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2. 로드 투 하비셜 (7) (11/86)



〈 11화 〉2. 로드 투 하비셜 (7)

마정석이 깨져버린 마차는 더 이상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움직이지 않는 편이 다행이었다. 바깥의 모래바람이 마차를 덜컹이며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구쳐 올릴 기세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세렌이 난감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덜컹거리며 마차의 유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튼튼한마차다. 비록 마정석이 부서져소음 방지 마법과 진동 방지 마법, 온도 조절 마법 등은 사라진 상태였지만, 그 자체의 튼튼한 몸으로 거센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버텨줄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밖을 내다보았다. 모래바람이 더욱 거세져, 이젠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온도조절 마법도 사라진 탓에 상당히 덥기도 했다.

세렌이 문득 내게 말했다.

"······내가 마차를 끌어 결계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네?"
"백여년 전에는 마법 대신에 말이 마차를 끌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따,내가 마차를 끌어 보는  어떨까 싶어서 말이지."

멍하니 세렌을 바라보았다.
아니, 뭐. 원래 마차라는 게 말이 끌던 거긴 하지만.  대신에 세렌이 마차를 끈다고? 이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인거 알죠?"
"아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못 할것도 없지. 그대가 선물해준 옷은 버리게 되겠지만······."
"옷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내가 아연실색하자, 세렌이 의아한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럼 무엇이 문제지?"
"이렇게 큰 마차를 어떻게 사람이 끌어요?!"

세렌은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다. 인간이 마차를  수 있냐는 문제를 말이다.

이 마차는 명색이 백작가의 마차다. 비록 백작가의 마차 치고는 검소하다곤 하나, 장식이 없을 뿐 기본적으로 귀족의 마차 답게 굉장히 컸다.
객실의 크기만 해도 거의 컨테이너 하나 정도 되는 마차인 것이다.그런 마차를 사람이 혼자 끌다니? 그것도 이런 모래바람 부는 사막에서?
차라리 내가마법으로 마차를 움직인다고 하는 편이 더 현실성 있었다.


적어도, 그 때까지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대. 내가 누구인지 혹시 잊은 건 아니겠지?"
"네?"
"그대에게 묻겠다. 나는 누구지?"
"······제 친구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하자, 세렌이 순간 숨을 삼켰다.그리고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 그렇게 말해준다면 정말로 기쁘지만. 지금의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야."
"그럼······ 바른의 황녀님이라는 거요?"
"그래그래. 바로 그거다. 위즈, 나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영웅의 피를 지니고 있지."
"그게 왜요?"


말의 의미를 이해를 하지 못한 내가 묻자, 세렌은 살짝 웃으며 자신의 짐을 뒤적였다. 그리곤 모자가 달린 망토 하나를 꺼내 옷 위에 걸쳤다.


그리고, 마차 문을 열고, 불어닥치려는 모래바람을 망토로 막으며, 내게 말했다.


"마차 하나 쯤은,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야."
"세, 세렌?! 위험해요!"

하지만 세렌은 마차의 문을 닫았다.
모래바람에 가려져, 세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모래바람에 날아갔을 수도 있었다. 모래를 싣고 채찍처럼 몰아치는 강풍에 피부가 찢어졌을 수도 있었다. 사막 아래에 숨어있던 마수에게기습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내가 개입해서 납치된 황녀님이, 이 이상 다쳐서는  된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마차가 덜컹 하고 흔들리자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서, 설마, 바람에?!"

나는 사색이 되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모래바람에 마차가 기우뚱거린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모래 속에 박혀있던 마차가 움직일 리가 없었다.

'출발한다, 위즈!'

하지만, 모래바람을 뚫고 언뜻 들린 세렌의 목소리에, 나는 경악했다.


덜덜덜.

진동 방지 마법이 사라져, 사막 위를 달리는 마차의 진동이 그대로 엉덩이를 때렸다. 하지만겨우  정도의욱씬거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마차가 사막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모래바람을 뚫고, 그 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어져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세렌은 거대한 마차를 끌고 있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늪처럼 푹푹 빠지는 사막 위에서,
거센 모래바람을 뚫으며.

있을 수 없는 현실에  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모래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다만 달라진 것은, 마차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문득, 모래바람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를 향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후우."
"세렌, 세렌─!"


졸이다 못해 타버릴 것  같던 심장을 움켜쥐고 마차 밖을 달려나갔다. 결계 안의 날씨는 바람  줄기조차 없이 맑았다.

반면 세렌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모래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얼굴에는 자잘한 상처가 생겨났고, 망토는 공격이라도 당한 것 같은 모양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필레아의 점원이 추천해주었던 아름다운 드레스는 이미 넝마조각이 된  오래였다.


살짝 지친 얼굴로, 세렌이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정도면 믿음직스러운가?"


그런 세렌에게 나는  없이 망토를 들고 다가갔다. 그리고 세렌의 몸을 망토로 덮었다.
겨울용 망토였다. 내가 가지고 온 가장 큰 옷. 내가 입었을 때엔 발목까지 덮히는, 롱패딩같은 부류의 옷이었다.
하지만  옷은 세렌의 무릎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그래서 세렌의 종아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사막 모래에 긁힌 상처에서 핏방울이 조금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응?"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상하다.
뭔가, 조절이 안 된다.
 앞이 흐려졌다. 얼굴이 자꾸 일그러진다.

"위, 위즈?!"
"그런 거, 난 싫은데······."

고개를 저으며 눈을 비볐다. 양 손이 젖어버렸다. 그런데도 세상은 도무지 맑아지지를 않았다.

이러면  되는걸 알고 있다. 눈물을 보일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정신은 어른이었다. 이런 눈물 따위, 어른이라면 금방이라도멈추고 세렌에게 웃음을 지어보여야 했다.
하지만 도무지 감당이 되지를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자제력이 약했던가.
이런 사소한 일에 눈물을 보일 정도로, 여렸던가.

세렌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내가 가장 경애하는 그녀에게, 이런 흉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자꾸만 치고 올라오는 감정 때문에, 숨 조차 제대로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위즈. 그대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말았어······."


세렌이 내 어깨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미약한 떨림이 전해져왔다.
그 떨림에, 더더욱 서러워지고, 미워지고, 슬퍼져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런 나를 세렌이 받아들었다. 꼴사납게 품에 안긴 채, 세렌과 눈이 마주쳤다.
세렌의 아름다운 얼굴이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이 상황을 슬퍼하는 듯  기색이 역력했다.


꼴이 말이 아니였다. 멋대로 울고, 멋대로 넘어지고, 멋대로 안겨서, 멋대로 세렌을 슬프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건 민폐다.
내가 백합황녀의 세계에 들어온 탓에 마차가 납치를 당했고, 그 결과 세렌이 다쳤다.
세렌과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뻐서, 세렌에게 갈 악영향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렌이 슬픈 표정을 짓도록 만들고 있다.


내 존재가 무슨 도움이 되는거지?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날 지 모르는데.
그 중에는 황녀님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있을텐데.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사라지는게 낫지 않을까?

부정적인 감정이 꼬리를 물고 부정적인 감정을 낳았다. 끝도 없이, 어두운 미래만이 생각났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정신 차려야 하는데. 언제나처럼 밝은 모습을 내보여야 하는데.

어두워졌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와 함께한 세렌이, 웃고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졌다.


"세렌, 세렌."
"그래, 위즈."
"저 때문에 세렌이 다쳤어요."
"······이 정도 상처는 괜찮다. 쓰라리지조차 않아."
"제가 없었다면, 세렌은 혼자서 상처 없이 결계에  수 있었을거에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그대는."

나를 붙잡고 있는 세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마차가 납치되었던 것도  책임이에요. 황녀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막 거북과 싸운 것도, 모래바람에상처입으며 마차를  것도. 전부. 전부. 전부 다."
"아니다, 그대는 대체 왜 그런 생각을······!"
"제가 황녀님과 친구가 되는게, 정말 옳았을까요······?"


 순간, 말을, 내뱉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세렌은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꼬옥 안았다.

"위즈. 위즈 율릿."
"세리나.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요."
"그대는 지금 이상하다."

세렌이 말했다.

"내가 아는 위즈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친구라는 것을 가르쳐 준 위즈는, 고작 이런 것에 혼란스러워  사람이 아니야."
"세렌······?"
"그대는 강한 사람이다. 나 따위보다도 훨씬. 몇 배는 더 강한 사람이다."


세렌은 웃으며 내 눈가를 매만졌다. 그 모습은 사막 위의 태양보다도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은 조금 쉬도록 해. 지친 것 같으니까."

따뜻했다.
일순간,  품에 몸을 맡기고, 자고 싶어졌다.

다시 한 번 울컥 올라온감정에 방해받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저는, 세렌─"
"여기 있었군요."
"······그대는."


별안간 세렌이 고개를 돌렸다. 메디아가 그 곳에 있었다.
메디아는 반갑다는  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메디아는 갑자기 미간을 좁히며 목소리를 내리 깔고 세렌에게 말했다.

"그 아이에게서 멀어지도록 하세요, 세리나 바른."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나는 그대의 말을 듣지 않겠어."


세렌은 고개를가로저으며 나를 한층 강하게 안았다. 그러자 메디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세렌에게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위즈에겐 지금 조치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녀에게서 마수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요?"
"뭐, 마수라고······?!"

세렌이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을 짓지 말아요. 세렌. 안 돼. 당신은,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네가 레티프. 사람에게 기생해, 숙주의 감정을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삼석의 마수."
"······대체, 언제."


메디아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는, 무언가를 움켜쥐며 그대로 들어올렸다. 검은색 그림자가 내 가슴 속에서 빠져나갔다.
탈력감이 온 몸을 휩쓸었다. 숨을 쉴  조차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계 밖에서 붙은 것이겠죠. 네가레티프는 빛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마수이니까요."

메디아의 손에서 불꽃이 일더니, 검은 그림자가 괴성을 지르며 자취를 감추었다. 메디아의 손에 세 개의 마석이 남아, 검은 기운을 내뿜었다.

"고맙다. 이걸 어찌 사례해야 할지······!"
"감사인사는 위즈에게 하세요, 세리나 바른."


메디아가 세렌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이마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붉고 온화한 눈에 자그마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네가 레티프는 본래 사람의 악의를 가장 강력하게 부추기는 마수. 아무래도 이 아이는 당신에게 아주 조금의 악의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당신을 향한 악의를 품고 있었다면, 당신이 방심한 순간에 칼을 꽂았겠죠.
놀랍네요. 그리고 부러워요. 이 아이가 당신처럼 나를 생각해주었으면 할 정도로."


부드러운 손길이 내 눈꺼풀을 감겼다.


"쉬도록 해요, 위즈. 눈을  보면 하비셜에 도착해 있을거에요.

졸렸다.
뭔가, 자고 싶은 기분이─








마차 행렬의 이상이 현인의 눈에 들지 않았다.
그것으로 되었다. 현인의 능력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만으로도 크나큰 수확이다.
영웅의잔영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실마리가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