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067 - 전지전능은 전지충전용 전기능력자
“아니, 어제 전갈이랑 싸울 때, 막 엄청 불탔단 말이야!, 아마 내가 금메달을 처음 땄던 그 날보다 더 신났던 것 같은데, 그래서 막 갑자기 활을 잡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내 탓 아님”
-? 시발련아
[‘좆궁에모몽’님 1000원 에몽가 보호 협회에 기부되었습니다.]
[10연속 금메달 VS 아싸찐따백수인생으로 OO 활시위 당기기]
“닥후지, 금메달 좆이나 까, 과녁 앞에 설 때의 설렘은 어제의 정열에 비할바가 되지 못한다. 어차피 아찐백이어도 너희들은 결국 나 보러 올걸?”
-시발 이래서 얘가 변하지를 않는 거야!
-ㄹㅇ 얘도 노쇼해야 됨
-너 노쇼가 무슨 뜻인지 아냐?
-안 보는 거 아님?
-에휴
“자 그럼 몸도 손도 마음도 풀렸으니까, 이제 정말로 담서 보러 가자.”
***
“에베베야! 질문!”
말이 짧아졌다. 상관없지 나도 그녀의 시청자로 있을 때는 ‘에자’ 혹은 ‘에몽아’라고 불렀으니, 이로서 쌤쌤이 아닐까?
“어디 해 보거라.”
“음, 집중광이 뭐야? 그리고 산수유도”
과연,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특성은 스탯이나 보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계열이 아니다보니까 안 그래도 두루뭉술한 설명이 특히나 더 불친절하게 다가오고는 한다.
집중광이 분명 극한에서 빛을 발하고 사람들은 그 빛에 모일 것이라는 설명이었나? 뭐 그런 느낌인데, 그냥 간단하다 궁지의 순간에 주변 NPC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고 그 의지를 고무시키는 효과다. 설명 그대로.
숨겨진 효과같은 것을 묻는 것이라면 당연히 있지만…
“알려줘?”
“음, 아니 그럼 됐어, 안 알려줘도 돼. 근데 산수유는 진짜 모르겠어.”
그렇다.
이중적응이야 상황과 함께 맞춰보면 이능이 늘어나는 특성이고,
극광시와 중심와는 시력과 관련된 보정이 있는 체질이겠지.
억센 힘줄은근력에 보정이 들어가는 것일 테고.
근데 ‘산수유’
그 설명도 ‘계속하여, 변하지 않지를, 단지 그 아름다움이 이어지기를.’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
사실 지난 전투에서 에몽이가 보여준 능력과 상황을 잘 유추하고 소거해가며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오기는 한다.
힌트를 주자면 산수유는 단독으로 얻을 수 있는 체질이 아니라는 것.
“아, 과연 이해했어, 정확한 효과는 알려주지 않아도 돼, 직접 알아볼게.”
그리 말하며 쿨하게 스탯을 투자하는 그녀.
그 투자의 방향도 굉장히 쿨했다.
체력 9 > 15
근력 36 > 90
민첩 7 > 70
“음 혹시나 했는데, 억센힘줄은 에베베가 말한 근력의 상한을 뚫어주지는 못하네.”
노빠꾸 상 남자 식 스탯 사용법.
일단 자신의 주력스탯을 무지성 투자법으로 90을 박아버린 뒤, 남은 스탯을 자신의 보조 스탯에 다 두들긴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졌을 때 쯤, 남은 스탯을 적당한 곳에 두들긴다.
76보다는 75가 좋고, 이왕 근력이 90이면 민첩도 70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기분이 좋으니까.
그러니9070 남은 6개는 혹시라도 지형대미지에 눕지 않도록 체력.
순식간에 123이라는 스탯이 사라졌다.
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잠시 끓어오를 준비를 했지만 에자를 믿기로 했으니, 믿어보자.
“나 그럼, 이제 뭐해? 북쪽폐허 가? 아니면 앙귀스 돌아왔으니까 그냥 진혼제에 어울리나? 북쪽폐허도 가보고 싶은데, 가면 또 가슴이 두근거릴 것 같아.”
“너 하고 싶은 방향대로 해도 괜찮아, 이미 목표는 달성했고, 난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 다 확인했어, 나는 못할것 같은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도 잘 봤고.”
이제 이대로 삽질 안하고 무사히 테마엔딩에 도달하면 무려 담서가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테마엔딩에 자기 캐릭터의 이름 석 자 올리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데, 에자는 이미 그 조건을 만족했다.
정확히는 아직 만족하지 않았지만,에자의 목적을 보면 남은 기간 동안 충분히 만족하겠지.
전제조건인 테마엔딩도 율을 살리는 것을 제하면 이미 조건은 거의 만족한 상태였고, 이정도 스노우볼이면 율이죽는 것을 힘으로 찍어서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에자의 모험으로 나의 목적도 달성이 되었고.
난 아직 앙귀스의 테마엔딩에 내 이름 석 자를 남겨보지는 못했거든. 시간이 도저히 부족해서, ‘뱀들의 목자’ 이벤트를 제 시간에 달성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야.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경험을 통한 소거법상으로는 그렇다.
원래 아닌 것들을 제외하고 남은 것이 정답이잖아?
그래서 난 소거법을 좋아하기도 하고.
뭐 에몽이에게는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긴 한데, 일종의 깜짝 선물?
“으음, 으으음, 그럼 가볼래. 진혼제 준비는 어쩌다보니 충분히 도와줬고, 진혼제 시작 전까지만 돌아오면 되겠지.”
그리 말하며 간단한 준비를 하고 앙귀스를 떠나려는 에자에게 치에키가 다가왔다.
“에모몽님? 어디…가시나요?”
걱정과 염려가 다분히 담긴 목소리.
“응? 아, 처음에 가려던 곳으로 가야지. 원래 바로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많이 쉬었네. 고마웠어! 진혼제가 끝나기 전에 돌아올게!”
“원래 가려던 곳이요?”
“응! 폐허로 갈 거야. 가야할 것 같아서, 가면 무언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티 한 점 없는 밝고, 진솔함이 담겨 있었고, 치에키 역시 그것을 느꼈으리라.
그렇기에아마 치에키도 그 말을 꺼내기로 마음먹었겠지.
“그럼 가시는 길에 부탁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
하늘은 언제나처럼 푸르고, 공기는 언제나처럼맑고, 가슴에는 어제와 같은 설렘이 가득하다.
딱히 실제로는 푸르지도 않고, 공기는 극광석의 기운으로 가득차서 맑지도 않지만.
OO를 하면서 느껴본 적 없던 기분인데, 어떤 체질의 힘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로망이 살짝 깨진 기분이 든다.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로망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른 것이고, 오늘의 나는 물론 앞으로의 나에게 있어서 로망이라 불릴만한 것은 활과 그 시위,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나를 불태울만한 무언가.
활을 바라본 시간이 23년.
그 중 활만을 바라본 시간이 19년.
활을 잡은 시간이 21년.
그 중 활에만 모든 것을 매진한 시간이 15년.
그만큼 내 삶을 받쳐서, 내 생을 걸어서 목표로 했던 것을 내려놓는 것에는 1년도 걸리지 않았고, 내려놓은 것을 다시 진심을 다해 잡는 것에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난, 양궁선수였고, 이젠 방송인이며, 에모몽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온갖 별명으로 시청자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나, 유희라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설레고 행복하다.
고작 마음가짐 하나로,
그저 근근이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던 활대가,
내 평생을 받치기로 마음먹었던 파트너로 돌아왔고.
단순히 그리움에 당기던 시위가,
내 생애를쏘아 날리기에 합당한 동반자가 되었다.
그러한 내 마음을 받아줄 존재는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이 순간에는.
“너도 있고 말이야?”
거대한 몸집. 뭐라고 부르더라? 골렘? 그런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다.
RPG 게임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시스템의 보정이 강해서 그런가? 진득하게 오래 플레이하지는 못했다.
남들은 활은 좆망 실력빨 무기라고 욕을 했지만, 그렇게 쏘기 쉬운 것도 쏘지 못해서야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걸?
그리고 그런 가벼운 시위로는 내 가슴을 진정시켜주지도, 만족시켜주지도 못하고.
하여튼 그래서 내가 멀티플 온라인 RPG를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작품에서 저러한 형태의 녀석은골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각자다 특색이 있었고, 지금저 녀석에게도 특색은 있지만, 그래도 느낌 알잖아?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극광석과 근처 폐허의 건물로 이루어진 좀 다듬어지지도 않았고, 세련되지도 않은 골렘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극광시가 말하기를 녀석은 불안정한 상태라고 하네?
뭐, 육성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눈인데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어?
불안정하고, 투박하며, 제대로 추슬러지지도 않은 녀석이지만 강점도 있는 것 같다.
바로 이 짙은 에너지의 농도.
근데 또 하필이면 내가 극광체질이네.
살짝 아쉬움이 남는 기분?
조금 더 불타오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상성이 내게 너무 유리하다.
가볍게 현을 튕기듯이 시위를 튕긴다.
빠르게 5단계.
힘이 낮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만, 무려 90의 힘을 보유한 이 몸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력, 이 반발감, 삶을 불태우는 기분, 오늘도 난 이곳에 살아있는 거야!”
내달린다.
녀석의 움직임이, 관절의 변화가, 그 궤적이, 하나도 남김없이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게, 차근차근히 눈에 들어온다.
내려찍기.
왠지 지금이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치는 걸?
속도는 줄이지 않고,
자세는 낮추며,
왼손으로 땅을 짚고.
오른손으로는 화살을 꺼내며,
뛴다.
가능한 만큼 높게.
부유감에 몸을 맡기며, 화살을 건다.
헛손질.
그리고 그대로 녀석의 팔에 착지.
크으, 이거지.
당겼던 시위를 놓으며 그 팔을 두들긴다.
튼튼하네, 이거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일단 달릴까?
그대로 팔을 내달리며 꺼낸 화살을 하나하나 박아 넣는다.
이런 일반화살도 신관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없나? 아쉬움이 남지만, 추후에 생각할 일이겠지.
극광의 흐름, 녀석이 움직이나?
그렇다면 반대편 손.
떨쳐내기 위해서 쓸어내려오는 손짓, 녀석의 오른팔에 박아 넣은 화살은 7개,
그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는 짐작할 수 없다.
솔직히 자신이 좀 없는데 아프긴 한가?
피해가 없다면?
오른팔에 마저 매달리는 것이 이득일까?
아니면 왼팔로 건너갈까?
건너가면 어떻게 되지?
나에겐 빠르지 않지만, 녀석은 결코 느리지 않다.
그럼 팔을 휘두를까?
그럼 난 녀석보다 높이 위치한다.
가능할까?, 당연하지
벌써 쓰는 것은 아쉽지만, 특별 제작한 강철화살을 하나 사용하자.
그대로 오른팔을 쓸어내려오는 왼팔을 향해 도약.
쓸어내려오던 동작 그대로 팔은 크게 휘둘러지고, 이미 박아놓은 화살을 붙잡고 버틴다.
최적의 위치, 최고의 상황,그대로 손을 놓고 뛰어내리고, 어깨에 닿을 수 있을까?
닿을 수 없다면 닿게 하리라,
장애가 있다면 뛰어넘으면 된다.
갈고리 탄.
아니, 갈고리 화살.
살면서 이런 것을 실제로 써볼 수 있을 거라고는생각도 안했는데, 실제는 아니지만… 너무신나는데!
목을 노리고 시위를 당긴다.
목은 더 튼튼해 보이는 걸?
있는 힘을 모두 실어서, 강하게,
발을 디딜 곳도 없고, 자세도 불안정하지만,
그 부담감이 클수록, 강할수록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이 느껴진다.
콰지-직!
팔에 꽂아 넣던 소리와는 확연히 결이 다른 소리.
이대로 공중에 매달리는 것은 악수, 고작 매달려서 표적이 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니까.
빠르게 팔에 감는다.
중력을 거스르는 강한 추진력에 팔이 아려오고, 그 반발을 견뎌낸 대가로 중력이나를 당기기 시작하기 전에 이어서 팔을당겨 몸을 녀석에게 내던진다.
압도적인 수치의 근력과 민첩,
그에 비해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체력과 생명력, 그리고 지구력.
꽃이, 피어난다.
산수유의 꽃은 두 번 피어난다.
노란 꽃으로, 붉은 열매로.
머릿속이 붉게 물들고,
심장을 불태우는 감각이 몸을 덮친다.
“이제 시작이야, 나의 모든 것으로 너에게 부딪힐게, 너의 모든 것을 내게 부딪혀봐…!”
극광의 빛은 분홍색이기도 녹색이기도 했고, 푸른색의 빛도 보라색의 빛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빛깔에 나의 빛을 부딪치면, 필시 아름다우리라.
어깨에 도달하며, 팔에 감긴 줄을 풀어낸다.
‘골렘은 핵을 노려야 해요. 누님.’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핵? 어디에?
분명 그때는 가슴의 한가운데였다. 과녁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큰 것을, 그라운드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평온한 곳에서, 그저 무덤덤하게 쏘아 맞췄던 기억이 떠오른다.
얘는 가슴 한가운데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종아리에 묶어둔 대형 화살을 하나 꺼내고, 이능을 실어 목에 박아 넣는다.
까득! 까드득-!
부-웅!
묵직한 소리와 그에 비해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는 손바닥.
여기까지, 과감하게 몸을 중력에 맡기고 바닥으로 내던져지며 궤도를 벗어난다.
팔에 감긴 줄이 빠른 속도로 풀려나가는 것이 보였고,
그런 줄을 당기며 나를 당기는 흐름에 쐐기를 박아 넣어,
그 흐름을 끊어낸다.
몸을 감던 추락에,
자연의 법칙에 내던져지던 자유에,
제동이 걸리고 그 순간에 맞춰 밧줄을 끊어낸다.
휘둘러지는 다리.
걷어찰 생각?
숙녀에게 예의가 없구나?
강한 충격, 통증도 느껴지지 않고, 현기증도 찾아오지 않지만, 몸이 의사와 다르게 휘둘리는 어색한 감각.
카학, 퉷!
붉은 선혈이 바닥에 열매를 맺고, 녀석의 다리에는 두 번째 대형 화살이 박혔다.
앞으로 세 개?
몸을 휘감는 충격은 뒤로,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 허벅지를 향해 갈고리를 쏘아낸다.
남은 갈고리도 이제 한 개.
걷어차기 위해 뻗어진 허벅지가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가고, 그에 맞춰 나 역시 빨려가며, 멀어진 거리를 다시 좁힌다.
이어지는 극광의 흐름, 아 친구 예리하네? 슬슬 반응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리치는 손길, 그 손은…왼손인가? 오른손에 박아 넣어야하니 빠르게 범위를 벗어난다.
내리쳐지기를 반복하는 손바닥에 맞춰 파편이 튀고,
짓밟기 위해 그 역할을 손과 맞바꾼 발놀림에 맞춰 땅이 울린다.
아직 전력을 내지 않는 구나, 그런 방식으로는 나를 꺾지 못해.
그거 알고 있니?
바닥을 지지하고 있는 그 발.
아직 화살이 박히지 않았단다. 그런데 안일하게 축으로 삼으면 안 되지 않을까?
이로서 세 번째.
남은 것은 두 발.
‘첫 화살을 쏘고 일정시간 후에 화살촉이 녀석에게 공명할거야, 그럼 화살은 폭발할 것이고, 첫 화살의 폭발에 맞춰 나머지 화살도 폭발하겠지. 살 생각해서 쓰도록 해.’
율이 내게 화살을 넘기며 했던 말이다.
그런 류의 화살이 필요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갈고리 화살 같은 것은 상상도하지 않았다.
근데 튀어나오는 녀석이 저런 녀석일 줄이야, 에베베도 그렇고 치에키나 율도 그렇고 미리 말해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첫 화살을 박아 넣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리 길게 끌어도 30분 안에는 마무리지으라고 했는데, 그 발동 시간은 확답을 줄 수 없다했으니, 짧게잡으면 몇 분일까? 15분? 10분? 그도 아니라면 5분?
그 부담감이, 짜릿하게 등골을 타고 올라온다.
부담감? 이게 부담감이라고?
아니, 이건 기대감이라 불러야 걸맞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아니,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생을 장작으로, 삶을 불태우는 것에 있어서 시대는 중요치 않다.
한번, 생애에 단 한번, 그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 오직 그뿐.
그러니 나는 최고의 시대에, 최고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에 단 일말의 부족함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세상은 나를 위해 돌고 있는 거야!”
네 발 째.
녀석의 사지에 화살을 박아 넣었고, 마지막 화살을 꺼내 쥐는 순간, 그 화살촉의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
‘전 대장이, 담수가 종종 그곳에 갔었어,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하면 확인하고 가져와주지 않겠어?’
치에키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최대의 위기
‘희망은 언제나 덧없지만, 그래도 믿어 봐도 괜찮겠나?, 그냥 불쌍한 어린아이의미소 한번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율의 목소리 또한 뇌리를 스쳤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순간.
마지막 남은 화살을 시위에 걸고, 휘둘러지는 녀석의 주먹에 몸을 맡기며 충격에 몸을 던진다.
통증이 없는 것이 이제 와서는 되려 아쉽네.
활의 장력이 손가락에 강하게 감기는 그 통증도,
현이 손가락을 베어 누르는 그 피맺힘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워만 할 수는 없지.
머리를 향해 마지막 화살을 쏘아내고,
온 대기가 소용돌이치며,
극광이 시야를 형형색색으로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