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4)
으으음.
가볍게 돌려 들어올린 포크에는 파란 소스로 버무려진 면이 먹기 좋게 감겨 있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이 있다. 파란색은 식욕을 감퇴시키는 색이라나 뭐라나.
그런 색을 보란 듯이 쓰다니··· 비주얼이 아니라 맛으로 승부하는 타입인건가.
일단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새콤달콤한게, 언뜻 토마토소스를 연상시켰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맛인데······.
에라 모르겠다.
앙.
"······윽."
끈적거리는 파워에이드를 소면 국수에 말아 먹은 것 같은 맛이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진짜 음식도 뭣도 아니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눈 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
루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다.
그렇게귀여운 표정으로 바라보면 원망도 제대로 못 하는데.
아,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는 울상을 지으며 눈 앞의 괴식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기운없이 교실을 나가려는 루아를 붙잡아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을 뿐이었다.
처음엔 망설임, 그 다음에는 정말이냐는 재확인. 마지막엔 기뻐하며 띄우는 연홍빛 홍조.
그걸 봤을 때만 해도, 나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루아가 나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오기 전 까지는 말이다.
"여기가 어디에요······?"
"세 번째 가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응, 있어. 위즈, 정말 있었어!"
루아가 하얀 눈을 빛내며 나를 끌어당겼다. 점심 먹자는 사람을 데리고 어디를 가나 싶었던 나는, 루아가 가리킨 방에 걸려있는 대문을 보고 순간 멈칫하며 두 발을 바닥에 고정시켰다.
"······위즈?"
"루, 루아. 분명 저희는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죠······?"
"응. 분명히 위즈도 좋아할거야."
한 손에 곰인형을 든 루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정확히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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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탐구회
-세상에 없는 요리를 만들자-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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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가 나를 잡아 끈 곳에 붙어있는 명패에서, 굉장히 수상하면서도 무서운 내용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루아. 아는 곳인가요?"
"어머니가 종종 말해주셨어. 어머니는 이 곳에서 아버지를 만나셨대."
그러면서 루아는 내 손에 힘을 주었다.
더 버티지 못한 나는 루아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루아가 해맑게웃으며 내 몫의 식권을 내미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부실 안에서 음식을 만들어내던 상급생들이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고 있었지만.
순수한 루아는 아쿠아리움에 처음 간 아이처럼 이곳 저곳을 신기한 듯 둘러볼 뿐 이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이거, 음식 이름이 뭔가요."
"원기회복 파스타야. 귀여운 후배가 먹어줘서 기쁘네~"
"맛있어······."
"어, 진짜?"
"응. 정말로."
루아가 국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던선배도 예상치 못한 반응인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뭐지.
혹시 내 거랑 다른음식인가? 모양만 비슷하고?
"······혹시 저랑 다른 음식을 주신 건가요?"
"아니, 같은 건데······."
선배가 고개를 저었다. 나와 같은 심정임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릇을 바라보았다. 파워에이드를 농축시킨 파란색 소스가 면 위에서 흐물거리고 있었다.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맛이 플래시백처럼 뇌 속에서 다시 재생됐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그런 맛이었다.
"루아. 이게 정말 맛있어요······?"
"응."
루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포크에 파스타를 감아 입에 넣었다. 행복한듯 풀어진 얼굴로 파스타를 오물거린다.
진짜 맛있나보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선배를 바라보았다.
"······혹시 다른 음식은 없나요?"
"응, 미더덕 크러스트 피자라던가─"
"그런 거 말구요."
"우리가 먹을 건빵은 있는데."
"그거라도 주세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점심은 건빵으로 때워야 할 것 같았다.
"잘 먹었어요."
루아가 머리를 숙여 선배에게 인사했다. 옆에서 건빵을 오독 씹고 있던 나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건빵 맛있네요."
"나중에 줄기 3층에 있는 매점 한 번 가 보렴. 거기에서 팔고 있으니까."
선배가 쿡쿡 웃으며 팁을 주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싶은 기분이 들어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그 쪽후배. 혹시 요리 연구회에 들어올 생각 있어?"
"요리 연구회에······?"
"응. 자질이 보이더라구."
선배가 고개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루아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멍하니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배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로들여보내주는거야······?"
"물론이지. 입부 신청서만 내면지도교수님께서 허락해주실거니까."
루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래도 될 지 묻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당황한 루아에게 말했다.
"들어가고 싶어요, 루아?"
"응······ 어머니도 이 곳 소속이셨어."
"그러면 들어가 보는게 어때요?"
나는 싱긋 웃으며 루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루아가 몇 번 망설이더니,선배에게 말했다.
"그럼······ 들어가도 될까?"
"그래. 이름이 뭐야?"
선배가 품 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루아는 그런 선배에게 자신의 이름을 한글자 한글자 전해나갔다.
"루아. 루아 소크타리에스."
종이에 글을적던선배가 움직임을 멈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잠깐만. 뭐라고?"
"루아야."
"아니, 네 성."
"······소크타리에스."
"뭐야, 잘 못 들은게 아니었네?"
선배의 표정이 바뀌었다.
뭐라고 할까. 신기한 걸 본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일이 어디선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선배의 '호기심'이 그리 좋은 방향의 감정은 아니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잘못되었음을 느낀 것은 루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냐는 듯 불안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루아에게, 선배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걸작이네. 야, 이리 와 봐."
"뭔데?"
선배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다른 선배를 불러내었다. 그리고는 루아를 가리키며 귓속말을 속삭였다.
다른 선배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진짜냐?"
"지 입으로 말했다니까?"
"허, 참."
루아가 곰인형을 꼭 쥐었다. 조금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선배님들?"
"너 말야. 혹시 바리쉬냐?"
나를 바른 제국의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선배에게 고개를끄덕였다. 그러자 선배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허리를 숙여 내게 속삭였다.
"그러면 잘 모를 수도 있겠네. 너, 저 애랑 친하게 지내지 않는게 좋을 걸?"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나에게는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루아에게는 아니었다.
"거기, 소크타리에스."
"······응."
루아가 곰인형에 얼굴을 반 쯤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그런 루아를 보며 킬킬 웃어대었다.
"네 어머니, 우리 동아리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 거 알아?"
"······유명해?"
"당연하지. 우리 동아리의 수치니까."
루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자 하나 때문에 바른으로 도망간 셸라 소크타리에스가 네 어머니지? 리베른을 배신한 선배님 하나 때문에 다른 선배님들이 엄청 곤욕을 치뤘다고 하더라."
"전설적인 선배님이시지, 암."
선배들이 킬킬 웃어대며 루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생기없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루아는 그들의 기세에 짓눌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제 우리가 뭐라고 할 지 알겠지?"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는게 좋을 걸, 소크타리에스."
루아가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루아의 손목을 잡았다. 루아가 한 차례 몸을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 생기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만 같은 사람의 눈동자였다.
"······가요, 루아."
"위즈, 난······"
"가자니까요."
루아가 비틀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그 애도 배신하려고, 소크타리에스?"
뒤에서 비아냥대는 소리가들렸다.
루아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몸을 떨고 있을 뿐 이었다.
그제서야나는 감을 잡을 수있었다.
이렇게나 순수했던 루아가 왜 백합황녀에서 악역으로등장했는지.
어째서 아름다운 미소를 잃어버리고 비웃음밖에 지을 수 없게 되었는지.
루아는 이런 대우를 3년동안이나 받아왔던 것이다.
모욕을, 비아냥을, 그 여린 마음에 비수를 꽂아넣는 사람들의 비난을.
여린 루아가 그걸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겠지. 그래서 미소를 잃어버린 거겠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백합황녀에서, 특수과와 마법과의 다툼으로 인해 처벌받은 사람은 루아 한 명 뿐이었다. 특수과와 마법과에서 루아를 제외하고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모든 분쟁은 루아 소크타리에스의 이간질 때문이었다!' 라는 주장이 학생처벌위원회에게 먹혀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이간질을 한 루아도 잘못은 있었다. 그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루아를 괴롭히고 따돌린 사람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죄책감따위 가지지 않은 채 오히려 퇴학당한 루아의 뒤에 침을 뱉었으리라.
백합황녀 속의 루아도 분명히 피해자였을텐데.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루아."
"······위, 즈."
메말라붙은 목소리였다. 충격을 받아, 말 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저는 루아의 친구에요."
"······위즈······?"
"지금은 그것만 알아줘요, 루아."
루아를 인적 드문 곳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루아를 꼭안아주었다.
루아가 소리죽여 흐느꼈다.
로브가 축축히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