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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1. 가정교육 (2) (3/86)



〈 3화 〉1. 가정교육 (2)

"저는 프레데리카 로웰. 일주일간 당신의 교육을 맡을 선생님이랍니다.  부탁해요, 율릿 양."

접객실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가정교사, 프레데리카는 긴 속눈썹이 늘어진 눈을 감고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침의 햇살이 창문을 넘어와 프레데리카를 비추었다. 어깨까지 흘러내리는 단발 머리카락이 태양빛을 받아 타오르는  마냥 붉게 빛났다. 연둣빛 가디건 위를 살짝 덮은 머리카락은, 그렇기에 더욱 강조되어 선명한 다홍빛을 발했다.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심지어 키도 큰 편이어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진흙 속의 하얀 진주처럼 선명하게 눈에 띌 것 같았다.

그렇게나 인상적인 모습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프레데리카의 눈동자 앞에 외안경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보랏빛 보석이 세 개 박혀있는 흰 테의 외안경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게 마법인가?
세상에, 내가 두 눈으로 마법을 보게 되다니.

"마침 아침 식사도 끝나가던 참이었어요. 이대로 교습을 시작해도 될까요, 율릿 양?"

인사를 마친 프레데리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자신의 입을 닦으며 물었다.
율릿. 나는 위즈라는 이름이었을 테니, 율릿은 아무래도 프레데리카의 뒤에서 다소곳이 서 있는 메이드의 이름일 것이었다.


"······어라. 제가 잘  알고 있었나요? 분명 위즈 율릿이라는 이름이었을 텐데······."


어, 나였구나?

"마, 맞아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데리카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메이드 하나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조금 굳어있었다. 내 우둔함을 질책하는 듯 한 시선이었다.

나는 저런 시선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스마트폰으로 백합 소설을 읽으며 아침밥을 먹던 때였다. 나는 왼 손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밥을 퍼 입으로 가져다 대었는데, 무엇인가 감촉이 이상했다. 맵고 짜, 마치  속의 수분이 모조리 빨려나간 같은 맛. 내가 숟가락으로 퍼 먹은 것은 사실 밥이 아니라 오징어 젓갈이었던 것이다.

나는 수돗가로 달려가 젓갈을 뱉었고, 물로 혀를 씻어내며 발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메이드의 시선은 그 때 느꼈던 시선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 집의 메이드들, 뭔가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시선을 내게 보내오는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그렇다면 좋습니다. 이 곳에서 교습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자리에 앉아주세요."

아름다운 추억인지 부끄러운 흑역사인지인지 모를 상념에 잠겨있던 나를 깨운 것은 프레데리카의 단아한 목소리였다. 나는 프레데리카의  대로 그녀의  소파에 앉았다. 부드러운 가죽의 감촉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나는 소파 가죽을 조물거리면서도 프레데리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장 먼저, 하비셜에 대한 설명부터 하도록 하죠."
"네!!"


처음부터 기대하던 단어가 튀어나오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하비셜. 잘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네요. 좋아요, 그렇다면 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프레데리카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프레데리카와  사이에 건물의 형상을 가진 환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건물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나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환상을 바라보았다. 세 단으로 나뉘어있는 첨탑과, 첨탑을 둘러싸며 자라난 거대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백합황녀에서의 묘사와  닮은 광경에, 나는 곧바로 그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하비셜이요!"
"잘 알고 있군요. 그래요, 이 환영은 하비셜의 본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레데리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 마음은 더더욱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어 불타올랐다. 확실하다. 이 세계에는 백합황녀의 배경이었던 하비셜이 실존한다. 그렇다는 것은, 이 세계가 백합황녀의 세계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때가 이르다. 백합황녀 내에서 하비셜은 무려 500년의 역사를 지닌 아카데미라고 서술된다. 그것은 다시말해, 하비셜의 존재만으로는 시간대를 특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만약 내가 빙의한 시대가 백합황녀의 200년  과거였다면?
아니면, 정략결혼이 실행되어버린, 백합황녀 이후의 시대라면?
상상만해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다음 주 부터 당신이 다니게 될 곳이기도 하지요."
"다음주요?!"
"그렇답니다. 하비셜의 입학은 열 다섯부터 가능하니까요."
"열다섯인가요······."

그러고 보면 백합황녀에서도 두 주인공이 입학한 나이가 열 다섯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응접실  켠에 있는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귀여운 소녀가 거울에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래, 귀여운 소녀였다.
작을 소(小)에 여자 녀(女).
150cm이 될지도 모를 작은 키에, 귀엽지만 아직 소녀라기 보단 꼬마에 가까운 얼굴.
아무리 많이  줘도 열 살정도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2차성징이 오고도 남았을 나이의 소녀가 이런 모습이라니, 성장판에 문제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네. 그러고 보면 세리나 황녀님도 올해로 열 다섯을 맞이한다고 하셨으니, 어쩌면 친한 사이가 될 수도─ 유, 율릿 양?!"

꽈당.
나는 소파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져 하비셜의 환영을 짓뭉개버렸다. 프레데리카의 말을 듣고순간적으로 허리가 튀어나가 버린 탓이었다. 양탄자가 깔려있어 상처는나지 않았지만, 바닥에 부딪힌 무릎은 상당히 욱신거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위즈 아가씨?!"

문을 지키고 서 있던 메이드가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하지만 나는 메이드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프레데리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니, 떼지 못했다.
프레데리카에게서 확인해야만 할 것이 있었다.


"세리나, 황녀님이라고 하셨나요?"
"그, 그래요."
"바른 제국의 황녀님이요?"
"물론입니다."
"에틸리어 황제 폐하의 따님이요?"
"잘 알고 있네요······ 그것보다, 율릿 양. 몸은 괜찮아요? 크게 넘어진  같은데."
"괜찮아요. 이게 더 중요해요. 네 살 때부터 검을 잡으신 세리나 황녀님이요?"
"그런 소문을 듣긴 했습니다만······."
"올곧고 정의로운 심성을 가지고 모든 이를 평등하게 대우해주시면서, 가문보다는 실력 위주로 사람들을 대하신다는, 자애롭고 강인하시면서도 때로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엽기도 한, 그 세리나 황녀님이 맞나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당황한 듯 프레데리카가 말을 흐렸다. 그러자 나는 메이드의 부축을 뿌리치며, 앉아있는 프레데리카의 무릎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치켜들어 프레데리카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몰라요?!"
"지, 직접 뵌 적이 없으니까요······."

프레데리카가 겁에 질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더욱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리베른 제국의황녀님도 올해로  다섯살인가요?!"
"메디아 황녀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그런데요."

프레데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는 프레데리카의 무릎 위로 올라가, 그녀의 턱 밑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절규하듯 외쳤다.

"두 황녀님과 함께 저도 하비셜에 입학하는거구요?! 맞나요?! 맞겠죠?! 맞다고 해주실  있나요!!!!"
"히이익?!"
"대답해주세요!!!"
"마, 맞아요!!! 율릿 양도 올해의 입학생이니까요!!!"

프레데리카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내가, 백합황녀의 시작지점에 완벽하게 빙의를 했다는 사실이,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아가씨?! 무례하십니다, 내려와주세요!!"
"······."


나는 고개를 숙였다.
숙이지 않으면,  감정을,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같았다.

그래, 나는 백합황녀의 세계에 오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들과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자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마법을 배우고, 같은 시험을 치고─

무엇보다도, 살아 움직이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직접 볼  있게 되었다.

"내려 오시라니까요, 아가씨─ 꺄아악?!"


아름다운 백합을, 두 눈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체가 있는 마법을 쓴 건가요?! 마, 마법을 배운 것도 아닐텐데······?!"

프레데리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순백의 꽃이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피어나고 있었다.
허공에서 피어난 백합은 더럽혀지지도 않았고, 벌레에게 좀먹히지도 않았다.


서로의 꽃잎을 맞대고 서서히 뻗어나가는 백합의 꽃무리가 날개를 펼치듯 뻗어나가고 있었다.

"아, 아가씨가 마법을?!"

그 꽃의 바다에 다른 기능은 없었다.
그저, 그 순백의 빛을 뽐내며,  접객실을 채워나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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