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068 - [담서 side3] -- (69/99)



〈 69화 〉068 - [담서 side3] --

꽃향기가 흐드러지게 코를 마비시키는 어제.

스스로 미친 것인지 세상이 나를 꺾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날.

언제나처럼 눈을 뜨고, 조용히 죽지 못했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혹여나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꿈이라면 깨어졌으면 하는 생각에.

꿈이라면 어디서부터 꿈일까.

어디서부터 꿈이기를 바라야 할까.

잠에서  그 순간부터 꿈은 아닐까, 부디 지금 이 순간이 죽음을 앞둔 주마등이기를, 주마등이라면 어서끝나기를.

혹은 오빠가 세상을 떠난 그날부터 꿈인 것일까?

허면 어서 이 악몽이 끝나기를,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아침 해를 바라보며, 별것 아닌 듯이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그도 아니라면 그를 만난 그 순간부터가 꿈인 걸까?

단지 나를 괴롭히기 위한 꿈이라면, 지옥의 속에도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꿈이라면, 그렇다면 그 끝에 이 모든 것이 꿈처럼 잊혀질 수 있기를.

그저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랐다.




상한 것은 정상이 아닐지언정,
상하지 아니한 것이 상한다는 과정을 걸쳐,
상한 것이라는 결과로 남는 것은 정상일진데.

처음부터 상하여태어난 것은 정상인 것인가.

 생에, 나의 기억 속에 나는 언제나이러했는데, 그렇다면 혹여 나는 미치지 아니한 것인지.

혹여 미치지 아니한 것이라면, 부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실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향기가 흐드러지게 코를 마비시키는 오늘.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

“담서~ 일어났어?”

치에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나를 끌어내리는 악몽에 목을 매단 채, 그녀의 부름에 답한다.

미즈모리 치에키.

오빠와 같은 나이, 같은 과거를 보냈고, 같은 뜻을 품고, 같은 길을 걸었다.

책임 또한 같이 질 필요는 없을 텐데, 그녀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그런그녀의 앞에서 나는 망가진 것을 내비칠 수 없었다.

그녀가 나의 이상을 알고 있더라도, 이미 무너진 나를 보며 슬퍼하더라도, 차라리 그런 아픔을 토해내기를 바라더라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지난날의 일들, 지난 시간에 있었던 소소한 사건, 그런 별거 아닌 이야기들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일어났나? 마침 잘 되었군, 치즈가 오늘 아침은 맛이 좋은 것 같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던 참이다.”

인사를 건네 오는 율.

오빠의 오랜 동료.



나로 인하여,

친우를 잃었고,
목표를 잃었으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

‘괜찮아, 담수는 후회하지 않았을 거야, 아쉬움은 남았겠지,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 하지만 그건 후회와는 달라.’

‘네가 죽인 것이 아니야, 너의 탓이 아니다. 담수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자했고, 세상은 아직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냥 그뿐인 이야기야.’

정말 그러할까?

 모르겠다.

그저, 그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나를 추하다 하더라도,
비겁하다 하더라도,

무능하고, 무력하고, 우유부단하고, 뭐라고칭하던,

그저, 끝이 찾이 찾아오기를.

그 끝이 평온하지 않더라도,
그저 끝이라는 명제 하에,
나를 명시해 주기를.



결국 혼자 남아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는,
그런 나를 부디…



***

“담서야, 이것 봐, 엄청 신선한가시풀이야!”

밝은 목소리.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모든 생물이 삶을 마감하는 겨울, 그 혹독함을 감당하지 못할 이들을 위해 죽어나간다.

모든 생물이 끝을 준비하는 가을, 아직 끝을 준비하기에 이른 이들을위해 준비를 마친 이들이 죽어나간다.

모든 생물이 성장을 마치는 여름, 성장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해 성장하지 못하는 이들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모든 생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봄마저, 그저 떠난 이들을 기리며, 사라진 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죽어간다.

덧없는 이들.

제아무리 힘써도 결국 막을 수 없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었고, 나의 세상은 좁았다.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에는 두려움이 앞섰고, 구원의 손길을 뻗기에는 나의 팔이 부족했다.

‘혹은 노력이 부족했거나.’

언제나 같은 뱀의 속삭임을 이 몸에 한껏 새겨 넣으며 치에키의 말을 듣는다.

처음 듣는 사람의 이야기.

아니, 한번 마주했던 사람의 이야기.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앙귀스의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치에키와도 율과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시간을 한껏 추려내어 우리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뛰었고, 목을 축이기 위해 달렸다.
우리의 추모를 알고 있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돕겠다고 했다.
우리의 고충을 인지하고 있었고,  해결책 또한 수긍하고, 실행하겠다고 했다.

 결과 그녀는 부서졌다.
부서질 뻔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동안,
율은 내가 저버린 나의 세상을 위해서 힘을 썼고.

내가 눈을 감은 동안,
치에키는 내가  돌린 나의 생을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지난날에 처음 마주한 사람은, 날 보며 그저  눈물을 감추던 사람은, 이유도 없이 그저 우리를 위해 그 생을 던졌다.

뱀이 조용하다.
뱀이 조용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것이, 단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 난 이번에도 세상을 담았다.


***

“그녀는 폐허로 떠났다.”

어째서?

“그곳을 향해 심장이 뛴다고 하더군, 잘 모르겠지만 그리 말했다.”

무엇 때문에?

“그래서, 먼저 도움도 받았으니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물건과 정보를 쥐어줬더니, 바로 떠나던데.”

꽃향기가 짙어진다.

뱀이 그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온다.

시시시시싯! 시끄럽다.
시시시시시시싯! 짜증나고.

시시싯! 시시시싯! 시시싯! 시시시시시싯! 쌔애액! 슈르륵! 쉬익! 시시싯! 새액! 시싯! 시시시시시싯! 샤아악! 스스르륵! 쉬이이익! 시시싯! 시시싯! 시시시시시싯! 시이이잇싯! 샤앗! 샤아앗! 슈르륵! 쉬익!시시싯! 시시시싯! 시시싯! 시시시시시싯! 쌔애액! 슈르륵! 쉬이이이익! 씨싯! 시이이이익! 색액! 샛! 시시시시시싯! 스스스슥! 시이이이! 쉬익! 샤싯! 시시시! 시이잇! 샤샤샤샤샷! 쌔애애애액! 슈륵!쉬익! 시시싯! 시시시싯! 시시싯! 시싯! 쌔애액! 슈르륵!쉬익!

짙은 향기가 코를 찔렀다.


진혼제를, 준비해야한다,
떠난 이들의, 유해를 모아 태우고,
사람들을 모아서 추모를 진행하고,

다행히, 산맥의 주인이, 혓소리가, 식량은, 눈을 감고, 눈에 치인다, 선인장의 질이, 뱀의, 한 달은, 이상 별 문제, 않았을까. 그저, 움직이지, 넉넉하다, 잡은 전갈이, 앞으로, 시끄럽다, 넘게, 인근에, 안전할, 것이 옳은, 꽃향기가, 느낌, 일주일, 죽는, 머리를, 별거 아닌, 그녀가, 침묵한, 어지럽, 머리를, 없겠지, 내가, 죽어, 좋다, 가시풀의, 넘게, 기어가는, 혼란, 짙은, 스럽게, 충분하다, 식수도, 만든다, 뱀이, 몸을, 그녀가, 넘게, 영원히, 줄어들겠지, 일인데, 잠드는, 것이다, 치료제는, 자리를, 한다, 왜 나는, 충분하다, 됐던, 일일까, 머리를, 힌다, 양이, 한동안, 해도, 해도, 이들이,

아, 꽃향기가. 박힌다. 목을. 그녀가. 짙고. 뱀이. 조인다. 심장에.

세상이 눈을 감았다.




***

익숙한 천장.
깜깜한 실내.

적막에 잠긴 집안에서 오늘도 홀로 아침을 맞이한다.

시간의 흐름은 나를 떠난지 오래고, 온기라는 것은 영 익숙하지 않은 요소다.

본디 익숙하지 않은 것은 불편함으로 이어지고, 불편함은 경계의 대상으로, 이어서 기피의 대상으로 이어진다.

유치원?, 이라는 것을 가야하는데, 가야했는데, 아침이 아니었나보다.
불이 꺼져있더라도, 날이 밝았다면 이렇게어둡지 않을 텐데.

아버지라는이는 집에서 마주 친 것이 1년이 넘은 것 같다. 분명 한 집에 사는데.
아니면 한 집에 사는 것이 아닌 걸까? 잘 모르겠다. 분명 유치원에서 집은 가족들이 있고, 나를 반겨주며, 내가 돌아갈 곳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이곳이 집이 아닌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 했는데, 나에겐 집이 없는 건가?
그럼  모두라는 대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인가?
이 역시 잘 모르겠다.

어머니는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에 있는 여성은 언제나 낯선 이였고, 그녀와 함께한 모습은 나의 기억에도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 유치원에서 가족사진을 가져오라 하였는데, 가족사진이 뭔지, 가족과 찍은 사진이라면 가족은 뭔지, 쉽사리 감이 오지 않는다.

단어의 정의는 분명히 들었고, 기억하고, 인지했는데.
나의 삶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나만이 삶에 연결을 하지 못한다.

내가 이상한 것일까? 모두가 이상한 것일까?

이상이란 정상적인 상태와 다른 것을 말하고,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말하니.

내가 이상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이상은 특별한 변동이 있는 상태 혹은 ‘제대로’가 아닌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그래. ‘제대로’가 아닌 상태.


***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익숙하지 않은 시간, 정적이 귓가를 감싸고, 아무런 내음도 코를 괴롭히지 않았다.

어색한 하루, 먼 과거의 꿈의 연장인지, 현실이 맞는지 생각하기를 한참.

옆에 있는 존재에 생각이 미친다.

어째서 눈치 채지 못했을까?

경계로 이어지려는 찰나, 그녀의 손에 쥐어진 꽃이 사고를 얼린다.

검은색의 석산.

언제나 몸에서 때어놓지 않은, 나의 목숨보다 소중한 검은 꽃.

언제?

그러한 혼란을 잠재우는 목소리.

“일어났구나.”

눈이 마주친다.

평소의 나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고요.

손이 뻗어지고, 머리에 무언가가 꽂아진다.

“잘 어울린다.”

누구에게?

“깨꽃, 이라고 불러. 꽃의 끝을 이렇게 빨면, 꿀이 나와서 어렸을  자주 이렇게 꿀을 핥았었는데.”

무엇이?

“샐비어라고도 부르는데, 붉은 색이 이쁜 꽃이야.”

어떻게?

“그거 알아? 샐비어의 꽃말은 불타는 마음과 정열이야.”

왜?

“그리고 ‘가족애’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

슬픈 추억이나 죽음을 뜻하는 석산과는  다르지?

슬픔을 잊을 필요도 없고, 세상을 바라볼 필요도, 세상에 기대를 할 필요도 없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어두워하지만은 않았으면 해.

담수의 집에, 꽃이 세 송이가 있더라고, 자신을 나타내던 붉은 석산과 너를 표현한 것일까? 하얀 백합도 있었어.

마지막으로 샐비어. 그래 너의 머리에 장식한 그 꽃이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시들지 않고 그 형태를 잃지 않고,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있더라.

비록 시간이흘러 석산은 검게 변하고, 너는 상처받고 시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내가 너의 붉은색이 되어줄게.
시들어버린 널 위해 내가 더 화려하게 필게,
꺼져버린 널 위해 내가 더 맹렬하게 타오를게,
잃어버린 네가, 너를다시 찾을 때까지.

꽃은 다시 피울  있고, 불은 다시지필 수 있으니까.

네게 다시 너의 순간이 올 때까지 내가함께할게.

그러니 시들어버린 백합도, 색을 잃은 석산도, 내게 던져버리고, 다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도 괜찮아.”



방을 나섰고,
 자리에는 은은한 향만을 남긴,
세상을 떠난 그의 잔재가 느껴지는,
방을 나선 그녀의 잔재가 남아있는,
그런 화분이 하나.

그리고 세월이 담긴 편지가 한 장.

익숙한 필체.


유독 조용한 날,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고, 검게 물 들었던 세상이 유독 붉은 석양을 등지고, 그리운 사람이 흔적이 지독하게도 나를 괴롭혔다.

오랜만에 흐르는 눈물이, 이미 잊고 있던 아픔이, 원 없이 몰아치는 감정이, 나를 깨우는 기분이 들었다.

길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자,


익숙한 천장.
붉게 물든 실내.

고요에 잠긴 방안에서 오늘은 혼자 아침을 맞이한다.


‘그녀도 죽을 거야.’


그럴 것이다.


‘결국 혼자 남을걸?’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미친 거야.’


필시 그러하다.

‘-----’


그러니까 죽게 하지 않으리라.


‘-----!’

혼자 죽게 두지 않으리라.

‘---! -----! -- --!’


미쳤다면 어떠한가.

‘맞아, 미친 세상에, 미친 사람 한두 명쯤, 별일 아니지?’



똬리를 틀고 틀어박힌 뱀이,

그 칩거를 깨고,

세상에  자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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