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2) (53/86)



〈 53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2)

기본적으로 모든 학과장실은 배움의 나무에 위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과의 교실이 배움의 나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운동장 남쪽의 대련장을 주된 교실로 삼는 무예과, 하비셜 북쪽에 조성된 드넓은 재배지를 관리하는 자연과, 하비셜 동쪽에 결계로 둘러쌓인 훈련장을 가진 마법과가  예시다.

리네스트의 동북쪽 외곽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공학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론수업보다는 실기수업을 견학하는게 좋을 거라는 프레데리카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공학과의 공장인 '로페르 공작소'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공학과는 부럽네요. 수업을 마치고 나가면 바로 리네스트라니, 세상에······."
"그렇게 부러운가요?"

메디아가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내다보았다. 하비셜에서 출발한 마차는 리네스트를 거쳐 로페르로 향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겨 활기를 잃은 리네스트는 굉장히 조용했다. 나라도 가서 기운을 북돋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절대 군것질을 하러 가려는 건 아니고. 그저 활기를 잃은 리네스트의 쓸쓸함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쉬는시간에 군것질 하고 돌아올 수 있잖아요, 이 정도 거리면. 간식거리랑 도 가깝고······."
"어차피 저학년은 당분간 리네스트에  수 없는걸요. 부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위즈."
"슬프네요······."

힝.
울상을 지으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가고 싶다는 미련이 남아있어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과자, 만들어줄까?"

그런데 옆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아의 목소리였다. 나는 반색하며 루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순간 멈칫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루아의 독특한 입맛을 떠올렸다.


"어. 루아 취향으로요?"
"맛있을거야."


루아가 자신있게 눈을 빛냈다.  모습이 꼭 요리 연구회로 나를 끌고가던 루아를 보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미각세포가 정신을 잃은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중에, 한 번, 기회가 되면요."
"응. 열심히 만들게."

내가 조금 망설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자, 루아가 자그마한 미소를 지었다. 으. 눈을 반짝이며 과자를 내미는 루아에게 맛없다고는 못 할 텐데.
조금 혀를 강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도착이에요."

메디아가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요, 위즈."

그리고는 살짝 망설이다, 루아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는 들릴듯 말듯 하게 말했다.


"······그 쪽도."
"루아!"


메디아가 시선을 돌렸다. 나는 루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루아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으면서도 메디아의 눈치를 살폈다.

기차같은 느낌이 되었다. 가장 앞에 있는 메디아와 끝의 루아를 내가 연결하고 있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조사도 그렇고, 두 사람 관계도 그렇고. 여러모로 말이다.


"프레데리카 선생님!"

머리 위로 높이 손을 들어올려 휘저으며 프레데리카에게 달려갔다. 로페르의 앞에서 손을 모으고 있던 프레데리카는 나를 발견하고 싱긋 웃으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래요. 두 사람이 율릿 양의 친구인가요?"
"네!"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프레데리카에게 내밀었다. 프레데리카는  사람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공학과 6학년에 재학중인 프레데리카 로웰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율릿 양의 친구분들."

인사를 받은메디아는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다소곳이 손을 모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법과 1년생, 메디아 리베른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리베른 양이군요······ 예?"


일순간 프레데리카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외안경 뒤에서 프레데리카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메디아의 눈을 바라보고,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다시  번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삐걱거리며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 율릿 양?"
"네?"
"유, 율릿 양의 친구 분, 혹시 리베른 황녀전하······신가요?"
"네!"


내가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데리카가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다시 메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6학년의 연륜이 묻어나오는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할까, 수십가지 갈등이 이리저리 뒤섞여 나타난 표정이라고 할까. 정확하게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이어서 조금 신기하기까지 했다.


"······모, 모시게 되어서, 여, 영광입니다, 황녀 전하······!"


그런 표정을 짓던 프레데리카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살짝 떨고있기까지 해서, 보는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프, 프레데리카 선생님?"
"그렇게 예를 갖출 필요 없으세요, 선배님. 부디 편하게 대해주세요."

메디아가 프레데리카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들어올렸다. 프레데리카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 하지만, 저는 천출이옵고, 황녀 전하께서는 영웅의 핏줄을 이으신 분인데, 어찌 제가······!"
"이 곳에서는 단지 선후배 관계일 뿐이랍니다. 선배님, 부디 말씀을 낮춰주세요."


그 말과 함께 메디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프레데리카는 나와 메디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메디아와 하스타의 첫 만남이 겹쳐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하여간.


"괜찮아요, 프레데리카 선생님. 메디아는 신분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하지만요, 율릿 양······! 저는 졸업반이라구요? 내년이면 하비셜을 졸업하고 리베른으로 돌아가게 된다니까요? 그런 제가 감히 황녀전하께······!"
"난처하네요······."

프레데리카가 울 듯 횡설수설하자, 메디아가 짐짓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메디아와 한 달 가까이 같이 지냈던 나는 저 표정이 연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프레데리카는 그 표정을 연기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메디아를 조금 도와줘야겠다.


"메디아가 조금 상처받은 것 같아요, 프레데리카 선생님~"
"네?!"

프레데리카가 흠칫 놀라 메디아를 살폈다. 그러자 메디아는 한층 더 가녀린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가요. 황녀인 저는 공학과의 견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네요······. 그래요. 저는 결국 평범한 일상을 조금도 누리지 못하고, 리베른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요······."

어라, 저건 좀 진심같기도 하고?

"화, 황녀전하, 제, 제가, 무례를······!"


프레데리카는 이제 거의 울  같았다. 장난이 조금 심하지 않나 싶어 볼을 긁적이며 메디아를 바라보았지만, 메디아는 끝까지 연기를 계속하려는 것 같았다.

"흑. 알겠어요, 선배님. 저는 돌아갈게요. 아아, 황녀로서 견학같은 사사로운 희망을 품어서는  됐던 거였어요. 선배님께서 큰 깨달음을 주셨네요······."
"제,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프레데리카가 눈물이 송글송글 맺힌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메디아가 우는 척 하는 연기 속에서 슬쩍 프레데리카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를 편하게 대해주신다면 조금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아요······."
"하, 하지만······!"
"흑. 역시 안되는 거겠죠. 황녀이면서 이런 따뜻한 것을 바라려고 하다니······."
"네, 하, 할게요! 네! 하겠습니다! 하게  주세요!"

프레데리카가 절박하게 외쳤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메디아가, 프레데리카의 시야 바깥에서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을.
우와, 메디아 무서워.

"그럼, 메디아 양이라고 불러주실 건가요······?"
"······알겠어요, 메디아 양."

프레데리카가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메디아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연약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기뻐요, 선배님.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고개를 젓는 프레데리카의 얼굴은 초췌했다.
그런 프레데리카의 앞에서, 메디아는 나에게 살짝 고개를 돌려,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메디아한테 절대로 밉보여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쪽은요?"

한 차례 옷차림을 단정하게 정리한 프레데리카가, 이번에는 루아에게 물었다.


"······루아야."
"루아야······ 인가요?"
"······루아 소크타리에스."

루아가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조금 떨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프레데리카가 루아에게 폭언을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지만, 만약의 사태가 온다면 최대한 부드럽게 대처해야 했다.

프레데리카는 루아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잘 부탁해요, 루아 양."
"······응."


루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데리카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율릿 양. 소크타리에스라면, 그 가문 맞죠?"
"프레데리카 선생님이 아시는게 맞을걸요······."
"알겠어요. 최대한 배려할게요."

프레데리카가 살짝 미소지었다. 그러더니 조금 한탄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율릿 양. 친구 분이 황녀전하라는   마디도  했죠?"
"아하하."
"미리 말 좀  주지 그랬어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죄송해요, 프레데리카 선생님~"
"벌이에요. 나중에 저랑 밥 한끼 먹어요."
"그게 벌이에요?"
"졸업반이 신입생의 시간을 빼앗는건데, 당연히 벌이죠. 각오해요, 배 터질정도로 먹여줄 테니까."
"기쁜 마음으로 각오하고 있겠습니다!"

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데리카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차례 헛기침을  후 우리에게 말했다.

"자아, 그럼 공학과의 정수인 로페르를 소개해드릴게요."

프레데리카가 우리를 큰 문 안쪽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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