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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3. 입학 (6) (18/86)



〈 18화 〉3. 입학 (6)

"······어떻게  텐가, 그대는."

세렌은 하스타가 마법과로 배정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물론  물음은 메디아에게 던진 것이었다. 메디아는 잠시 고민하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웠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세리나 바른?"
"말 그대로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어."
"이해하지 못하겠는걸요. 학과는 현인께서 지정해주시는  아니었나요?"

[세리나 사할 바른, 메디아 벨라루스 리베른!]

메디아가 능청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렌은 그런 메디아의 뒤를따르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대가 모를  없다. 학과는 현인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된다는 걸 말이야."
"그래요, 물론 알고 있어요."


세렌의 말에 메디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라이하빗이 대기하고 있는 대강당의 중앙으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며 입가에 검지 손가락을 살짝 맞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할 의무는 없지요. 안 그런가요?"

세렌이 발걸음을 멈칫하곤 메디아를 바라보았다. 메디아 역시 뒤를 돌아 세렌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지. 나는 그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메디아 리베른."
"피차일반인거 아시잖아요, 세리나 바른."

서늘한 시선이 교차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학생들의 시선이 멈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라이하빗이 시간을 멈춰놓았던 것이다.


메디아는 자신의 옆을 거닐던 세렌마저도 멈춰있음을 확인하고 라이하빗을 바라보았다. 라이하빗이 대강당의 중앙에서 메디아를 환영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세오와 아이시아의 사랑스러운 아이."

라이하빗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메디아는 그에게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선조의 가장 큰 친우께, 소녀 메디아 리베른이 문안올리나이다."
"······당신의 아이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격식을 차린단 말이죠, 아이시아."


라이하빗이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메디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디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라이하빗의 손을 잡았고, 라이하빗은 그녀를 부드럽게 일으켜세우며 뒤에 마력의자를 만들어내었다.

"편히 쉬어요. 기다리는 동안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메디아가 마력의자에 앉았다. 라이하빗은 그런 메디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싱긋 웃었다. 그리고선 자신의 앞에 다섯 개의 원을 그렸다.


마법과, 무예과, 자연과, 공학과, 특수과.

그 원들을 스윽 펼친 라이하빗이 말했다.

"생각해  학과가 있나요?"
"마법과를 가고 싶습니다."

라이하빗의 물음에 메디아가 즉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학과를 고른 메디아의 모습에 라이하빗은 의외라는 듯 다시 물었다.

"메디아 양은 망설임이 없군요. 마법과를 지망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저의 선조이자 현인인 아이시아의 마법을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
"······흐음."


준비라도 해온  한 메디아의 대답에 라이하빗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선 잠시 메디아를 바라보다, 장난기 있는 얼굴을 보였다.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장난을 치려는 부모가 짓곤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유가 그것 뿐만은 아닌가보네요?"
"······예?"

일순간 메디아가 눈을 크게 떴다.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라이하빗은 그런 메디아에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그러면 메디아 양의 학과는 특수과와 마법과로······"
"아니요, 마법과와 공학과로 부탁드립니다,현인이시여."


메디아가 고개를 저으며 라이하빗의 말을 끊었다. 메디아의 얼굴에는 아까의 당황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저 당당한 미소만이 남아있었다.

"놀랍네요."

라이하빗이 감탄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메디아와 눈을 맞춘 채 입을 열었다.

"이유가 있을까요?"
"특수과는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오와 아이시아의 아이가 특수과에 들어갈 재능이 없다고 하는건가요."

라이하빗이 잔잔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메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러면, 무슨 뜻이죠?"


라이하빗이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메디아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라이하빗에게 대답했다.


"특수과는 제 재능을 담기에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자만으로 들릴  있는 말이네요, 메디아 양."


라이하빛이 깊은 연녹색 눈동자를 빛내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온화했다. 노기라곤 어디에서도 엿보이지 않았다. 다만 메디아를 지긋이 바라보는 눈에 조금의 질책만이 담겨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메디아는 그 조금의 질책어린 시선에 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라이하빗이 순수한 호의를 내보임으로써 감추어두던 위압감을 온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주 조금의 질책에 실려있는 위압감의 편린은 메디아의  어깨를 거세게 짓누르고 있는  같았다.

하지만 메디아는 라이하빗의 시선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니, 굴할 수 없었다. 메디아는 한 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에게는 재능이 있습니다, 현인이시여."
"일반인에게 비하면 그렇지요. 하지만 당신은 세오와 아이시아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입니다. 일반인의 잣대로 재능을 파악해서는 안 돼요."
"현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요, 저는 영웅의 피를 이어받은 리베른의 황녀입니다. 그렇기에 특수과에 간다고 해도 결국 돋보일 수 밖에 없는 몸이지요.
현인께 묻습니다. 특수과의 설립 이유는 무엇입니까?"

살짝 목소리를 떨면서도 메디아는 라이하빗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라이하빗이 말했다.

"재능 있는 학생들을 모아, 그들에게 맞는 수준 높은 수업을 제공한다. 그것이 저의 제자가 설명한 특수과의 설립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재능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재능을 가진 자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메디아는 잠시 라이하빗을 바라보았다. 깊고 투명한 연녹빛 눈은 라이하빗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저히 읽어낼  없었다. 메디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특수과의 수준 높은 교육도 저에게는 일반 수업과 별  다를것이 없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할아버님께서도, 모두 그런 감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건 바른의 황가 역시 마찬가지일 테구요."


라이하빗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질책하는 눈빛을 거두었다. 그러자 메디아는 더욱 자신감을 얻은 듯 이어 말했다.


"그렇기에 특수과는제 재능을 담기에 부족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현인이시여."
"하지만 마법과라고 해서 메디아 양의 재능을 전부 담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특수과보다도  담아내지 못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과를 주 학과로 선택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나요, 메디아 양?"

라이하빗의 물음에 메디아는 자신있게 수긍하며 붉은 눈을 빛내었다. 그리고, 수긍의 이유를 입에 담았다.

"마법과에는 저의 소중한 친우가 있습니다."

메디아는 자신의 가슴에 새하얀 손을 겹쳐 올렸다. 그리고 살짝 홍조를 띄웠다.


"현인이시여. 저는 특수과도, 마법과도, 그 어떤 학과도 저의 재능을 담을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저의 가장 소중한 친우가 제 넘치는 재능을 부드럽게 감싸줄거라는 것입니다. 학과의 밖으로 넘치려는 재능을, 그녀가 부드럽게 감싸안아 줄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마법과를 주 학과로 삼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마법과에는 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배정되어 있으니까요."

메디아가 말을 마치고 라이하빗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자 라이하빗은 메디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세오를 꼭 닮았군요."


라이하빗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선 잠시의 시간 후,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특수과의 설립 목적은 하나가 더 있답니다, 메디아 양."
"또 다른 목적이라 하심은······?"
"그래요. 특수과는 재능이 있는 자를 모으는 학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권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학과지요."
"······교권이요?"

메디아가 반문하자, 라이하빗이 쓰게 웃으며 설명했다.


"하비셜의 교수는 평민 출신이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인지 가끔 자존심이 강한 아이들은 자신을 가르치는 교수가 평민 출신이라는 것에 반발하곤 해요. 그리고  아이들의자존심은 대부분 그들의 큰 재능에서 기인하구요."
"설마."


메디아가 안색을 새파랗게물들이며 소매로 입을 가렸다. 라이하빗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과는 그렇게 교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아이를 지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학과장을 맡고 있는 학과이구요.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니지만, 제 이름 앞에서는 아무리 오만한 아이라도 귀를 기울이곤 하니까요."


"그런, 가요."


메디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라이하빗은 그것에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랍니다. 메디아 양이 만일 마법과를 주 학과로 삼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라이하빗의 물음에 메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라이하빗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년에  리베른의 신입생이 마법과로 대거 쏠리겠죠. 리베른의 황제가  메디아 양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으려고 할 테니까."
"······아."


메디아가 생각 못한 곳을 찔렸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면 저는 특수과에 가는 수 밖에 없겠네요."


메디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위즈를 향해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던 메디아는 이내 체념이라도  듯  손을 무릎 위에가지런히 모았다.
그런 상황을 깨부숴버린 것은 라이하빗의 목소리였다.


"하지만······그렇죠. 학생이 원하는 것은 해주고 싶은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 아니겠어요?"
"네?"
"메디아. 메디아 양은 정말로 마법과를  학과로 삼고싶은 건가요?"
"······네."

메디아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양 손을 꼭 쥔 채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은 언제나 당당했던 메디아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렇기에 또래의 평범한 소녀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라이하빗이 작게 웃었다.

"그래요. 메디아 양, 당신의  학과를 마법과, 부 학과를 공학과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수과에 가지 않으면 설립 목적이 훼손되는게 아닌가요······?"

메디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라이하빗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특수과로 배정하는 사람은 두 부류 입니다. 재능이 뛰어나거나, 너무나도 오만해 교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 하지만 메디아 양의 재능은 특수과도 미처 담지 못할 만큼 거대하고. 메디아 양이 교권을 침해할 사람 역시 아니니, 특수과에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설립 목적을 훼손하는 일은 없을거에요."
"신입생들의 쏠림 현상은······."
"후후, 메디아 양. 이익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학과를 선택하려는 사람 정도는 제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답니다.비록 사심을 판단하는데에는 이전보다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건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라이하빗이 왼쪽 눈을 살짝 감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메디아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제 학과는······."
"그래요. 메디아 벨라루스 리베른, 당신의 학과를 마법과와 공학과로 배정하도록 하죠."

메디아는 잠시 할 말을 잊은  라이하빗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을받은 아이처럼, 속눈썹이 길게 뻗어있는 눈으로 호선을 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현인이시여······!"
"하비셜에서의 생활이  어느때보다 행복한 시간이길 바래요, 메디아 양."


라이하빗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메디아의 움직임이 멈춤과 동시에 세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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