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3. 입학 (3)
이상함을 깨달은 것은, 교수님의 환영 연설이 30여분을 넘긴 시점이었다.
"······위즈. 교수님의 연설, 듣고 있는가?"
"네."
"이상하지?"
"그러네요."
세렌이 내게 중얼거리듯 말을 걸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물끄러미 단상을 바라보던 메디아 역시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원인은 교수님이 낭독중인 연설의 내용이었다. 그 연설에 담긴 내용이 갈 수록 이상해져갔던 것이다.
[제가 말이죠, 지금 준비한 대본분량이 예비분까지 모조리 떨어졌답니다. 지금 선배님들께서시간을 더 끌어달라 하시기에 이런 말까지 꺼내면서 시간을보내고 있는건데, 뭐 그건 어쩔 수 없다 치고. 하여튼간에 여러분중에는 제 말을 듣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으니까 계속 아무 말이나 할게요. ······나 참, 10여 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뚫고 겨우 보조교수가 됐는데, 보조교수로서 처음 맡은 일이 이런역할이라니. 아, 물론 이런 귀찮기만 한 일은 후배인 제가 맡아야겠지만요, 그러면 좀 일처리라도 빨리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나 참, 라이하빗 님께서 이걸 보시면 대체 뭐라고 하실지 알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아무말이나 하고 계시다고 하네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세렌의 얼굴은 황당함과 혼란스러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세렌을 향해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후 메디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메디아는 단상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메디아?"
"위즈.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교수님이요? 엄청 이상해 보이긴 하는데."
"아니요, 하늘 말이에요."
메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하늘?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스윽 훑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남동쪽에서는 태양이 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비추며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딱히 이상한 점은 찾을 수가없었다.
"모르겠어요."
"······그럼 제 그림자를 봐 주세요."
"네? 그림자가 왜요?"
마법 의자 너머로 길게 드리워진 메디아의 그림자는 북동쪽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나 평범했다. 혹시 마수라도 숨어있나 싶었지만 딱히 그런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메디아는 그런 나를 보고 잠시 가만히 있다, 자그마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 어?"
메디아가 왜 저러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메디아의 옆에서 얼어붙어 있던 하스타가 굳어있던 몸을 움찔하고 떨며 심음을 내었다. 그러자 메디아는 하스타를 바라보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그래요. 당신은 알아차린 모양이군요, 하스타 비즈 양."
"예?! 아, 아니요!!! 비비비비비비천한 제가 알아챈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머. 비즈 양은 제 소감을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네요?"
"아, 아닙니다, 황녀전하!!!"
하스타가 고개를 경련하듯 저었다. 하스타의 온 몸에 있는 생명력 전부를 건 혼신의 몸부림이었다.
"······메디아면 돼요, 위즈의 친구 메디아."
"아, 으아, 그게, 저, 메, 메디아 님!!"
"메디아면 된다니까요."
"제발 그것만큼은 어떻게 안 될까요······."
하스타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메디아는 난감한듯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비셜 안에서는 같은 학생이라지만 하비셜 바깥에서는 그게 아니니까. 하스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 곳에서 메디아에게 무례한 행동을 저지른다면, 하비셜을 졸업한 후에 역적으로서 처형되는 건 아닐까 하고.
뭐, 우리 아름다운 황녀님께서는 그럴 생각이 없으시겠지만, 백합황녀도 읽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메디아의 속내를 알겠어.
나는 메디아에게 방긋 웃으며 하스타를변호했다.
"메디아도 존댓말 쓰잖아요? 님 정도는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요."
"조금 더 친해진 뒤에 바꿔달라고 해도 되는거잖아요? 맘씨가 여린 사람은 처음부터 말을 놓는게 불편한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가요."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는 하스타에게 말했다.
생쥐를 발견한 뱀과같은 눈초리로, 메디아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메디아 님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하스타 님."
어우.
강하게 나가시네, 우리 황녀님.
"아, 아아아아안돼요?!!!! 대체,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메디아 님!!! 저같은 장사꾼의 딸에게 님이라뇨?!"
"후후, 싫으신가요?"
"시, 싫은게 아니라! 저 하비셜에서 나가면 돌맞아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서로 님 자를 빼도록 할까요, 하스타 님?"
진퇴양난.
하스타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데에 있어 그 만큼 적당한 사자성어도 없을 것이었다.
하스타가 나에게 애원하는 듯 한 눈빛을 보냈다. 갈색의 귀여운 눈망울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도와주곤 싶지만.
"힘내요,하스타."
"위, 위즈······."
나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하스타는 마치 백일휴가가 연기된 이등병같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고개를 떨구곤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알겠어요, 메, 디아······."
"아주 잘 했어요, 하스타."
메디아의 붉은 눈이 기쁜 빛을 띄었다.
뭔가, 조금, 등줄기에 오싹한 한기가 돋았다.
[아, 거의 다 끝났다는 연락이 왔어요. 벌써 30분째 이렇게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데 이제서야 준비를 끝내신 선배님들도 참 대단하세요. 예? 뭐라구요? 입학식이 늦어져서 마법 몇 개를 다시 설치해야 했다구요? 알게 뭡니까. 제가 지금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런가요. 곧 시작되겠군요."
"······무엇이 시작된다는거지, 메디아 리베른?"
"하스타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거에요. 그렇죠, 하스타?"
"네, 그렇긴 해요 ······조금이지만요."
"위즈는······ 음. 모르는 채로 있는 편이 더 재밌을 것 같네요."
"네?"
"보면 알아요."
메디아가 후후 웃으며 내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스르륵 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들어, 뭐가 일어나든 아무래도 좋은 느낌이 되었다.
"······그대는 강아지같구나."
"네?"
"아냐, 실언이었다."
세렌이 풉 웃으며 내 머리를 한 차례 가볍게 쓰다듬었다. 메디아는 그런 세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하늘로 고개를 올리며 말했다.
"하늘을 보는게 좋을거예요."
[이제, 펄스레이트가 시작됩니다. 저는 내려가서 차나 좀 마셔야겠어요. 으, 목아파······.]
교수님이 때맞춰 연설을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웅성웅성. 자기들끼리 떠들기 여념없는 신입생들은 그러든 말든 일절의 관심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주변에 교직원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나 학생들이떠들고 있다면, 교직원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학생들을 선도해야 할 텐데.
바로 그 때, 일순간 소란이 멈췄다.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뭐에요?!"
"결계······로구나. 하지만 이렇게 큰 결계라니, 대체 어느틈에?"
세렌이 감탄한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입을벌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마치 붕괴하고 있는 건물의 천장같았다. 균열은 천천히 범위를 넓혀갔고, 이윽고 하늘 전체에 균열이 퍼졌다..
그리고, 그하늘이 일순간 깨어지자.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광경이, 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이상하다 싶긴 했어요. 하비셜의 본관이 운동장에서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메디아가 붉은 눈을 찬란히 빛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건물과, 그 건물을 둘러싼 두 그루의 나무가, 아무것도 없던 하늘을 가리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롯데타워보다 살짝 낮은 거대한 석조건물과 수없이 많은 가지를 마치 세계수처럼 뻗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
그제서야 나는 백합황녀에서의 내용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백합황녀에서 일컫기를, [펄스레이트의 커튼]라 이름붙여진 이 결계는, 대운동장을 둘러싼 거대한 장벽이었다.
장막이 설치된 이유? 간단하다.
[펄스레이트를, 시작합니다.]
그래.
펄스레이트를 실행시키기 위한 마법진을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펄스레이트. 입학생들에게 마법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하비셜의 교수들이 직접 구현해내는 환상마법의 경연.
펄스레이트를 신입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 신입생들에게 바깥의 상식을 깨부수라고 조언하는 것.
두 번째. 신입생들이 하비셜에서 배울 것은 바깥세상에서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신입생들에게 각인시키는 것.
그 의미를 가진 펄스레이트가 지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