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7)
"루아."
"응, 위즈."
루아가 귀를 쫑긋 세우며 바라보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떨어지면 안 될까요?"
"하지만 나는 위즈가 좋은걸······."
"좋다고 계속 붙어있을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잘 때도 다른 침대에서 자야 하고."
"같이 자면 안되는거야?"
"안 되죠, 그럼!"
"위즈랑 테리랑 같이 자고 싶었는데······."
곰 인형을 내밀고 있는 루아에게 고개를 저었다. 루아는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내가 앉아있는 탁자의 바로 옆에 앉았다.
"······위즈. 그대의 지인인가?"
"아, 네. 제 룸메이트에요!"
"그런가······."
세렌이 살짝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루아를 바라보았다. 루아는그런 세렌의 시선에 움찔 떨고는 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군요. 아침 식사 때의······."
메디아가 그런 루아를 붉은 눈으로 지긋이 내려보았다. 그리고 나선 미소를 지었다.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아름다운 미소였다. 붉은 눈에는 호의가 담겨 있었고, 살짝 내민 손길에는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그 아름다운 광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루아의 대답을 저지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루아가, 리베른의 황녀 앞에서, 가문의 이름을 대는 걸 막지 못했다.
"루아, 소크타리에스······."
호의를 담고 있던 메디아의 얼굴이 삽시간에 차갑게 변했다. 따뜻했던 붉은 눈이, 식어버린 시체아래의 피 웅덩이처럼 섬뜩하게 루아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소크타리에스라면."
세렌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루아는 그런 둘의 반응에 내 옷자락을 꼭 쥐고는 손을 경련하듯 떨었다.
"메, 메디아. 세렌."
당황한 나는 다급히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세렌은 고개를 저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고, 메디아는 내 쪽을 아예바라보지조차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 그러니까······.
일단 나는 메디아와 루아의 중앙에 서서 메디아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그제서야 메디아가 내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위즈."
"메디아, 잠시진정할 수 있나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위즈가 그 일을 안다면, 그 곳에서 비킬 수 밖에 없을거에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메디아의 표정이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안다면,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는 확신.
"위즈. 비켜줘요."
"······메디아. 그런 눈으로 다가오면 무서워져요."
"제발, 위즈. 친구로서 부탁할게요. 당신을 어떤 식으로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메디아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었다.
"메디아. 저는 루아와 친구에요."
"그렇다면 저는 당신의 친우가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말문이 막혔다. 메디아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도무지 돌파구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오래된 실타래가 꼬여있는 것 같았다. 도무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를 알 수가 없었다.
세렌을 바라보았다. 도와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그러자 세렌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위즈."
"세렌······!"
"소크타리에스 가에 대한 문제는 양 제국의 외교관계와 직결되어있는 문제야. 하비셜에서까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바른의 황녀인 나는 이 일에 끼어들 수가 없어. 미안하다."
세렌이 고개를 떨궜다. 그와 동시에 메디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비켜줘요, 위즈.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상처입고 말거에요."
"······안 돼요, 메디아."
"이렇게 부탁하는데도, 당신은 알아주지 못하네요."
메디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나선 눈을 부릅 뜨고 내 뒤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붉은 눈이 나를 꿰뚫고 루아를 난도질했다.
"소크타리에스. 리베른의 배신자. 리베른은 그 이름을 잊지 않을 겁니다."
살기어린 눈빛이었다.
처음 보는 메디아의 무서운 시선이었고.
지독하리만큼 차가워서, 심장이 얼어붙어버릴 것 만 같았다.
"미안, 위즈, 미안해, 나, 나 때문에······."
"루, 루아?!"
루아가 내 옷자락을 놓더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휘청이며 나에게서 멀어진 루아는 자신의 곰인형을 터질듯이 세게 안았다.
그리고 도망치듯 열람실을 뛰쳐나갔다.
"······."
루아가 뛰쳐나가는 모습을 노려보던 메디아가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잘려버릴 것같은 날선 시선이었다.
원망스러워 하고 있었다. 어째서 방해했냐고질타하고 있었다. 대체 왜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냐며, 나를 질책하는 듯 한, 그런 무서운 시선이었다.
"메디아 리베른."
"뭔가요."
"소크타리에스 가에 관련한 문제는 그대와 리베른의 일이다. 하지만 위즈에 관련된 일은 달라. 위즈는 바른의 백성이고, 나의 친구이며, 그대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은 두고 볼 수 가 없어."
세렌이 일어났다. 메디아는 그런 세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습니다, 세리나 바른. 당신에게 지적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그대의 눈빛에는 살기가 어려있다. 냉정한 상태라고 자신을 속여봐야 그대에게 좋을 것이 없어."
"그럼 어쩌라는 건가요."
메디아가 세렌을 노려보며 말했다. 깨진 얼음의파편처럼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셸라 소크타리에스는 리베른을 배신한 자.그배신 때문에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일족도, 그녀의 가신도, 소크타리에스가 수호하던 영지의 죄 없는 백성들도.
······그리고, 하유마저도."
메디아가 아랫입술을 비짓 깨물었다. 그리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정말로 저를 친구로 여기고 있나요?"
"······물론, 이에요, 메디아."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냈다. 그러자 메디아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는 방해하지 말아줘요. 부탁이에요, 위즈······."
그리고, 메디아는 천천히 열람실을 빠져나갔다.
끼이익, 탁.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까지 나는 한 발자국도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문이 완전히 닫혔을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지독한 살기였어."
세렌이 컵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리고선 내게 컵을 건넸다.
"아라트 잎 차야. 긴장을 풀어주지. 그대에게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요, 세렌······."
컵을 받아들어 홀짝였다. 따뜻한 차가 온 몸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
말 없이 한참동안이나 차를 마신 후, 어느정도 진정한 나는 세렌을 올려다보았다.
"세렌."
"······그래, 위즈."
"세렌은 소크타리에스 가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세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컵을 내려다놓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세렌에게 다가가 말했다.
"알려줘요."
"······위즈. 자세히는 나도 알지 못하는 일이야."
"어째서 루아가 리베른 사람들에게 멸시받는지 알려주세요. 답답해요. 모르는 채로 있다간 숨이 막혀버릴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세렌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뺨을 한 차례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에 물기가 조금 묻어나왔다.
"그래."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시아의 아티팩트······ 그대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세렌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현자 아이시아가 만들어 낸 아홉 가지 아티팩트. 본래 그것들은 리베른에 내려오는 국보였어. 하지만 리베른에서 바른이 독립해 나올 때 그 중 네 개를 가져가, 리베른에 다섯 개, 바른에 네개의 아티팩트가 전해져 내려오게 되었지."
세렌이 찻잔을 들어올려 입안을 적셨다.
"아이시아의 아티팩트는 그 중 하나만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어도 세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물건이야.그 만큼 강력한 비보이고, 그렇기에 바른과 리베른 양 국이 지닌 힘의 균형을 조절하는 역할도 맡고있지.
그리고 그 중 하나는 리베른의 북서쪽과 맞닿아있는 아이시아의 숲 경계를 지키는 데에 이용되고 있었어."
아이시아의 숲.
알고있는 지명이 나오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자 아이시아가 대악마 나엘을 봉인해 놓은 대륙 북쪽의 광대한 삼림이자, 대륙을 통틀어서 가장 위험한 마경. 동시에 백합황녀 후반부의 주요 무대 중 하나였다.
"응보의 망토, 판데로스. 그것은 경계를 뒤덮는 결계를 유지하기 위한 아티팩트였지. 그래서 판데로스의 관리는 아이시아 변경공이 대대로 맡고있는 중요한 역할이었어.
그리고 6년 전에 판데로스의 관리를 맡고 있던 자가 바로 셸라 소크타리에스의 아버지인 도클라비오 소크타리에스 변경공이었다."
세렌이 마침내 소크타리에스 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