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2. 로드 투 하비셜 (5) (9/86)



〈 9화 〉2. 로드 투 하비셜 (5)

붉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간절하게, 그리고 애절하게.

나를 위해 고개를 끄덕여줘요. 온전히 나를 봐 줘요. 그녀 대신에 나를 선택해줘요.


속삭이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렸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메디아 황녀님의 입은 미동 없이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다.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사람의 목소리라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옭아매지는 못할 테니까.

"······싫으신, 건가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내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잡은 나의 손에 떨림이 전해져왔다.

대답은 정해져있다. 그런 눈빛을 한 소녀에게 감히 누가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아니에요, 메디아 황녀님."
"······위즈."

세리나 황녀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빠져들어갈 것 같은 눈을 묵묵히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저도 메디아 황녀님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정말이에요? 그럼, 저와 당신은 친구가 되는 거죠?"


메디아 황녀님이 반색하며 내 손을 꼬옥 잡고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메디아 황녀님의 질문을 부정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네······?"


기뻐하던 메디아 황녀님이 작게 입을 열며 고운 미간을 좁혔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장난이냐며 나를 힐책하는 듯 한 눈빛이었다.


그래서인지 메디아 황녀님은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조금 답답했다.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색 하나 없이 말을 이었다.


"메디아 황녀님도, 저도. 무엇 하나 서로에 대한 걸 알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메디아 황녀님의 손을 끌어, 나의 가슴 위로 옮겼다.
메디아 황녀님의 손이 힘없이 딸려들어왔다. 한 걸음 휘청이며 황녀님이 몸을 내 쪽으로 기대어왔다.

한층 더 가까워진 붉은 눈동자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시 한 번 환청이 들리는것 같았다.


어째서? 결국 친구가 될  없다는 건가? 결국, 너는 원하는  얻을 수 없다고······?


그렇게 음울히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메디아 황녀님의 것이었으나, 메디아 황녀님이  목소리는 아니었다.

환청일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에 담겨진 감정을, 나도 모르게 목소리로 바꾸어 해석했을 뿐이겠지.

가슴이 살짝 시렸다. 아팠다. 당장이라도 메디아 황녀님을 껴안으며, 나는 당신을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이라고 속삭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참는 것이 옳았다.


내가 할 말을 한 후 황녀님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무슨 소리에요. 서로에 관한 건 친구가  뒤에 조금씩 알아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메디아 황녀님은 이제 필사적이되었다.
이제 내 작은 체구에 몸을 기대며, 메디아 황녀님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너지듯 내게 몸을 기대어왔다. 반쯤 무릎을 굽힌 채 내 손을 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메디아 황녀님이 나 따위와 이리도 필사적으로 친구가 되기를 소망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메디아 황녀님과 처음 대화를나눈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단지 그런 작은 이유때문에 나에게 이런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백합황녀에서도 그랬다. 초반의 메디아 황녀님은 사랑을 갈구하고, 원하고, 사랑받는것에 집착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바로, 메디아 황녀님이 친애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
누구라도 상관 없으니, 나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소리죽여 외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메디아 황녀님의 외침을, 내가 무시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메디아 황녀님. 제가 황녀님께 저를 알려드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
"제 이름은 위즈 율릿. 바른 남동부의 영지에서 태어나, 열 다섯의 나이로 하비셜에 입학하게  위즈 율릿.
그리고, 세리나 황녀님의 친구, 위즈 율릿입니다."
"······!"

멀리서 우두커니 서 있던 세리나 황녀님이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리고 형용할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의문. 놀라움. 고마움.

울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세리나 황녀님께 한 번 미소를 지은 뒤, 고개를 들고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메디아 황녀님과 시선을 맞추었다.


"결국 그건가요? 당신은 바른의 황녀와 이미 친구가 되었으니, 나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아무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잖아요, 메디아 황녀님."

나는 무릎을 굽혔다. 반쯤 무너져있는 메디아 황녀님과 시선이 나란해졌다.


"이제 메디아 황녀님의 차례에요. 메디아 황녀님. 제게 당신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나, 나는. 메디아, 리베른의 황녀······."
"그건 이미 알고 있는걸요."
"뭐라구요······?"


메디아 황녀님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한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메디아 황녀님은 나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는 원작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캐릭터였고, 메디아 황녀님의 나라 리베른과는 아예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 역시 메디아 황녀님에 대한 것은 알지 못한다.
정보라면 많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에 관한 지식이라면, 날밤을 지새며 이야기를 쏟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백합황녀의 이야기다.


백합황녀 안의, 메디아 리베른이라는 캐릭터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를 살아가는, 메디아 리베른이라는 사람에 관한 것은 무엇 하나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메디아 리베른······ 저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분의 이야기를."
"뭐에요, 그게."

메디아 황녀님이 내 손을 놓쳤다. 힘없이 몸을 뒤로 물리며 비틀대었다.

"그런 거, 번도 해본적 없어요. 어떻게 해요? 저에게 리베른의 황녀라는 걸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저와 친구가 되고 싶은 메디아 리베른은, 진심인가요?"
"······당연, 하죠."
"정말로요?"
"처음엔, 단지 질투심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래요."


메디아 황녀님의 붉은 눈에 물기가 맺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내밀기조차 민망한, 작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충분해요, 메디아 황녀님. 저와 친구가 되어주실 수 있나요?"
"······이걸로, 되는 거에요?"
"당연하죠. 친구 사귀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메디아 황녀님이 내 손을 바라보았다.
마치, 손 대서는 안될 것을 바라보는 어린아이같이, 벌벌 떨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허공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메디아 황녀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 손에 힘을 쥐어 메디아 황녀님을 잡아끌었다.
아니, 잡아 끌려고 했지만, 오히려 내가 딸려들어갔다.


"어?!"
"······아."

메디아 황녀님께 안기는모양새가 되었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럴 때도 아니고, 아, 그게······!

내가 당황해서 메디아 황녀님을 바라보자,메디아 황녀님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쿡, 하고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속삭였다.

"따뜻하네요."
"네, 아, 꺅?!"


메디아 황녀님이 내 손목과 허리를 잡아 올려 나를 바로 세워주었다. 비틀거리던 황녀님을 도우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아버렸다.

"하유가 말하던 느낌이 이런 거였군요."
"네?"

어느새 메디아 황녀님은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나의 손을 다시 맞잡았다. 이번에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가볍게, 마치 깃털처럼 내 손을 붙잡는 메디아 황녀님의 손은, 조금이지만 따뜻했다.

"다시  소개를 할게요."
"네?"


아니, 그걸로 충분하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려던 나의 입을 손가락으로 살짝 막으며, 메디아 황녀님은 선언하듯 말했다.

"저는 메디아. 메디아 리베른. 위즈 율릿을 친구로 삼은 소녀랍니다."


메디아 황녀님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붉은 입술이 하얀 피부 위에서 아름다운 호선을 그렸다.
황녀님의 검고 짙은 속눈썹이 보석처럼 빛을 발했다.

"······아, 가, 감사합니다, 메디아 황녀님!"
"그리고, 이제부터는 메디아라고 불러줘요."
"네?!"
"황녀라는 직책은 하비셜에선 잊고 싶으니, 그렇게 부탁할게요."
"그, 그러시다면야······."

내 대답에 메디아 황녀님······ 아니, 메디아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아무렇게나 내던저진 봉투를 잠깐 매만지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조금은 가벼워졌을거에요."
"네? 아······ 지, 진짜다!"

봉투를 들어본 나는 깜짝 놀라 봉투를 휘휘 내저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봉투처럼 가벼웠다.

"감사합니다, 메디아 님!"
"님도  주세요. 서로 동등한 친구잖아요?"
"······고, 고마워요, 메디아!"
"그 울림,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메디아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내게 손짓했다.

"그럼 다음에 뵈어요, 위즈. 날이 어두워요."

메디아의 말 대로  밖은 이미 어두워져, 한밤중을 향해가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디아는 로브를 다시 머리에 뒤집어 쓰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럼 하비셜에서 뵈어요, 위즈. 혹시라도 인연이 닿는다면 조금 더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기를. 그러면 기쁘겠네요."


붉은 눈동자가 순수한 행복을 그 안에 품었다.
멍하니 그런 메디아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설을 보면서 상상했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더.

아아. 누가 저를 이 세계로 보내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요.
 받으세요. 꼭.
진짜로.






"그대는 나를 진정으로 친구라 생각하는가?"
"네?!"


숙소에서 간단히 짐을 풀던 도중, 갑작스러운 세리나 황녀님의 물음에, 나는 들고있던 봉투를 놓치곤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 무슨 말씀이세요, 황녀님?!"

깜짝 놀라 황녀님을 바라보았다. 황녀님은 짙은 수심을 얼굴에 드리운 채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그대를 구하지 못했다. 그대가 몸을 가누기 힘겹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대의 기특함이라 여겨 방만했다. 그대의 친구를 자처하는 내가 그런 짓을 벌이고 말았어."
"아니, 제가 든다고 고집 피운건데요?!"
"리베른의 황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대의 모습은 행복해보였다. 흐드러지게  백합이 그대의 행복을 대신 말해주었지.
······나는 그대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다. 리베른의 황녀가 내  배는 나아."


아니 이 무슨 선량함이란 말인가.

나는 가슴이 찡한 것을 겨우겨우 내색하지 않으며, 황녀님에게 말했다.

"황녀님도  소중한 친구예요!"
"······그렇진, 않은  같다."
"네?!"

황녀님이 쥐어짜내듯 목소리를 내었다.
 가슴도 찢어지는 듯 했다.


어째서요. 황녀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적국의 황녀와 친구가 된 것 때문인가요?! 아니, 하지만, 저는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데······!

"······나는 친구를 사귄 경험이 없다. 그래서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어."
"뭐, 뭐에요, 그게?"
"그대는  나를 황녀라고 지칭하지?"
"······예?"
"내, 양친에게밖에 불린 적이 없던 애칭을 알려주었음에도, 그대는 이름 뒤에  자를 붙였다."
"아."


내가 순간 멈칫 하자, 황녀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리베른의 황녀는 친구란 동등한 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대는 나를 언제나 윗 사람으로 대했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위즈. 그대는 나를 처음부터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던게 아닌가······?
절대로 그대를 음해하려는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 어리석은 머리로는, 그렇게 밖에 생각을 하지 못하겠어······."

세상에 맙소사.
너무 고귀해서  자를  수가 없었던 것 뿐인데요?!

"오해에요! 오해에요, 황녀님!"
"······역시, 그대는······."
"아, 잘못 말했다, 아니에요, 세렌님! 아니, 세렌!"
"정말인가?"
"당연하죠! 메디아에게도 말했는걸요! 세렌의 친구라고!"
"그건······."

세렌이 떨구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죽은  쳐져있는 눈매에 살짝 물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정말로 그런가?"
"네!"
"정말로, 그대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이 이상 진심을 다할  없을 정도로 정말이에요!!!"

세렌이 다시 고개를 숙이셨다. 그리고 몸을 떠셨다.


뭐지? 내가 잘못한건가? 어, 어디 말 실수라도 한 건가─ 우읍?!

"세, 세렌?!"
"잠시만 그대와 이렇게 있고 싶다."
"하, 하지만!!"

세렌의 가슴팍에 파묻혀 눈 앞이 깜깜해졌다. 윽, 숨을 쉬기가, 괴롭다! 괴롭지만! 좋기도 하고!


"무례인 건 안다. 하지만······ 친구의 장난이라고 생각해줘."


그 상태로 나는 5분 정도 숨막히는 천국을 경험했다.
그리고 세렌에게서 떨어져 나왔을 때, 내 뒤로 수없이 펼쳐져 있는 백합무리를 발견하고, 그만 부끄러워져 침대로 숨고 말았다.
이 마법 못 끄나?
으아.




Bad ending 1. Unintended


"이 손, 놔주세요······."


잡혀있는 손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도저히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 한 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거부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바른의황녀도 사귄 친구를, 저는 사귈 수 없다고 말하는 건가요?
그렇군요. 그런 거였군요.
황녀이기 때문에 친구가 없던게 아니라.
단지, 저라는 사람이 못났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던 거군요.

아프다.
가슴이 옥죄어지는 듯 저려오며, 귀에 메디아 황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해.
메디아 황녀님의 입은, 움직이지, 않, 았,  는, 데─

내나비나가를웃를싫가고하었지있찮던고는게거놀거보군았야고요어있잖아─

몇 겹의 저주와도 같은 목소리에 머릿속이 터져나갔다.


"꺄아악?!"


아, 아아.


"위즈?! 그, 그대는 대체 지금 뭘 하는건가!"
"······어?"


메디아 황녀님이,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만 같아─

"사랑해요, 메디아 황녀님."


아름다운 육체에 감히 손도 대지 못하고 경배를 바쳤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누구보다도, 어떤  보다도 사랑을 바쳐야 하는 존재.

"위, 즈······?"
"당신은 누구신가요. 메디아 황녀님께 사랑을바칠 사람인가요? 아아, 언제나 환영해요. 환영합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메디아 리베른!"
"아, 아니에요. 나는, 나는, 이런  원하지 않았어······!"

황녀님이 무너질것 같은 표정으로 울듯이 말했다.
원인이 누구지?
누구야?


아, 저 금발년이구나.

"황녀님에게 사랑을 바칠 사람이 아니였군요, 당신······. 황녀님께 다가가지 마. 손도 대지 마!"
"정신차려라, 위즈! 그대는 지금 마법에 걸려있어!"
"죽여버릴거야. 사라져······!"
"안 돼, 싫어. 이런 건 싫어. 또 사람을 해치고 싶진 않아······ 제어하지 못했어, 아, 아아─"

황녀님이 괴로워한다.
저 년을 죽이면, 조금이나마 기뻐하실까.

"위즈······ 윽?!"

꽃잎 하나하나에 살의를. 그리고 적의를.
내가 황녀님께 바치는 사랑의 증표를, 저 비천한 년에게.


"그대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
"그만 해······ 그만 해줘요. 내가 사라질테니까, 부탁이니까, 그만 둬요······.

아무리 금발 년을 공격해도, 황녀님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인은?


······아, 나구나.


나는 꽃잎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목을 그었다.
선혈이 백합을 붉게 물들었다.


황녀님에게 바치는 사랑의 증표에 나의 마지막 흔적을.
아아. 하얀 백합이, 붉게 물들 때까지, 각인을 하자.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나의 붉은 백합을 바치자.

─바쳐야 할 사람이 한 명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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