 강하게 몰아친다.
불은 이제 막 지펴졌고, 물은 아직 끓지 않는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결석, 벌써 3번째 녀석도 뇌가 있는데 이제 의심을 하겠지.
그러니까 이번엔 온 힘을 담은 묵직한 크기의 이능.
끼에엑-!
부리 안으로 쇄도하는 이능은 녀석의 입 안에 큰 충격을 가하지만, 녀석은 이제야 이해를 한 듯이 환호할 뿐.
이제 아마 한동안 날개를 뻗을 일은 없겠지.
그냥 성공과 실패가 있는, 혹은 무분별하게 던지는 도중에 종종 특이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다시 결석.
망설임 없이 아가리를 벌리고 그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녀석에게 있어서 지금 나의 행동은 그냥 크고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행위.
돌멩이가 위장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 기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5개, 7개, 13개.
이윽고 17개.
쿠륵? 쿠르륵?
과유불급이라 과식을 하면 탈이 나고, 그 대상이 결석이라면 그 탈은 더 크다.
둑은 물이 넘치지 않도록 막지만, 그 물의 양이 많아지면 넘치고, 그 양이 더더욱 많아지면 끝내 무너진다.
자 물이 끓기 시작했다.
개구리는 살았는가?
***
포식자. 그것이 자신을 일컫는 단어.
언어로서 자신을 표현하거나, 다른 존재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자신은 강자, 포식자, 군림하는 존재.
나머지 존재들은 약자, 피식자, 자신에 의해 그 삶이좌우당하는 존재.
강자가 움직이면 약자들은 도망치고.
포식자가 나타나면 피식자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며.
군림하는 이가 나타나면 그 발밑에 존재하는 이들은 머리를 조아린 채 숨어서 폭풍이 자신을 지나치기를 바랄 뿐.
자신은 그러한 존재였고, 그러한 존재이며, 그러한 존재일 것이다.
따라서 저 먹음직스러운 먹이의 산도, 그리고 그 먹이의 산에 서있는 살아있는 먹이도.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 했다.
모래먼지? 번거롭지만, 별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비록 이전처럼 눈이 맑지는 않지만 자신은 먼지 속에서 생물을 찾아낼 수 있는 기감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왜 느껴지지 않지?
아,그런가, 상대는 약자다. 그리고 이 자리에 오르는 동안 자신은 가치가 없는 약자는 구태여 찾아서 잡아먹지 않았으니 지나치게 약한 존재에 대한 감지능력이 낮아졌나보다.
그럼 번거롭지만 모래를 걷어내는 수밖에.
모래를 걷어내고, 다시 먼지가 인다.
날개 짓을 하면, 다시 무언가의힘이 먼지를 일으킨다.
신경질 나는 반복.
하찮은 미물의 발악.
추하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도망칠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
귀찮음에 그냥 다른 먹이를 찾을까 생각도 했지만, 쌓여있던 먹이의 산이, 그리고 신경질 나게 하는 이 미물이, 그리고 지배자로서의 자존심이,그 선택지를 막아선다.
난 녀석을 찢어발기고 그 육즙을 취하고, 그 피를 삼킨 뒤, 패자로서의 위엄을 내뿜으며 승리의 포상을 취할 것이다.
때문에 이런 기감에 걸리지도 않는 약자가 기감에 걸리는 상대적 강자인 여우를 저 만큼이나 학살한 것에 대한 의문은 이미 사라졌다.
무언가가 날아온다.
본능에 새겨진 경고.
비록 자신은 하늘에서 한없이 강하지만, 그 강점을 잃는다면 땅에 처박히고 말 것이고, 그 통증은 높이 날면 높이 날수록 크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충분히 높은 곳에 있다.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뻗은 부리.
무언가가 부리 끝에 걸리는 듯 했지만 그 크기는 자신의 기감에 걸린 것보다 훨씬 작았고, 자연스럽게 뱃속으로 사라졌다.
무엇이었을까? 먼지만 아니었다면 이러한 실수는 없었을 것인데.
고기? 하지만 평소에 먹어본 적이 없는 느낌이다.
심장은 함부로 먹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고, 자신은 다른 종의 심장을 먹고 성장하여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아직 부족했으니까.
따라서 지금 뱃속에 자리 잡은 역병여우의 심장은 굉장히 생소한 물건이었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혹시 경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고작 이정도의 물체라면영문도 모를 것을 체내에 받아들이기보다는 날개로 쳐내는 것이옳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한 순간.
콰앙!
무엇?
분명히 더 작은 물체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역사를 증명하는 기감이 그렇게 자신에게 고했고,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감각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이런 충격이 다섯 번, 열 번, 수 없이 반복되면 자신은 추락하고 만다.
어느새 빠르게 해치우고 그 고기를 취하겠다는 생각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뒷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러한 충격을 계속 받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이 부리는 많은 가죽을 뚫었고, 많은 물체를 받아냈으며, 많은 충격을 견뎌냈다.
내 신체는 많은 역경을 딛고 진화했으니 고작 영문 모를 돌멩이쯤은 기분만 나쁠 뿐 해가 되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받아낸다.
다시 날아오는 물체, 방금 전 충격이 담긴 물체보다 그 크기가 크다. 적어도 기감은 그리 고했다.
부리를 크게 벌린다.
그리고 다시 뱃속으로 사라지는 돌멩이.
이번엔 확실하다. 이것은 돌멩이다.
정체모를 육편이 아닌 돌멩이.
감히 돌을 던져서 나를 모욕해?
날개를 거칠게 퍼덕이지만 먼지는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돌멩이는 계속해서 날아온다.
도대체 얼마나 작은 것일까?
그 부리의 벌어짐이 점차 작아질 때 쯤.
지금까지 던져진 돌멩이보다 훨씬 작은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리고 충격.
퍼엉!
대체 뭐냐!
혹시 그 크기는 상관이 없나?
그렇다면 이렇게 부리 밖으로 충격이 가해져 머리에 충격이 미치는 것과, 부리 안에서 충격이 터져 체내에 충격의 여파가 미치는 것.
어느 것이 더 위협적일까? 당연히 전자다. 머리는 생물에게 굉장히 소중한 것, 제 아무리 진화해도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평소 소중히 여기는 부위인 만큼 그 강도도 강하지 않다.
그러니 나의 삶으로서 단련한 신체로 받아낸다.
신체의 외부에 가해지는 충격은 자칫 잘못하면 소중한 머리와 날개를, 그리고 다리를 상하게 할 수 있지만.
나의 가장 강한 무기인 부리는 그 강인하고 날카로운 만큼, 튼튼하고 굳건하니까.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크기의 돌멩이를 받아먹고, 이해가 안 되는 충격양의 돌멩이도 받아낸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이…무겁다.
숨은 가빠지고.
정신은 멍해져간다.
날개에 힘이 빠진다.
다리가 무너지는 기분.
아, 그런가.
이건 ‘덫’이다.
먼 과거, 자신이 강해지기 전.
자신도 그러했다.
하등한 지상의 미물들보다 가진 바 힘은 적어도, 자신은 지혜로웠고, 그 지혜를 활용할 수 있었다.
자신은 지상의 동물들을 유인하고 속여서 다른 지상의 동물들과 싸우게 했고,
그 끝에 바닥에 뿌려진 과실과, 이미 힘을 잃은, 더는 강자가 아닌 이들을 취했다.
그렇게 자신은 강해졌고…멍청해졌다.
그런가. 상대는 약자다. 그래 그 시절의 내가 그러하듯.
그리고 상대는 지혜롭다. 마치 그 시절의 자신이 그러했듯.
던져진 것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지만 상대는 나를 속였고, 방심하게 유도했고, 경계하게기만했다.
그러나 그 경계 속에서 방심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조율했다.
그래. 그는 지혜로서 군림하는 존재다.
그는 강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