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12) (34/86)



〈 34화 〉4. 루아 소크타리에스 (12)

메디아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묻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길을 잃은 아이가 어머니의 손길을 찾는 듯 애달픈 목소리였다.


나는 메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속눈썹이 물기를 머금은채 파르르 떨렸다.

마음만 같다면, 루아와 사이좋게 지내달라는 부탁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메디아가 상처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메디아가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메디아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메디아."
"······그게 무슨,소리, 에요."

메디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언뜻 떨고 있는  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공포마저 깃들어 있었다.


"저는 메디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구요······?"


메디아가 내 대답을 되뇌었다. 그리고 나선 매섭게 눈을 치떴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신이 배신자의 딸의 손에 넘어가는  보고만 있으라는 건가요?!"
"메디아."

짓눌릴 것 같은 살기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싫어요. 빼앗기고 싶지 않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메디아가 가만히 있어도저는 도망가지 않아요."


그와 함께 미소를 지어보였다.

메디아가 내 말을 듣고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이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소크타리에스와······."
"맞아요. 저는 루아와 친구에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메디아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미 당신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메디아와의 친구사이를 깨트리고 싶지도 않아요."

나는 허리를 숙여 주저앉아있는 루아를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리고 메디아에게 다가갔다.


"······위, 위즈."

메디아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두 걸음을 걸어나갔다.

"왜 다가오는 거에요······."

메디아가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세 걸음을 걸어나갔다.

"위즈, 오지 말아요······."

애처로웠다.
언제나 당당하던 붉은 눈이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미지에 대한 공포였다. 그녀는 내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와 함께 메디아가 복도의 끝에 다다라, 벽에 등을 부딪쳤다.
작은 신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이상나와 그녀의 사이는 벌어지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는 메디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메디아의 바로 앞 까지 다가간 나는, 떨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메디아. 저는 정말로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위, 즈······?"
"메디아의 붉은 눈이 좋아요. 부드럽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좋아요. 똑똑한 머리가 좋아요. 언제나 당당하던 메디아가 연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는, 사랑스러워서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에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백합황녀에서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을 입에 담았다. 직접 그녀를 만나고서 느꼈던 감정을 마음에 전했다.

"이런 제가 메디아의 곁을 떠나겠어요?"
"하지만, 위즈,"


메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런 메디아의 허리를 껴안아, 그녀를 아래에서 올려다보아 눈을 맞추었다.

"메디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자리에 가만히 서서, 저를 지켜봐주세요."
"소크 타리에스는, 배신자······."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루아를 끝까지 배신자라고 생각하시겠다면, 메디아의 뜻대로 해요."

아래에서 올려다 메디아는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얼굴을 고통에 젖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저를 바라봐주세요."
"······."

메디아가 울음을 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메디아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따뜻한 뺨이 손에 닿았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뛰어다닐 저를  주세요. 정말 열심히 노력할게요. 메디아의 마음속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더 이상 소크타리에스에 관한 이야기를 듣더라도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제 모든 힘을 기울일게요."
"위즈······."

손가락 사이로 이슬이흘러내렸다. 나는 그녀의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 만일, 조금은 괜찮겠다고, 아주 조금 정도는 나아졌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나와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걸로 되는 건가요? 그것 만으로도 위즈를 잃지 않을 수 있어요?"


메디아는 자신의 가슴 앞에 모아두었던 손을 새하얗게 질리도록꼭 쥐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저는 메디아의 친구니까."


그 말과 함께, 나는 메디아의 눈 앞에 손을 모았다.

그녀에게 줄 마음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나의 마음이 닿길 바랬다.
그리고, 그곳에, 내 진심을 담았다.

"정말로 좋아해요, 메디아."


하얀 백합이 그녀의 눈 앞에서 피어올랐다.




내가 피어올린 환상을  메디아가, 그것을몇 차례 매만지더니 실체화 시켰다.
환상 마법을 실체화시킨다니, 대체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한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메디아는 그 것을 가지고 내 앞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메디아를 쫒아갈 수는 없었다.복도에 주저앉은 채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루아를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루아. 괜찮아요?"
"위, 즈······. 나, 위즈의 친구야······?"
"전에도 그렇게 말 했잖아요. 루아는  소중한 친구─ 으으읍?!"

루아가 나를 꼬옥 안았다. 처음에는 굉장히 떨리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떨림이 멎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위즈도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한참동안이나 나를 끌어안고 있던 루아가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조금 간지러워서 등줄기가 미약하게 휘었다.


"고, 고마워요, 루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방으로 들어가지 않을래요? 복도에서 이러고 있는거, 좀 부끄러운데······."
"응, 같이 자자."
"······저녁도 안 먹었는데요? 아, 꺄아악?!"

루아가 나를 끌고 방으로들어갔다.
 차이가 너무 나서, 저항할 수가 없었다.
무력함에 눈물을 훔쳤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오늘의 수업은 무려 기초체력단련.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루아를 이끌고 대운동장으로 나갔다.

대운동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꾸만 질질 끌렸다. 가고싶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가야 했다.

왜냐하면, 기초체력단련 시간은, 메디아와 루아가 함께 수업을 듣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사이를 조율해야 했다. 좋아.  번 해보자. 메디아의 앞에서도 다집했었으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나는 대운동장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내려갔다. 수십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는 그들의 중앙에는 역시나 메디아가 있었다.  날아다니기는 싫어서, 이번에는 곧장 메디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메, 메디아?"
"왔어요, 위즈?"

메디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뒤를 따라오던 루아는 그 모습에 식겁해  뒤로 숨었지만, 메디아는 전혀 개의치 않아하고 있었다.

뭔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더 쾌활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메디아의 왼쪽 가슴에 작고 하얀 꽃장식이 달려있었다.

"브로치에요?"
"네. 위즈가 어제 준 걸 조금 손봤어요."

메디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주위의 시선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예쁘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메디아가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브로치, 브로치라. 그러고 보면 세렌이 그거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해준 것 같긴 한데······.
기억이  나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디아의 왼쪽에섰다. 루아는 그런 나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내 왼쪽에 자리했다.


"······배신자."


언뜻,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루아가 몸을 움찔 떨었다. 리베른 출신의 학생들이 이제는 아예 대놓고 루아에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메디아를 발견했다.

"화, 황녀 전하······?"

배신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던 소년이 덜덜 떠는 목소리로 말했다. 메디아는 그런 소년에게  번 싱긋 웃어보였다.

"하비셜에서 쓰기좋은 단어는 아니네요."


순간, 침묵이 학생들사이에서 감돌았다.

"전하, 하지만······."
"전하라는 호칭도 하비셜에서 쓰기 좋은단어는 아닌  같구요."

다시 한 번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메디아는 그런 상황에서 말을 이었다.

"분명 곳에는 리베른의 배신자가 있습니다."

루아가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나는 메디아를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걸 굳이 겉으로 내보이는 행동은 리베리쉬로서 부끄러운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메디아 님."


이번에는 다른 소녀가 질문했다. 메디아는 그녀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소크타리에스 가의 배신은 리베른의 치부. 하비셜에서 리베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여러모로 부끄러운 행동인  같더군요. 하비셜에 있는 바리쉬들에게 저희의 치부를 알리는 꼴이 되어버리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명예로운 리베리쉬 여러분?"
"······그건."

소녀가 입을 다물었다. 메디아는 그런 소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빠른 사람이군요. 그런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요."

메디아가 눈웃음을 짓자, 질문을 했던 소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조금의 웅성거림과, 작은 불만이 보였으나, 메디아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메디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허리를 굽혀 내 귀에 속삭였다.


"아직 소크타리에스가에 대한 응어리가 풀린  아니에요."
"메디아······?"

메디아가 일선을 그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주세요, 위즈. 언제까지고 당신의 노력을 지켜볼 테니."


메디아가 허리를 펴 앞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메디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쪽 눈을 감은  요염하게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건 당신이 선물해 준 꽃에 대한 보답이랍니다."


왼쪽 가슴에 소중히 붙어있는 흰 브로치를 가리키며, 메디아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진한 백합 향기가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위즈, 꽃이이······!"

착각이 아니었나.······? 으, 하여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