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2)
"······빌어먹을."
누군가 돌을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고요한 동굴 안에서 돌맹이 튀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누구 하나 그를 제지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군다.
벌써 반수의 친구를 잃었다. 그리고 다른 백여명의 친구들도단지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알 뿐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고오오.
바람을 타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동굴에서 맞는 바람이 칼날처럼 시렸다.
몸을 움츠렸다. 추위때문일까. 아니, 아닐것이다. 목덜미를 타고 선연히 흐르는 짐승의 발톱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을 파편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괴물의핏빛 서린 눈동자를 되새겼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우리도 그이빨 아래에 놓일 것이라는─ 그런 공포스러운 예견 때문일 것이다.
톡, 톡.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뾰족한 종유석의 끝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허망한 삶을 구걸하다 이내 파편으로 흩어지고 마는 물방울.
저게 우리의 미래일까.
결국 우리도 저 이슬처럼, 덧없이─
학과 대항전.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인 9월 말에 벌어지는 학과대항전은 하비셜 최대의 제전이다.
다섯 학과의 여섯학년이 각기 뭉쳐, 수십가지 종목을 겨루는 사흘 간의 축제이며, 동시에 각 학과간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장.
그것은 선배들은 물론이고, 신입생인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학과대표학생선발시험. 우와, 이름 한 번 기네."
"······시험이요?"
"뭐, 평가하는거니까 시험이라고 이름 붙였겠지."
마차를 타고 하비셜의 동부로 이동하며 묻자, 하스타가 고개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들어본 적 없어······ 어려울까?"
"시험이라는 것 부터 마음에 안 들어요······."
"주제는 완전히 학과장 재량이래. 뭐, 이번에는 시하 학과장님이 살살 해주시길 바래야겠지. 시하 익스프레스는 다시 타고싶지 않아······."
하스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온 몸이 공포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시험은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바로 어제 성적표를 받은 내게 시험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
······공부 안한 내 책임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냥 선수 할 사람을 뽑는다고 하면 될 텐데, 왜 시험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시험 끝난 학생에게 또 시험이라니. 실례잖아, 실례.
"어려운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러게요······ 그나저나 루아. 조금만 떨어져 주면 안 될까요?"
오른쪽 팔에 매미처럼 달라붙어있는 루아에게 말했다. 하지만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 엉겨붙으며, 마치 고집부리는 어린아이마냥 볼에 살짝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귀여운 사람에겐 죄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따른다면 루아는 평생동안 무죄일 것이다. 이렇게나 귀여움을 온 몸으로 내보이는 소녀에게 그 누가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고 루아를 떼어내야 했다. 팔이 조금씩 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으, 팔이라도 좀 놔 줘요, 루아."
"······그 사람이 없을 때라도 이렇게 있고 싶은 걸······"
"······그런 눈으로 바라보시면 말이죠······."
루아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자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눈동자에 마력이라도 깃들어 있는건지, 도무지 거부 할 수가 없었다.
애써 루아의 눈길을 피하며 하스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냥 그대로 있지 그래?"
"그러지 말고 도와줘요, 하스타아."
"애교 부려도 안 통한다? 그냥 둬. 어차피 메디아 님 앞에서는 너한테 못 달라붙어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요······ 오늘따라 메디아가 안 보이는걸요. 세렌도 그렇구."
"저녁 먹기 전엔 만나겠지, 뭐."
하스타가 별 일 아닐거라는 듯 가벼이 손짓했다. 나는 그렇겠죠,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3일.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땐 알지 못했다.
하비셜 동부에는 자연이 조성되어 있다.
거대한 호수, 울창한 숲. 초원, 사막, 산지, 심지어 용암지대까지 있는, 그야말로 자연의 모습을축소해놓은 듯한 장소다.
"사랑스러운 1학년 제군!"
숲 초입. 탁 트인 벌판에 모인 300여명의 마법과 학생은 옹기종기 모여 시하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탐험가 복장으로 갈아입은 시하는 망토를 휘날리며 공중을 부유하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굉장히 신나보였다.
"1학년을 이 곳에 집합시킨 이유를 아는 학생은 있는가!"
시하가 외쳤다. 얼굴에 생기가 용솟음 치고 있었다. 텐션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그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것이다.
"학과대표학생선발시험을 치루기 위해서입니다."
"좋아, 에리스 학생. 바로 그거야!"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손을 뻗어 망토를 휘날리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지금부터 진행할 것은 학과대표학생선발시험이라는이름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말이야, 사랑스러운 1학년 제군. 나는 그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어."
1학년이 멍하니 시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시하는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는 이걸 시련이라고 부르고 싶거든."
시련.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살벌한 단어에 침을 꿀꺽 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하익스프레스의 참상을 기억해 낸 학생들이 오한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래. 시련말이야. 순발력, 창의력, 응용력, 협동력, 지구력, 인내력, 전투력, 지휘력─ 학과 대항전에 필요한 그 모든 요소를 평가할 수 있는 시련!"
우리들은 일이 잘 못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사이렌이 맹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랑스러운 1학년 제군. 시련을 돌파할 준비가 되었나?"
"······."
아무도 시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오호. 저녁시간 이후의 자유시간을 빼앗기고 싶은 거구나?"
"─?!"
누구랄 것 없이 경악한 얼굴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하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게 있거든. 보충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학생은 학과장의 재량에 따라 일곱 시 부터 열 시 까지 추가지도를 행할 수 있다는 교칙이 말야."
웅성웅성.
우리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아껴둔 과자를 조금씩 먹으며 수다를 떠는 황금같은 시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동공이 떨렸다.
"다시 묻지. 1학년, 시련을 돌파할 준비는 됐어?"
"네, 네!!"
억지로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시하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었다.
"좀 작은데. 으음, 우리 애들이 이렇게 추가지도를 받고싶어 하는 줄은 몰랐네."
시하가 중얼거렸다. 서늘한 바람처럼 귀를 간질이고 지나가는 그 말은,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어서, 우리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마지막 기회다, 1학년. 시련을 돌파할 준비, 됐어?"
"네!"
"시련을 돌파하고, 학과 대항전에서 마법과의 이름을 드높일 준비가 됐어?"
"네!!"
"지난 8년간 우승을 놓치지 않은 특수과를 잡아내고, 당당히마법과를 우승시킬 준비가 됐어?"
"네에에에!!!!"
"응, 이제 좀 들을 만 하네."
시하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의 앞에 두 가지의 구슬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하나는 보라색 구슬이었다. 대련장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던 바로 그구슬이었다. 육체가 받는 데미지를 계산해, 생명을 잃을 정도까지의 데미지를 막아주는 생사결의 보호옥이었다.
다른 하나는 하얀색 구슬이었다. 처음 보는 구슬이었다.
이게 무슨 구슬인가 하고 손을 내밀어보려는 찰나, 두 구슬이우리의 몸을 감쌌다.
"뭐, 뭐야?!"
"꺄악, 기분 나빠······!"
스르륵.
두 개의 구슬은 섞여들어가며 우리의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이내 투명해져 모습을 감추었다.
"첫 번째 구슬은 생사결의 보호옥이며, 두 번째 구슬은 전송옥이다."
"아, 그거 내가 설명하려고 했는데, 유클리드!"
"시간이 촉박합니다, 학과장님."
"······쳇. 재미없게. 그래너 다 해먹어라."
"서류처리나 떠넘기지 말고 그런 말씀을 하십시오."
어디선가 나타난 유클리드가 시하를 타박하자, 시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땅으로 내려왔다.
유클리드는 그런 시하의 곁에 서서 말했다.
"나는 유클리드. 마법과의 부학과장이다. 지금부터 학과대표학생선발시험의 개요를 설명한다."
"시련이야, 유클리드."
"학과대표학생선발시험의 개요는─"
"─시련이라니까, 유클리드?"
"······시련의 개요는 이러하다."
유클리드가 질린 듯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내 키의 두배 정도 되는 거대한 괴물의 환상이 나타났다. 날개가 없는 벌 같은 모양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네 쌍의 다리 중 첫 번째 다리가전갈의 집게발마냥 흉악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비튜르츠. 하일로 산맥 중앙에 서식하는 위험종이다. 주 무기는 강력한 절삭력을 지닌 앞발이며, 배 끝에 위치한 독침 또한 위협적이지."
키에에엑.
비튜르츠가 입을 열고 괴성을 내지르자, 온 몸이 저릿저릿해짐을 느꼈다. 호랑이 앞에 놓여있는 토끼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시련은 이 놈이 맡는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유클리드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끔찍한 사실을 고했다.
"······예?"
"말 그대로다. 마법과의 1학년은 이제부터 이 숲 어딘가에 배치되어있는 비튜르츠를 토벌해야 한다."
"무,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희는 아직 마법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알고 있다. 환상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마저도 절반정도 뿐인 반푼이 마법사지."
"그렇다면 왜······!"
누군가가 항의하자 유클리드는 항의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나선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위험상황에 닥쳤을 때의 모든 점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생존과 토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숲 곳곳의 지형지물과 숨겨진 아티팩트를 활용해라."
유클리드가 한 차례 손을 휘두르자, 비튜르츠의 환영이 사라졌다.
"제한 시간은 3일. 제한시간이 초과되거나 전원이 탈락할 시 시련은 실패로 간주한다.
식량의 배급은 1일 1회 낮 12시에 일괄적으로 배급하며, 한 번 배급시 세 끼니 분량의 식량을 지급한다."
유클리드가 저벅저벅 걸으며 룰을 설명했다.
"보호구역을 둘러싼 결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이용을 허가한다. 자연의 파괴 역시 허용한다. 숲을 불태우는 것도, 호수를 오염시키는 것도 문제 없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유클리드의 설명을 들었다. 유클리드는 그런 우리에게 비극을 선언했다.
"시작 시간은 지금. 만약 비튜르츠를 물리치지 못한다면······ 전원에게 올 한해동안 저녁시간 추가보습을 실시한다."
"네에에?!"
"한 마디 첨언하자면, 두 황녀의 도움은 받을 수 없을거다."
유클리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투명한 구가 생겨나더니, 무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보조가 느리다, 메디아 리베른!]
[앞뒤 안가리고 돌격하는 건 당신이지 않나요, 세리나 바른! 그리고 보조라고 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보다 많이 처리했으니까······!]
두 황녀님의 모습이 비쳤다.
세렌이 거대한 검기를 뽑아내 괴물을 일도양단했다. 방금 보았던 비튜르츠였다.
"아, 세렌······!"
세렌의 뒤에서 엄습해오는 또 하나의 비튜르츠를 본 나는 저도모르게 세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세렌의 뒤를 공격하려던 비튜르츠는 화염에 불타 재로 산화했다.
[아직 네스트 초입이에요. 네스트의 중심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비튜르츠가 있겠죠.]
[······네스트를 돌파하지 못하면 추가수업이라고 했지.]
[추가수업따윈 사절이에요. 서두르죠, 세리나 바른.]
[그래. 그 점은 동의하지, 메디아 리베른.]
두 사람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주위에 나뒹구는 수많은 비튜르츠들은 그녀들의 험난했던 싸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는 대로, 두 황녀는 특별한 시험을 따로 받는다. 그녀들과 너희의 능력차이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일이지."
유클리드는 무미건조한표정으로 영상을 비추던 구를 없앴다.
"그러니 이제 시련을 시작한다. 행운을 빈다, 1학년."
그리고 우리에게 고난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