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3. 입학 (10) (22/86)



〈 22화 〉3. 입학 (10)

"······핫?!"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노을빛이 새어들어오는 넓은 건물 안에 있었다.

사방이 단단한 목재로 감싸여 있는 건물이었다. 대충 체육관 정도 크기의 건물이었는데, 300명이 한꺼번에 몰려있어 굉장히 북적북적했다. 소란의 원인은 대부분 고통에 찬 신음였기때문에, 활기찬 분위기라기 보단 음울한 분위기였다는 점이 조금 안타까웠다.


300여명의 신입생들은 하나같이 기진맥진해져있는 상태였다. 특히 하스타는 다리의 힘이 풀린  주저앉아 있었는데, 벗겨진 후드 사이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굉장히 처참했다.


나는 하스타에게 달려가 앞에 쪼그려 앉으며 하스타의 어깨를 붙잡았다. 붙잡지 않으면 하스타가 맨바닥에 쓰러져 기절할  만 같아 보였다.

"하스타, 괜찮아요?"
"응······. 주, 죽는 줄 알았어."

하스타가 비틀거리면서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이 그닥 좋지 않았다. 뭐 달달한 거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때였다.


"위즈 율릿, 비행적성 2등급. 하스타 비즈, 비행 적성 9등급······ 이런, 엄청 힘들었겠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던 사람 이었다. 히끗히끗 새치가  있는 머리카락과 시니컬한 눈매를 가진, 나와 머리 두 개 정도 차이나는 남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이내 기억 속에서 그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까 연설하셨던 교수님이세요?"
"아, 뭐야. 알아보는구나?"


피곤해보이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는 바로 펄스레이드 이전의 가짜 입학식에서 교장 역할을 맡았던 남자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쥘 로블랑. 마법과 보조 교수야. 나도 교수로 하비셜에 다니는 건 처음이니까, 초보들 끼리 앞으로  지내보자······. 후우, 저 학생에게 이거 좀 건네줄래?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쥘이 힘없이 미소 지으며 작은마정석이 박혀있는 구슬을 건네주었다. 하늘색 빛이 일렁이는 눈동자 크기의 작은 구슬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걸 받아 하스타의 손에 쥐어주었다.


"······어, 따뜻해······."

구슬을 받은 하스타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나는 깜짝 놀라 쥘을 바라보았다.

"멀미 해소용 아티팩트야. 학과장님께서 발명하셨지······  참, 병주고 약주는 것도 한 두번일 텐데."

쥘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시하에게 시달린 것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듯 한숨을  쉬던 그는, 나에게 고개를 으쓱 하곤 손을 흔든 뒤에 다른 학생에게로 다가갔다.


"저 분, 보조 교수님이라고 하셨지?"


상태가 눈에 띄게 안정된 하스타가 호기심을 띄운 채 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음침해보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쥘을 포함한  명의 보조교수가 학생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는 가운데, 시하가 반짝거리는 빛을 내뿜으며 학생들의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자아, 마법과! 처음 겪는 순간이동은 어땠어?"

시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원망스러운 눈으로 시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래, 재밌었지?"
"재미없었거든요?!"


울컥한 듯 한 소년이 시하에게 따져물었다. 저번에도 시하에게 말대꾸를 했다 지옥을 경험했던 그 소년이었다.
이번에는 그의 모습을 조금  선명하게  수 있었다. 주홍색 머리카락을 짧게 깎은 소년이었다.
시하는 그 소년을 찬찬히 바라보며 입가에 환한 웃음을 띄었다. 그리고는 소년에게 다가가,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


"오호, 그렇구나. 아직 재미를 느끼기엔 부족하다 이거지?"
"뭐요? 아니, 어, 흐어억─"

그와 함께 소년이 외마디 비명을 남기며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난 소년은 다리에 힘이 풀린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더 하고 싶은 사람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저렇게 처참한 꼴이 되고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그래, 그러면 이제  먹자!"

시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내 옆에서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하스타의 표정이 밝아졌다.


 편, 학생들의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던 보조교수들은 시하의 말에 난색을 표했다.

"하, 학과장님. 아직 계측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애들 밥은먹여야지. 어차피 애들  먹이면서도 계측 할  있잖아?"
"그러면 저희는언제 밥을 먹나요······?"
"물론 일 끝날 때 까지지~ 당연하잖아? 그게 너희 일인데."
"너, 너무하십니다······!"


보조교수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시하는 그들의 항의를 상큼하게 씹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학생들이 두둥실 떠오르며, 동시에 그 아래에 의자가 생겨났다.
본관에서 보았던 마력의자였다. 단 한번 손가락을 튕긴  만으로 300여 개의 의자를 만들어 낸 시하는 이내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테이블이었다. 시하가 마력의 실로 엮어 만든 긴 테이블이 우리의 앞에 놓였다. 내 오른쪽 옆에는 하스타가, 정면에는 세렌이 앉아 있었고, 대각선에는 메디아가 앉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순식간에 연회장으로 바뀌었다.


"쥘, 장식 부탁해!"
"······학과장님이 하시면 안 되는 거에요?"
"계측 좀 도와줄까?"
"그러시다면야."

쥘이 고개를 끄덕이며 양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지휘를 하는  같은 모습이었다. 허공에 부드러운 손짓을 할 때마다 쥘에게서 마력이 은은하게 뿜어져나와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벽에 마력이 충분히 모이자, 쥘이 시하를 향해 물었다.


"······리본, 별, 커튼······ 학과장님, 추가 주문은?"
"신입생이 하비셜에서 먹는  식사잖아? 하비셜의 증표를 천장에 매달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쥘이 건물의 천장 한가운데를 겨누며 손가락을 튕겼다. 시하가 마법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벽에 모여있던 마력들이 일시에 모습을 바꾸었다.

황량했던 나무벽 위에 주름 잡힌 베이지색 커튼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위를 금색 실로 자수가 되어있는 붉은색 리본과 푸른색 리본이 장식했다.
노을빛이 들어오고 있는 창문 위에는  장식이 생겨났다. 별 장식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어둑어둑해져가던 실내가 환해졌다.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300명의 식사자리가 들어가는 드넓은 강당이, 불과 분만에 아름답게 치장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이었다고는 전혀 생각할 없는, 그런 공간.


마지막으로 은빛 날개장식이 천장에 샹들리에처럼 밝은 빛을 발하며 매달렸다.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시하는 이내 손뼉을 두 번 쳤다.


쥘의 품에 다섯 개의 두루마리가 생겨났다.


"남은 신입생들 계측 기록이야. 빨리 정리하고 와~"
"······이렇게 빨리 계측하실  있으셨으면 그냥 저희를 부르지 않으셨어도 됐잖아요?"
"그럼 내가 너희 할 일을 빼앗는거잖아~ 나는 그 정도로 탐욕스럽진 않거든."
"······욕심 좀 가지시죠, 학과장님."


쥘이 혀를 차며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시하는 그런 쥘을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그리고, 쥘이 문을 닫자, 시하가 우리를 향해 돌아보며 박수를 쳤다.

"그럼, 먹자!"

그와 함께 시하의 앞에 작은 테이블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앞에도 여섯 개의 작은 접시와 숟가락, 나이프, 그리고 포크가 생겨나 테이블 위에 놓였다.

가운데에 마정석이 박혀있는 둥근 접시였다. 하비셜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그 접시는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마정석을 숟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봐!"


시하가 자리에 앉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그러자 세렌이 숟가락을 들어올려 그릇의 중앙을 두번 톡톡 쳤다.

"우와아······."

하스타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접시와 세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던 접시에, 큼지막하게 썰려있는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조리해  음식을 소환하는 걸까요. 흥미롭네요······."

메디아가 자신의 그릇을 들여다보며 작은 감탄사를 내었다. 그러자 세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래. 2년  쯤 에스파다에 보급된 그릇이야.리베른에는 아직 이런 그릇이 없는건가?"

작은 도발을 날렸다.

"······리베른은 영웅으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중요시한답니다."

갑작스러운 도발에 메디아가 살짝 인상을 굳히며 덤덤한 척 말했다. 그러자 세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 하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대를 모시는 시종들이 꽤나 불편해 하겠어."

메디아의 붉은 눈이 한없이 깊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단 한 번도 옆을 쳐다보지 않은 채 스테이크를 써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화가 난  처럼 보였다.

"어머, 저는 저의 시종들과 굉장히 사이가 좋답니다."
"사이 좋은 관계라는  한쪽이 가진 감정으로만 정의할 수 있는게 아닐텐데."
"분명 그녀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에요."
"뭐, 그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세렌이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기를 잘랐다. 메디아는 그런 세렌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눈썹을 움찔했지만, 이내 다시 평정을 되찾고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는, 두 명의 황녀가 동시에 내게 포크를 내밀었다

"······어머. 이게 무슨 짓일까요?"
"위즈의 접시가 비어있기에 내가 썬 고기를 먹여주려 했지. 그러는 그대야 말로 뭘 하려는거지?"
"보시는 대로, 위즈에게 고기를 나누어주려고 했을 뿐이랍니다."
"내가 먼저 내밀었다."
"당신이 내민 조각은 너무 크잖아요. 위즈의 입에  들어갈 리가 없어요."
"입이 꽉 차게 한 입에 넣을 지, 아니면 베어 먹을 지ㅇ에 대한 선택은 위즈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배려심이 없군요, 세리나 리베른."


두 사람이 곁눈질조차 하지 않은  내게 미동 없이 포크를 들이밀었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대신 그녀들은 내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강렬한 그녀들의 시선 속에서, '내 걸 먹어' 라고 말하는 듯 한 착각이 느껴졌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사실인가. 어쨌든.


순식간에 공기의 온도가 내려간  같은 착각이 들었다. 따끈따끈한 스테이크가 식어버릴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다.
그래, 그녀들은 아직 15살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만큼 사소한 걸로도 다툴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싸우지 않았으면 했다.
둘 사이의 갈등은 백합황녀에서 보았던 것 만으로도충분했으니까.


나는 몸을 일으켜 테이블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두 개의 포크를 양 손으로 모아,  입에  고기를 전부 집어넣었다.
목구멍까지 들어찬  같은 압도적인 질량감이었다. 씹기조차 힘들었다.


"위, 위즈?"
"그대는 대체······."

하지만, 나는 악을 서서 고기를 씹었다. 그리고꼭꼭 씹지조차 않은 채로 꿀꺽 삼켰다. 목에서 걸릴 뻔 하던 고깃덩어리가 마침내 목구멍을 넘어 위 속으로 퐁당 빠졌다.

살짝 눈물마저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한 차례 흔들었다. 그리고 뻐근한 뺨 안쪽의 턱 근육을 쓰다듬으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두 황녀에게 말했다.

"싸우면 안 돼요?"
"그, 그래······."
"명심할게요······."

그녀들이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하스타가 조용히 백합을 테이블에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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