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063 - 으아아아! 오라버님! 동생을 제게 주십시오!
확실히 한 두 번 한 발걸음이 아니다. 초반 한정이지만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망설임 없는 발걸음과 목표로 하던 위치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하는 루팅.
분명 양궁선수라고 했나?
대한민국의 양궁은 굳이 내가 말할 필요가 없이 유명하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2번 연속으로 선발된 사람조차 드문 양궁에서 3연속 국가대표를 했던 희대의 괴물.
오히려 실력이 아닌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서 그 행보가 멈춘 사람.
물론 양궁에서 실력이 두각을 나타냈다하여 게임에서도 활을 잘 다루는 것은 아니리라. 본래는 그러할 진데.
저 모습을 보아하니 단순이 활이라는 무기에 대해 타고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숨길 필요도 없겠지. 에모몽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은 주모몽이다.
분명 경의를 표하는 별명인데 이상해 보이는 것은 그녀의 행실이 반영된 결과라고생각해.
벌써 10발 째. 저게 재주가 7인 사람의 활솜씨가 맞나 싶은 피지컬로 스탯을 짓밟는 플레이.
한 발에 한 마리. 어김없이 미간을 뚫고, 그 시체를 챙겨서 보자기로 감싼다.
“어우 힘 11밖에 안 돼서 더는 못 들겠다.”
아직 화살이 남았다며 아쉬워하는 그녀.
OO를 좀 한 유저라면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낡은 각궁을 집어들면 화살이 17개? 정도가 있는데, 그것을 다 쓸 생각이었던 건가?
심지어 폭풍수렵을 진행하는 동안 공격을 스친 횟수마저도 0회.
확실히 필넴 앞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초반에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솜씨.
생각해보니 양궁과 각궁은 그 감각도 다르지 않나? 활이라고는 게임에서나 잡아본 것이 전부고, 그마저도 다른 게임은 시스템의 보정으로, OO에서는 재주의 보정으로 사용해서 잘 모르겠다.
사냥보다 고기 운송이 더 힘들어 보이는 기색.
끙끙거리며 이동하다가 익숙한 사람을 만났는지 금세 얼굴빛이 밝아진다.
“거기! 거기 지나가는 친구! 아니 아저씨! 그래요! 댁 말이야!”
“무슨 일이오?”
“후, 아저씨 혹시 앙귀스?”
“…무슨 일이지?”
“아니 내가 몇 다리 건너서 아는 친구가 앙귀스에 있는데, 요즘 별로 풍족하지 못한 것 같아서, 선물 좀 챙겨갈라고 했는데. 너무 많이 잡았나 무거워서.”
자연스러운 대화. 앙귀스에는 직접적인 숏컷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조금 더 친숙하게 시작할 수 있는 숏컷은 존재한다.
다만 몇 번을 반복한 것인지 몰라도 지금 이 타이밍에 지나가는 NPC가 고넴도 아닐 것이고 그 위치도 완전히 동일한 루트가 아닐 텐데, 한눈에 알아보고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
자연스럽게 가진바 정보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협조를 얻어내고 동시에 경계도 풀어낸 뒤, 앙귀스로 향한다.
앙귀스에서의 모습도 익숙하면서도 절대 과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
흔히 작품에서 회귀를 하는 존재들이 그러하듯 자신이 이미 경험하고 인지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서 필연적으로 어색한 면모를 보이거나, 혹은 부자연스러운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그러한 부분이 전혀 부각되지 않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핵심이 될 만한 요소를 지적하며 무의미한 시간낭비도 자제하는 모습.
-오늘도 초반 여포 등장
-이럴 때는 정말 잘하는데
-왜 그 시점만 가면...
-후...
채팅이 신경 쓰이지만,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도 가지만 그래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 간접적인 기록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까, 일단 마저 감상.
그 후로도 매끄럽게 정보를 취합하며 정보를 습득, 그리고 내가 알려준 적이 없는 무기까지 자연스럽게 입수하는 모습.
여기까지만 봐서는 정말 손색이 없었는데….
“ㄷ…담…크흠, 담서야, 아…안녕?”
시발 뭐야 자연스러움 어디 갔어. 자연스러움!
시발 얼굴 보자마자 우는 게 말이 되냐?!
-어라? 나, 왜 눈물이?
-야라? 나, 왜 코물이?
-앞에 거랑 뒤에 거 바꿔줘
-에자 콧물이면 포상이지
-에휴 시발 뭘 기대하겠니
***
“그럼 상황을 정리해 봅시다.”
“…네….”
“우선 담서를 만나자마자 정신 못 차리고 어버버 거리다가 받은 의뢰가 몇 개죠?”
“6…개 쯤 됩니다….”
“다 하면 시간이 얼마나 흐를까요?”
“일주일은… 지날 것 같습니다.”
“그럼 실제로 성장을 하기 위해서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
“함께해서 재밌었고 나중에 온라인 컨텐츠할 때 랜덤매칭으로 만나자.”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선생님 저 잘할 수 있어요. 진짜루요 잘하면 5일 아니 4일 컷도 할 수 있고, 말도 안 되는 거, 막 이게 돼? 싶은 거 그런 거 잘할 자신 있어요.”
“진짜로 할 수 있어요?”
“물론이죠! 네 할 수 있어요!”
“그럼 난 못하지만 댁은 할 수 있다 했으니까 한 번 봅시다. 난 죽어도 안 되는 스케줄이 있었는데 자신감 넘치게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네?”
걱정 마 성공하면 넌 역대 플레이 기록 중에서 전투력 부분 베스트를 갱신하게 될 거니까.
마침 동선도 네가 지금 받은 의뢰랑 반 정도 맞아 떨어진단다?
모자란 시간과 낭비되는 동선은 네 피지컬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
-에모몽-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게 아니라 일정의 스펙타클함과 하드함이 너무하다.
심지어 의뢰까지 완료하기 위해서는 중간중간에 대신 물건을 들고 앙귀스로 돌아가 줄 이들도 필요해서 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시간을 추가로 더 소모하고 말았다.
동쪽으로 쭉 이동해서 여우들을 도륙하고 그 고기를 산맥을 오르기 전에 다른 동선으로 식량 수급을 나선 이들과 합류하며 인수인계.
그대로 산맥을 올라 살아 움직이는 근육을 사냥해서 수원을 확보, 그 후 제 시간에 맞게 앙귀스의 소속원이 찾아오기를 기도하며 시체까마귀를 청소.
그런 뒤 산맥을 내려가며 알아서 옆구리로 빠져서 뭐시기 선인장? 주변의 안전을 확보해놓고 다시 위험해지기 전에 또 치에키 일행이 와서 선인장을 수확해 가기를 기도.
빠르게 북으로 올라가 한 때 북쪽지부였던 지역 인근의 야생인들을 처리하고, 그들의 약탈품으로 전투보급을 한 뒤, 남은 양을 앙귀스에게 또 인계.
그 후 이번에는 내가 제 시간에 맞기를 기도하며 가시꽃?의 군생지로 이동 앙귀스와 합류하여 안전을 확보, 약품을 소량 전달받고 그대로 북쪽지부였던 곳으로 이동.
여기까지 하면 의뢰는 종료. 하나는 도저히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OO를 하며 NPC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정말처음인데….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살움근을 처치하고 개 큰 전갈? 을 조우해서 처치하면 일단 하드한 일정은 종료.
그리고 보급품을 가지고 만전의 상태로 북쪽지부의 폐허로 진입해서 필넴을 잡으면 아마 좆대로 해도 앙귀스 루트는 무조건 완료할 수있을 거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마치고 폐허 앞에 도달하기까지 단 4일.
그 후 녀석을 잡고 앙귀스로 돌아가는 것에 2일.
그 후 정비하는데 하루.
합 일주일의 일정. 그 뒤에는 진혼제 이벤트에 맞춰서 스노우볼을 굴리면 본격적으로 앙귀스루트의 시작.
ㅎ…할 수 있을까?
…
존나 못할 것 같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중간에 정비를 할 시간이 없다.
지금 나의 스탯은 근력 30을 제하면 초창기의 스탯 그대로.
앙귀스에 숨겨져 있는 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근력이 최소 25는 돼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래서 여유를 두고 근력에 거침없이 몰아넣었는데,
그러다보니 나머지 걸레만도 못한 스탯을 가지고 필넴을 3마리나 잡아야하고,
거기에 더해 전투도 쉬지 않고 치러야하며, 그 중에는 야생인들도 있다.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가는 길에 비석 하나쯤 어떻게 찾을 수 없냐고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지만, 그나마 폐허에서 운 좋게 필넴을 조우하기 전에 비석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한번 따돌리고 비석을 찾거나.
둘 중 하나라고 들었으니, 사실 이대로 가는 것이 확정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번 회차의 NPC들은 친절한 친구들이 많아서 의뢰를 하나 거절했음에도 중간에 만나는 타이밍마다 화살을 보급해주기로 했다는 점일까?
본래라면 화살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서 내가 처리해야 했을 의뢰인 목재 충원 이벤트.
진혼제 및 거주지 보수를 위해서 목재가 필요하고, 그것을 도와주는 김에 의뢰를 초과달성하면 후에 그라티아의 무기고를 털어 먹거나, 파라디수스의 보급을(강탈해서)나눠 받기 전까지는 성능은 별로여도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화살이 생긴다.
눈물을 머금고 이벤트를 버리면서 화살은 가능한 한 아끼고 사용한 화살도 회수할 생각에 이를 악 물었지만, 나의 어디를 믿어준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지금 쌓아둔 목재를 일정량 사용해서 화살을 보급해 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에베베가 말하기를 이벤트 아다리가 잘 맞았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고, 비록 험난하고 힘든 스케줄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기회라 볼 수 있지!
아 근데 진짜 못할 것 같은데?
우선 벌써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는걸?
솔직히 첫 행선지는 별 거 없었으니 패스. 정말 쉬운 일이었다.
화살을부러지지 않게 관리하며 아껴 쓸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
그리고 두 번째 목표인…살움근.
저 살아 움직이는 근육이 진짜 여우라고? 말도 안 돼!
우선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의 정보는 머리가 없다는 것. 따라서 신체능력으로 측정하는 시각, 후각, 청각은 배제해도 된다.
진화의 여파로 인해 생긴 기감이 문제인데, 이 몸 이능력과 적응을 합쳐도 16밖에 되지 않는다. 고로 배제.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정말 근육 속으로 머리가 묻혀버렸으니 배제해도 된다고 확인도 받았다.
두 번째, 미친 근육덩어리라 화살이 잘 안 박힌다.
근데 이건 괜찮아.
[피안의 활]
[극광의 힘이 서린 리-커브 보우.]
[그 장력은 일반적인 활에 비해 큰 폭으로 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져 편의성도 떨어지지만, 다룰 수만 있다면 그 화살의 위력은 궤를 달리한다.]
[공격력 2~327]
OO의 존재하는 정상적으로 공격력이 존재하는 무기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무기.
물론 이 녀석을 포함한 그 다섯 가지는 모두 하자가 있어서 제대로 쓸 방도가 없다고는 하는데, 30년을 다 채워가는 인생 중 활을 잡은 시간이 20년이 넘는다.
현실의 경기용 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투박하며, 불편하지만, 나의 인생을 부정하기에 그 장애는 턱없이 부족하다.
순덕이가 민첩과 근력에 모든 것을 두들겨 넣고 피지컬로 해결하는 플레이를 했잖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봤자 일반인, 함께한 세월이 다르다.
그러니 나라고 못할 것이 있겠어?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나?
아니, 애초에 상정할 가치가 없는 것. 바람은 처음부터 나에게 시련도 장애도 되지 못했다.
그럼 세 번째.
보다시피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렇게 맷집에 모든 것을 할당한 녀석을 과연 몇 발로 정리할 수 있을까?
이 이후에도 화살 많이 써야 하는데.
모르겠다. 그건 나중의 나에게 맡기자.
화살을 꺼내어 시위를 당긴다.
줌피를 통해 왼손으로 전해지는 묘한 감각.
고작 몇 회차 같이 했을 뿐이지만, 이젠 익숙해져버린 감각.
오른손에 감기는 반발력이,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이들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 있어서 천국이 저들에게 있어서 지옥이 되었구나.
그라운드를 뒤로 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세상은 원하는 것만 하며 지낼 수 없고, 원치 않는 일 또한 행해야 하니.
난 떠나야겠구나. 내가 남는 것으로 저들이 벽에 부딪힌다면, 넘어 설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린다면,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내가 떠나야겠구나.
그렇게 마음속의 외침을 뒤로 하고, 하나뿐이던 나의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새로운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처음 보는 세상을 발을 내딛었다.
그 때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렇게 다시 활대를 잡고,
시위가 손에 감기는 날이면,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곤 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던 그 때가.
공기가 되고, 그 흐름이 되어, 쏘아지던 순간이.
그래,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
왜냐하면 그 장소에 서서 시위를 당기던 나는 시위를 놓는 순간 바람이 되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第 一 射.
그 끝은 지켜볼 필요가 없었고.
그 화살은 발목에 정확하게 박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