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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8) (49/86)



〈 49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8)

누구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

비튜르츠의 파편을 딛고 울부짖는 마수의 울음소리는 인간이 흉내낼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기를 갈기갈기 조각내는 소리에 몇몇 학생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마수의 보라색 눈이 이글거린다. 아니, 저걸 눈이라고 할 수 있을지 조차 확신할 없다. 생물의 눈이 저렇게 흉측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림자를 뭉쳐놓은  같은 마수의 모습은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일깨웠다. 저것은 인간이라는 종의천적이라고, 유전자에 각인된 기억이 맹렬히 경고했다.

"위, 즈······."


그런 상황에서 루아는 벌벌 떨면서도 한 발자국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목각인형 같은 움직임이었다.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루아에게서는 한 줌의 이성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생기를 잃은 하얀 눈은 마수의 앞쪽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리 저리 비틀거리면서도 루아는 단 한시도 그 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위즈, 위즈, 위즈."


수풀 사이에 엷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부드러운 피부는 이곳 저곳에 상처가 난 채 부어올랐고, 손등은 까져 피가 흐른다.
항상 밝은 미소를 보내던 하늘빛 눈동자가 속눈썹 사이로 숨어 움직이지 않았다. 루아가 애타게 그 이름을 불러도 돌아봐주지 않는다.

루아는 공포에 짓눌려 휘청였다. 루아는 자신이 서 있기 조차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아는 다리를 움직였다. 마수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마수에 대한 공포보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안돼, 루아······!"

얼어붙어 있던 하스타가 루아의 팔을 잡아채려 했지만, 루아와 하스타 간의 거리는 이미 너무 벌어져, 팔을 움직이는 것 만으로 루아를 제지할  없었다.

하스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제지하러 가고 싶었지만, 목숨이 걸린 문제였다. 하스타는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그 때 만큼 원망했던 적이 없었다.

루아는 비틀대면서도 위즈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목표를 찾던 마수의 고개가 루아에게로 고정되었다.

"────!!!!"
"위즈, 위즈······."


음파만으로도 피부를 짓이기는 듯 한 굉음 속에서도, 루아는 계속해서 위즈의 이름을 되뇌었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같았다. 위즈가 일어나기를 바라며, 다시금 미소 띈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며,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며. 닿을 것 처럼 가까운 위즈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
"어?"

그런 루아의 시야를, 마수의 거대한 앞발이 찢어발겼다.
위즈가 있던 자리를 마수의 앞발이 내려찍은 것이다.

쾅.


위즈와 케리엘이 있던 자리에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거대한 진동이었다. 비튜르츠의 발구름따위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어서, 귀가 터져버릴 듯 아파왔다.


루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루아는 멍하니 위즈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흙먼지 사이에서 빛나는 하얀 꽃을보았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내 눈 앞에 검은 발이 치닫고 있었다.

내려찍히면 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내게로 엄습해 오는 발을 맞받아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
"이게 되네?"


위즈는 놀라움 섞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도저히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보일 표정이 아니었다. 위즈는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울먹이고 있는 케리엘을 바라보았다.


"야, 너."
"히, 히익?!"
"방해될 것 같으니까 저쪽으로 빠져있어."


품에 안겨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케리엘을 백합무리에 실어 옮기며, 위즈는 눈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검은 마수와 시선을 교환했다.


"강아지?"


혼잣말에 가까운 위즈의 물음은 공포도, 적의도, 살의도, 그 무엇 하나 담지 않았다. 단지 호기심을 띄고 있었다. 마수는 강아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컸지만, 위즈의 눈엔 그런 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 물음이 마수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걸까. 마수는 노호를 발하며 앞발로 위즈를 후려갈겼다. 아까의 내려찍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일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수의 앞발은 허공에 정지했다. 위즈와 마수의 사이를 백합  송이가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여섯 꽃잎의 백합과, 그 꽃잎을 중심으로 넓게 펴진 반투명한 보호막.
마수는 자신이 그것을 깰 수 없음을 깨닫고 발을 빼내었다. 그리고 위즈를 경계하며 몸을 낮추고 으르렁대었다.


"재밌네, 이거. 중독될 것 같아."


그런 마수와 정면으로 대치하면서도 위즈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지휘하듯 손을 모았다. 허공에서  장의 꽃잎이 춤추듯 나타났다. 하얀 빛을 발하는 꽃잎의 끝은 얇고 매끄러워서,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았다.
위즈는 손을 뻗었다. 마수를 향해 허공에 선을 긋듯 손가락을 유유히 움직였다.

그럴 때 마다 열 장의 꽃잎이 섬광이 되어 그 손가락의 움직임대로 마수를 꿰뚫었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으로, 원형으로. 흰 꽃잎은 마수의 몸을 도려내듯 휘날렸다.


"───!!!"


마수가 날아드는 꽃잎을 앞발로 막아 멈추고 위즈에게 돌진했다. 검은색 마기가 위즈에게 엄습했다.


"어라, 그럼 안 되지."


그런 마기를 허공에서 나타난 빛줄기가내리찍었다. 스무 줄기의 광선 끝에 스무장의 꽃잎이 날카로움을 발하며 부유했다.
위즈는 양손가락을 교차해 X자를 만들었다. 스무장의 꽃잎이 반절로 나뉘어 마수의 몸체를 사선으로 베어갈랐다. 마수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


마수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 소음이 하늘을 갈랐다. 위즈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시끄럽잖아. 귀 아파."


한 줄기. 두 줄기. 세 줄기.

"────!!!"
"귀 아프다고 했지."


다섯 줄기. 열 줄기. 스무 줄기. 마흔 줄기.

꽃잎이 마치 떨어지는 소낙비처럼 마수의 몸을 관통했다. 구멍이 뚫린 곳에서 마기가 용솟음쳤다.


꽃잎이 지나간 자리에 쐐기모양의 섬광이 남았다.  섬광이 몸을 말뚝처럼 붙들어매어, 마수는 위즈에게 더 이상 다가갈  없었다.


"교육좀 받자, 멍멍아."


마수의 위에 거대한 백합이 생겨났다. 마수의 몸을 모조리 가려버릴 만큼 거대한 크기였다.
거대한 백합이 압도적인 질량을 지니고 부유했다. 백합은 같은 크기의 바위보다도 무거웠다. 백합 모양의 무게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막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허공에 생겨나자, 공기가 밀려나며 광풍이 몰아쳤다. 질식할 것만 같은 바람에 멍하니 위즈를 바라보던 루아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위즈······?"
"응? 얘는 뭐야."

차가운 목소리.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위즈의 목소리에, 루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나, 루아, 인데······."
"아······ 그런가."


그 서늘함에 충격받은 루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위즈는 얼굴을 긁적였다. 잠시 눈을감더니, 곰곰히 생각하기도 하고, 한 숨을 내쉬기도 했다.
이윽고 위즈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나는 위즈가 아니야."
"뭐······?"

더 이상 위즈는 루아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으르렁대는 마수에게 시선을 옮긴 위즈는, 입꼬리에 조소를 담으며, 두 글자를 입에 담았다.

"앉아."


하늘을 부유하던 백합이 내려앉아 마수를 완전히 뒤덮었다.

쿵.

지축이 뒤틀리는 파동과 함께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루아는 그 진동에 넘어질 뻔 하면서도, 겨우 중심을 잡았다.


"젠장, 피곤하네. 마법을 너무 막 쓴건가······?"
"아, 위즈······?"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거대한 백합을 떨군 위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위즈는 힘이 다한 듯 자신의 몸을 뒤로 무너뜨렸다. 힘없이 쓰러지는 위즈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천진한 위즈의 모습이어서, 루아는 정신을 차리고 위즈에게 손을 뻗었다.
다행히 늦지 않을 수 있었다. 루아는 위즈의 몸을 소중히 받아내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가볍고, 따뜻한 몸이었다.

위즈가 아닐  없다고, 루아는 생각했다.

"────!!!"
"어?"

흙먼지를 뚫는 괴성이 들렸다. 위즈를 안아들려던 루아는 온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마수였다. 반신이 짓이겨졌는데도 마수가 움직이고 있었다. 선득한 보랏빛 섬광을 발하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에, 루아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것이 마수라는 재해였다. 소멸하기 직전까지 인간을 노리는 재앙. 스스로가 말살당하기 전 까지 인간의 종말을 존재의의로 삼는 이형의 괴수.


루아는 위즈의 몸을 껴안아 감쌌다. 그것이 루아가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들이마실 수 없는 무력한 루아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루아는 자신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는것을 보았다.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시하가, 자신을 감싸며 거대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손짓이었다.

공터에 모습을 드러낸 시하는 손을 움켜쥐었고, 단지 그것만으로 흉폭하게 발을 치켜들던 마수는 네 개의 마석만을 남긴 채 말 그대로 세상에서 지워졌다.


루아는 그제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긴장이 끝나서인지 전신의 힘이 한꺼번에 풀려버렸다.


"결계의 해제에 시간이 걸렸다. 미안하다, 내 불찰이다."

그런 루아를 유클리드가 받아들었다.
그의 눈은 더 없이 차가운 창광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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