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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7) (48/86)



〈 48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7)

시련 3일째, 결전의 날.


에리스가 어제 추가로 얻은 아티팩트를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했다. 벤즈에게는 날렵함의 발목 보호대를 주어 비튜르츠를 유인할 있도록 했고, 나에게는 1회용 보호막을, 루아에게는 화염 지팡이를, 하스타에게는 마법 총을 주었다.


 밖에도 에리스는 학과생들에게 공격에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최대한 많이 배분했다. 아티팩트를 받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아티팩트를 가진 학생들의 보조를 맡아, 만의 하나의 경우에 아티팩트를 이어받아 계속 싸울 수 있도록 했다.

"······에리스 대단하네요. 막힘이 없어."
"딱 우리학년 과대표감인데."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과대표가 없죠?"

1회용 보호막을 사용할  있는 보자기를 로브 위에 두르며 얼굴을 긁적였다. 확실히 과대표를 맡는다면 열심히 할 성격같아 보이긴 했다. 고생은 엄청 하겠지만서도.

"학년 과대표는 내년에 뽑는대. 전체 과대표도 그 때 뽑고."
"누가 될까요?"
"모르겠다. 혹시라도 황녀님들이 나오시면 마법과에 난리날 것 같은데······."
"그렇긴 하겠네요."

두 황녀님을 중심으로 바리쉬와 리베리쉬로 나뉘어,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는 마법과를 상상해보았다.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팠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누구를 지지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고.


"작전 설명은 이 정도로 할게. 질문 있는 사람?"


에리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자."

에리스의 선언에 따라, 우리는 비튜르츠를 쓰러뜨리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리스의 작전은 이랬다.

먼저 벤즈가 비튜르츠를 넓은 공터로 유인한다. 그리고 비튜르츠가 공터에 발을 들인 순간 벤즈와 바통터치한 내가 미끼역할을 맡는다.

그래. 내가 미끼 역할을 맡는다.


으으. 지금 생각해보면 괜히 미끼역할을 맡았나 싶기도 하고.


비튜르츠의 번뜩거리는 눈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때야 루아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서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꿈에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광경이었다.

미끼 역할을 맡게  것은 에리스의 설득 때문이었다.


─율릿 양, 비튜르츠의 앞에서  마법을 써줄 수 있을까?
─······네?
─올가미를 맞추려면 비튜르츠가 가만히 있어야 해. 올가미를 맞추지 못하면 이 작전은 끝이거든. 위즈 양만큼 비튜르츠의 시선을 끌 사람이 없어보여서······. 혹시 그 마법이 효과 없을지도 모르니까 보호막 보자기도 줄게. 응?

그러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에리스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렇게 마음 약하게 살면 호구잡히기 너무 쉬운데.


진지하게 마음 좀 독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멀리서 비튜르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푸드득하고 작은 새들이 도망치듯 나무에서 날아올랐다.

"벤즈가 만난 모양이야. 공터를 둥글게 둘러 싸!"

꿀꺽.


보자기를 부여잡은 채 침을 삼켰다.


쿵, 쿵.

땅이 울린다. 나무가 베어 넘어가는 진동이 몸을 저민다.

넘어질 것 같았다. 땅이 울리는 것 때문인지, 다리가 떨리기 때문인지는 명확히 구분해내기 어려웠다. 심호흡을 하며 평정심을 최대한 유지했다.


내가 실패하면 작전도 실패한다. 그러면 저녁 시간도 없어지게 되고, 가뜩이나 성적이 낮아서 추가교습을 받아야 하는 나로서는 자유시간이 아예 사라지고 마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키에에엑!!

검고 단단한 비튜르츠의 갑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야, 꽃나무! 내 뒤에 온다!"
"제가  꽃나무에요?!"
"아무튼!"

사색이 되어 뛰어오는 벤즈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꽃나무라니 그게 뭔 괴상한 별명인지.


벤즈가  어깨를 툭   도망갔다. 계주 달리기 때 바톤을 이어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멋지게 성공해주겠어.

─키익, 키에엑!!

비튜르츠의 선뜩한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런 비튜르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크게 피어나라!!"


나보다도 거대한 백합을, 내 손 끝에 피워내었다.

마법은 성공했다. 이제 비튜르츠가 내 백합을 보고 경계심을 품기만 하면 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정보에 의하면, 돌진하는 멧돼지를 향해 우산을 펴면 멧돼지가 멈춰선다고 한다. 갑자기 덩치가 커진 상대에게 경계심을 품는다던가.
비튜르츠에도 그게 먹히길 바래야만 했다.

"됐어, 성공이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에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비튜르츠가 키에엑, 소리를 내며 미친듯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올가미로 비튜르츠를 묶어놓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위즈! 그 곳에서 벗어나!"
"네!"


황급히 비튜르츠의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그리고 내가 적정 거리를 벌리자, 에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공격!!!"


에리스의 옆에서 비튜르츠를 겨누고 있던 하스타가 총을 쏘았다. 마탄이 일직선의 궤도를 그리며 비튜르츠의 머리갑각을 때렸다.

하스타의 사격을 시작으로 온갖 아티팩트에서부터 마법이 쏟아져나왔다. 비록 위력은 그닥 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십가지 마법이 동시에 들이닥쳤으니 비튜르츠도 무사히잔 못할 것이었다.


······그랬어야, 했는데.

"······뭐?!"


에리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나 역시 비튜르츠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튜르츠는 세 쌍의 다리를 바닥에 고정한 채, 넓적한 배를 들어올려 마법을 방어하고 있었다.


배쪽 갑각은 너덜너덜해져, 초록색 끈적한 체액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비튜르츠가 입은 피해는 그것 뿐이었다. 급소인 머리와 갑각 사이의 마디, 그리고 몸통을 지켜낸 것이다.

─키에에엑!!!

비튜르츠가 괴성을 지르며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한  끝의 날카로운 침이 번뜩였다.


 침이 올가미를 잘라내었다는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피, 피해!"

비튜르츠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자, 에리스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그 외침이 한 발 늦었다는 것이었다.


"꺄아아악!!!"
"으아악!!!"
"사, 살려줘어어!!"


[게롤트 아시브, 탈락.]
[베니스 칼반, 탈락.]
[라브타니아 알펜베르, 탈락.]
[엘렌 아크, 탈락.]

순식간에 네 명이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리를 지켜! 배에 상처를 입었으니까, 조금만 더 공격하면······!"
"안 돼, 애들이 말려들어!"
"그냥 공격해도 되는거 아니야?! 몇 명만 희생하면 비튜르츠를 잡을 수 있는데······!"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애초에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산개해있던 학생들이 비튜르츠의 공격을 받아 차례로 사라졌다.

"대체, 어떡해야······."
"다시 대형 갖춰, 에리스!"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에리스에게 벤즈가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단단한 집게발을 휘두르며 마법과를 도륙하고 있던 비튜르츠의 시선을 끌어볼 목적인  같았다.


"에리스!"


벤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에리스가 하스타의 외침에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남아있는 마법과에게 말했다.


"공격조! 아티팩트를 다시 겨눠! 비튜르츠를 둥글게 감싸!"


허둥대던 학생들이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겁에질려 떨어뜨렸던 아티팩트를 주워들고 다시 비튜르츠에게 겨눴다.

벤즈는 벅찬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당연했다. 벤즈가 비튜르츠를 유인할 수 있었던 것은, 비튜르츠의 진로를 나무가 방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곳은 공터. 비튜르츠를 방해할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즈는 비튜르츠의 발을 묶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진형을 다시 세우는데엔 충분했다.


"윽?!"


비튜르츠의 집게가 벤즈의복부를 강타했다. 벤즈가 결국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벤즈 큘라, 탈락.]


그리고, 그때가 기회였다.


"······지금이야!! 다시 한 번 공격해!!"

아티팩트가 마법을 발했다. 이번에는 비튜르츠도 벤즈를 공격하던 도중이어서 방어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


파각, 하고, 비튜르츠의 갑각이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비튜르츠의 초록색 체액이 공터의 바닥에 흩뿌려졌다.

─키엑, 키에엑─

비튜르츠가 괴성을 내질렀다.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다시 아티팩트를 장전해! 거의 다 됐어─"

그 때.
학생들 사이를 뛰쳐나와, 비튜르츠에게로 누군가가 달려갔다.


"타올라라!"

케리엘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 불덩이를 모아 비튜르츠에게 그대로 꽂아넣었다. 힘없이 발버둥치던 비튜르츠는 케리엘의 일격에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경련시키다 이내 축 늘어뜨렸다.


비튜르츠가 쓰러졌다.

"······내가, 내가 잡았어!"

케리엘이 폴짝폴짝 뛰면서 기뻐하자, 온 몸의 기운이 탁 풀리려 했다. 막타를 먹었다고 좋아하고 있는 모습이 얄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몸이 흐물흐물 녹아버릴  같았다.
뭐 어때, 게임처럼 경험치를 빼앗기는 것도 아닌데. 잡았으면 됐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이내 다시 온 몸을 경련시키듯 튀어올리며 케리엘에게 다가갔다.

본능이었다. 폴짝폴짝 뛰며 웃고있는 케리엘의 뒷편에서, 형용할  없는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배, 배스 양!! 피해요!!"
"흐흥, 비튜르츠는 내가 잡았는걸! 피할 이유는 없는거야!"
"그게 아니에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비튜르츠에게서 검은색 파동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마법과 전원의 몸을 관통했다.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도 아파서, 나는 숨을 삼킬  밖에 없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가, 마치, 두명이 된  같아서─


"이게 뭐야······? 아 ,꺄아아악?!"

비명 소리에 케리엘을 바라보았다. 보라색 스파크와 함께 케리엘의 뒤편에서 거대한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검은 짐승이 나타났다.

"마, 마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지만 케리엘은 마수의 모습에 얼어붙어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나는 케리엘을 향해 달려나갔다. 로브 위에 두르고 있던 보자기를 벗어, 케리엘에게 달려갔다.

"엄, 마, 살려줘요······"
"으읏!!"

쾅.


마수가 앞발을 세워 내려친 탓에, 나와 케리엘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보호막을 제 때 씌울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아, 아파, 아파아아······"


케리엘이 공포에 질린  울먹였다. 넘어지면서 풀밭에 쓸린건지, 팔에서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보호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결코 생길  없는 상처.


상처가 생겼다는 것은 곧 보호옥의 효과가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어째서 보호옥의 효과가 사라졌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시간조차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내 시야가 검게 물들기 전에 본 마지막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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