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5) (46/86)



〈 46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5)

[생존자는 149명. 남은 시간은51시간. 익일 아침 9시까지 정각 알림을 종료한다.]

쓰르르르─

동굴 바깥에서 이따금들려오는 풀벌레소리에 괜시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작은 동굴에 아기 새가 있었어♬"

루아가 테리를 안은 채 기분좋은 표정으로 흥얼거렸다.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반주삼기라도 한 건지, 의외로 조화로웠다.

"리베른의 동요네."
"에리스?"
"조금 자리를 빌려도 될까?  쪽은 너무 시끄러워서."


에리스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물었다. 살짝 툴툴대는 듯 한 목소리였다.

에리스의 말 대로 동굴의 다른 쪽은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오늘 얻어온 수확 중 하나인 호리등불 아티팩트를 가운데에 놓고놀이판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인원수가 늘은  때문인지 험악했던 분위기는 완연히 누그러져 있었다.

다만, 누그러진 정도가 조금 지나쳤다는게 사소한 문제점이라고나 할까. 떠드는 소리가 동굴 밖의 비튜르츠에게까지 들리면 어떡하나 싶긴 했다.
괜찮겠지, 뭐.

"여기 앉아요."


살짝 오른쪽으로 비켜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에리스는 미소를 띄며 다소곳이 자리에 앉았다.


"응, 고마워, 율릿 양."


언제 봐도  단정한 사람이었다. 각도기로 잰 것 같은 단발머리카락과 곧게 뻗은 와인색 머리카락. 그리고 한점의 흐트러짐조차 없는 다소곳한 자세와 균형잡힌 얼굴.

마침 이야기할 짬이 생겼다 싶어, 나는 에리스에게 물었다.


"내일 어떡할지나 이야기해볼까요?"


그러자 에리스는 살짝 놀란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애들은 별 생각 없어보이니까."


놀고있는 아이들 쪽을 살짝 흘겨보며 에리스가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벤즈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벤즈가 싫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큘라 군이랑 그렇게 사이가 나빠요?"
"응? 아니, 딱히 그 쪽을 바라본 건 아닌데."
"그래요?"


에리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벤즈를 바라봤던  같은데.
뭐, 하여간. 정보나 마저 교환하자.

"이거면 비튜르츠를 잡을 수 있다! 하는 아티팩트는 없었죠?"
"그렇지······. 잠깐만, 가방 가져올게."


에리스가 동굴 한 쪽에 세워둔 가방을 가져왔다. 나도 가방에서 얻은 아티팩트들을 꺼냈다.

"저희가 가져온 아티팩트예요. 1회용 통신구슬이랑 화염 지팡이, 그리고 이 호리등불  개."

은은한 빛과 함께 난로 역할도 겸하는 호리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에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가방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우리는 총 한자루랑 복사구슬 하나, 포획용 올가미 아티팩트 하나. ······그나마 이건  쓸만해 보이긴 해."

에리스가 올가미 아티팩트를 들어올렸다. 가운데에 마석이 박혀있는 손바닥 하나 크기의 그물이었다.

뒷편에는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나는 종이에 써 있는 글씨를 소리내어 읽었다.


"던지면 커집니다?"
"그렇다더라."
"함정이라도 파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눈을 빛내며 올가미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물의 정중앙에 붙어있는 마정석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조개 껍질의 안쪽처럼 영롱한 빛이었다.


"총 위력은 어느정도 돼요?"
"몇 번 쏴보긴 했는데, 나무에 박히는 정도밖에 안되더라."
"으음, 한 두발로 비튜르츠를 쓰러뜨리는  어림도 없다는 거네요."
"화염 지팡이는?"
"이름은 거창한데, 사실 횃불정도밖에 안돼요. 이걸로 비튜르츠를 불태우려면 하루종일 걸릴걸요?"
"불쏘시개라도 준비해야겠네."

어떻게든 활용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나와 에리스는 머리를 맞대었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웹소설에서의 전투장면을 생각해보기도 했고, 어떻게든 아티팩트들을 조합해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아티팩트 꺼내놓고 뭐해?"
"하스타, 왔어요?"
"안녕, 비즈 양."


하스타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선 아티팩트를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괴물을 어떻게 상대한담."
"내일도 아티팩트를 찾아볼까요?더 좋은게 있을수도 있어요."
"다른 애들도 찾아야지.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어떻게 찾냐가 문제구나."

에리스가 으음, 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스타 역시고민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으음. 숲에 표식이라도 남겨둬야 하나?"
"인간의 흔적이 너무 심하면 비튜르츠가 알아차릴 수도 있어."
"하지만 애들이 신호를 알아차리려면 흔적을 좀 크게 남겨야 할걸?작게 만들면 못 보고 지나칠테니까."
"인간의 흔적이 덜하면서도 애들이  알아차릴  있는게 뭐가 있지?"
"으음······."


흐으음.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노래를흥얼거리던 루아가  손을 갑자기 잡아올렸다.

"걱정하지 마, 위즈가 있는걸."

루아가 눈을 반짝였다. 기대감이 충만한 표정이었다.


"루아? 의지받는건 기쁜데요, 저도 별 뾰족한 생각은 없는데······."
"하지만, 위즈의 꽃이 있잖아?"

루아가  어깨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러자 하스타가 오, 하고 작은 탄성을 내었다.


"그러네.그거 엄청 눈에 띄니까."
"······우리 학년에 율릿 양의 꽃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하얀색이라 눈에 띄는데다 향기도 진하니, 표식으로서도 확실하겠어."
"일단 꽃이라서 비튜르츠의 주의를 끌지는 않을거고."


어라.
백합 말하는건가?
그리고 나 그렇게 유명했어?

"위즈, 꽃좀 엄청 만들어봐. 그거 길에 뿌리고 다니면 애들도 동굴에 모이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해하고 있는데 하스타가 나를 바라보았다.

좋은 생각이긴 했다. 좋은 생각이긴 했는데, 뭐라고 할까. 내 능력이 딸린다고 해야할까.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말이죠. 백합이  마음대로 나오는  아니라서요······."
"날 구해줄 때 위즈는 꽃을 만들었는걸?"
"한송이는 만들 수 있는데,여러송이는 마음대로 못 만들어요······."

실제로  안에서 몇 번 연습을해본 적이 있었다. 내 마음대로 백합을 피워낼 수만 있다면 내 기분에 따라 피어나는 백합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의식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백합은 기껏해야 두 송이가 한계였다. 오늘 낮처럼 큰 백합은 한 송이를 만들어내는것도 벅찰 지경이었다.

"어떨 때 피어나는거야?"

에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부끄러운데.

"위즈가 기분 좋을 때 피어나. 주로 황녀님들께 칭찬받을 때랑루아가 애교부릴때랑, 뭐 이것저것."
"······기분 좋을 때 피어난다구요?"
"응. 왜 있잖아, 강아지가 기분 좋으면 꼬리 흔드는거. 그런 느낌."
"으으, 하스타!"
"틀린  아니잖아?"
"틀린 말은 아닌데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하스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하스타는 그런 나를 여유롭게 피하며 말했다.


"하여간, 위즈를 기분좋게 하면 꽃이 피어나긴 할거야. 그러니까 루아, 위즈에게 한 번 애교 부려볼래?"
"······애교?"

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살짝 망설이는 듯 한 눈빛이었다.

얼굴을 붉히더니,  귀에 살짝 대고 미안해, 라며 사과하는 루아. 하기 싫은  같아 보였다.


"안 해도 돼요, 루아. 하스타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려는데, 루아가 갑자기 내 무릎을 올라타 목에 팔을 걸었다.

루아의 양 허벅지가 옆구리에 닿았다. 가볍게 내 허리를 감싸안는 감촉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루아를 바라보았다. 루아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내 머리 뒤쪽을 살며시 감싸 위로 들어올렸다.


루아와 눈이 마주쳤다. 푸르스름한 동굴 아래에서 빛나는 루아의 새하얀 눈동자는 꼭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루아가 한 번 숨을 내쉴 때 마다 따뜻한공기가 내 뺨을 간질였다.


갓난아이처럼 보드라운 살결에서 달콤한 향기가 물씬 풍겨와 정신이 아찔해졌다.

"위즈."
"네, 네?!"
"세상에서 제일 좋아, 위즈. 좋아해."

루아가 배시시 웃었다.
꾸밈없는 미소.
그래서 더욱, 마음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그런 미소.


"아."


머리속이 새하얘졌다.





"내 애교, 이상했어······?"
"아무리 봐도 그게 애교는 아니지."
"무, 무슨 관계야,  사람."
"룸메이트."
"바, 방에서도 이러는거야······?"
"으응, 원래는 가끔 같이 자는 정도인걸."
"가, 같이 잔다구?!"
"진정해, 에리스. 그나저나 효과 한  확실하네. 꽃 생겨난  좀 봐."
"어······ 그러게."
"봐봐, 위즈. 이 정도면 많이 생긴거 아니야?"
"······어라. 율릿양?"
"위즈?"
"왜 대답이······ 자, 잠깐만. 동공이 풀렸잖아. 위즈? 위즈?!"


털썩.
시야가 흐려졌다.


"······미안해, 위즈으······."


루아가 울먹이며  옷자락을 잡았다. 나는 그런 루아를 끌어안아 쓰다듬으며 하스타를 째려보았다.


"루아 잘못 아니에요. 그런  시킨 하스타 잘못이지."
"우와, 너무하네. 시도한 뿐인데."
"심장 멈출 뻔 했어요, 하스타. 한번  겪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말에 루아가 움찔 하고 몸을 떨며 내 옷자락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는 눈가에 이슬을 맺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위즈, 죽으면 안돼······. 죽는건 싫어, 못 만나는것도."
"들었죠?"
"으응······ 효과는 확실했는데."

루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보란듯이 바라보자, 하스타는 못내 아쉬운듯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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