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5. 어쩌면 메인빌런 보다도 더 흉악할 (4)
"상대가 누구에요."
"네?"
"말 해요."
메디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추궁하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가 왜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메디아에게 상담을 하나 했을 뿐이었다. 연애상담을 하고 싶다는 한 마디의 말을 건넸을 뿐이었는데.
"메, 메디아?"
메디아가 공기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을 발했다.
"어떤 남자에요."
"그게요, 무예과의 샤오리드 룽 선배님이랑요······."
"그렇군요. 바른의 룽 공작가인가요······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할게요, 위즈."
메디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있지 않았다.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메, 메디아. 뭐해요?"
"만남이 기대되네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약점이라뇨?"
"걱정 말아요, 직접적으로 상처를 입히거나 하지는 않을 거에요. 바른의 공작 가는 아무리 저라 해도, 아니 아바마마라 해도 쉽사리 죽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거든요."
메디아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비록 나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기까지 담겨있는 눈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나는 당황한 채 메디아의 손을 잡았다.
"메, 메디아? 잠깐만요. 잠깐 기다려 봐요."
"무슨 일인가요, 위즈?"
메디아가 생긋 웃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색 머리카락이 붉은 빛을 머금은 채 찰랑였다.
그 붉은 빛이, 순간 핏빛으로 보인 것은 왜일까.
등줄기에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륵 흘렀다.
"연애상담 해달라고 했잖아요, 왜 그렇게 흉흉한 거에요······?"
"위즈가 마음에 둔 상대가 어떤 분일지 너무나도 기대가 되어서 그렇답니다."
전혀 기대하고 있는 눈빛이아니었다. 나는 메디아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오한을 느끼다, 문득 이상함을 느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착각하고 있는게 있는 것 같은데요, 메디아?"
"착각이라뇨, 위즈?"
메디아가 다소곳이 손을 모아 자신의 앞에 놓으며 되물었다. 나는 그런 메디아에게 말했다.
"그니까요, 제가 샤오리드 선배님을 좋아한다는게 아니라, 샤오리드선배님을 커플로 만들고 싶은 거거든요."
"커플이요?"
메디아가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샤오리드 선배님이랑 어울리는 선배님이 한 분 계신데, 두 분을 커플로 만들어드리고 싶어져서요."
"······그런가요. 위즈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나요······."
메디아가 한숨을 내쉬듯 중얼거렸다. 뭐라고 할까, 안심한 것 같은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나는 그런 메디아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메디아랑 세렌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데요?"
"그, 그래요?"
메디아가 순간 얼굴을 붉히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눈에는 생기가 돌아와,더 이상 무섭거나 하지 않았다.
입을 오물거리고, 왼쪽 가슴에 장식되어있는 브로치를 몇 차례 매만지던 메디아는 이내 나의시선을 살짝 피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메디아가 물었다.
"그······ 정말인가요, 위즈?"
"네?"
메디아는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 마다 붉은 눈을 내리깔며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메디아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제일 좋아한다고, 저기, 그게."
"그건 처음부터 그랬는걸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메디아가 다시 한 번 움찔 몸을 떨었다. 새햐얗던 메디아의 귀가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열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메디아. 열 있어요?
"아니, 아니에요. 그냥,그······ 기뻐서."
"네?"
"으응."
내가 되묻자, 메디아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같이 식사하며 이야기할까요, 위즈?"
메디아가 부드럽게 나를 이끌었다.
"······에이트, 요?"
"네. 로이아 에이트 선배님이요!"
입가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닦아내던 메디아가 일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로이아 루드 에이트······ 정말로 그 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메디아도 아는 분이셨어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메디아는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아무리 당신이 바리쉬라지만, 정말로 에이트 가를 모르는건가요?"
"유명해요?"
"바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나요? 여섯 기사의 이야기라던가, 푸른 갈기를 지닌 기사레오릭에이트의 이야기라던가······."
"처음 들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백합황녀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에이트라는 이름은 백합황녀의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서도.
그러자 메디아가 잠시 고민하더니, 레모네이드로 입을 적신 후 말했다.
"에이트 가는 500년에 육박하는 긴 시간동안 리베른을 보좌한 가문입니다. 비록 주춤할 때도 있었지만, 현재 에이트 가는 네 대동안 공작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리베른 최고의 명문이에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메디아가 고운 미간을 좁혔다.
"메디아와 사이가 안 좋나요?"
"페트릭 에이트 공작과는 원만한 관계입니다. 다만 그 아들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뿐이에요."
아들?
뭔가가 어렴풋이 기억나려 하고 있었다. 나는 메디아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데네스. 데네스 루드 에이트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메디아가 한숨을내쉬었다. 악연을 말하는 메디아의 얼굴엔 근심이 한가득 묻어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듣고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한 충격에 빠졌다. 들고 있던 포크를 놓칠 정도였다.
"위즈?"
메디아가 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손이 미끄러져서······."
"조심해야죠. 흘릴 뻔 했잖아요."
메디아가 떨어져있는 포크를 주워 가지런히 정리했다. 하지만 나는 메디아에게 고마워하지 못했다. 감사를 전할 겨를이 없었다.
생각났다.로이아 에이트와 데네스 에이트 남매.
그들은 백합황녀에서 몇 번 얼굴을비추었던 등장인물이었다. 데네스는 특수과에 재학하며 메디아와 몇 번 마찰을 일으켰던 조역이었고, 로이아는 데네스의 등장 때 잠깐 모습을 비추었던 단역이었다.
그제서야 에이트라는 성이 익숙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백합황녀에 한 두번 나온 것이 전부인 로이아와는 다르게, 데네스는 나름 백합황녀에서 비중이 있는 몇 안되는 남캐이기 때문이었다.
백합황녀의 첫 번째 악역, 데네스 루드 에이트. 비록 루아정도 되는 메인빌런급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세렌에게 불손한 언행을 내뱉으며 건방지게 굴었던 꼬맹이 캐릭터였다. 1년이 채 가기도 전에 세렌에게 참교육을 당한 후 드래곤볼의 피콜로 마냥 설명역 및 감탄사 재생기가 되었었지.
하여간,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분위기 사이에서간간히 개그를 맡기도 했던 캐릭터가 바로 데네스였다.
뭐, 물론 남캐라서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캐릭터는 절대로 아니었지만.
"위즈. 두 사람을 잇는 건 포기하는게 좋을거에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고있는데, 별안간 메디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로이아 에이트는 리베른의 공작가. 샤오리드 룽은 바른의 공작가. 아무리 요즘들어 두 제국 간의 교류가 활발해졌다고는 해도, 제국의 중추가 될 두 사람이 인연을 맺는다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기니까요."
메디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한 쪽의 신분이 낮았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두 사람이 모두 공작가의 자제인 이상, 분명히 분쟁거리가 생길거에요. 소크타리에스 가의 일이 있었던 만큼, 더더욱."
"······그런가요."
생각지도 못한 메디아의 지적에 고개를 떨궜다. 메디아는 그런 나를 보고 미안해했지만 사실을 지적하는 것 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샤오리드 선배님과 로이아 선배님은 하비셜에 있는동안만 친할 수 있을거에요. 물론 그건 저와 세리나 바른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니, 애초에 저희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죠."
"분명히 친해질거에요."
"굳이 그녀와 친해지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저에게는 위즈가 있으니까요."
"메디아와 세렌이 사이가 나빠진다면, 저는 더 이상 두 사람을 안 볼 지도 몰라요."
"위즈?!"
내가 고개를 젓자 메디아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장난이라며 미소를 지으면서도 두사람은 꼭 친해질거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두 사람은 분명히 친해질거에요.꼭이요."
"······세리나 바른의 일은 넘어가죠. 어쨌든 위즈, 두 선배님의 일은 포기하는게 좋을 거에요. 두 분께도그게 좋은 일일거구요. 두 사람 사이에 선후배로서의 정 이상의마음이 깃든다면 틀림없이 졸업 한 후에 남을상처도 커질 테니까요."
"으음······."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