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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11) (33/86)



〈 33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11)

"이거 진짜 맛있어, 위즈."
"맛있게 드세요, 하스타······."


리네스트의 상업지구 3번길, 일명 간식거리.

케잌, 빵, 과자와 같은 달달한 것부터 시작해서 씁쓸한 찻잎과 전병까지, 웬만한 종류의 간식이 모두 모여있는 곳이다. 나는 그 곳에서 하스타에게 공물을 바치고 있었다.

하스타가 과자를 베어물었다. 간식거리에서도 꽤나 유명한 제과점의 과자였다. 알록달록한 천연색과 딸기맛 크림이 들어가 있는 마카롱이었는데, 내 용돈으로 사기에부담될 정도로 비싼 제품이었다.

"그, 그거,  일주일  용돈이니까······."
"고맙게 먹을게~"


냠.
하스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마카롱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일주일  용돈이 사라져간다.

맛있는거 사먹고 싶어서 모아둔 돈이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아까워  때가 아니었다. 나는 마카롱을  안에서 녹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스타에게 말했다.

"고민, 들어주실거죠?"
"먹은게 있으니까 보답은 해야지. 어디 말 해봐, 언니가 다 들어줄게."
"언니요?"
"아무튼."

하스타가 고개를 으쓱 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거운 입을 열어, 대략적인 상황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메디아와 루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스타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생각보다 너무 무거운 고민인데······?"
"제 일주일 치 용돈을 꿀꺽 했으면서 사소한 고민 하나 들어주고 끝낼 생각이었어요?"
"열 다섯짜리 여자애 고민은 보통 그렇게 심각하지 않거든? 뭐, 연애상담이라던가 학업 고민이라던가 그런 건 줄 알았지······."

하스타가 난감한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었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스타에게 물었다.

"고민상담, 안  주실 거에요······?"
"아니, 해 주긴 해야지. 받은 게 있으니까. 흐음······."

하스타가 길게 침음을 내었다. 나는 그런 하스타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명쾌한 해답을 바라고 고민상담을 요청한 건 아니었다. 이 고민에 대한 하스타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하스타에게 일주일 치 용돈을 바치게 된 것도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참동안을 고민하던 하스타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위즈."
"네?"
"조금 근본적인 걸 하나 묻고 싶거든?"


하스타가 조금 망설이는 듯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스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 사이를  좋게 만들 필요가 있는거야?"
"······네?"


하스타의 질문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스타는 내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으쓱거렸다.


"아니, 그렇잖아. 두 사람이 위즈의 친구라곤 해도, 두 사람끼리도 꼭 친구가 될 필요가 있냐는 거지."
"하, 하지만요, 하스타."


당황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하스타는 그런 나를 제지하며 말했다.


"나, 내 밑에 동생이 다섯  있다?"
"그래요?"
"응. 워낙 부모님 금슬이 좋으셔야 말이지."


하스타가고개를 저으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둘째랑 넷째 사이가 엄청 안좋아. 서로를 웬수취급하거든. 3년 전에 대판 싸운 뒤로 지금까지도 그 상태야."
"화해시켜야 하는  아니에요?"
"으이그. 너는 어떻게든 걔들을 화해시키려고 하겠지."


하스타가 내 머리카락을 돌연 헤집어 헝클어트렸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손길에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으아아, 하지만 싸우면 싫잖아요······!"


내가 어지러운 상태 속에서 항변하자, 하스타가 어쩔 수 없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사람 사이에는 상성이 있어, 위즈."
"상성이요······?"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하스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질해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너야 뭐 누구하고도  맞을 성격이지만······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친해지느니 죽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거든. 선천적으로 상성이  맞는 경우도 있고, 후천적인 이유로 그런 경우도 있단 말야?"


하스타가 머리카락에서 손을 뗐다. 갈색 눈이 부드럽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제삼자가 억지로 붙여버리려고 하면 역효과만 나더라구."
"그렇지만요, 저는 메디아의 친구이고, 루아의 친구이기도 한데······."
"하지만  둘 간의 관계에는 인연이 없잖아."


하스타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떨궜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게 나쁜걸까요."
"나쁜건 아니야. 뭐, 모두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세상이 끝내주게 평화롭겠지.
그런데 위즈, 세상이 그렇게 행복하게 돌아가는 것 만은 아니잖아. 사람들이 그런 관계를 가질 수만 있었다면 대륙이 리베른과 바른으로 갈라지지도 않았을걸?"

나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그러자 하스타가 너무 심했나 하고 중얼거리며 볼을 긁적였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미운정이 들면 사이가 원만해지기도 해. 희망 없다고 하는게 아니라.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이야기! 너무 의기 소침해  필요는 없어, 위즈."
"그럴까요······."
"그런 사람들을 친하게 지내게 하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메디아 황녀님이 가진 응어리를 풀기 위한 시간일거고."

하스타가 말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론에 가까운 말이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하스타."
"풀 죽으면 안된다? 위즈는 웃을 때가 제일 귀엽거든."
"장난치는거에요?"
"아~백합은 언제 피려나~"

내가 뾰루퉁하게 말하자, 하스타가 딴청을 피우며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뭐에요."


피식 웃으며 하스타에게 투정부리듯 말했다. 그러자 하스타가 한쪽 눈을감으며 장난기 있는 말을 던졌다.


"꽃나무가 꽃을  피워서."
"진짜, 이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위즈가 사람을 잘 못 본거겠네~"


하스타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과장스러운 몸동작이어서,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저녁시간.
간식거리에서 돌아와 기숙사 문을 열자, 파란색 털뭉치가 튀어나와 나에게 안겼다.

"위즈, 위즈!"
"루, 루아?!"
"위즈를 기다렸어. 위즈의 수업은 진작에 끝났을 텐데 오지를 않아서, 언제 오나 하고······."

루아가  목덜미를  팔로 휘감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뺨이 노을빛으로 묻어있었다.


달콤새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루아, 일단 이것 좀 놓고······."
"싫어."


루아가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  뺨에 자신의 얼굴을을 가져다대었다. 살짝 부풀어올라있는 따뜻한 뺨이 나의 볼을 간질였다.


"오늘은 위즈랑 같이 듣는 수업이 없었는걸······. 떨어지고 싶지 않아."
"안 떨어질테니까, 좀 놔 줘요······!"
"싫어어, 이대로 있을래······"

루아가 칭얼댔다. 귀엽긴했지만,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루아를 떼어내려 했다.
그러기를 1분 정도 지났을까.

익숙하고, 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서늘히 울렸다.

"소크, 타리에스."


루아의 몸이 흠칫 하고  차례 들썩였다. 그러더니 몸을 떨기 시작하며, 나를 안고 있던 팔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뭘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루아의 파란색 머리카락 사이로 노을이 지는 기숙사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그 희미한 공간에, 노을 빛을 머금은 소녀가, 석양보다도 붉은 눈을 차갑게 빛내며 서 있었다.

루아의 눈동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선 내 품에 머리를 묻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시야갸 드러나, 소녀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세계가 얼어붙은 것 처럼 멈추었다. 들이쉴 공기조차 굳어버린  같아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다.

"위즈에게 뭘 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소크타리에스."


루아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파들거리는 손으로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메디아."
"위즈. 위즈 율릿.당신은, 대체,  이런 모습을······."

일순간 나를 짓누르던 공기가 풀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비탄이 대신 채웠다. 얼어붙었던 공기가 녹았지만.  대신 이번에는 파도 속에 잠겨버린 사람 처럼 숨이 막혔다.

"나를 비웃는건가요? 어째서, 왜, 당신이 보란 듯이 그 곳에 있는 거에요?"
"그게 아니에요, 메디아. 저는─"
"이미 한  소중한 사람을 빼앗겼어요. 두 번이나 빼앗기고 싶지 않아."

메디아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루아는 주저앉은 채 떨고 있었다.

"위즈. 말해줘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해요?"

메디아가 가슴에 손을 얹은  소리죽여 절규했다.
그리고 나는─


Bad ending 2. Wrong choice



"메디아가, 루아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해서는 안 될 말을 입에 담아버리고 말았다.

"그, 런가요."


메디아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에 손을 올리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위즈, 위즈,위즈."
"메디, 아······?"

불안한 눈빛으로 메디아의이름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메디아는 그런 나를 텅  눈동자로 바라보며,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담았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어요."
"메디아, 저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도망가라고, 죽고싶지 않다면 어서 빨리 이 곳을 벗어나라고.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메디아에게서 뿜어져나온 마력이 내 발을 묶었기 때문이었다.

"메디아, 그러지 말아줘요······."
"어째서요?"
"제가. 무서워서······."
"제가 멈추길 바라고 있나요? 당신의 바램을 들어주길 원했나요?"

메디아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와 내 심장 고동이 겹쳐 불안한 화음을 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제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나요, 위즈 율릿."
"저, 저는, 메디아, 그게······!"


공포심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고개를 저었다. 나를 의지하고 있던 루아가 힘없이 쓰러졌지만, 도저히 루아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죽는다.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 도망칠 수가 없어서─


"간단한 바램이었는데. 정말로, 저는 그것하나면 충분했는데."
"미안해요, 메디아, 잘못했어요······!"


메디아가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감히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할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신이, 그저, 저를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했을 뿐이었는데."


 기억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어둠만이 보였다.





"모르고 있던 거에요. 저를 소중하게 여겨주던 사람은 이미 진작에 죽어버렸는걸."

메디아 리베른은 복도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주위를 검은 마력이 잠식했다. 탐욕스러운 검은 마력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분해하고 있었다.
형체도 없이 부유할 뿐인 마력이 삼키고 있는 피는 옅은 선홍빛을 띈 채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 때, 메디아 리베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던 소녀의 머리색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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