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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5. 어쩌면 메인빌런 보다도 더 흉악할 (5) (39/86)



〈 39화 〉5. 어쩌면 메인빌런 보다도 더 흉악할 (5)

조금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메디아와 산책을 하려고 할 때였다.

[메디아 리베른 양. 세리나 바른 양. 위즈 율릿 양. 세 학생은 호프 바라의 세크 3층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당에 붙어있던 마법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렌과메디아, 그리고 나를 호출하는 목소리였다.

"······호출인가요?"

메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 호출의 이유를 아냐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경험상 학교에서 학생이 호출받는 건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호출 당했을  벌어질  있는 좋은 일을 찾는다면 상장을 받는다던가 하는 일이겠지만, 그건 메디아와 세렌에게나 해당되는말이지 나에게 해당되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상장과는 연이 먼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딱히 별로 달라진 건 없었으니까.

"나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메디아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포함하지 않고 있는 은은한 미소였다.


"메디아는 걱정 안 돼요?"
"후후. 위즈는 걱정이 많네요."

메디아가 살짝 짖궂은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선 가슴에 손을 살며시 얹은  말했다.

"저는 오히려 안심했는걸요."
"네?"
"위즈와 함께 불렸으니 적어도 나쁜 일에 연관된 것은 아니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위즈가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 그래요?"
"진심이랍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메디아가 단언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신뢰가 가득 담겨져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선물상자같아, 굉장히 기뻤다.
과연 내가  신뢰를 받을 사람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괜히 부끄러워지긴 했지만,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은 기분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자, 가요. 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실거에요."
"네, 메디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디아의 뒤를 따랐다.




배움의 나무는 세 단으로 구분된다. 잔가지층인 페스타와 큰가지층인 버드니아, 줄기부분의 세크.
나와 메디아가 승강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세크의 3층. 지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승강기에서 내리자 저 멀리 세렌의 반짝이는 금발이 보였다. 메디아와 나는 그 쪽을 향해 다가갔다.


"메디아 리베른, 위즈 율릿. 맞나?"
"그렇습니다, 교수님."


세렌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남자가 우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푸른 눈동자가 꿰뚫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유클리드, 마법과의 부학과장이다. 따라오도록. 학과장 주재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니 소란은 엄금이다."


나를 길게 응시하던 유클리드가 시선을 거두곤 말했다.
어딘가 차가운 목소리였다.


"마차꾼을 선발한 건 자연과가 아니오? 그렇다면 자연과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지, 어찌하여 학과장 회의를 소집하셨소?"


유클리드의 안내를 받은 우리는 조용히 회의실로 들어갔다. 우리가 앉을 의자는 회의용 원탁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학과장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우리의 귀에 들어왔다. 이 회의를 들어도 되나 싶어 유클리드를 바라보자, 유클리드는 턱으로 원탁을 가리켰다. 집중하라는 뜻 같았다.


"자연과만의 문제가 아니야. 모르는 척 하려는겐가? 마차꾼의 배정은 무예과가 담당하지 않았나. 아무리 자연과에서 마차꾼을 선발했다 한들 무예과의 배정표 없이 어찌 황녀전하가 탑승하신 마차에 손을 댈 수 있었겠는가."


입학식때 잠깐 보았던 자연과의 학과장이었다. 온화한 어조였으나 얼굴은 굳어있었다.


"무예과의 교수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위딜르?"


머리카락을 산발로 풀어헤친 근육남이 위협적인 기운을 뿜어내었다. 아무래도 무예과의 학과장인 것 같았다.


"색출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뜻일세. 마차꾼의 배정표를 볼  있는 자가 유력한 용의자일 테지. 배정표는 무예과의 사무실에 있었을 테니 무예과의 구성원으로 심증이 기울기는 하네만."
"무예과 전체를 우롱할 셈인가, 네놈은!!"


쩌렁쩌렁한 포효가 회의실을 울렸다. 조금 멀리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얼어붙어버릴 정도로 무서운 박력이었다.


"하더 학과장, 언성을 줄여주세요. 위딜르 학과장도 학생에게까지 의심의 화살을돌리는 일은 자제해주시죠. 지금은 교직원들을 추궁하는 선에서 조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혼란을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메디아 학생과 세리나 학생의 말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비셜의 학생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 점은 동의하네. 다만 내 말은 여러 방면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하비셜 행 마차가 탈취되었다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만큼,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겠나."

자연과의 학과장이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우리  명이 호출된 이유를 깨달았다.

입학식 때 벌어졌던 마차 탈취사건. 아무래도 그에 대한 회의를 진행중인 것 같았다.

"문제가 되는 마차를 이끌었던 마차꾼은 현재 혼수상태입니다. 상태가 좋지않아서 기억을 들여다볼 수도 없어요."
"정신조작류 마법인가? 하지만 마차꾼을 세뇌할 정도로 강대한 마력을 지닌 자가 어째서 세리나 학생을 노린 것이지?대현자의 가호가 있는  영웅의 핏줄이 불사라는 사실은 모르는 이가 없을 터."
"율릿 양을 노렸을 수도 있지요."
"백작가의 영애를 노리기 위해 하비셜과 척을 진단 말이오? 범인은 하비셜로 향하는 마차를 탈취했소. 이건 명백히 하비셜에 대한 도전이란 말이오. 율릿 양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감내할 이유가 없소."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침음성이 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그러다 문득 자연과의 학과장이 물음을 던졌다.


"으음······ 현인께서는 무어라고 하셨는가?"

그 물음을 받은 사람은 다름아닌 시하였다. 그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회의를 관망하던 시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분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시던데."
"그러고 보면 마법과에도 중요한 증인이 있었지요? 탈취된마차를 페렐른까지 이끌고 온 6학년 소녀가─"
"학생에게까지 의심의 화살을 돌리지 말라고 한 건 당신이었어, 제노드라."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습니다."


시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공학과의 학과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찌되었건, 자연과와 무예과를 조사해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부디 협조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무예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지."
"마차꾼을 알선했던 상단의 뒷조사를 벌이겠네. 자연과가 할 수 있는 총력을 기울이지."


무예과와 자연과의 학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학과의 학과장이 회의를 마무리지었다.

"다음의 회의가 열리기 전에 범인을 색출해낼  있게 된다면 좋겠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학과장 주재 회의를 종료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자연과의 학과장이 모습을 감췄다. 이어서 무예과, 이어서 공학과 순이었다.


원탁에 시하만이 남았다.

"······어휴, 나 참. 답답해, 답답해."

시하가 한숨을 내쉬며 로브 단추를 풀었다. 얇은 긴팔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시하의 상의는 내복같아보여, 조금 민망했다.


"시하 학과장. 회의를 그런 복장으로 출석한 겁니까?"
"응. 편하잖아? 어차피 로브 입으면 속은 안 보이고."
"공식적인 자리입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
"재미없어, 유클리드."


시하가 고개를 저으며 하늘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스르륵 날아들었다.

"어때, 개판이지?"
"······부르신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학과장님?"

메디아가 살짝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시하는 자신의 흰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한 두가지 질문을 하려고 불렀는데······ 뭐, 솔직히 그건 핑계고, 너희가 당했던 일의 진척이 얼마나 됐나 좀 보여주려고 부른거야. 모르고 있으면 답답할 거 아냐?"
"별로 다친 곳도 없었는데·····."


내가 볼을 긁적이며 쓰게 웃었다. 하지만 시하는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좁히며 내 볼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잡아당겼다.


"하, 하까잔닝?"
"큰일이었다구. 학생의 마차가 하비셜로드에서 이탈된데다가 삼 석의 마수에게 피해까지 입었지. 범인이 만일 세리나 학생의 마차가 아닌 다른 학생의 마차를 노렸다면  일로 이어졌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어.
뒷처리도 큰일이었지. 펄스레이트도 미루고, 쥘이 고생 깨나 하고. ······ 뭐, 무사하니 결과적으론 다행이었지만."


팽 하고 시하가 내 볼을 놓았다. 손바닥으로 볼을 문지르며 시하를 억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 해 봐야 사과 안 할거다 흥.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학생에겐 사과를 할 필요가 없어."

시하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갈래로 내려놓은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얼핏 심술을 부리고 있는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걱정이 느껴졌다. 조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주의를 주는 시하의 모습은 영락없는 선생님이었다.

"고맙습니다, 시하 교수님."
"사과 안 한게 고마워?"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항의하자 시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됐어."
"아얏."

시하가  이마를 한 대 톡 치고는 씨익 웃으며 모습을 감췄다. 유클리드는 그런 시하의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다 우리에게 말했다.

"다음 수업에 들어가도록. 오느라 수고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래······."

세렌과 메디아가 고개를 숙이자, 나도 두 사람을 따라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를 빤히 바라보는 유클리드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차가운 눈빛이라 조금 무서웠다. 유클리드는 내 물음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시하를 뒤따라 모습을 감추었다.




"학과장. 알아차렸습니까."
"뭘 말이야?"

마법과의 학과장실에 돌아온 유클리드가 묻자,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즈 율릿이라는 저 소녀의 마음 속에 결계가 있습니다."
"그거? 응, 알고 있지."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클리드는 그런 시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간섭하지 않으려는 겁니까?"


다시 한 번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몸을 던졌다. 삐걱, 하고 나무의자가 요동치며 시하를 받아들였다.

얼핏 본다면 신입생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을지도.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학과장."
"당연한 이유지. 입학식  라이하빗 님 께서도 확인하신 결계야. 그런 결계를 굳이 건들어야 하겠어?"


시하가 손을 으쓱거리며 말했다. 라이하빗에 대한 신뢰가 물씬 묻어나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클리드는 탐탁잖은 눈으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현인을 너무 의지하는  아니냐는 핀잔역시 섞여있는 시선이었다. 그러자 시하는 혀를 차며 유클리드에게 말했다.


"나도 확인은 해 봤어. 설마 내가 확인도 안해봤겠어?"
"그렇습니까."

유클리드가 탐탁잖은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시하는 그런 유클리드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처음 보는 종류의 결계긴 하더라. 아이시아 님의 아티팩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뭐, 기분 탓이었을지도."
"위험한 것 아닙니까?"
"결계 자체도 위험성이 없고, 결계 안에 있는 것에서도 위험성은 느껴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우리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잖아? 위즈 학생이 결계를 풀어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면 또 모를까. 학생을 가르치는건 좋지만 너무 간섭하는건 또 문제가 되거든."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래주면 좋고~

시하가 손을 까딱이며 책상에 엎어졌다. 유클리드는 그런 시하를 내려다보면서도 조금 석연찮은 듯 팔짱을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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