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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092 - 당신만이 우리의 희망입 / 아 제발 그러지 마세요 (93/99)



〈 93화 〉092 - 당신만이 우리의 희망입 / 아 제발 그러지 마세요

두개의 폭탄이  양옆을 감싸는 상황.
나에게 평화가 찾아왔다면 믿을 수 있을까?

폭풍이 치기 전날 밤은 고요하다고 했던가.
믿기 힘들 정도의 평화가 이곳에 자리했다.

시엘라는 경계하는 마음을 완전히 접은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일반인에 속하는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보이고, 아키야가 무언가 수작질을 하려는 속셈이 아닌지에 대한 경계정도?

리베르타스의 일원들은 눈칫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지, 그런 미묘한 나와 시엘라의 관계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나보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라는 것은 사람의 감각을 좀먹는 행위.
적어도  몸에 깃든 기운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겠지?
무려 친구의 증표가 사라졌는데도 별다른 반응 없이 날 바라보다가 씨익 웃던 금호가 무서워서라도 확인을 해야했다.

우선 특성.
놀랍게도 확실히 영향을 받은 NPC가 아키야 한명 뿐이라서 확인을 못했다.
이거 실화냐?

지나가면서 유이한테 몇 번 꼬리를 쳤는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지는 않더라.
시엘라는 말했듯 이미 다른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내가 반응을 캐치할 수가 없었다.
첸은 솔직히 기대를 안했고, 사람이 기대를 안 하면 실망도 안한다.
밀레는 가진바 능력이 감각이나 무력적인 부분은 아닌지, 마찬가지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금호…미친년. 모르겠다. 얘는 단  번도 생각이 읽힌 적이 없어.

그래서 때려 치고 체질조사를 나왔다.
‘내려앉은 데이메어’와 ‘떠오르는 나이트메어’ 둘이 한 쌍이 되는 것 같은 체질.
우선 전자의 효과는 지금까지 입증한 바는 이러하다.

‘체내에 받아들인 모든 것에 대한 제어 권’

흡수가 없어졌는데 비슷한 느낌이 남아있는 것도 그렇고, 금호가  몸에 붙이고 갔던 여우 불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아키야가 붙이고 간 그림자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도 그렇다.
이 체질이 잡아먹은 것이라고 가정하면 모두 납득이 간다.

 성능 면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느꼈다.
일단 과열된 정제의 효과가 남아있는  같더라고.
이능력이 2배가 넘게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내가 정제하는 이능의 양이 이해가 안가도록 많다.
걱정이되는 것은 최대치를 넘게 수용한 이능력의 게이지가 검게 변한다는 것인데, 보통 OO에서 검은색은 좋은 게 아니더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후자의 효과는 아마 전자와 반대되는 효과가 아닐까?
폭주 계열의 체질인 것 같은데 트리거는 모르겠다.
 몸인데 내가 모르는 것이 왜 이리 많을까?

아마 생기게 된 계기가 계기라서 그런 것 같기는 해.
시작부터 극광석 하나를 날로 집어 처먹었고, 거기에 더해 이독제독이라는 마인드로 다른 생물들의 정제기관까지 갈아마셨다.
과열된 정제와 흡수의 이능을 통해 이것저것 마구 빨아들이고 다녔고, 그 과정에서 필넴들의 고유한 기운이 있었을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메뚜기와의 교전에서 몸이 한번 한계를 부르짖으며 강제로 다음 단계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과열된 정제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양의 이능을 제어하다가 반발대미지 까지 받았다.
그런 몸에 금호는 치유는 못해줄 망정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고, 아키야의 이능을 억지로 털어내기도 했다.
게다가 아키야의 그림자가 그렇게 순순히 물어날 리도 없으니, 몸에 남아있었겠지?

즉,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몸 안에서 뭉친 결과 생긴 체질인 거다.
그렇다면 아마 후자의 체질은 아키야가 가진 페널티와 비슷한 느낌의 페널티가 아닐까?
물론 난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풍기는 뉘앙스를 보건데, 이능을 너무 오래 활용하면 자신을 잃는  같은 느낌의 이야기를 했으니까.

“일단 파악은 어느 정도 끝났네.”

-파악이 끝남?
-아 파악! 잘 알지 사제 광역기 아님?
-맞을 걸?
-아 그게 끝났다고? 어쩐지 갤주 상태가 광역기 맞은 것 같더라

“지랄하지 마. 일단 할일 마쳤으니  먹으러 간다.”

-아니 너도 켜놓고 먹으라고!
-ㄴㄴㄴㄴㄴㄴㄴㄴㄴ아냐 맛있게 먹고 와
-맞아 먹고 와 ^^

“뭐지 갑자기 꼽네”

-실례지만 메뉴를 여쭤보아도...아닙니다
-아냐 오늘은 육개장 어때? 같이 육개장 먹자
-맞지 육개장 어떠냐?

“육개장? 육개장도 나쁘지 않네, 아 근데 딸기 땡기는데… 갈비탕 먹을까?”

-씨발련아 갈비탕에 딸기를 왜 처넣어서 먹는데!
-딸기가 땡겨서 갈비탕을 시키는 씹새가 있다?
-너 이 시발 너 피자에 파인애플 올려 먹는 새끼지?

“미쳤어? 과일을 뜨겁게 먹는 죄악이야”

-?
-어?
-딸기 과일 아니었냐?
-과일? 뜨겁게? 딸기? 갈비탕? ????

“딸기? 그건 인생이지. 인생은 뜨거울 때도 차가울 때도 있는 거야”

-좃되네 진짜;
-이게 그 광기 군단장이냐?
-ㅋㅋㄹㅃㅃ;

***


그 후로는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말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리베르타스의 인물들의 파악과 내 상태를 점검하는 것뿐인데.
상태점검은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이 이상의 진척도 없을 것이 뻔하니, 리베르타스의 친구들과 평화를 즐기는 것 밖에 없더라고.
그렇게 또 시간을 불에 던지듯이 보냈다.

언제까지?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근데  사건이 생각보다 크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임?
-왜 밤에 자고 일어났는데 밤이냐?
-진짜 뭐임?

그런 우리의 눈앞에 자리한 것은 검은 그림자에 완전히 뒤덮인 북서지부였다.
아키야 씨발련아~ 급발진을 이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


***



사실 말했듯이 나는 아키야의 이능을 정확하게 모른다.

일단 앞서 말했듯이 도감은 불친절하다.
거기에 아키야라는 인물은 북서지부에서 가장 독특한 포지션과 루트 배분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녀의 루트를 진행하다가 중간에 대화를 한번 잘못하면 바로 일기토가 열리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의 루트를 진행하기 전에 처치 업적을 먼저 달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거기에 아키야라는 인물은 유저, 아니 본인이 스스로 정한 일반인의 기준에 해당하는 인물에게 진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설령 그 결과 죽음이 자신에게 내리친다 해도.
사실 그 덕분에 처치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아직도 그녀의 능력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기도 하지.

그래도 저게 어떤 상황인지는 안다.
아키야는 지금 북서지부를 자신의 능력으로 삼켰다.
내가 평화를 만끽하는 동안 그녀와의 접점은 하나도 없었고, 그 때문인지 시엘라도 살짝 당황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 뒤에 북서지부로 향할 것이라 의사를 표했다.
거기에 첸도 수긍하여 나를 포함한 리베르타스의 인원 8명과 시엘라 그리고 유이까지  10명의 북서지부 공략대가 꾸려졌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시엘라와 유이에게 아키야가 폭주한 이유를 말할지 말지.
시엘라에게 있어서 아키야는 어디로 튈지 모르며 이미 전과도 있는 수배범이지만, 이렇게 무지성으로 일단 일을 벌이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럼 아키야가 ‘모종의 준비를 마쳤거나’, 아니면 ‘일을 터트리고 보자는 심보를 품을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졌다.’라는 판단이 내려지겠지.
그러한 상황에서 아키야가 대화를 걸어오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그럼 눈앞에서 터지는 세 개의 폭죽을 지켜봐야 하는데.
 폭죽의 기세를 미리 죽일지 말지가 지금의 국면.
성공한다면 성공적으로 셋  제어할 수 있고, 실패하면 북서지부에 도달하기도 전에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첸.”

그러나 내가 선택한 판단은 등장인물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들을 행복으로 이끌 수 없는 위치에 놓이고 말았고,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결말을 정했으면 한다는 마음.

“응? 무슨 일이야?”

함께했던 그동안의 시간이 첸이 쌓아뒀던 벽을 크게 허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고.
끝내 마음을 연 첸은 내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좀 있어, 하지만 동시에 내 짐작이 옳다면 대처할  있는 상황은 아니야. 그래서 너에게 판단을 맡기려고.”

난 결국 아귈라의 인간이고, 일반인이며, 외부인이니까.
라는 말은 지금의 그녀에게는 필요치 않으리라.

“…응.  일이구나.”

그녀 역시 나와 함께하는 동안 많은 것을 주워들었을 것이고, 많은 경우의 수와 그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미래를 상상했을 테니까.

“시엘라 씨?,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결국 그녀는 시엘라를 불러 세웠고, 아키야의 영역까지 고작 수 백 미터.
결단의 도화선에 불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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