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3)
유클리드가 모습을 감춘 후 10분이 지났다.
다른 학생들에게서 움직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것 같았다.
후후. 그렇다면 내가 나설 때다.
"움직이죠, 루아. 하스타!"
"위즈?"
"일단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읏차, 하고 기합을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브에 묻은 풀을 털어내고, 한 차례 기지개를쭉 폈다.
"잉, 눈에 띄는 건 별론데······."
하스타가 귀찮은 듯 중얼거리면서도 나를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속삭였다.
"생각 있어?"
"네!"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하스타는 오호, 하고 작게 감탄사를 내었다. 그리고 귀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풀내음 가득하던 공기가 일순간 달달해졌다.
"작게 말해봐."
"유클리드 교수님이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다고 했어요. 일단 그 야쿠르트? 뭐였더라? ······으, 아무튼 그 괴물을 피해다니면서 아티팩트를 모아보는 거에요. 이 시험, 아티팩트만 있다면 의외로 간단할지도 몰라요?"
수많은 웹소설을 읽어온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내린 판단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템을 먼저 선점하는 플레이어······ 아니, 사람이 막대한 이득을 얻는 법.
내 설명에 하스타가 눈을 빛내었다. 살짝 감탄하듯 웃더니,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네?"
"무슨 뜻이에요,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살짝 흘겨보자, 하스타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선 옆에 앉아있던 루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위즈 말 대로 해보지뭐. 가자, 루아."
"어······ 가는거야, 위즈?"
"네. 기왕이면 사람은 많을 수록 좋겠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보자, 같이 갈 사람 있으려나? 으음, 일단 겁에 질려있는 사람은 안되고, 너무 무모해보이는 사람도안되고. 리베리쉬는 루아를 조금 껄끄러워 할 수도 있으니까 성격 좋은 사람을······.
"어?"
"잠깐, 잠깐."
어떤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하면 좋을지 생각하던 나를 누군가가 끌어당겼다. 다름아닌 하스타였다.
"하스타, 왜요?"
"저길 봐."
하스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발이라고 해야할지 오렌지 빛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애매한 빛깔의 머리카락을 땋아내린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자, 마법과!"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1학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녀는 집중되는 시선에 기분이 좋아진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꽤나 시끄럽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움직이자. 300명이 앉아서 지금 뭐하는 거야!"
누구더라.
로브를 팔락거리며 머리 위로 한갈래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을파닥이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마법과 1학년 전원이 동시에 수강하는 체육시간을 제외하면, 일단 나와 같은수업을 듣는 사람은 아니었다. 체육시간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잘 모르는 사람이다.
"케리엘 배스······."
그런데 하스타가 중얼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하스타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누군지 알아요?"
"내 룸메이트야. 으음······ 이거 좀 난감해졌는데."
"왜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케리엘을 바라보았다. 또래에 비해 살짝 작은 체구를 가진 케리엘은─비록 내 키보단 조금 커 보였지만─ 굉장히 귀여운 아이였다. 사람들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꽤나 마음에 들었고.
"좋은 사람 같은데요?"
"그래. 뭐 나쁜 애는 아닌데······."
하스타가 으, 하고 침음을 내며 케리엘을 바라보았다. 나와 루아는 그런 하스타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고, 이내 하스타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니까,이거 뒷담같아서 웬만하면 말 안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하스타가 눈을 감으며 고민했다. 그리고선 다시금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애 말이야. 뭐라고 할까. 허풍이 심하다고 할까. 말을 부풀리는 걸 좋아한다고 할까."
"허풍이요?"
"응. 보면 알 거야······."
조금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당황하며 케리엘을바라보았다.
"비튜르츠 따위, 내 불 마법이면 한방일 테니까!"
케리엘은 자신있는 표정으로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대, 대단해······."
이런 상황에서 허풍이 어떻게 나오나 싶어 감탄하고 있는데, 루아가 입을 작게 벌리며 눈을 반짝였다. 선망하는 듯 한 눈빛으로 케리엘을 바라보는 루아는 그녀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가지고 있지않는 것 같았다.
"저거 허풍이라는데요, 루아."
"······허풍?"
"거짓말이라는 거지."
하스타가 씁쓸히 중얼거리자, 루아가 깜짝 놀라 케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위즈?"
"······뭐, 우리 나이대에 그렇게 강한 불마법을 쓰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특수반에 배정되었겠죠."
"나 거짓말쟁이는 싫어······."
루아가 고개를 저으며 내 뒤로 숨었다. 나도 내 배를 감싸안고 있는루아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거짓말은 별로 안 좋아해요."
케리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의심의 눈초리와 진짜냐고 묻는 시선이 케리엘에게 모아졌다. 하지만 케리엘은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았다. 케리엘은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가자! 비튜르츠를 무찌르러!"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몇몇의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믿는거에요?"
"딱히 쟤네들도 케리엘을 철썩같이 믿는 건 아닐걸."
"그럼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겠지? 가만히 있다가 저녁시간을 빼앗기긴 싫을 테니까."
"그런건가요······."
으음.
이대로 괴물에게 가는건가.
망할 것 같긴 한데.
"따라갈거야?"
"뭐······ 굳이 단독행동을 할 필요는 없겠죠?"
"으응······."
루아가 석연찮은 듯 미간을 좁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가 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굳이 단독행동을 했다가 비난이라도 받으면 루아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갈 이유는 충분했다. 비튜르츠를 잡으면 좋고, 잡지 못하더라도 비튜르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 몰살당하지만 않는다면.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바로 도망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숲을 헤쳐나가는 무리의 끝을 따라갔다.
─키에에엑!!!
유클리드가 들려주었던 소리가 숲을 울렸다. 우리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왼쪽이야, 가자!"
앞장서고 있던 케리엘이 방향을 가리켰다. 케리엘이 가리키는 방향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람 한 두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한명씩 천천히 들어가자. 길이 좁아."
케리엘의 옆에서 학생들의 움직임을 조율하던 아이가 줄을 세웠다. 능수능란한 솜씨였다.
"오히려 저 쪽이 더 믿음가는데."
하스타가 중얼거리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색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의 이름은 에리스 플롯. 말을 섞어본 적은 별로 없었지만, 꽤나 똑똑한 아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에리스의 인솔에 따라 한사람씩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에리스가 인솔을 잘 하긴 했지만, 300명이라는 대인원이 한줄로 서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1학년은 나무 사이를지나가기 위해 가느다란 실처럼 늘어섰다.
순간 불안해졌다.
"이렇게 다니는게 맞는 걸까요?"
"응?"
"이렇게 한줄로 다니면 인원수가 많아도 무용지물이잖아요."
"······무섭게 왜 그래."
하스타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루아도 내 말에 불안해하며 나무 사이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아무 일 없으면 좋겠는데요······."
침을 꿀꺽삼키며 앞을 바라보았다.
"꺄아아악!!!"
그리고, 나쁜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무파편과 함께 앞장서던 학생들이 하나씩 허공에 내동댕이쳐졌다.
[벡스 케드, 탈락.]
[굴라카드 몬슨, 탈락.]
[유즈 파고스, 탈락.]
[발락 덴크, 탈락.]
유클리드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비명에 섞여 귀로 들어왔다. 너무나도 차가운 목소리여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도, 도망쳐!!"
"아까 화염마법 쓸 줄 안다는 애는 어디갔어!!!"
"몰라, 없어졌어!"
쾅, 콰광. 빽빽하게 자라나있던 나무가 쓰러지며 굉음을 내었다. 저 멀리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비명소리에 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망치자."
하스타가 나와 루아의 손목을 잡았다. 사색이 된 채 나를 잡아 이끄는 하스타의 손이 떨렸다.
그 떨림에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는 맨 뒤에 있어, 방해되는 사람이 없었다.
"넓은 곳으로 가요. 여기는 너무 좁아요!"
"으, 응!"
루아도 얼굴이새파래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쾅, 콰광.
─키에에엑!!!
아까보다 너무나도 가까운 울음소리였다. 땅을 울리는 진동 역시 가까워져 있었다.
"아, 꺄앗?!"
"루아?!"
그렇게 한참을 돌아나오는데, 루아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나는 다급히루아에게 달려갔다.
"다친 곳 없어요?!"
"괜찮, 은데, 읏······!"
루아가 자꾸만 발을 헛디뎠다. 넘어진 것에 대한 충격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것 같았다.
"위즈! 빨리 와야 하는데······!"
"비켜, 비켜어어!!"
"아, 이런!"
도망치는 학생의 파도에 하스타가 떠밀려 사라졌다. 저 멀리에서 언뜻 노란 줄이 그어져 있는 갑각이 나무를 베어넘기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큐르뎃 파트 탈락.]
[구스테프 로도스 탈락.]
[베카도미네르 카뤼낙 탈락.]
[고도르 캐시미아 탈락.]
유클리드는 계속해서 탈락자의 이름을 부르고있었다. 비명과 괴성이 섞여들어간 소리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지······?
미처 괴물에게서 도망치지 못한 학생이 보랏빛 조각으로 바뀌어 사라졌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공포에 질린 눈을 한 사람이, 빛나는 조각으로 분해되어 흩어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기 충분한 광경이었다.
······정신 차리자. 생각해, 위즈 율릿.
고개를 휘저으며 공포를 떨쳐냈다. 아니, 떨쳐내기 보단, 억지로 머리속에서 밀어내었다.
"위즈, 나, 나······!"
루아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의지하고 있다.
루아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키잇, 케엑, 키에엑!!
"으아아악!!!"
[바루스 핀델리, 탈락.]
또 한 명이 빛의 파편으로 변해 사라졌다.
나는 루아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그리고 안간힘을 쓰며 루아를 일으켜세웠다.
"위즈, 도망쳐,나,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같이 도망쳐요."
"하지만─ 아, 꺄아악?!"
─키엑!!!
비튜르츠의 괴성이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녀석과 우리 사이의 간격은 고작 10m.
따라잡힌다. 나무를베어넘기며 돌진해오는 비튜르츠의 속도는 루아를 부축하며 낑낑대고 있는 내가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을 해야 했다.
저 돌진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8m.
지축이 울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다.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렸다.
6m.
나무줄기가 뚜둑 하고 넘어갔다. 심장이덜컥 내려앉는 진동이 전해져왔다.
루아를 지킬방법을 진심으로 바랬다.
4m.
비튜르츠의 울음소리가 등을 찌르듯 울려퍼졌다.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쏟아부었다.
2m.
"크게 피어나라!"
그리고 그 바램을 입에 담았다.
"위, 즈······?"
빛이 좁은 길목을 가로막으며 커다란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때묻지않은 여섯 장의 하얀꽃잎. 비튜르츠의 몸집을 뛰어넘는, 원통형의 거대한 백화(白花).
짙은 향기가 숲을 뒤덮었다. 그 싱그러움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키에엑?
비튜르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큰 꽃잎에 경계심을 품었기 때문인지, 향기에 괴로워하고있는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가지 명확한 사실이 있었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저 거대한 백합이 단순한 꽃임을 깨닫기 전에 도망쳐야만 했다.
"다행이다······ 가요, 루아!"
"응, 위즈."
다행히루아의 다리에 힘이 돌아왔다.
나와 루아는 좁은 길을 필사적으로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넓은 곳에 도달했다.
비튜르츠가 쫒아오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위즈, 루아!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하스타아아!!!!"
그리고,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하스타에게 안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