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2) (24/86)



〈 24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2)

"위즈. 위즈?"
"······아, 세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대의 안색이 좋지 않아."
"아뇨, 그게."

고개를 저으며 과일조각을 베어물었다.
아삭한 식감을 가진 파인애플이라고나할까. 새콤한 맛에 살짝 표정이 찡그려지면서도 계속 베어물게 되는 중독적인 맛이었다.


늦잠을  바람에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게  하스타를 동정하게 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맛을 맘 편히 즐길 수가 없었다.
마법과 기숙사 3동 배식실─ 북적북적한 장소의 구석에서 홀로 밥을 먹는 소녀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기 때문이었다.

"······계속 같은 곳을 바라보는군요, 위즈."


메디아가 손수건으로 내 입가를 닦아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음, 더 이상 숨기기는 힘들겠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 제 룸메이트거든요."
"그런가요. 조금 질투나는데요."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위즈와 같은 방이 되었으면 했는데······."

푸념에 가까운 말과 함께 메디아는 세렌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말문이 막힌다는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메디아를 본 세렌이 눈썹을 치켜 뜬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건 내가  말이다, 메디아 리베른."


세렌이 항의하자, 메디아는 차를 한번 홀짝인 뒤 세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으쓱하며 세렌에게 핀잔에 가까운 말을 건넸다.


"당신은 잠버릇부터 고치지 그래요? 대체 왜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이 바닥에서 깨어나는건가요?"
"······어젯밤의 꿈자리가 사나웠을 뿐이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침대에 떨어진  잘만 자더군요. 어쩜 그리 무신경한지."

메디아의 말에 세렌이 큿, 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메디아를 잠시 노려보다,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메디아에게 항의의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는 그대야말로 취침시간에는 불을 끄는게 어떻겠나? 불빛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따지고 보면 지난 밤의  꿈자리가 사나웠던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닌가?"
"······교양을 쌓기 위한 일입니다, 세리나 바른."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그대가 쌓으려는 교양에 포함되지 않는건가?"


이번에는 메디아가 한 방 먹었다는 듯 눈썹을 찡그렀다.


찌릿.


메디아와 세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지난 밤에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아하하······ 첫 날부터 그렇게 싸우면 어떡해요?"
"싸우는게 아니다. 정론을 이야기하는거야."
"맞아요, 위즈. 싸움이라는 건 서로간의 격이 맞아야 일어난답니다."
"호오, 그건 무슨 뜻이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들리는데."
"후후, 당신이 생각하는 그 뜻이 아닐런지요."

다시 한 번 찌릿.

메디아, 세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싸운다고 하는데요.
백합황녀에서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지는 시점은 3학년 중반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년 반 뒤.
한참 남았네.


나는 손을 휘휘 내저어 두 사람의 시선교환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면서도 루아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아, 난감하네 진짜.
나는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떨궜다. 뭘 어떻게 해야 할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도 하고, 그녀의 룸메이트로 1년간 어떻게 지낼지도 막막했다.

"······잠깐 휴전하지 않겠나, 메디아 리베른."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요, 세리나 바른······."

그런데 옆에서 서로를 차갑게 바라보던 메디아와 세렌이 돌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위즈. 저희는 싸우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 그저 의견의 차이를 좁히고자 했을 뿐이었다."
"가, 갑자기  그래요?"

갑작스레 서로를 살갑게 대하는 두 황녀님의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세렌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그대가 그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맞아요, 위즈. 그러니 표정 풀어요."

아, 그런거였구나.
음······ 황녀님들 때문에 인상을 구긴  아니었는데.

사이가 좋다는 분위기를 억지로 연출하는  사람. 그 모습이 마치 나에게 기분 좀 풀라고 말하는 것 만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만 해도 괜찮아요, 두 사람때문에 그런  아니에요."
"그런가?"
"그렇군요."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맞잡았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서로에게 시선은 주고 있지 않은 상태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은,  바탕 싸운 뒤에 부모님이 끼어들어 억지로 화해시킨 자매를 보는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황녀님들이 귀여우면 됐지, 그깟 메인빌런이 대수냐.
그래, 뭐 빌런이고 나발이고, 일 터지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거지.


······하늘은 저를 백합황녀의 세계에 내려주셨으면서 왜 이런 시련을 맞닥뜨리게 하시나이까.

"안녕, 율릿 양."


먹었던 아침밥이 울렁였다.
지금은 1교시, 공통 필수교양수업인 기초마법개론 시간이었다. 300명이나 되는 마법과 1학년을 한 교실에 몰아넣을 수 없었던 만큼 수업은 여섯 개의 반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나는 메디아와도, 세렌과도, 하스타와도 떨어진 채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와짝으로 맺어진 소녀가 바로 루아 소크타리에스였다.

"······아, 안녕하세요, 소크타리에스 양."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지만 루아는 그런 나를 하얀 눈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작은 입술을 열어 한글자 한글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루아라고 불러주면 기쁠거야."
"그, 그런가요."
"응."

루아가 속눈썹이 짙게 드리워진 눈으로 호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교수님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품에는 갈색 인형이 들려있었다.
수업시간에도 가지고 오다니,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닐까.
······열 다섯살 짜리가 가지고 다닐 법 한 물건은 아닌  같지만, 개인취향이니까 존중해야지.



"기초 마법개론을 한 학기동안 가르칠 유고슬레인 안챠브롤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


부드러운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검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묶어내린 남자, 유고슬레인은 교실에 앉아있는 신입생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져 온 책을 펼쳤다.

그와 함께, 우리가 앉아있던 책상에 그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책이 펼쳐졌다. 실체를 가지지 않은 환상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하비셜을 갈 때 교과서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던 이유를 알  있었다.

"여러분 앞에 나타나 있는 책은 제가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다. 제가 책을 펼치면 여러분의 책도 펼쳐지고, 제가 페이지를 넘기면 여러분의 것도 페이지가 넘어가지요."

책을 움켜쥐려다 빈번히 실패하는 신입생들을 귀엽다는  바라보던 유고슬레인은 한 차례 박수를 쳐 학생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어떤 마법을 이용했는지 아는 사람, 있나요?"
"환상마법입니다."
"바로 맞췄어요, 플롯 양."


유고슬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허공에 막대를 그어, 환상마법이라고 쓰여있는 원을 그렸다.


"환상마법은 모든 마법을 통틀어 가장 쉬운 마법입니다. 실체도, 중량도 없이, 오직 환영만을 만들어내는 마법이죠."

유고슬레인은 그 원에  개의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끝에 원을 그렸다. 세 개의 원이 가운데의 환상마법과 연결되어있는 형태가 되었다.


"환영마법이 간단한 이유는, 세 개의 힘을 가장 적게 사용하는 마법이기 때문입니다."


비어있는 작은 원에 유고슬레인이 글씨를 써 넣었다.

상상력. 염원력. 마력.

글자를 써 넣은 유고슬레인은 막대를 휘둘러   개의 원을 잇는 삼각형을 만들어내었다.

"상상력, 염원력, 마력. 이  개의 힘은 마법의 3요소라고 불리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어느 한 힘이라도 부족하다면 마법은 불완전해지고, 그 강도 또한 약해지죠."


유고슬레인이 막대를 한 차례 그어 허공에 나타나있던 문양을 지웠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첫 번째 수업을 시작합니다. 환상마법이 모든 마법을 통틀어 가장 쉽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옆 자리의 학생과 토의하여 발표하세요. 틀린 의견이라도 좋습니다. 엉뚱하고 기발한 의견이라면 오히려 상점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옆 사람과 나누어주세요."

수업을 듣던 나는 유고슬레인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루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상마법에 대해서 아는게 있어요, 루아?"
"으응. 자세히는 몰라."

루아가 고개를 저었다.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도통 짐작이 가지를 않았다.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루아의 앞에서 한참동안이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나는, 겨우 다음 말을 꺼내었다.


"그, 그러면, 마법의 3요소는요?"
"응, 그거라면 알고 있어."

루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그 귀여움에 순간 넋이 나갈  했다. 세렌과 메디아로 귀여움에 대항하는 법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백합을 무수히 피워올렸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귀여움에 대항할 충분한 내성이 있는 상태였다. 무사히 위기를 넘긴 나는 루아에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고, 루아는 내 부탁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별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네♬"

응?
루아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은은한 멜로디에, 목소리도 그닥 크지 않아 주변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지만, 나를 당황시키기엔 충분했다.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었지. 창을 찔러도 닿지 않았지."

루아는눈을 감은 채 노래를 이어나갔다. 마법의 3요소를 설명해달랬더니  노래를 부르고 있나 싶었다. 심지어 나를 세뇌시키려는 마력이 깃든 주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구절을 듣자, 나는 루아가 괜히 노래를 부른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별을 상상했네. 별을 바랬네. 그리고 힘을 불어넣었네. 그리고 마침내 별을 손에 넣었네."


상상력, 염원력, 마력.
유고슬레인이 말했던 마법의 3요소가 루아의 노래에 들어가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물었네. 나도 별을 가지고 싶다고."


어느새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루아의 노래를 경청했다. 그러고 보면 루아의 노랫소리는 굉장히 듣기 좋았다. 목소리가 예뻐서 그런지 종달새가 노래하는 것 처럼 맑았다.

"그는 말했네.
또렷한 상상을 가지렴.
간절한 마음으로 별을바라렴.
네 마음을 채워넣으렴."


루아는 자신의 앞에 손을 모았다. 그 곳에서 작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홀린듯이 바라보았다.  자리 주변의 몇몇 아이들도 빛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모두가 별을 손에 넣었네.
아름다운 별을, 모두가 소중히 감쌌네."

루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모았던 손을 펴, 나에게 보여주었다.

작은 별 하나가 그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별의 이야기야, 율릿 양."


루아의 눈동자가 밤하늘에 반짝이는크고 하얀 별 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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