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096 - [아키야 side1] 아이덴티티
자신이 자신임을 입증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흔하고 뻔한 예시를 들어보자.
내가 나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거의 기억인가?
그렇다면 나와 동일한 기억을 가진 다른 육신의 존재가 생긴다면?
혹시 내 몸이 완전히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된다면, 그건 이전의 나와 같은 나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나를 완전히 복사해 낸다면?
복사된 내가 나와 같은 경험을 쌓는다면?
같은 가치관이 형성되고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되고 누가 봐도 동일 인물이라 생각하게 된다면?
그건 나인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생명활동이 정지하고 또 다른 나는 삶을 이어간다면?
그렇다면 나는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인가?
모두 다른 기준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니 그 대답 또한 다를 것이고,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난 계속 이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서문이 길었다.
삼가 인사를 올려보도록 하지.
안쪽의 이름은 ‘아키야’ 바깥쪽의 이름은 ‘세미라스’ 성은 없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에 관해서는 많은 사연이 있지만 차차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우선 읽는 이에게, 혹시 나를 안다면 책을 덮고 갈 길을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대의 기억 속의 ‘나’는 그대가 정의한 ‘나’로 남으면 충분하리라 생각하니까.
나를 모르는 이라면 그냥 ‘세상에 이런 사람이 살다가 사라졌구나.’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이어가도록하지.
이 글을 읽는 이에 세상에 ‘낙원’이라는 존재가 남아있는지, 남아있다면 같은 이름인지 다른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때 그곳의 중심에서 연구를 하던 사람이다.
나름 소장이라는 직책까지 받았으니 머리 좀 쓰던 사람이라고 여겨주면 어깨가 펴질 것 같다.
나이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내기도 하고 일 년을 하루처럼 보내기도 하는 족속이라, 처음 연구소에 들 때, 열하고도 여섯의 나이였다는 사실만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대체적으로 좋은 기억들이 많다.
괜찮은 집에서 태어났고, 세상이 망해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타인들의 고통은 알지 못했고, 빈곤과 결핍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가진바 재능은 출중했지만, 사람이 일탈 한 번 없이 살아가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일탈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최연소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은 쥐지 못했지만 최연소 소장의 자리는 따낼 정도는 됐다.
연구는 주로 극광석이라는 것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그대의 세상에도 극광석이 극광석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 혹은 아예 사라져서 새로운 세상이 되었을지는 모르겠군.
혹 흥미가 동하지 모르니 지식에 대한 자랑을 좀 해도 괜찮을까?
지루한 내용이 될지도 모르니 지루하다면 넘겨도 괜찮다.
나름 이 일기에 관심이 있어서 읽고 있는 것일 터이니, 지루한 부분을 넘겨도 읽고 잘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써볼 테니.
[극광석]
그대의 세상에도 극광. 그러니 ‘오로라’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광석은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오로라를 제 몸에 담은 것처럼 그와 같은 색을 띤다.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모두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의생각과는 다르게, 전쟁 전에 등장한 것은 확실하다.
아, 혹시 전쟁을 모른다면 멍청한 이들이 멍청한 주제로 세상을 말아먹었다고 생각해도 좋아.
별로 논할 가치가 없는 내용이니.
아무튼, 전쟁 전에 등장하여 사치품이나 장식품, 그래 희소한 보석과 같은 용도로 사용이 되었던 것 같다.
열심히 인류 문명을 전쟁으로 까먹다가 슬슬 그만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은 멍청이들이 자존심 자랑을 멈추고, 뒤늦은 후회에 얼토당토않은 세상 걱정에 머리를 굴릴 때, 상위 계층이 장식용으로나 가지고 있던 돌멩이에서 우연히도 세상을 뒤집을만한 희대의 발견이 있었지.
퇴보한 인류의 문명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열쇠.
엄청난 효율을 가진 새로운 에너지 자원.
그 후로는 흔히 생각할만한 내용의 역사가 있었고,
흔히 생각할만한 내용의 갈등이 있었고,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흔히 나오는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이 되었다.
그야 말로 클리셰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이제야 본론을 말할 수 있겠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삐뚤어진 세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자리가 잡혀진 후에 태어난 인물이라 세상을 잘 모르기도 했고, 특히 어려서는 과거에도 관심이 없었다.
슬슬 즐길 거리는 다 즐겼으니, 다음 즐길 거리를 찾자는 마음으로 연구소에 들어갔지.
굉장히 과학적이지 않지만, 결국 과학자라는 직종은 끝내 비과학적인 부분을 인정해야하는 모순적인 직종.
자신이 입증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입증을 해야 하지만,
반대로 그 범위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순간 비과학적인 내용이 남아있더라도 그대로 인정해야하며, 다른 누군가의 손이 닿는 그 순간까지 받아들여야해.
극광석이라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과제였다.
극광석은 그 광석이 자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열량이 굉장히 높았지만, 세상만사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물질은 찾기가 힘들다.
과거 석탄이 석유가 그리고 원자력이 그러했듯.
극광석의 부작용은 병이었다.
광석 자체가 뿜어내는 기운이 인간에게 해를 끼쳤고, 그 영향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병으로 나타난다.
나의 세상에서는 불치병이었지만, 이 글을읽는 그대의 세상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더 나아진 세상이면 좋겠네.
그럼 나는 병에 대한 연구를 했느냐고?
병에 대해서 연구를 한 것은 맞지만, 병을 치료하는 법에 대한 연구는 아니었어.
극광석이 뭐 대단하고 희소한 자원인 것처럼 묘사를 했지만, 사실 별로 희소한 자원은 아니었거든.
그 이유 중 하나로, 극광석은 증식을 한다.
기운을 내뿜으면 주변에 조건을 만족하는 암석이 극광석으로 변하고,
병에 걸린 생물이 죽으면 몸에서 극광석이 나오며,
기운에 오래 노출된 식물은 그 기운을 더 멀리 발산한다.
그 결과 전쟁 통을 겪고, 쇠퇴한 인류를 재건하고, 잃어버린 문명을 복구할 때 쯤, 세상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인류의 것이 아니었는데,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잘난 척을 하던 그 순간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던 것일지도 모르고.
전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이 병에는 특이한 성질이 있었어.
사실 난 병이라고 칭하지는 않았는데. 그 기운에 오래 노출이 되면 변화를 하는 거지 병에 걸리는 것이라고 보기에는애매했거든.
그 변화를 이겨낸 사람에게는 보상이,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죽음이, 그 사이에 걸친 이에게는 병이 주어졌지.
다만 끝내 그 기준을 밝혀내지는 못했는데.
과학자라는 직종과 연구소라는 시설은 일차적으로 효율과 결과 값을 중요시 여겨야 하기에, 일어난 일의원인과 이유를 고민하기 보다는, 우선 일어난 일에 대한 대처와 정리가 먼저였거든.
시덥잖은 것들에 대한 정의나 분류 등은 우선 세상이 여유롭고 한가한 순간에나 허락된 일이지, 당장 세상이 망해가는 순간에는 망하게 된 원인을 찾기보다는 멸망을 막아야 하니까.
따라서 내가 정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아.
1. 극광석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 파도다. 두 번째 혹은 그 이후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인류는 결국 이 파도를 받아들이거나 삼켜져야 할 것이다.
2. 기운에 노출되어 빠르게 죽어가는 이들은 파도에 쓸려 죽는 이들이다. 위생이 좋지 않은 장소에서 신생아가 100일도 넘기지 못하고 죽듯이, 인류 모두가 극광의 파도 앞에서 신생아가 된 것이라고 봐도 좋다.
3. 기운을 이겨내고 적응한 이들은 파도를 받아들이고 이겨낸 이들이다. 그들은 점차 성장하여 끝내 극광의 기운에는 완전히 면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그 사이에 있는 이들이 감염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파악해야 이후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의에 따라 열심히 연구를 하고, 정리도 하고, 뭐 많은 것들을 했지.
그대의 세상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높은자리에 있는 이들은 뇌가 썩어서 별 의미가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움으로 남았는데,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카테고리1번 이하 적응자라고 칭할까? 극광에 기운에 노출되었지만, 부작용을 얻지 않은 이들.
적응자는 초능력을 얻었어.
그 방향성은 각자 다 달랐지만, 대부분 과거의 경험이나 소망, 혹은 더 깊은 것. 갈망이나…원망? 그러한 것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봐.
그리고 카테고리3번 여기는 감염자라고 칭하자. 부작용도 얻고 초능력도 얻은 이들.
이들 역시 초능력을 얻었지만, 이들의 초능력은조금 더 거칠었어.
조금 정제되지 않은 느낌? 부작용의 여파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능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혹은 이들의 내면에 품은 것이 더 깊고 어두웠을 수도 있겠네.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나의 시대에는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바쁜 시대였던지라.
그렇게 2번 이쪽은 죽었으니 그냥 죽은 이들이야.
2번과 3번을 비교하고 1번과 3번을 비교하며 연구를 이어나갔고, 인류가 나아갈 방향성과 이들의 능력, 아직 기운에 노출되지 않은 파도를 거부하는 인류와 파도를 받아들인 인류의 차이, 뭐 그런 것들을 연구해서 보고하고, 이제 좀 재미있어지는 연구를 하려고 했는데.
연구소를 닫더라.
사실 내 입장에서는 보고한지 세 달이 넘었는데, 갑자기 폐쇄령이 내리더니 연구원들을 생매장하더라고?, 그래서 아키야라는 인물이 손을 대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건가? 그럼 경고 한 번은 줘도 괜찮지 않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때 연구를 하던 것이 적응자는 적응자마다 다른 적응 패턴을 가지고 있고, 감염자 역시 감염자마다 또 다른 적응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사망자들마저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극광의 기운을 받아들이다가 죽었으니.
일단 이들을 모두 모아 넣으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연구였거든.
죽었다고는 해도, 동의 없이 시신을 해부하고 연구와 실험을 했으니, 뭔가 위에서 자리싸움을 하다가 거슬리는 김에 잘리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고, 기존의 적응자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서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리라고 생각을 했나? 같은 생각도 했지만, 그때의 나에게 결국 남은 생각은 짜증이었지.
그래서 결과물 중에 하나를 그냥 박아 넣었어.
아, 설명이 필요하겠네.
우리의 세대에는 적응자나 감염자 모두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쇄골의 사이에 극광의 기운을 정제하기 위한 정제기관이 있었거든.
그 기관을 통해 기운을 정제하여 초능력의 원료로 삼고, 극광의 기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도 했지.
다만 감염자들은 완벽한 기관이 아니었기에, 정제기관의 내구성도 별로였고, 효율도 좋지 않아서 결국 꾸준히 기운에 노출되었고, 그 끝이 죽음이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난 결과물 중에 하나를 내 쇄골에 박아 넣기로 했어. 결과는 보고 가야할 것 아니야?
마지막의 마지막에 몰리면 남는 것은 인체실험이고, 가장 완벽한 인체실험의 대상은 연구자 본인이잖아?
실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결과를 가장 잘 표현하고 정리할 수 있으며, 그 직접적인 정보를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존재! 바로 아키야지.
왜 멀쩡한 하층민을 데려와서 실험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부작용이나 죽음 따위는 자신들이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야.
라고 생각은 했지만 박아 넣고 나니까, 세상이 좀 돌더라? 마약을 하면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근데 나중에 해보니까 아니었어, 그 시점에서 아키야가 이미 정상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이 돌고 많은 감정과 기억?
소원원망집아집갈망원망인집열망동경갈구결핍욕망염원희망의망야망야심희원기대소기생각욕구축망축원숙망숙원?
자신을 정의하고 정리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기억? 어느것이 나의 기억이지?
경험? 지금 여기에 적힌 것은 나의 경험이 맞나?
인격? 성격? 마음? 정신?
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마약은 저런 생각이 들게 하지는 않았나봐.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붙잡고정신을 차리고 나니, 영문 모를 곳에서 깨어났지.
아니 근데 깨어났더니 내가 없더라?
말 그대로 ‘아키야’가 없는 거야.
유체이탈이라고 표현하지? 그런 상태가 된 기분이었어.
그렇게 떠다니고 있자니 거울이 내가 비칠지가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거울을 만들었어.
비치지 않더라, 물질적이지 않은 것을 비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가, 내가 물질적인 것으로 변하기로 했어.
처음엔 돌, 식물 뭐 그런 것들로 변했고, 다음에는 사슴, 여우 등 동물로 변했지.
왠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됐으니까.
근데 ‘아키야’는 기억이 나지 않았어.
나를 찾고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뭐, 이런저런 사고를 좀 치고 다니기는 했어.
그렇게 나를 되찾자.
궁금하더라고.
난 누구야?
그런 고민은 지금에 와서는 별로 중요치 않으리라.
아무튼 아키야라는 인물의 삶을 기승전결로 나눈다면 이제 결을 혹은 전을 앞두고 있으니까.
끝으로 향하는 활로를 앞둔 그녀에게 혼란이나 고뇌보다는 날카로운 의지만이 필요할 뿐.
그렇게 그녀는 잠들었다.
대단원을 앞두고 무뎌지지 않기 위해서.
내일은 드디어 북서지부로 향하는 날이다.
오늘도 ‘아키야’에게 평안한 밤이 찾아오기를.
-‘세미라스’의 집에서 발견된 일기장의 앞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