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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화 〉093 - 피로 세운 도시, 죽음으로 세운 기둥. (94/99)



〈 94화 〉093 - 피로 세운 도시, 죽음으로 세운 기둥.

혹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정화기둥이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일전에 금호가 내게 정제석을 줬었지. 그래 정화기둥은 정제석으로 제작한다.
하지만 그 정제석이 흔한 물건이었다면 내가 받고 놀랐을 리가 없고, 낙원의 지부가 5군데 밖에 없을 리가 없겠지?
따라서 인류는 결국 극광의 재앙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봐도 좋다.

그럼 다시 의문. 북쪽지부는 2번의 참사 끝에 기둥마저 잃고 북서지부로 그 위치를 옮겼다.
그 결단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자.
북쪽에는 액이 끼었다며 북쪽에서 이주하는 많은 시민들.
그러한 상황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걸어서 조차 며칠 안 걸리는 거리에, 그 귀한 정제석을 소모하며 새롭게 정화기둥을 쌓아 올리고, 거기에 안 그래도 부족한 자원을 털어서 새롭게 낙원의 지부를 만든다?
누가 봐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같지?

그래서 낙원은 실험적인 의미에서 북서지부를 만들었다.
인류의 문명은 쇠퇴하고 있었지만, 문명의 쇠퇴는 쇠퇴하는 원인을 찾아서 해결방안만 마련하면 다시 쉽게 발전하기도 한다.
OO를 예시로 들자면 이유는 모르지만 극광의 재앙이 발생하여 문명이 쇠퇴했고, 이능력자들의 탄생과 극광석의 활용방법, 그리고 정제석의 발견으로 다시 발전했다고  수 있겠지.
그 과정에서 낙원은 큰 실험을 두 가지 자행했다.

그것은‘이동하는 도시’

결국 세상이 전반적으로 살아갈만한 장소가 아니게  이상, 한곳에 정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옳은 판단이 아니다.
특히 운송이 엄청난 위험을 수반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나온 해결방안이 ‘이동하는도시’
하지만 단순히 생각해도 쉬운 해결방안은 아니지?
그래서 그들은 북쪽지부를 시험의 장으로 삼았다. 이동하는 낙원을 만들어 낸 것이지.
생각해봐 아무리 외벽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목책을 세워놓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애당초 북서지부에 존재하는 외벽민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있어서 버리는 이들이었다.
낙원만 정상적으로 이동해서 자리할  있고, 나중에 필요할 때 불러들일 수 있다면 충분하니까, 그것을 위한 실험의 장.

여기까지가 밝은 이야기.
밝은 것 맞냐고? 맞을 걸?

자, 두 번째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내가 몇 번 이야기 했는데 우리 관객여러분들께서 기억을 해주시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화기둥은 Mk.2에 해당한다.
말했듯이 구태여 북서지부를 만드는 판단은, 아까운 정제석을 버려진 북쪽에 소비할만한 가치가 없는 판단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동하는 도시’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정화기둥에 대한 것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순서가 반대일지도 모르고.

하여튼, 아키야의 연구결과를 받으시던 높으신 분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저 정화기둥은 극광석의 기운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돌멩이가 아닌가?’
그래. 정화기둥의 범위 안에 있어도 딱히 극광의 기운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단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약해지거나, 혹은 위험성이 없게 정제하거나.
물론 후자라면  정제석이 극광을 정제한 결과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것은 순전한 우연일 것이고.
아마 정화기둥의 범위 안에서는 자연 발생하는 이능력자가 없으니 후자가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구결과를 보더니 이러한 생각도 했다.
‘극광을 인간에게 무해하도록 정제하는 시설을 직접 만들면, 정제석에 의존하여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그 가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이어지는 이능력자에 대한 연구.

감염자와 이능력자의 차이를 말했었는데 기억할까?
전자는 감염된 후에 정제기관이 형성되었고, 후자는 감염되기 전에 정제기관이 형성되었지.
둘은 어떠한 차이를 가질까?
왜 감염자는 극광병을 전염시킬 수 있고, 똑같이 극광의 기운을 제어하고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이능력자는 감염을 시키지 않을까?
물론 격이 다르게 강한 이들은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감염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보통 그 정도 수준이면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서 약한 기운을 뿜어내기에 문제가 없다.

아키야가 밝혀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감염자의 정제기관은 감염이 진행된 후에 형성되었기에  성능이 부족하다.
2. 감염자는 체내에 유입된 극광의 기운을 제어하지 못해서 감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이능력자보다 제어력 또한 부족하다.
3. 따라서 이능력자보다 정제기관의 성능도, 기운의 제어력도 부족한 나머지 일반인에게 위험한 기운을 분출한다.

세상은 넓고 가혹하며.

정제석도 그 크기가 작으면 정제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고, 그 순도가 떨어져 질이 부족하면 정제의 효능이 부족해진다.
해결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대체적으로 질이 떨어지면 양으로 해결하라고 많으면 된다.

생명의 가치는 낮고 덧없다.

어라? 그럼 정제석이랑 인간의 정제기관이랑 비슷하지 않아?
크기는 작은 상태로 고정되어있지만, 감염자의 정제기관은 질이 나쁘고 이능력자의 정제기관은 질이 좋은  아닌가?
감염자가 결국 죽는 것은 정제기관의 성능이 부족하기 때문. 그렇다면 정제석의 범위 안에 있는 감염자는 그 병의 진행 속도가 더딘가? 그랬다.

감염자의 정제기관이 성능이 부족한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정제를  해야 하는데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감염된 신체에는 이정도 정제면 충분하다고 몸이 판단한 것인가? 전자였다.

그렇다면 감염자의 정제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모으면 안정적인 정제를 할  있는가? …그렇다.

이 실험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도저히 못써먹을 어중간한 정제석 하나. 이것은 이미 남아넘칠 정도로 많았다.
윤리나 도덕의식 따위는 개밥에 말아서 버린 이능력자 하나.  역시 남아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끝없이 희생당해줄 감염자와 일반인들. …말할 것도 없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감염자들마저 정제기관을 뽑아내어 재활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 기술의 진보!
여기까지진행한 후, 중앙은 아키야를 버렸다.
그 시기를 생각하면… 아마 이동하는 도시는 겸사겸사 실험대에 올린 것이리라.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이상 지체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고, 주저할 사람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아키야가 자신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동안 중앙낙원은 계획을 실행했고.
정신을 차린 아키야를 반겨주는 것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정화기둥이었다.

자신을 버린 이들의 처사에, 자신을 버린 나태한 이들이 하는 짓에, 그러한 이들에게 버려졌다는 짜증과 분노에, 그런 감정의 찌꺼기들에 불쾌감을 느끼던 아키야는 그 감정의 방향을 낙원으로 모아서 날을 세웠고.
그 시작을 북서지부로 장식하기로 했다.

***



안녕하십니까. 중앙. 오랜만이네요. 그곳은 여전히 평화롭습니까?
이곳은 북서지부. 이곳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제가 평화롭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중앙. 오랜만이네요. 당신들은 여전히 게으릅니까?
이곳은 북서지부. 이곳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곳을 보니 사실 당신들 또한 게으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중앙? 오랜만이네요?  인간은 여전히 살아가야합니까?
이곳은 북서지부…. 이곳은…잘 모르겠네요?
그러니, 당신들 또한 여기와 같겠지.

***



기둥에불길한 기운이 가득하다.
많은 한이 서려있는 것 같았고, 자신의 능력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
납득이 가도록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사물이나 장소 등 생명이 깃들지 않은 것에 서린 기억이나 감정의 편린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첸이 시엘라에게 전한 내용.

초능력이 있는 세계에서 논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적어도 자신이 가진 초능력의 일부를공개하는 것으로 신뢰를 얻을 수는 있다.
그녀의 이능이 사이코메트리 같은 부가효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어? 그럼 나도 위험한  아닌가?
아니지 딱히 경계심을 비치지 않았으니 의심을 사지는 않았다는 뜻이겠지?

나야 조금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있지만 그건 지금의 나에게 허락된 내용이 아니니까.
충격요법으로 미리 내용을 알려준 것 치고는  내용이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저 기둥이 꺼림칙하다는 내용만으로도 이미 낙원에 대한 반발심도 크고, 불신도 충분히 차오른 둘에게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이나 감정을 표정으로 바로 나타내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에게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특히나 강한 이능을 가진 존재라면 알게 모르게 그 변화가 느껴지기 마련.
다행히 바로 폭죽이 터지지 않은 것을 보면, 괜찮은 충격요법으로서 작용한  같다.
그렇게 믿고 있어.

투둑.

믿고…

투두둑.

믿…

투둑. 투두둑.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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