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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10) (51/86)



〈 51화 〉6. 시험, 그리고 또 다른 시험 (10)

푸른 달이 비추는 기숙사 건물은 고요하고 낯설었다.

술에 취한 채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고학년들도, 달빛 아래에서 거닐며 수다를 떠는 저학년들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달이 떠오르고 있는 기숙사는 내가 알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이렇게 조용한 기숙사는 처음 봐요."
"결계를 쳐 놨으니까······ 나도 이렇게 조용한 기숙사는 처음 보긴 한다. 당직  때마다 귀 떨어져나갈 지경이었는데."


코발트가 씨익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내 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기숙사까지 나를 바래다 준 것이다.

코발트는 나를 이끌고 기숙사의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의 문에 손을 가져다대고 작은 빛을 발하더니, 노크를 세  했다.


"이봐, 퓨러스. 결계 좀 열어봐."

잠시  교수님 한 분이 나타났다. 수업을 들으러 갈 때 몇 번 마주친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코발트? 어머, 그 아이는······."
"1학년."
"귀여워라~"

반짝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교수님.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나다는 그 교수님이었다. 딱히 친한 남자애가 없어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서도.

"퓨러스 밀콰유. 전문 분야는 순수마법학이지. 율릿 양도 상급생이 되면 지겹도록 만나게  거야."
"어머, 지겹다니, 코발트. 지겨운건  역사 시간이겠지."
"······네가 맡아보던가. 나라고 좋아서 역사 과목을 맡은 줄 알아? 내 전공도 순수마법학이라고."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잖아~?"
"윽."


코발트가 신음을 흘리며 침몰했다. 퓨러스는 기세등등히 웃으며 나를 잡아 끌었다.


"데려다주느라 수고했어. 학과장님은 어떠셔?"
"아직 안 돌아오셨다. 뭐, 상층부로 가셨다고 하니까 시간은  걸리겠지."
"그래······."


퓨러스가 조금 마뜩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를 기숙사의 안으로 데려갔다.

"수고했어, 코발트."
"그래. 너도 야간당직 수고해라."


 교수님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기숙사 안에 발을 들이자, 사람의 기척이 그래도 조금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동안 기숙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학생들의 불평불만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내일은 수업을 하나요?"


방으로 향하며 퓨러스에게 물었다.

퓨러스는  물음에 입술 쪽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고민하더니,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하지만 리네스트 출입은 조금 제한될 것 같네. 저학년들은 리네스트 출입 금지령이 떨어질 수도 있어."
"······리, 리네스트를 못 간다구요?"

쿠궁.


퓨러스의 말에 세상이 내려앉는 듯 한 충격을 받았다. 리네스트를 못 간다니? 그럼 간식은 어디서구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그렇게 될거야. 조사 결과에 따라서 연장될 수도 있고. 성인인 6학년은  허용 되겠지만."
"그럴 수가······."
"어머, 얘좀 봐. 또 어디서 마수가 습격해올지 모르는데 무섭지도 않니?"
"그건 그렇지만요······."


솔직히 기억도 가물가물한 마수보다는 과자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리네스트에 갈  없다니.  맛있는 간식과 수많은 먹거리들을 먹지 못 한다니.

울상을 지으며 기숙사 계단을 올라갔다.

"내일 수업이 시작하기  까진 기숙사에서 나가지 못해. 대신  방 간의 이동은 자유롭게 풀어뒀으니까, 그렇게 알아둬?"
"네에······."
"그럼 나는 다시 내려갈게. 좋은 밤 보내, 1학년!"

퓨러스가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터덜터덜 내 방의 문을 열었다.

"─아, 왔다."
"······하스타?"

그리고 하스타와 마주쳤다.


뭐지? 내 방이 아니었나?

당황한 나는 문에 걸려있는 명패를 확인했다. 위즈 율릿&루아 소크타리에스. 아무리 봐도 방이 맞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루아가 모종의 사정으로 하스타와 자리를 바꿨다던가,  눈이 이상해진거라던가, 하스타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루아가 나를 놀래키려고 했다던가.


"뭐 해, 안 들어오고? 들키면 벌점이라구."
"아, 네? 으앗?!"

잡생각에 여념이 없는데, 하스타가 내 팔을 끌고 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문을닫았다.

하스타의 품에 안기듯 끌어당겨진 나는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킁킁. 이 냄새, 어디서 많이 맡아본  같은데. 뭔가, 달달하고, 바삭하고,  안에서 사르르 녹을 것 같은, 구체적으로 36바른화 정도 될 것 같은 과자의 냄새인데?

반짝.


어두운 방에서 코를 세우고 있던 나는 별안간 켜진 방 불에 깜짝 놀라며 눈을 작게 떴다. 갑작스러운 불빛에 눈이 멀 것 같았다.


"으아아?!"
"자, 하나, 둘, 셋."


그런 나를 하스타가  안으로 떠밀었다. 그와 함께,  입에 작은 과자 하나가 넣어지는 감촉이 들었다.


이게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맛있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으음. 위즈, 과자를 먹더라도 눈은 제대로 뜨도록 해."
"후후, 조명이 너무 밝은가요. 조금 줄이도록 할게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앞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세 사람이 보였다.


세렌. 메디아. 루아.


"자, 뭐해? 어서 가서 앉아."


그리고 내 뒤에 있는 하스타까지.


"뭐, 뭐에요?!"
"뭐긴, 퇴원 축하 파티지."


하스타가 어깨를 눌러 나를 자리에 앉혔다.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과자들. 가운데에 장식되어있는 백합모양 촛대와 그 위에서 일렁이는 수정초 하나.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창문을 커텐으로 가려놓은 방은 전에 없이 북적거렸다.


"하, 하지만요. 다른 사람 기숙사에 들어가는거 안된다고 교수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어요?!"
"이틀 동안 전교생을 기숙사에 박아놨잖아. 교수님들도 이 정도는 용인해주시는 분위기더라고."
"제안은 내가 했다. 그대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계획을 전했지."
"오랜만에 쓸모있는 행동이었어요, 세리나 바른."
"······이런 자리에서까지 비아냥대는건가, 그대는?"
"어머, 칭찬이랍니다."


메디아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입을 가리자, 세렌이 입을 꾹 닫으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메디아를 흘겼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위즈?"

메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팔을 벌려 몸을 쓰러뜨리며  사람에게 안겼다.

"세렌! 메디아! 보고싶었어요!"

황금빛 머리카락과 검은 빛 머리카락이 섞여들어가며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나는 두 사람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황금빛 머리카락과 암적색 머리카락이 섞여 어우러지며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기분좋은 향기가 물씬 감돌았다.


두 사람은 잠시 나를 놀란 듯 바라보다, 이내 미소지었다. 그리고 이내 나를 팔로 감싸주었다.
차가운 바깥에서 막 돌아온 피부에 닿은 두 사람의 피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전기장판을 최대로 틀어놓은 침대에 몸을 던져놓은 기분이라, 몸이 녹아버릴   같았다.


"어, 뭐야, 치사하게. 나만 외롭게 두려고?"


하스타가 내 목에 팔을 걸었다. 어깨동무를 하듯  팔은 조금 답답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대도 이리 오도록 해, 소크타리에스. 메디아 리베른이 비록 조금 더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오늘 같은 날 그대를 질책한 사람은 아니야."
"후, 후후. 성격이 더럽다니, 천박한 말을 잘도내뱉는 군요, 세리나 바른······."
"반박할텐가? 그대의 체면만 구길텐데."
"······이 수모는 잊지 않겠어요."

세렌과 메디아가 다시 투닥거릴 기미를 보였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더욱 세게 안으며 고개를 들었다.

팔을 모아  사람의 고개를 기울여 맞댔다. 두 사람의 뺨이 닿았다. 깜짝 놀란  사람이 서로 떨어지려 했지만, 나는 팔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모여있는 두 사람의 이마에 이마를 맞대었다.


"싸우지 마요, 두 사람 다~"

세 명의 숨결이 교차했다. 따뜻한 공기가 입가에 한차례 머물고 사라졌다. 세렌과 메디아의 눈동자가, 손가락 하나 정도의 거리만을 남겨둔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메디아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팔로 감싸며 속삭였다.


"······걱정했어요, 위즈. 정말로."
"마찬가지야. 그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교수님의 명령을 어기고 뛰쳐나갈 뻔 했으니까."

세렌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렌에게서 너무나도 따뜻한 감정이 전해져 들어왔다.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절 위해서 파티까지 열어주고."


나는 이마를 떼었다. 메디아가 잠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미소지으며 나를 놓아주었다.

뒤를 돌아 하스타와 루아를 향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안았다.


"하스타도, 루아도. 진짜진짜 고마워요. 나중에 맛있는거 사줄게요."
"한 번으로 퉁 치게?"

하스타가 짖굿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번 정도는 모아놓은 용돈으로 어떻게든······."
"농담이야, 농담. 자, 먹자."

하스타가 말했다. 나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자리에 앉았다.

행복했다.




밤. 이제는 완연한 새벽에 다다른 시간.

이 곳에서 자겠다는 메디아를 애써 돌려보낸 뒤, 방에는 루아만이 남았다.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루아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루아는 나에게서 등을 돌린  누워있었다.

"루아."
"······응."

루아가 기운없이 대답했다.


역시 아까 내가 느꼈던 대로였다. 루아는 기운이 없었고,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

루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얀 눈동자가 떨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즈."
"네, 말씀하세요."

내가 루아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대답하자, 루아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등을 감싸듯 안았다.

볼에 루아의 호흡이 느껴졌다. 조금 불안한 호흡이었다.

"루아?"
"위즈, 위즈."

루아가 나를 조금 세게 안았다. 나를 두르고 있는 팔이 떨렸다.  뿐만이 아니라,  등에 닿고있는 루아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루아. 말해봐요."


루아가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깨가 따뜻해졌다.


그리고 조금 축축해졌다.


"루아?"


한참이나 그런 모습을 유지하던 루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엉망이었다. 나는 루아의 볼을 닦아내며 눈을 마주쳤다.

아직까지도 망설이고 있는 눈치였다. 약간의 공포마저도 느껴졌다. 나는 루아의 손을 잡았다.

"말해줘요, 루아. 괜찮은거에요?"


루아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위즈는, 위즈야?"
"네?"


조금 이상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루아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아니, 야?"
"아니라니요. 뭐가요?"
"위즈는 더 이상 위즈가 아닌거야······?"

이제는 울음까지 섞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루아에게 고개를 저으며 다가갔다.

"제, 제가 위즈죠. 위즈라는 이름이 하비셜에 또 있었나요······?"
"정말?"
"당연하죠. 위즈 율릿이 제 이름인걸요."
"내 친구, 위즈, 맞아······?"
"루아의 친구인 위즈에요. 왜 그래요, 루아의 눈 앞에 있는데."


내가 얼굴을 긁적이며 대답하자, 루아가 이불을 끌었다. 그리고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루아?!"
"흑, 흐윽······."

루아는 울고 있었다. 소리죽여 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루아를 안았다. 여전히 루아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대체?"
"위즈를, 히끅,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
"잃어버리다뇨······?"
"위즈가, 위즈가 아니어서, 나, 위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알고, 나, 나아······."
"저 여기 있어요, 루아. 진정해요."
"흑, 으윽, 위즈, 위즈······."


루아는 나를 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왜인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내가 할  있는건, 루아를 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담는 것 뿐이었다.

"정말, 루아 울보라니까요."
"하지만, 하지마안······."


한참동안이나 나는 루아를 안아주었다. 루아가 지쳐 잠들  까지, 계속.

끝내 루아가  이유는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짐작되는 점은, 루아의 울음이 마수습격사태와 연관이 있으리라는 추측이었다.


 이상 루아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조금 더 바쁘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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