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3. 입학 (9) (21/86)



〈 21화 〉3. 입학 (9)

"자, 마법과! 왼쪽을 보자! 우리가 분과식을 치뤘던 하비셜의 본관, 기록하는 도서관이야!"


300여 개의 의자가 원통형의 본관을 휘감으며 올라갔다. 벽면의 외곽에는 각기 다른 형상들이 서로의 멋을 뽐내며 조각되어 있었으나, 자세한 것은  수 없었다.


휙휙.


"으어억?!"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악!"

왜냐하면, 조각들을 천천히 감상할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왼쪽, 앞, 뒤.

목이 자꾸만 젖혀졌다.자꾸만 방향을 바꾸는 의자의 가속도를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머리가 그렇게 덜컥덜컥 움직이다보니  속의 달팽이관이 파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지랄맞은 환경에선 일 못한다! 라고 시위하는 듯 한 환청이 들렸다.


"잠깐, 정지!"
"우욱?!"

갑작스러운 정지에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관성때문에 영혼이 몸 바깥으로 나가버릴 것 같았다.


"눈 뜨면 안돼, 눈 뜨면 안돼, 눈 뜨면 안돼, 눈 뜨면 안돼······."

하스타가  옆에서 염불외우듯 눈을 질끈 감고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벨트를 붙잡고 있는 손은 이미 핏기가 가실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사람, 나처럼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 머리를 부여잡고 부모님을 찾는 사람까지. 심지어 메디아마저도 안색이 새파래진 채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 정상으로 보이는 사람은 시하밖에 없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도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하군······."

아, 세렌도 있구나.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다. 시하가 초토화된 학생들의 위를 옆으로 누운 자세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허공에서 팔을 괴고 우리들을 바라보며 킬킬대는 모습은, 그래.
처음 본 사람에게, 그것도 내가 다닐 학과의 학과장에게  말은 아니지만.
상당히 재수없었다.


"이번 애들은 왜 이렇게재미가 없어~ 세리나 학생 빼면 전부 다 체력이 부족한 모양이고. 이래서야 학과대항전 때 무예과에게 대항할 수나 있겠어?"


"······무예과 애들도 데려와 보라고 해요, 그럼······."
"오호, 너는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모양이로구나. 옳지,  선생님은건강한 아이를 좋아한단다?"
"네? 아, 으어억?!"


한 소년이 너무나도 올바르고 정당한 지적을 가했지만, 시하는 싱긋 웃으며 그의 의자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10초만에 본관의 1층으로 내려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학생은, 헛구역질을 하며 엎어지듯 상체를 숙였다.

"자, 죽어가는 너희에게 질문 하나 할게! 이 질문을 모두 맞추면 단숨에 바라 페스타로 순간이동 할 거구, 못 맞추면······ 그래. 이전의 속도로 다섯 바퀴 뺑뻉이를 도는거야. 어때?"

번뜩.
죽어가던 신입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하스타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상태에서도 귀를 쫑긋 세우며 온 몸의 감각을 시하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
그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생존 욕구.
살고싶다는 강렬한 열망.

보고있는 나 조차도 깜짝 놀라게 되는, 그런 필사적인 의지였다.

"좋아 좋아. 그래야 내 학생들 답지. 그럼,  번째 문제! 너희들의 눈 앞에 있는, 본관의 중앙을 장식하는 이 거대한 표식은 무엇을 의미할까?"

시하가 손으로 자신의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비셜 본관 외벽에는 수 많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고,  외양도 모두 달랐으나, 시하가 가리킨 조각은 그 중에서도 유달리 컸다.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은색 외날개와 그 아래에 겹쳐놓은 검은 색 만년필 한 자루.

시하가 걸고 있는 교수의 증표와 같은 모양이기도 했다.


"하비셜의 두 가지 덕목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증표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내 오른쪽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바로 답이 나오네? 어디어디······ 그래, 메디아 학생! 좋아, 계속 설명해봐."

메디아가 창백한 얼굴으로  차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외날개는 현인 라이하빗의 상징이며, 펜은 그 아래에서 수학하는 모든 학생들을 나타냅니다. 현인의 가르침 아래에서 배워가는 학생을 형상화 한 모습─ 즉, 이는 하비셜의 존재 이유인 '배움'과 '가르침',  두 가지의 덕목을 의미하며, 항상 그 뜻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정답. 뭐야, 예습이라도 해 왔어? 완벽한 설명이야, 대단한 걸!"


시하가 박수를 치며 메디아에게로 날아왔다. 메디아는 그런 시하가 살짝 거북한 듯 시선을 살며시 피했다.


"황실 교육시간에 배운 내용입니다."
"흠, 그렇구나······. 알겠어. 첫 번째 문제, 통과!"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하는 그런 학생들의 희희낙락한 모습에 즐거워하다, 이내 다음 문제를 내었다.

"두 번째 문제. 그렇다면 이 조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건······."
"아, 메디아 학생은 조용히 해줘. 다른 학생들에게도 기회는 줘야지?"
"······읏."

메디아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미약하지만 살짝 떨고 있었다.
분한걸까, 아니면 높은 곳이 무서운 걸까.

메디아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던 간에, 이 상황을 싫어하고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자, 그럼, 대답할사람?"
"마법을 이용해 세공한  같습니다."

백합황녀에 혹시라도 나온 적이 있었나 하고 머릿속을 뒤지고 있는데, 앞에서 누군가가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과식이 끝난 직후, 마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답했던 목소리의 주인과 같은 사람이었다. 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했다.

"그래? 에리스 학생, 이유는?"
"조각에 사용된 재료가 은빛 영철이기 때문입니다."
"응, 정답!"

시하가 윙크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맑아졌다. 식은땀을 흘리며 전전긍긍하던 하스타의 입꼬리도 살짝 느슨하게 풀렸다.

"에리스 학생의 말대로야. 이 조각은 은빛 영철을 마법으로 세공해 만들었지. 은빛 영철은 마법으로 변형시킬  있는 금속중 가장 튼튼하니까. 이 조각이 얼마나 오래됐더라. 한 300년 됐나?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만들어 졌으니까, 얼마나 튼튼한 지 알겠지?"

시하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으쓱거렸다. 대단하지, 라고 자랑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학생들은 그런거 상관 없으니 빨리 다음 문제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한 눈빛을 보냈지만.

"별로  신기한가? 무슨 애들이 이렇게 호기심이 없대······ 뭐, 알았어. 어쨌든, 마지막 문제!"

시하가 손가락을 튕기자, 300여 개의 의자가천천히 떠올랐다. 마법과의 학생 전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무서워 할 필요는 없어. 지금은 그냥 천천히 올라가는  뿐이니까!"

저기, 시하 교수님. 하스타는 지금 그거때문에 식은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10초만에 땅을 찍고 돌아오는 경험은 하고싶지 않았기에, 나는 하스타에게 미안해하며 시하의 다음 질문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의자의 높이는 계속 올라가, 마침내 하비셜의 최상층까지 고도를 높였다.  덕에 마법과의 학생들은 하비셜의 모든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하비셜 너머의 북쪽, 노을에 비쳐 붉게 일렁이는 수평선과  위의 하늘을 흐릿하게 물들이고 있는 군청색 소용돌이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그 곳은 거센 파도가 쉬지 않고 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난폭한 수면과 대지를 구분짓는 경계에, 하비셜로드의 끝자락에서 보았던 것 만큼이나 거대한 수정이 부유하고 있었다. 수정의 아래로는 꽤나 넓은 물줄기 하나가 하비셜을 향해 흘러들어오고 있었는데, 수원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하비셜로 흘러들어온 물줄기는 하비셜 본관의 바로 뒤편에서 양갈래로 나뉘어져, 각각 남동쪽과 남서쪽에 반짝이는 호수를 만들어내었다. 신록의 사막과 연결되는 길은 두 호수의 사이에 트여 있었다.

하비셜의 동쪽과 서쪽에는 다른 방향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수정이 둥둥 떠 있었다. 서쪽 수정 아래에는 거대한 마을 하나가 위치해 있었고, 동쪽 수정 아래에는 푸르른 숲과 척박한 용암지대, 그리고 초원과 사막이 다채롭게 조성되어있었다.

그야말로, 작은 세계를 담아놓은 듯 한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잊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눈을 뜨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그 장엄한 모습에 감탄사를 입에 담았다.

그런 상황에서 시하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마지막 문제! 기회는 단 한 번이니 신중하게 생각해?"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시하를 바라보았다. 시하는 그런 학생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곤, 이내 그 문제를 입에 담았다.

"이 하비셜은, 누구의 것일까요?"

일순간, 모두가 침묵했다.


하비셜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나온다.


라이하빗 케런트.

현인의 이름이 바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하비셜이라는 이름도 라이하빗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고, 하비셜을 유지하는 결계도 라이하빗의 작품이라고 하니, 당연한 답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학생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명확한 대답.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한 시하의 짖궂은 미소.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불안함을 느꼈다. 이 문제가 시하의 함정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답 없어?"

시하가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백합황녀의 어딘가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답답해서 고개를 흔들고 있는데, 옆에서 하스타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스타?"

하스타는 얼굴에 핏기가 완연히 가신 채 무언가를 애처롭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하스타에게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우, 리······."

아.

하스타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서야 백합황녀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학술제  날. 3학년이었던 세렌은 상급생들과 말싸움을 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교수에게 잘 보여 점수를 얻기 위한 상급생들의 아부성 이벤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세렌은말재주가 없었다. 그녀는 상급생들과의 말싸움에서 밀려버렸고, 결국 아부성 이벤트에 참여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세렌을 구해준 것이, 메디아의 한 마디였다.

'하비셜은 배우는 자의 것 입니다. 그런 곳에서 교수를 위한 학술제를 준비하려 하다니,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네요. 당신들이 나와 같은 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말하고 다닐 미래를 생각해보면 말이죠.'

 사건은 백합황녀의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세렌은 메디아를 다시 보게 되고, 그렇게 여차저차해서 둘은 결국 우정 이상 사랑 미만의 관계에 빠지게 되었으니까······.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정말 없어? 으음, 아깝네. 그럼 본관 다섯 바퀴를 돌아볼까─"
"우리입니다!"
"······응?"


내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자, 시하가 잠시  쪽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건 대체 무슨 의미지.


"위즈 학생? 그래, 다시 말해주겠니?"

시하가 나에게로 스르륵 날아오며 물었다. 나는 한 번 크게 숨을 내쉬고는, 백합황녀의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하비셜의 주인은 우리에요. 정확히 말하면, 배우는 사람이요."
"······오호."
"하비셜은 현인의  번째 제자가 배움을 청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다시 말하면, 첫 번째 제자가 없었다면 하비셜도 존재하지 않았을거라는 거죠!"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하비셜의 주인은 결국 배우는 사람이에요. 황제폐하도, 현인도 아닌, 우리들이요. 배우는 사람이 사라진다면하비셜은 그 의미를 잃으니까요!"


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침묵이 학생들 사이에 스윽 하고 퍼졌다.
불안함이 가득 차 있었다. 제발 맞췄으면 좋겠다고 비는 학생도, 틀리지 말라고 절규하듯 외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학생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하스타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정답!"
"와아아아!!!!"


하비셜 본관의 최상층에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일순간, 그들은 그곳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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