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3. 입학 (8)
[신입생 여러분은 담당 교수의 지도에 따라 각 학과에 알맞는 배움의 나무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머니에 넣어 둔 브로치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분과식을 끝낸 라이하빗이 열 두개의 불빛을 허공에 띄운 채 특수과를 본관 밖으로 안내하고있었다.
꼬르륵.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불빛들에 시선을 두던 나는 바로 옆에서 배고파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하스타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자신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런가. 진원지는 하스타였어.
그러고 보면 입구로부터 흘러들어온 빛의 색깔이 붉게 물들어있었다.저녁임을 알리는 노을의 빛깔이었다.
페렐른을 출발하며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으니, 사실 지금 배고픈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본인은 상당히 부끄러워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서도.
"조금만 기다려줘, 저녁식사는 호프 바라에서 대접할 테니까!"
그 때였다. 하스타에게 속삭이는 듯 한 목소리가 생기발랄하게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스타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하스타가 앉아있는 의자 등받이에 자신의 팔을 걸치고 있었다. 몸의 윤곽을 뒤덮는 초록색 로브의 위에, 목덜미를 두르고 있는 은색 줄과 그 끝에 달려있는 날개모양의 증표가 반짝였다.
하비셜의 교수임을 증명하는 증표였다. 깜짝 놀란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은빛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늘여뜨려, 허리 부근에서 반대방향으로 교차시킨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이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그녀는 나에게 한 번 씨익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일순간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삭제라도 되어버린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같은 사람을 바라보던 하스타 역시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목소리의 주인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법과 좌석 맨 앞에서 이전과 같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안녕, 귀여운 신입생 여러분~!"
"수, 순간이동?!"
분명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맨 뒷줄에 있었던 그녀가 마법과 가장 앞의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슴에 오른 손을 얹고 왼 손으로는 로브 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우리를 향해 가벼운 인사를 날린 그녀는, 이내 다시 모습을 감췄다.
"읏차─ 여기가 더 좋겠네. 음, 시선을 모으는 건 아무래도 중앙이 최고지?"
이번에는 그녀가 마법과 중앙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도 공중에서, 침대에 눕는 것 처럼 편한 자세로 부유하면서 말이다.
"자아, 여러분! 나는 마법과의 학과장, 시하 연이야! 학기 초에는 나와 함께 하비셜의 생활을 배울거······ 어, 악?!"
붕붕 떠다니던 시하가 돌기둥에 머리를 부딪혔다.
새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자네, 조금 진중해질 수 없겠나. 학과장의 체면을 지켜주게."
자연과의 학생들을 인솔하던 대머리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시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와, 300여명정도 되는 인원을 스윽 둘러보곤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앉아있던 의자가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응······? 어?! 우와아악?!"
"꺄아악?!"
마법과의 학생들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닿던 발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부유감에 당황하고 있는데, 마력의자에서 반투명한 벨트가 나와 내 허리와 양 팔을 조였다. 안전벨트를 맨 것 같은느낌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 매곤 하는 안전장치를 착용한 느낌이었다.
순간 등골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백합황녀의 묘사가 얼핏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배경으로, 몇 줄 묘사조차 되지 않았지만, 분명 이와 비슷한 모습이 서술되었었 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래.
비명을 지르는 하늘 의자.
대충 그런 느낌의 이름이었는데.
"자아, 신입생들! 마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300여개나 되는 의자가 부유하는 가운데 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둥둥 떠 있는 의자가 내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시하가 생글생글 웃고 있을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의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즐거움에 취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시하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시하는 대강당의 중앙, 3층 천장까지 뚫려있는 곳으로 날아가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음악을 지휘하듯 손을 휙 내저었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우리가 타고 있던 의자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이상하지 않아? 인간이만들어낸 힘이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준다는게 말야."
"그건······."
자신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오자, 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신입생들이 앉아있는 300여개의 의자 사이를 날아다니며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마법은 발판같은게 아니야."
시하는 학생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그 뒤에 궤적을 남겼다. 스케이트 선수가 달려간 빙판처럼 선명한 자국이 대기에 새겨졌다.
"마법은 곧 자기 자신이지."
그리고 그 자국은 이내 아름다운 별문양이 되어 허공을 반짝반짝 수놓았다.
"마법은 사람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야.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어떤 상상을 하는지, 전부 알 수 있게 해주거든."
시하는 반짝이는 별문양을 자신의 손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줄였다. 그리고 별모양을 움켜쥐어, 반짝이는 별가루로 바꾸었다.
"그래. 마법을 배운다는 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의미해. 나에 대해 알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 위에 바라고 싶은 소망을 덧대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마법이라고 부르니까."
시하가 자신의 손에 담겨있던 별가루를 우리에게 뿌렸다. 가지각색의 별가루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흐드러졌다.
"마법과에 온 걸 환영해, 신입생들! 6년동안 잘 지내보자?"
시하가 싱긋 웃었다.
미소와 함께 드러난 매력적인 송곳니가 별가루처럼 반짝였다.
시하를 따라 대강당의 중앙에 모인 의자는 시하의 지휘에 맞춰서 천천히 떠오르며 대열을 짜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대열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의자의 높이가 점점 올라가 나중에는 2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상급생들과 시선이 나란해 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상급생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신입생들의 시선은 굉장히 복합적이었다. 불길하게 웃는 사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사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 추억에 잠긴 사람.
다양한 반응을 보내고 있는 상급생들 가운데,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신입생들! 시하 익스프레스 재밌게 즐겨라!"
영문 모를 말이었지만,나는 그 사이에 들어있는 익스프레스라는 단어가 굉장히 심하게 신경쓰였다. 나는 하스타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하스타, 뭔가 불안하지 않아요······ 히익?!"
"꿈이야, 꿈이야, 꿈이야, 꿈이야······."
그리고 내가 돌아본 하스타는 자신의 허리를 고정하는 줄을 손이 새하얘질 정도로 꼭 부여잡고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마치 진동모드로 해놓은 스마트폰에 전화가 걸린 것 처럼 바르르 떠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왜, 왜 그래요 하스타. 괜찮아요?"
"나, 나, 높은 곳, 시, 싫어······!"
하스타가 덜덜 떨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가만히 시하를 바라보고 있던 메디아가 당혹스러운 듯 하스타에게 말했다.
"······하스타. 설마 모르고 있었나요?"
"뭐, 뭘요, 메디아······?"
"마법과의 교실은 호티 바라의 최상층에 있어요."
"최, 최상층이요······? 얼마나 높은데요?"
하스타가 목 쉰 소리로 묻자, 메디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더니 얼마 후 명쾌한 대답을 내었다.
"위즈 키의 300배정도려나요."
"마, 말도, 안 돼······!"
하스타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재학생들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가 담겨있는 말들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러자 시하가 그들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계속 떠드는 사람은 신입생들이랑 같이 올려보낼거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미치는 파급력은 굉장히 컸다.
"아닙니다!"
상급생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의자에 다시 정좌했다. 시하는 잠시 그들을 흘겨보다, 이내 우리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리고 팔을 가볍게 휘두르며,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송곳니가노을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럼, 우리의 본거지, 호프 바라의 페스타로 가볼까?"
그 말과 함께 의자가 하비셜 본관 바깥으로 달려나가기시작했다.
롤러코스터에 버금가는 속도로 말이다.
"으아아악?!"
"엄마아아아아!!!"
가, 가속도가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