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1) (42/86)



〈 42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1)

거짓말이었다.

"에이, 거짓말하지 말아요, 하스타."
"거짓말 아니야."

하스타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임이 틀림없었다.

"루아, 아니죠······? 농담하는거죠?"
"······미안해, 위즈."


루아가 시선을 피했다. 그래, 하스타와 짜고 나를 속여넘기려는 것이 분명했다.

"세렌? 세렌.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대는······."

세렌이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었다. 세렌마저 그런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됐다. 그것이 사실일 리가 없었다.


"메디아······?"
"그만 받아들여요, 위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메디아가 차가운 현실을 고했다.

나는 울먹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다. 나는 아직 그녀들이 전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너무나도 끔찍한 사실.


마치 죽음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나의 목을 조이려는 잔인한 진실.

"사흘 후가 시험일리 없잖아요······!"
"지금부터라도 공부하세요, 위즈."
"으앙!"

사흘 후 벌어지는 월말평가.
하비셜에서 치루는 첫 시험이었다.




"그렇지요, 여러분. 시험 준비는  되어가십니까?"
"예에······."

기초마법학개론의 교수인 유고슬레인이 질문하자, 학생들이 기운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고슬레인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하비셜의 학생이었던 만큼 자습을 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흐물흐물 신음을 내뱉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고슬레인이 손짓했다. 교과서가 책상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주문의 기본적인 이용법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주문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학생 있나요?"
"상상력과 염원력을 증폭시키는 수단입니다."
"정확해요, 플롯 양."


유고슬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손가락을 흔들어 자신의 주위에 결계를 만들어내었다.


"주문은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아주 간단한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결계를 친 유고슬레인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선 손가락을 뻗었다.

불길이 솟아났다. 대략 횃불정도의 크기였다.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은 경우, 제 불 마법은 이 정도 크기를 가집니다. 하지만 주문을 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유고슬레인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타올라라."

화악.


"우왁?!"


결계를 불길이 가득 채웠다. 앞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움찔 하고 몸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 결계 안에서 요동쳤다. 형형한 불꽃을 이빨처럼 들이밀고 있었다.


"멈추어라."


결계안에 있던 유고슬레인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불길 사이에서 미소짓던 유고슬레인이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우자, 영원히 이글거릴 것 만 같았던 불길이 잠잠해지더니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광경을 바라보았다. 겨우 주문을 외운  뿐이었다. 단지 한 마디를 추가했을 뿐인데도 두 마법간에 너무나도 큰 차이가 생겨나 있었던 것이다. 유고슬레인은 그런 우리를 보고 좋은 반응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셨듯, 주문을 외운 마법과 외우지 않은 마법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배우도록 하지요."

뚜벅뚜벅. 유고슬레인이 우리의 사이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는 잠시 학생들을 둘러보더니, 몇몇 학생들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플롯 양. 겐트 군. 프라드 군. 율릿 양."

마지막으로 지목된 사람은 나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학생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에 대해 어떤 감상을 가지고 있나요?"


"뜨겁습니다."
"밝아요."
"거칠어요."
"어······ 빨간 색이에요."

각기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유고슬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불에는 수많은 요소가 있고, 마법으로 불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 요소를 모두 다 상상해 내야 해요."


유고슬레인이 손가락을 흩어 우리에게 뻗었다. 화염이 솟구치며 우리에게로 치달았다.


"꺄악?!"

갑작스럽게 날아든 화염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뜨겁지 않았다. 실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자, 그 곳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유고슬레인이 있었다.


"방금 저는 불꽃의 색만을 상상해서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뜨겁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구성요소를 전부 다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마법은 실체를 가지지 못하고 환상마법이 되어버립니다."


아, 이제 앉아도 괜찮아요. 일어서있던 네 명의 학생에게 손짓한 유고슬레인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람의 상상에는한계가 있어요. 어떤 물체를 떠올리고자 해도 그 물체의 모든 요소를 생각해내진 못해지요.
그럴 때 필요한것이 바로 주문입니다."

유고슬레인이 허공에 글씨를 써내갔다. 뜨거움. 밝음. 거침. 붉은 색.

"마법을 쓰고자  때,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하면 위력이 증가합니다. 언어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서, 그것을 입에 담는 순간 상상력이 강해지게 되니까요. 상상력의 증대는  마법의 증강. 주문에 담긴 기본적인 원리는 이렇습니다."


유고슬레인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글자를 하나하나 짚었다.

"예를 들어볼까요? 불꽃마법을 강하게 할 수 있는 주문은 다양합니다."

유고슬레인이 다시 결계를 쳤다. 그리고 네 번의 화염 주문을 연속적으로 발했다.


"뜨겁게 타올라라."


결계 너머로까지 후끈한 열기가 전해져왔다.


"밝게 타올라라."


일순간 태양과도 같은 빛이 번쩍였다.

"거칠게 타올라라."


화염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붉게 타올라라."


불길이 홍염마냥 새빨갛게 치솟았다.


뭐랄까. 불꽃하나에도 저렇게 다양한 속성이 내재되어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니 실감이확 되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불꽃마법 하나에도 다양한 주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이용해서 특정한 속성을 강화할 수도 있구요."


학생들이 유고슬레인의 강의를 홀린듯 경청했다. 유고슬레인은 그런 학생들에게 미소지으며 교과서를 덮었다.


"좋은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주문을 통해 마법을 연마하는 것이 필수불가결입니다. 처음부터 마법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무니까요. 주문을 통해 마법의 감을 잡고,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때 까지 연습하며, 마침내 주문이 없어도 능수능란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모든 과정을 배우기 위해 여러분은 하비셜에 있는 겁니다."

그러니 시험 잘 보세요. 성적 낮은 사람에겐 추가 과제가 있을 예정이니까요.

무서운 말을 사족으로 붙이며, 유고슬레인이 생긋 웃었다.



시험 당일.

[기초마법개론. 마법의 3요소를 서술하시오.]

그래. 이건 안다. 상상력, 염동력, 마력이었지.

[역사. 세 현인 중, 세오 리베른과 라이하빗 케런트의  만남을 간단히 서술하시오.]

······뭐였더라. 길 가다 만났나?


[도덕정신이해. 술자가 가진 신념과 마법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대략적으로 서술하시오.]


음.
신념에 따라 마법을 조절할 수 있다?




"망했어요."
"······다음에는 잘 보도록 해요, 위즈."
"으앙······."

울상을 지으며 성적이 적힌 종이를 펄럭였다.

하비셜에서의 성적표는 각 과목의 석차만이 나올 뿐, 점수는 나오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점수가 나왔더라면 내가입었을 데미지는 더더욱 컸을 것이었으니까.

[전체석자 298/312]

"······그래도 꼴등은 아니야, 위즈."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히려 상처받아요······."


루아의 전혀 위로되지 않는 위로를 받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끔찍한 성적이었다. 영지에 계시는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짐작조차가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다.


기운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다, 문득 루아의 손을 바라보았다. 성적표가 들려있었다.


"루아는 시험 어땠어요?"
"응······ 그냥, 무난했어."


살짝 망설이던 루아가 내게 성적표를 건네었다. 나는루아의 성적표를 펼쳐 석차를 확인했다.

[전체석차 32/312]


생각보다 엄청, 엄청 높았다. 나랑은 그야말로 하늘과 차이였다.


"대단해요, 루아."
"으응, 그런가?"

루아가 배시시 웃으며 귀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루아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루아의 성적표를 확인한 나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적표를 달라고 부탁했다.


세렌. 전체석차 3/312.
하스타. 전체석차 12/312.
메디아. 전체석차 1/312.


그리고, 떄로는 호기심이 독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말이지, 이거.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메디아는 그렇다 치자.

"하스타."
"응?"
"공부 이렇게 잘 했어요?"
"나름?"
"나름이 아니잖아요, 이거."
"그런가~ 하지만 1등이랑 3등이 바로앞에 있는데 이 정도면 그냥 무난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스타가 넉살좋은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성적에 관해서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는 하스타의 모습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세렌도요. 그렇게 공부를잘했다구요? 진짜로?"
"그대는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건가······."
"보통 체육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배신감이 온 몸을 엄습했다. 적어도 세렌은 평범할 줄 알았다. 나처럼 아예 최악은 아니더라도, 기껏해야 중위권 정도일 줄 알았는데.

"황제는 모든 이를 이끌어야 하는 법. 만능이 아니고서야 어찌 어마마마의 제위를 잇겠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곤 3등이지만요."
"윽······."


이게 다 백합황녀 때문이다. 관계묘사에만 치중했지, 성적 관련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없던 백합황녀 때문이다.


"다음에는 공부 가르쳐줄게."


뒤통수가 얼얼한 가운데, 루아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러자 메디아 역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말했다.


"다음 평가에서 만회하도록 해요. 교육 강도를 높여야겠네요, 후후."
"그대가 내 힘이 필요하다 한다면 언제든지 조력하도록 하지."
"당신은 설명을 잘 못하잖아요. 제가 낫죠."
"그, 그래도, 위즈가 원한다면야······!"
"필요하지 않을걸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3등?"
"······치잇. 다음에는 1위를 노리겠어, 메디아 리베른. 승부를 신청하마."
"점수가 비공개라는 점 명심하시죠, 세리나 바른. 순위의 차는 2계단 일지라도 점수의 차이는 클테니까요······."


파직.


두 사람간에 스파크가 튀었다.

 모습을 황망히 바라보고 있는데, 내 옆에 하스타가 슬쩍 다가왔다. 그리곤 내게 속삭였다.


"하스타 과외소. 강의두 번당 과자 한 봉지. 어때?"
"······네?"
"틈새시장이야, 틈새시장."

하스타에게 가르쳐달라고 한다면  사람이 싸우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솔깃한 제안에 잠시 고민했다.


과자값 때문에 포기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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