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061 -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문장의 시작요소
“먹을거리야 많겠지만, 이걸 먹게?”
“상관없지 않을까?”
그리 말하며 속살을 발라내어 챙기는 금호, 그다지 정신건강에 득이 되는 장면은 아니지만, 내가 먹을 것도 아니니 참고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정확하게는 도와주기보다는 잘 보여서 적의가 생기는 것을 미리 막아두는 작업에 가깝지만.
솔직히 짧은 거리도 아니고, 내가 방심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닌데, 줄곧 감지에 걸리지 않던 존재가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왔는데, 튀어나온것이 사람이 아니라 칼이었으면 바로 메인화면으로 사출됐다는 거잖아?
지난 회차에서도 느꼈지만 이 미친 여우는 경계를 아무리 겹쳐쌓아도 모자라니, 그냥 적대할 가능성을 미리 잘라두는 것이 당장 속이편할 것 같다.
뭘 알아야 대처를 하지 솔직히.
게다가 은색여우는 아직 짐작도 안가잖아? 회차가 날아가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미지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날아가는 것은 너무 아깝잖아.
아, 눈은 금호가 뜨게 해줬다.
어떻게? 몰라서 금호랑 지금 호감도작을 하고 있는 거지.
[특성을 발견했다.]
[‘기울어진 시야’ - 당신의 눈은 일그러졌고, 그 시야는 더는 바르지 않다.]
[그 방향성은 아직 짐작할 수 없다.]
심지어 특성도 열렸다.
눈이 안 보이는 것 같다고 묻더니 이내 내 눈에 무언가의 능력을 사용했고, 시야가 뜨였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싶어서 눈을 기준으로 이능력을 회전시켰더니 특성으로 변하더라고.
NPC에게 특성이나 체질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희귀한 일이 아니다. 종종 있는 일이거든, 1세대 고넴인데 가진 무력도 상당한 이들이라면 결국 그들의 능력으로 내 신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그 영향이 영구적이거나 혹은 모종의 이유로 변화하면 그게 특성이고 체질이니까.
다만 이렇게 진짜 짐작도 안가는 특성은 조금 꺼려지는데, 말했듯이 뭘 알아야 대처를 하는데, 정보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모르면 맞아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차피 맞아야 한다면 맞기 전에 가능하면 준비는 하고 맞고 싶은 것이 사람심보.
우선 어떻게든 빠르게 정리를 하고 비석을 한번 찾아가야 할 것 같아서, 호감도도 쌓을 겸, 이렇게 열심히 메뚜기 고기를 채집하고 있는 건데, 으으 비위 상해.
-그럼 그 마음을 가지고 제발 저희 앞에서 딸기카레 같은 거 좀 처먹지 마세요
-? 무슨 카레를 처먹었다고?
-으겍 퉤퉤퉤
***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응? 그냥? 스윽? 하고?”
“…그럼 스윽하고 돌아갈 수도 있어요?”
“응 나랑 은호는”
“같이는 안 되고?”
“그렇지?”
안타까운 일이다. 근데 갑자기 리콜 맞고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이 부분은 큰 소득이다. 시바 걷기 싫은데.
“그럼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금호는 에베베가 어디 있는지 항상 알고 있는 걸?”
시발 무슨 말이야 그게
“팔에도, 어깨에도, 여우는 여우의 냄새를 맡을 수 있거든”
오; 시발 무슨 말이냐고 그게
“그래서 금호는 에베베가 어디 있는지 항상 알 수 있어”
어떻게 냄새가 묻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다가가는 것만으로 묻는 것이 아니길 빈다. 제발.
이번 회차야 리베르타스에 뼈를 묻게 생겼으니 상관없지만, 다른 회차는 또 모르는 일이잖아.
이 부분은 추후에 좀 더 자세히 캐묻기로 하고.
“자 존나 지루한 산책시간이 돌아왔어요, 이번에도 자동진행 돌린다. 돌리는 김에 저녁도 먹으러 가고, 저녁 먹는 김에 운동하고 씻고 아무튼 나중에 온다. 채팅창은 안보이고 수고”
-아니 즈기요
-민심을 헤아리십시오
-뭐야 시발 진짜 껐냐?
-정말 개 좆대로 방송하는데 참교육 좀 해줘야 하는 거아니냐?
-나쁘지 않은 듯 시청자 반토막 나는 거 보여줄까?
-일단 그럼 나대신 네가 빠져줘
-? 내가 남을 건데?
-이번에도 텄네 야발
***
토요일 저녁은 언제나 귀찮은 이유가 뭘까? 저녁은 언제나 귀찮지만,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은 유독 귀찮은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
내일도 쉬는 날이라 보상심리가 없어서 그런가?
내일도 일해야 하는 나를 위한 보상으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내일은 쉬니까’라는 평안함에 의지가 끓어오르지 않는다.
치킨이나 먹어야겠다.
딸기치킨을 더는 팔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늘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치킨은 맛있으니 괜찮다.
게다가먹고 남으면 내일 아침으로 치킨마요를 해서 먹어도 좋다고.
개인적으로 다음날에 먹는 치킨 마요를 더 좋아해서, 그래서 시켜먹는 것도 있지만.
느긋하게 치킨을 주문하고, 식전운동과 식후운동을 고민하며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스트레칭을 시작했는데 굳이 식후운동을 할 필요가 있나?
체중감량과 근육성장에 따라 다르다고 하는데, 난 둘 다 관심 없고 그냥 건강용인데, 딱히 운동하다 쓰러지는 것도 아니니까 시작한 김에 마무리 하자.
…
간단한 운동을 마치고 치킨을 기다리며 커뮤니티를 탐방하자, 갈 곳도 잃고 의지도 잃은 분노가 커뮤니티를 불태우고 있었다.
[시발 갤주 존나 괘씸한데, 딜교를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맨날 괘씸함만 곱씹으며 져야됨
[어제 순덕이 1000점 뚫었더라]
-근데 시발새끼가 갤주 방송켜면 갤주방송 보러 가서 지 방송을 안함 이거 단합아니냐?
>혹시 담합을 말하려는 거면 둘 다 아니란다.
[그래도 오늘은]
-멘탈공해는 안하니까 살만하다. 시발 딸기카레 처먹는 거는 진짜 시발 진짜
>ㄹㅇㅋㅋ
>난 살면서 분홍색 카레를 본 적이 없는데 이새끼때문에 궁금해짐
대충 이런 느낌.
투덜거리지만 말고 자기 점수나 챙기지 오늘도 한가한 친구들이 아닐 수가 없다.
그나저나 쪽지가 와있는데 이건 또 뭐냐?
우리 오붕이들은 이런 거 안 보내는데.
‘갤주야 순덕이만 도와주지 말고 나도 도와줘…?’
보낸 이는 ‘에모몽’
그 하늘다람쥐를 좋아해서 지은 방송 명에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병신 짓만 하고 다녀서 유명해진 방송인이었다.
그래서 별명은 에자형.
글의 내용은 대충 담서에대한 찬양 10줄과 담서 웃는 얼굴 보고 싶으니까 도와달라는 마지막 줄로 마무리 되었다.
시발 이럴 거면 한 줄만 먼저 보내도 될 것 같은데 방송이랑 말투까지 똑같아서 머릿속에 쪽지의 내용이 자동 재생되는 기분이라 찜찜하다.
배송이 온 치킨을 받고 적당히 클립을 돌아다니자 세상에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들이박은 것인지 앙귀스와 관련된 이벤트 혹은 테마엔딩으로 점철된 점수 화면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 와중에 이벤트들을 훑어보니 행복담서를 위해 두들겨 넣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오는데, 이정도면 내 도움 없이도 할 만할 것 같은데?
하지만 안주거리가 생긴 것은 참을 수 없지 바로 구경하러 간다.
술은 없지만.
***
“아! 시발 너 거기서 왜 죽는데! 아악! 아아악!!!! 시발 개새끼야!!!”
오자마자 들리는 격렬한 절규.
잠시 상황을 보니 율이 죽었나보다.
나도 자주 느꼈던 감정이라 그런가 동질감이 느껴진다.
십새끼 치에키처럼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몰라 존나 싸돌아다니다가 지 혼자서 심심하면 뒤져버리는 개복치새끼인데, 말은 또 오살나게 안 들어서, 결국 붙어서 마크해 줘야한다.
근데 앙귀스 루트를 진행하다보면 결국 율과 별도행동을 하는 순간이 오고, 그 타이밍에 율이 안 죽지 않도록 빌드업도 잘 짜놓고, 제초작업도 잘 돌려놔야 해서 담서루트의 가장 번거로운 첫 번째 장벽이 되시겠다.
심지어 루트의 진행도 상 굉장히 초반부에 터지는 병크라서 어중간한 성장타이밍에 제초작업을 돌리다보니 내가 터지는 경우도 잦은 통곡의 벽을 담당한다.
그 뒤로 오는 벽들은 그나마 나의 성장은 대부분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불합리함은 덜 느껴지는데, 율 터져죽는 거는 시발 맨날 성장이벤트랑 저울질하면서 기도메타로 굴리거나, 아니면 성장 조사버리고 똥 닦고 다녀야 하는데, 보통 후자를 고르면 3번째 벽에서 또 내가 터진다.
이런 부분은 파라디수스나 그라티아의 루트를 좀 진행해서 지식을 늘리고 하면 편한데, 우리 에자는 그런 거 없고 일단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참사가 벌어진 것 같은데.
율의 부고를 들으며 정신 줄에 톱질이 들어간 담서의 옆에 붙어서 어화둥가 똥꼬쇼를 시작한 모습을 보니,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뿌듯하네.
“담서야,정신 차려, 내가 해결해 줄게,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응? 나 좀 봐줘, 내가 옆에 있잖아, 난 계속 네 곁에 있을 거라니까? 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제발, 제발 나 좀 봐줘.”
정말 지극 정성이다. 설득보다는 그냥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기에 가까운 절박함.
담서의 고개가 들리고, 일말의 기대감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에모몽.
그러나 그 눈빛은 형형히 빛나고, 보통 저런 눈빛을 한 담서는 게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딱 한번 잔다.
대신 영원히 자서 문제지.
“응, 괜찮아, 난 괜찮을 거야. 우리 모두 괜찮아 질 거잖아. 그러니까 나도 괜찮아 질 거야.”
앞뒤도 없고, 논리도 없는 웅얼거림.
그리고 일그러지는 얼굴.
그렇게 담서는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앙귀스의 멤버들은 흩어져서 율의 장례를 준비한다.
그리고.
“아아아아아!!!!! 왜!!!! 왜 나는 안대는거야!!! 끄에에에에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즌 83호 실패
-누가 봐도 안 괜찮은 얼굴사진 83매
[‘명란마요샌드위치’님 1000원 에몽가 보호 협회에 기부되었습니다.]
[형이 담서루트를 보겠다고 떠난지 어느덧 10년이 흘렀어, 형은 잘 지내고 있나 모르겠네, 우리는 여전히 백수야. 언제든지 형이 돌아오는 날 우리가 없으면 외로울 것 같아서 모두 취직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어, 그립다.]
-시발 1000원어치만 해!
-1000짜리 폭력 치고는 너무 아프다
-왜 가만히 있는데 나도 때려 시발련이~
“다 닥쳐! 시발 이번 회차는 반드시 담서랑 데이트하고 만다!”
굳은 심지. 크으 그렇지 저런 마인드 정도는 가져야 험난한 OO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
근데 이번 회차는 절대 안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