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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10) (32/86)



〈 32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10)

메디아와 헤어진 나는 터덜터덜 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메디아는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따라가면 절교라는 메디아의 선언을듣고서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점심을 굶으면 건강에 안 좋은데.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위즈?"

식당의 입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세렌과 마주쳤다.
세렌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엑스레이를 찍는  마냥 나를스윽 훑는 그들의 시선에 살짝 난감해졌다.

"이제 밥을 먹으려고?"
"네, 세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렌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경악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훑는 것을 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어 하는 눈빛을 띄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과 세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나를 세렌이 잡아끌었다.


"마침 잘 됐군. 가자, 위즈."
"네? 어, 세렌? 어어어?"

세렌이 모여있던 인파를 뚫고 나를 잡아끌고갔다.
그들의 시선이 몸 이곳저곳에 꽂혀 고슴도치가 된 느낌이라,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고맙다, 위즈. 그대 덕에 난감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어."

후미진 곳의 탁자 위에 세렌이 식판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포크를 집어들며 세렌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였어요?"
"귀족가의 자제들이야. 후우, 옛날에 처음 사교회장에 나간 기분이어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세렌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요."

내가 포크를 입에 넣으며 말하자, 세렌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웃었다.


"세렌이 아니야, 위즈. 그들은 황녀 세리나 바른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이들이지.
······그런 그들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워. 이 곳에서 나는 황녀가아니니까 말이야."
"황녀라는 직함이 없더라도 세렌은 충분히 인기 많을걸요?"


예쁘지, 착하지, 멋있지, 능력있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요?

음, 음. 고개를 끄덕이며 스튜를  먹었다. 전분덕에 걸쭉하면서도 텁텁함이 없어서, 목넘김이 굉장히 좋은 스튜였다. 중간중간에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들의 상쾌함도 기분 좋았고.

"그래. 차라리 황녀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나를 향해 세렌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하비셜 본관의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 '호프 우라'와 '호프 바라'. 통칭 배움의 나무라고 불리는 두 거목은 왠만한 고층빌딩보다도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어, 작은 산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런 두 그루의 사잇길에는 축구장만 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하비셜 뒤편에 흐르는 물을 끌어와 만들어진 연못과 연못 위를 지나다닐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나무다리. 온갖 조각상이 설치되어있는 돌무지 구역과 나무 수십그루가 나열되어있는 산책로까지.

오늘의 오후수업은 3시부터였다. 그래서 시간이 남은 나와 세렌은 그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세렌. 메디아 말인데요······."
"윽."

그리고, 고민을 털어놓으려는데, 세렌이 얼굴을 굳혔다.

"······세렌?"
"아니, 아니다."


세렌이 자꾸만 시선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어, 세렌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메디아, 리베른."


세렌이 탐탁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어."
"메디아가요······?"
"그래. 나름 신경써서 보인 걱정을 온갖 비웃음으로 되돌려주더군. 정말이지, 호의를 그런 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 봤어."

세렌이바닥에 있던 돌을 살짝 걷어찼다.작은 조약돌이 저 멀리 하비셜의 북쪽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뭐지, 내가   본건가?

하늘 끝까지 날아간 조약돌을 아연실색하며 바라보았다. 결계를 뚫고 하늘 호수까지 날아간  같았다.


조약돌이 보이지않게 될 시점, 세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어젯 밤에 유난히 틱틱대었던 이유는 짐작이 가."
"이유요?"
"뭐라고 할까. 그대에게서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할까?"
"배, 배신이요? 제가요?"

깜짝 놀라 세렌을바라보았다. 그러자 세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소크타리에스 가의 아이를 감쌌던 것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던 모양이야. 자신의  따윈 없었다며우울히 중얼거리는 걸 들었으니 아마 틀림 없겠지."
"아······."
"위즈. 그대가 소크타리에스 가의 일에 관여하고 싶다면 조심 해야 해. 메디아 리베른의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 그녀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그대의 의견을 밀어붙이려 한다면 파국에 이르고 말 터."

무거운 말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땅바닥을 내려보았다. 그러자 세렌이 표정을 풀고 미소지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대가 이 일을 멋지게 처리할 수 있을거라 믿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열심히 노력 해야죠. 고마워요, 세렌!"
"그대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세렌이 상쾌한 웃음을 내보였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흔들릴  같았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잡을 수 있었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수업은다름아닌 도덕 시간이었다.

"하스타!"

하스타와 같이 듣는 수업이기도 했다.


"안녕, 위즈······ 흐아암."
"자다왔어요?"
"응. 점심시간이 길어서 조금 낮잠자다 왔지."


하스타가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꾸벅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런 하스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기, 오늘 루아는 괜찮았어요?"
"응? 아, 그냥 그랬어. 너만 찾던데?"
"그, 그래요."
"걱정은 하지 마. 점심도 먹였으니까······ 아니, 그런데 내가 어쩌다  애 보모가  것 같지?"
"고마워요~!"
"그런 표정 지으면 푸념하기 힘들어지는데."


하스타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내 뺨을 양 손으로 잡았다. 그러더니 볼을 잡아 늘리기 시작했다.


"하, 하슈타아?"
"자꾸만 나한테 뭔가 일을 시키는 입이 요 입이더냐. 에잇, 에잇."
"그, 그먀햬여!"
"벌이야. 벌로 30초 형에 처한다!"
"으에아우!"




"30초만 한다면서요······."
"아니, 하다보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늘어나지는 않았어요?"
"멀쩡해, 살짝 빨개진 것 빼면.
······아니, 살짝 부었나?"
"부었어요?!"
"물론 농담이지."
"하스타, 나빠요."
"맛있는거 한 번도 안 쏜 위즈가  나쁜걸?"

으으.
하스타를 살짝 흘겨보았다. 하스타는 그런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하스타는 조금 더 귀여웠는데. 짖궂지도 않고."
"아니, 아무리 담대한사람이라도 황녀님 사이에  있으면 의기소침해질걸. 네 쪽이 특이케이스란거 잊지 마?"
"황녀님들 사이에서 어떻게 웃지 않을 수가 있어요?"
"보통은  그런다니까."

하스타가 고개를 으쓱거렸다.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오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나는 하스타에게서 시선을 돌려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발까지 닿는 초록색 머리카락과 온화한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
─어라?


"라, 라이하빗 교수님?"
"몰랐어, 위즈? 도덕 시간은 라이하빗  께서 맡고 계시잖아."
"하지만, 그럼 다른 교실은요?"
"그 곳도 라이하빗 님께서 강의하실거야. 분신마법이라고 하던데,  룸메이트가?"
"도덕과목은 모든 신입생들이 같은 시간에 듣는 수업 아니에요?"
"그렇지."
"그럼 대체 분신이 몇 명인거에요······?"
"학과 하나 정한다고 시간도 멈추는 분 이잖아. 이런 것 정도야 뭐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어, 그렇긴 하네요."


왠지 모르게 수긍하며 라이하빗을 바라보았다. 라이하빗은 학생들을 한 번 스윽 훑더니, 입을 열었다.

"『도덕 정신 이해』과목의 강의를 맡은 라이하빗 케런트 입니다. 반가워요, 모두들."

선연한 미소가 다가왔다.


"마법의 삼요소는 상상력과 구현력, 그리고 마력이라고 하죠."


세상에.


'하, 하스타. 이런 수업 들어본  있어요?'
'아니?!'

하스타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의실이 사라져 있었다. 단지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고, 내가 있는 공간은 별이 수놓아져 있는 밤하늘이었다.


라이하빗은 그런 밤하늘의 중앙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강의를 계속하고있었다. 허공에 필기를 하는 수업은 몇 번 들었지만, 아예 강의실 전체를 바꿔버리는 수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여러분. 마력이란무엇일까요?"


라이하빗이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높이 들어올렸다. 팔을 휘감으며 녹색의 아늑한 기운이 올라가, 손바닥 위에 초록색 안개를 만들어내었다.

"타고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라이하빗은 그 쪽을 바라보며 한 번 미소를 지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사람이  번에 쓸 수 있는 마력의 부피는 타고나는  입니다."

라이하빗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던 안개를 흐뜨러트렸다. 축구공 정도의 안개가 생겨났다.


"누군가는  정도 부피의 마력을 내뿜을 수 있고."

다시 한 번 라이하빗이 안개를 흩어놓았다. 안개가 터지듯 부풀어올라, 우리를 모두 감쌌다.

"누군가는  정도 부피의 마력을 내뿜을 수 있죠."


라이하빗이 손을 움켜쥐자, 우리를 감쌌던 마력의 안개가 일시에 사라졌다.


"한 번에 내뿜을 수 있는 마력의 부피는 재능의 영역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또한 수련할 수 있는것도 아니에요."

언뜻 절망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마법과의 학생들에게 마력은 태어날 때 부터 정해져있다고 말하는 그의 말은 비정해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라이하빗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마력이라는 요소는 완전한 재능의 영역일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라이하빗이 다시 질문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많은 대마법사들이, 단지 재능만으로 그 경지에 도달했을까요?"

라이하빗은 다시금 초록색 안개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 안에 안개를 응축시켰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 입니다."


라이하빗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에서 응축된 마력의 안개는 선명한 초록색 빛을 띄고 있었다. 아까의 옅은 안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번에 내뿜을 수 있는 마력의 부피는 재능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마력의 밀도는 재능의 영역이 아닌 수련의 영역이에요."

라이하빗이 자신의 손 안에 있는 마력을 더더욱 응축시켰다. 마침내 구슬만해진 마력덩어리는 놀라울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어, 어두웠던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라이하빗은 오른손에 구슬을, 왼 손에 흐릿한 마력 안개를 띄워놓았다.


"부피는 왼손의 마력안개가 훨씬 크지요. 하지만, 담겨있는 마력의 양은 오른손의 이 작은 구슬이 훨씬 많습니다."

라이하빗이 구슬을 위로 던져터뜨렸다. 오른 손에 있던 마력의 안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양의 마력이 뿜어져나왔다.

"그래요. 아무리 자신이 내보낼 수 있는 마력의 부피가 작다고 해도, 마력의 밀도를 높여 내보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강력한 마법사가  수 있습니다."


멍하니 라이하빗을 바라보았다. 집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공을 수놓으며 다채로운 빛을발하는 그의 설명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아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가 가진 마력의 밀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모두가 숨을 죽인  라이하빗을 바라보았다. 라이하빗은 그런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 날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입에 담았다.


"마력의 밀도를 높이는 건 여러분의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신념을 가진 이의 마력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마력보다 더 높은 밀도를 가지고, 마찬가지로 행복한 사람의 마력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마력보다 높은 밀도를 가지게 된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시간을 함께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마음가짐을 함께 만들어나가기 위해서에요. 여러분 스스로의 신념을 세우고, 행복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죠.


여러분이 하비셜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라이하빗이 미소지었다.


그의 말에 문득 메디아와 루아가 떠오른 것은 어째서일까.


모르겠다.  사람이 모두 행복했으면 하는 내 마음 때문일까. 확실하지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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