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080 - 나는 날아가는 새 뒤를 잘 돌아보는 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고,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니 감당해야 시발 꼽네.
아무튼 이 여우 불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한다.
“그래서 진정시키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는데, 글쎄 이미 사고를 친 뒤였던 거야!”
옆에서 밝은목소리로 재잘거리며 나에게 들러붙는 이는 다름 아닌 첸.
어째서 리베르타스에는 비석이 없는 것일까에 관한 고뇌를 하며 어떻게든 체질에 대한 내용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두는 나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신 여신님이다.
“그래서 결국 중재하려고 끼어들었는데, 너무 말을 안 듣는 거 있지? 그래서 빈센트가 결국 다 두들겨 패버렸어. 파라디수스랑 뭐라고 했지? 그라티아?”
취소.
해말게 조잘거리길래, 별거 아닌 내용이라생각하며 애써 잡념을 치워내던 나에게 갑자기 이렇게 안쪽 꽉 찬 돌직구를 던지며, 잡념을 밀어버렸다.
“아, 그러니까 지금 나름 북서지부의 양대 산맥이 싸우는 곳에 냅다 참전해서 양쪽 다 두들겨 패서 눕혀놓고 오셨다는?”
“으음, 그렇게 되나? 어쩐지 도심 한복판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게릴라전이 벌어지고 있어서 궁금했는데, 나름 힘 있는 친구들 이었구나…”
그렇지….
난 플레이의 방향성이본의 아니게 3번 연속으로 따로 노는 방향으로 잡혀버렸고,
에모몽 같은 경우에는 앙귀스라는 세력 자체가 그렇지만 중간까지는 혼자 놀아야하는데 그 과정을 빠른 진행 없이 우직하게 담서랑 데이트를 하고 있고,
순덕이 같은 경우에는 최근 플레이는 어떨지 몰라도 지난 회차에서는 본인의 요청대로 빠른 루트개방을 위해 일반 이벤트는 다 지워버리는 식으로 플레이를 해서 OO의 세계가 평화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북서지부는 기본적으로 전장이다.
대규모 접전은 후반부에 클라이맥스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더라도 소규모 접전은 항상 일어나고, 거기에 자주 얼굴을 비추면 막판에 조금 커다란 싸움에 끼어 들 수 있게 되서 87점이 나오는 것.
그 이유는 변붕이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간섭이 없이 흘러간다면 그라티아는 2번의 보급습격을 성공시키고 대등한 위치를 취한다.
하지만 3번째 보급은 빼앗길 수 없었기 때문에 간부급이 직접 행차하여 보급을 진행하고 이 타이밍에 급발진하는 더치가 작전을 말아먹어서 주도권을 놓치고 이전에 비해 전황은 유리해지지만 그럼에도 게릴라전을 유도해야하는 고착상태로 다시 들어가기 때문인데.
그런 살얼음판에 우리 리베르타스의 해맑은 친구들은 ‘싸움은 나빠 다시는 싸우지 못하게 만들어주지!’라는 마인드로 박살을 내주고 왔다고 하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북서지부의 특이성을 알고 있잖아?
북서지부는 기본적으로 괴물들의 우리야.
당장 전력의 60%가 감소한 이유가 ‘북서지부의 여제’와 ‘멸망의 화가’가 전선을 이탈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고, 남은 40%의 절반의 무력을 책임지는 것이 그 ‘통곡의 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통감할 수 있지.
그래, 북서지부는 현재 비대칭전력들의 숨 막히는 심리상담소라는 뜻이다.
비대칭전력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언밸런스한 무력을 뜻하는 말이 아니잖아?
단순히 예시를 들어보자, 북서지부의 아키야를 제한 모든 인물이 합세해서 시엘라와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 같아?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시엘라가 이겨.
기본적으로 세력 간의 분쟁이 세력의 우두머리의 상성에 따라 갈린다는 의미다.
살짝 복잡한 가위바위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엘라와 아키야가 맞붙는다면 승부가 나지 않는다. 전이라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절대로 맞붙지 않기 때문에모르겠다고 대답했겠지만, 난 노바투스와 내가 힘을 모아 일으킨 대참사를 보았으니까. 이젠 말할 수 있지.
유이와 담서 루미나는 시엘라를 이길 수 없다.
아키야는 유이와의 승부에서 반반을 가져간다. 상성이 안 맞거든 둘이. 유이가 8대2정도로 우세한 상성이다. 그래서 유이가 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토벌모드 보니까 딱히 그것도 아니더라. 전투의 결과와 시스템이 판단하는 전투력 그리고 유저가 느끼는 전투력은 다르기 때문인가?
그리고 담서는 아키야를 이길 수 없고 루미나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그녀가 직접 자신은 저 벽을 뚫을 수 없다고 했으니까. 물론 지지도 않지만.
유이는 루미나와의 승부에서 20%가량의 확률로 승리를 거두고 80%의 확률로 승부가 나지 않는다.
상성은 유이가 절대적으로 우세하지만 루미나가 무리하지 않는다면 유이는 결국 아키야와 비슷한 계열이라 금강루미나를 뚫을 수 없다.
그나마 아키야보다 공격적인 능력이라 루미나가 무리를 한다면 우세를가져올 수 있고, 그 우세를 바탕으로 교전을 이어가면 이길 수 있다 정도?
그리고 담서한테 한없이 불리하다. 본래라면 담서의 패배라고 말했을 텐데, 지난날에 목격한 만전의 상태의 투지를 담은 진심 담서의 검은확실히 북서지부의 처형자라고 불릴만한 날카로움이었거든. 괜히 재주 500의 미친 괴물이 아니다.
공격성은 얻고 범용성을 잃은 유이의 능력으로는 아키야처럼 담서의 공격을 흘리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아마 유이가 지겠지?
그리고 루미나와 담서. 이건 약간의 변수만으로도 갈라지지 않을까? 지난 변붕이 회차에서는 루미나가 승리를 위해 행동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피해를 위해 버틴 것이라서 루미나의 판정승이었지만, 서로 살의를 부딪친다면 필시 좋은 승부가 되겠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른 병력의 개입은 사실 의미가 없다.
내가 모르는 리베르타스와 노바투스의 인물들을 제외하면 저 다섯을 1티어로 두고 2티어로 뽑을 수 있는 인물이 이오릴과 라우라 그리고 테르미인데, 이오릴이야 논외로 두고 라우라와 테르미가 10명 20명씩 복사되어 덤비지 않는 이상은 승산이 없다. 심지어 상성에 따라서는 트럭으로 덤벼도 승산이 없지.
때문에 그들은 서로 간섭을 하지 않는다.
물론 성격이나 성향도 영향이 있겠지? 각자의 목적도 영향이 있을 것이고?
뜨거운 또라이 시엘라 같은 경우에는 북서지부에 세계평화의 첫 깃발을꽂으려하고,
그를 위해서는 전쟁의 당사자들이 스스로 전쟁이 득이 아닌 해라는 것을 인지해야한다고 생각하며,
저들이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해서 소강상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차가운 또라이 유이 같은 경우에는 뜨또가 자신의 의견을 한번 따라줬으니 이번엔 자신이 그녀의 의견을 따를 차례라는 생각에 선을 넘지 않는다면 항상 흘러가는방향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키야는 어느 날 갑자기,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을 지우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마인드로 그저 자신의 목적을 이루러 왔고, 그 목적에는 정보수집이 제일 앞에 있어서 사상이나 이념의 마찰이 없다.
루미나와 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2티어는 각자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다.
이오릴은 피가 가능한 한 적게 흐르기를 바라고,
라우라는 저 험난한 재앙이 자신에게 닿지않기를 바라며,
테르미는 상대의 제거가 아닌 통제를 희망한다.
이 어중간한 이해득실로 얽힌 전장은 루트별로 나오는 점수에도 밀접한영향을 끼치는데.
순덕이는 왜 1000점에서 멈췄을까? 왜 1100점에 도달하지 못했을까?
그것이 파라디수스의 강경파가 이뤄낼 수 있는 역사적 변동의 한계니까.
1724점이라는 점수는 왜 페칸스에서 기록되었을까?
언급한 적 없지만 최대의 점수를 뽑는다면 아마 아키야의 루트가더 고점이 높을 것이다. 왜 그럴까?
페칸스의 목표가, 시엘라와 아키야라는 인물이 가지는 영향력과 그 목표가 아무런 간섭 없이 흘러갈 미래와 가장 상이하니까.
왜 참사가 3번이나 일어난 북서지부에 낙원이 남아있는가,
중앙은 왜 이곳을 버리지 않고 이곳에 모든 파라디수스를 통틀어서 핵심전력이라 부를 수 있었던 인물을 셋이나 배치했는가,
아키야는 왜 북서지부에 자리 잡고 칩거 했는가,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리베르타스는 왜 이곳을 빠르게 이탈하는가.
모든 것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를 가지고 이어져있으며 그 결과 이 전장은 3~4티어 인물들의 전장이 되었다.
물론 그들끼리도 세력의 장군 급에 해당하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치고받을 수는 없으니 게릴라전을 이어가며 조금씩 깎고 깎이며 그 살얼음판을 고조시키는 것인데.
오늘 그 살얼음이 부서졌다.
말했지? 두 세력의 접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립세력이 영향력을 가지는 경우는 지금까지 두 세력이었던 공간에 세 세력이 존재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덕분에 나는 아귈라의 소속일 텐데 아귈라에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하루 온종일 첸을 따라다니며 경계로 가득 찬 이곳에 리베르타스가 정착하는 것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
목요일을 그렇게 소모하고, 금요일마저 리베르타스의 안정화를 위해 두 발로 뛰며 발품을 팔았고,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사실 리베르타스는 플레이어가 소속될 수 없는 세력이 아닐까?
그럼 비석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지금의 조팽이처럼 간접적으로 소속이 될 수는 있지만 리베르타스의 일원 누구누구라고 자칭할 수는 없는 그런 조직인거지.
번화가에 식료품점 점원으로는 일할 수 있지만 그 식료품점이 속한 상인연합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지 못해서 상인연합회의 건물에 비석이 없는 것처럼.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우선 숏컷이 없다거나 무소속보정으로 최종 점수에가산점이 있다거나 그러한 게임적인 소소한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력 소속원이 아닌 협력자라는 포지션에서 활동을하면서 동시에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면 나오는 특수한 특성, ‘중재의 기둥’
그 효과는 ‘모든 세력의 NPC들에게 적의가 없다면 설득과 신뢰에 보정을 얻는다.’ 그리고 해당 특성이 있을 경우에만 열리는 몇몇 이벤트.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번 회차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이 보였고, 그 희망은 결코 흐릿하지도 않고, 불투명하지도 않다.
“그런가…조팽이는…조화로운 평화의 상징…이었나!”
-얘 갑자기 왜 이럼?
-원래 자주 이럼 금방 익숙해짐
-달은 어디갔어 너 달씨잖아
“태양은 눈이 부시다. 그 빛은 세상을 밝히지만 반대로 그 빛을 받는 이들의 시선을 막아내기도 하며, 그 빛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달빛은…! 그러한 태양의 빛을 어두운 밤에도 비추고자 자신의 빛을 포기하고 그저 더 찬란한 빛을 잔잔하게 보여주기를 선택한 달빛은…!, 그렇다 나는 상냥하고 잔잔한 달빛. 조화와 평화의 상징! 그 이름도 자비로운 달조팽!”
-하아, 씨발
-진짜 자주 이럼? 진짜?
-오늘은 좀 심한데 자주 이럼
-솔직히 난 그런가에서 이미 사운드 내림 얘 지금 뭐라고 지랄함?
-육군도수체조보다 못한 소리 내고 있음
-그건 좀 선 넘네
-오늘은 좀 심하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신이 이 땅에 화평이 아닌 검을 내리러 왔다면, 나는 그 검을 꺾어 평화를 이루겠다아아아아아악!”
-야 시발 꺼! 꺼! 방종하고 싶으면 시발 말로하고 그냥 평소처럼 끄라고!
-솔직히 회사에서 구르고 와서 집에서도 클라이언트 뒤치다꺼리 하고 있으면 미칠만해
-뭐 존나 떠들었는데 이해가는 부분이 없네 내일 다시 물어봐야할 듯
-텄다 시발 다른 얘들 뭐하냐? 방송 누구누구 살아있음?
-순덕이 지금 비트세이버함
-에모몽 방송함
-에모몽 뭐함?
-‘에모몽’ 방송함
-시발
-차지우 갑자기 방종하고 말편자가 방송키고 인디언 기우제 올리길래 대체 갤주가 뭐하는 새낀지 보러 왔는데 여긴 더 씹창이네
-강줌이는? 힘강줌 뭐해!
-미션 붕괴하는 중임
-도-망-챠-!
-근데 내가 거기서 도망쳐서 여기로 옴
-너도? 나도 그랬는데 여기가 더 지옥이네 돌아가야겠다
***
흐르는 물은 손에 잡을 수 없고, 시간은 물과 같으니 흘러가는 시간은 언제나 거스를 수 없음이라.
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찾아왔고, 지난날의 이상한 기억이 긴 꿈을 꾸었노라고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제자 갤주 하이라이트]
-(대충 달조팽에 대한 연설 중인 갤주)
-평소에도 또라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어제는 ㄹㅇ 조금 무서웠음
>이런 얘도 취직해서 먹고 사는 거 보니까 자신감 좀 생기더라
└이런 얘도 취직하는데 넌, 아니다
└개새끼가?
하지만 평소와 같은 토요일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식사를 하며 커뮤니티를 확인하자 높은 추천수와 조회수를 기록한 글이 나의 기억을 부쉈다.
음, 꿈이 아니었나? 어쩔 수 없지.
…
“어제 고생했더라, 이해해라 피곤해서 좀 그랬어.”
-맨정신이었어도 그랬을 걸?
-딸잘알 ㅇㅈ
-딸이라고 하지 말고 에잘알이라고 해줘
-그럼 에모몽 같잖아
-그러네; 그런 모욕은 참을 수 없지
-모욕임?
-모욕이지 ㅇㅈㅇㅈ
“맞아 사실 맨정신이었어도 그랬을거야, 감명받았다. 오늘부터 조화와 평화의 사자 달조평, 북서지부를 위해 힘쓰러 간다.”
-에라이
-실례합니다. 갤주방 시청자 여러분. 우선 장문 죄송합니다. 저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운 에모몽 방의 시청자인데, 제가 평소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닌데 실례지만 갤주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진짜 미안한데 에베베 좀 빌려줘라
-머선? 일이고?
-몰?름
“갑자기? 왜?”
-저희 으드득 희라가 으드드득 에베베가 없으면 으드드드득 전설의 궁수 켠왕한다고 으드드드드득 해서...
-그거 본인이 직접 활 쏘는 게임 아니잖아
-내 말이 씨발 지금 하이라이트까지 진행했으니까 스승님이 오지 않으면 불초 제자 홀로 하이라이트를 즐기는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고 지랄함
-스승인데 왜 효임?
-그것도 포함해서 내 말이 씨발임
-ㅇㅋ; 많이 화났네
-에베베야...우리 좀 살려줘...
세상 모든 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욕구와 자유가 있음에 틀림이 없는데, 그럼에도 현대는 욕구와자유를 충족함에 이토록 걸림돌이 많은가, 참으로 죄는 많고 정의는 적은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