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3)
정문의 결계를 넘어서자, 가장먼저 덜컹이는 진동이 느껴졌다.
땅을 흔드며 나를 감싸는 진동은 흡사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 같았다. 순간 다리가 휘청일 정도였으니.
"오늘따라 조금 심하네요."
프레데리카가 쓰게 웃으며 비틀대는 나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나를 바로 세워, 눈 앞의 광경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로페르 공작소'라고 이름붙은 곳이건만, 그 규모는 도저히 일개 공작소로 칭할 정도가 아니었다. 로페르의 풍경은 소설 속에 나오던 고대유적같기도 했고, 동시에 근미래의 마법도시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마정석을 곳곳에 박아넣은 채 허공을 부유하는 건물. 일정한 주기로 피스톤운동을 벌이는 육중한 철제 기둥들. 가운데의 마정석을 중심으로 여러 원형의 띠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구체 모양의 기구.
복잡하게 회전하는 기구를 중심으로 가지각색의 건물이 줄지어 있다. 철을 제련하고 있는지 깡깡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어떤 곳은 심지어 작은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온다.
회색 가디건을 걸친 학생들은 그런 건물 사이를 바삐 돌아다닌다. 양 손에공구상자를 들고 바삐 뛰어다니는 학생도 있고, 느긋이 걸어다니며 설계도를 바라보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킥보드처럼 생긴 탈것을 타고 공중을 누빈다. 늘어서있는 건물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자면 그들에게서 활력이 넘쳐난다는 것 정도일까.
기술력이 바깥에 비해 몇 세대는 앞서있는 것 같았다.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듯 한 충격에, 나는 백합황녀의 세계를처음 자각했을 때 만큼이나 놀라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을 표현하자면, 단 한 마디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멋있었다.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의 표현은 사족일 정도로 이 광경은 엄청났다.
"놀랍네요."
메디아가 감탄하자, 나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선 고개를 거세게 흔들어 내 벅찬 마음을 표현했다.
"대, 대단해요! 뭐에요 여기, 공작소 정도가 아니잖아요?!"
"공학과의 기반을 다지신 로페르 케이먼 초대 학과장님께서 직접 일구신 터전이에요. 그 분이 직접 건물을 짓고 공작소라 이름붙였던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오······."
입술을 모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다시금 로페르를 바라보았다. 소음이 엄청났지만, 그만큼 마음을 직접 자극하는 무언가가 전해져왔다. 로망이라고 해야할까. 이러다가 건물 뒤에서 거대로봇이라도 나올 것 같은─
쿵.
"어, 어?!"
"마침 잘 됐네요. 여러분, 제노다이스의 시험발진, 혹시 구경하실 생각 있나요?"
"제, 제노다이스요?"
"많이 놀랄거예요."
프레데리카가 자신있는 표정으로 장담했다.
두근.
심장박동이 거세졌다.
뭔가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심장이 요동친다. 본능이 나를 그 곳으로 이끌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뭐야, 제노다이스라니. 이름부터 멋있어보이잖아······!
"가요! 꼭 가고 싶어요!"
"좋아하는 걸 보니 안심이네요. 공학과의 선배로서 기쁜걸요."
프레데리카가 미소지으며 앞장섰다. 나는 메디아와 루아와 함께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따라갔다.
"A파츠 시험구동 끝났어? 마정석에 마력 충전 다 해 놨고?"
"마력 출력 전부 확인 마쳤습니다!"
"그래. B파츠는?"
"각 관절 토크 정상! 중량 지지대 압력 분산 확인 완료! 이론상 완벽합니다!"
"시험장 상태는?"
"경사각 오차를 0.25도까지 줄였습니다! 완전한 평지의 구현,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조립 공정으로 옮겨!"
"옙!!"
5학년을 상징하는 무늬가 그려진 회색 로브를 펄럭이는 소년은 예쁘장하고 자그마한,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다른 학생들을 지휘했다. 설계도로 보이는종이를 마정석과 연결시켜 공중에 띄워놓은 채 유심히 살피는 그의 모습은 메디아보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꽤 박력있었다.
"안녕, 셰펠리~"
"아, 선배."
설계도를 들여다보던 소년이 프레데리카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쪽은?"
"응, 이 애들의 부 과가 공학과라고 해서 견학좀 시켜주려고 왔지."
"그래요. 나는 셰펠리 카프카. 마법과 5학년이다. 구경 잘 하고 가라."
셰펠리가 건성으로 인사하며 다시 설계도에 눈을 가져다대었다. 굉장히 바빠보였다.
"뭐 하는거예요?"
"기다려보면 알아요."
프레데리카가 웃음을 띄우며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언뜻 보기엔 콜로세움처럼 생긴 곳이었다. 400m 트랙이있을 법 한 운동장 만 한 크기의 땅을 난간이 빙 둘러싼 형태였다.
10m정도 떨어져 있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돌조각 하나 없이 고른 땅이었다. 한쪽 끝에는 어두운 통로가 있었고, 다른 쪽 끝에는 20m정도 되는 기둥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8m정도 되는 높이의 어두운 통로 안에서는 고함소리를 비롯한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따금 땅을 울리는 진동도 느껴졌다. 셰펠리는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계속해서 여러 도면을 검토중이었다.
"뭐하려는 걸까······?"
"기대해도 될 것 같아요, 루아."
"어째서?"
"그냥······. 느낌이 그래요."
"모르겠어······.
루아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사람을 자극하는 로망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을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조립공정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가자."
4학년이 보고하자, 마침내 셰펠리가 로브자락을 피며 공중을 부유하던 도면을 하나로 모았다. 그리고는 프레데리카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프렛 선배."
"응?"
"선배의 빈 자리, 훌륭하게 메꿔보이겠습니다."
다짐하는 듯 한 목소리였다. 아이보리색 곱슬머리를 한 차례 매만지며 프레데리카를 바라보던 셰펠리는, 이내 멋적은지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떠났다.
"지켜보고 있을게, 셰펠리."
그런 셰펠리의 등을, 프레데리카가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대감이 가득한 눈동자가 대견하다는 듯 그의 뒤를 따랐다.
"프레데리카 선생님, 혹시 친한 사이에요?"
"친하······다기 보단, 조금 서먹하죠."
"왜요? 친해보이던데."
"제가 고백을 거절했거든요."
"······아."
"공학과 학생중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만,그래도 어디에서 말하고 다니지는 말아줘요, 율릿 양."
조금 난처한 표정의 프레데리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왠지 프레데리카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련하던 이유가 있었구나.
저런.
그저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왠지모르게 조금 측은해졌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자, 지축이 쿵, 하고 울렸다.
"꺄악?!"
"괜찮아요?"
루아가 발을 휘청이며 내게 몸을 기댔다. 루아가 살짝 몸을 떨었다.
"아, 깜빡했네요. 자, 여러분. 균형유지 마정석이에요."
프레데리카가 미안한 눈치로 우리에게 마정석을 하나씩 건넸다.
루아와 메디아는 프레데리카가 내민 마정석을 받아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겠어요, 위즈?"
메디아가 조금 심려가 깃든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원래, 이런 진동은 몸으로 겪어야 재밌는 거에요!"
"율릿 양, 괜히 공학과에 들어온 건 아니네요."
프레데리카가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작게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동의 진원지인 검은 통로를 지켜보았다.
어느새 난간에는 수많은 학생이 자리잡고 있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었다. 응원하는 사람도, 긴장하는 사람도, 기대하는 사람도, 모두 검은 통로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4학년과 5학년의 합동 시험이예요. 첫 월말평가를 대신하죠."
프레데리카가 추억에 잠긴 듯 말했다.
"저희 때엔 수백개의 마정석을 띄워 공연을 했었는데······ 후후, 제노다이스라니. 후배들이 멋진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 때였다. 난간에 기대고 있던 우리를 향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존경하는 선배님들! 사랑하는 동급생 모두! 귀여운 후배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아!"
흥분을 감추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소리는 경쾌한 어조를 이어나갔다.
"오늘은 드디어 합동시험의 결과를 시험하는 시간입니다! 진행에 제노드라 학과장님 모셨습니다. 모두 박수!"
짝짝짝.
큰 박수소리가 한참동안이나 울렸다. 그리고 어느정도 잦아들자, 일전에 한 번 들어보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학과의 학과장, 제노드라 케이먼이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주관하는 마지막 합동시험이 될 테니, 부디 성공하길 현인의 이름으로 축복하겠어요."
인자하고 부드러운 제노드라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리자, 웅성임이 일었다. 프레데리카 역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은퇴, 정말 하시는거네."
"좋은 분인데. 내년부턴 수업을 더 이상 못 듣는걸까? 아쉬워라."
몇몇 웅성임은 내 귀에도 들려왔다. 나는 프레데리카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
"좋은 교수님이세요?"
"물론이에요. 공학과 학생들중에 제노드라 교수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니까."
으음, 그런가.
프레데리카가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흑막의 정보통의 용의선상에서는 제외시켜둘까. 으음······ 뭔가 걸리네. 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은데.
"혹시 만나뵐 수 있을까요?"
"학생을 좋아하시니까요. 면담을 신청하면 될거예요."
"고마워요, 프레데리카."
빙긋 웃었다.
그리고, 동시에, 검은 통로에서 거센 빛이 터져나왔다.
"네, 지금 시작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제노다이스의 발진입니다!"
쿠구궁.
엔진소리인지 모를 괴성이 고막에 닿았다. 몸이 기분좋게 떨렸다.
눈부신 빛 속에서, 하얀색의 날카로운 몸체를 가진 거대한 거인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높이는 대략 7m.
그것이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지축이 진동했다.
인간의 근육을 재현하려는 수 많은 모터들이 제각각 맹렬하게 움직이며 그 거대한 몸체를 한 발자국씩 움직였다.
강철의 거체는 수 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번 발자국을 옮길 때 마다 철컥, 하고 강철과 강철이 맞물렸다.
느렸지만, 확실히, 제노다이스는 중앙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소개합니다! 이번 4학년과 5학년의 합작, 제노다이스입니다!"
그 웅장한 광경에 말문이 막혀 있는데, 사회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정신을일깨웠다. 사회자는 침을 튀겨가며 제노드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제노드라 학과장님의 이름을 딴 이 거인은, 5학년 대표 셰펠리 카프카의 주도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조립에 사용된 부품만 1만여 개이며, 사용된 마정석의 갯수는 무려 1석급 백 오십 칠개, 2석급 삼십 이개, 3석급 다섯 개라는 경이로운 수를 자랑합니다!"
운동장의 가운데에 도달한 제노다이스가 자세를 고쳤다. 직립해있는 제노다이스의 얼굴에서 청록색 빛이 발광했다. 하얀 철제 마스크의 위에서 빛나는 안광이라고 해야할지.
"제노다이스의 가장대단한 점은,이렇게 움직이는 거인을 구동하는데에 회전마법, 수축마법, 탄성마법, 직선운동 마법 단 네 가지의 마법만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그 이외의 모든 움직임은 마법이 아닌 기계장치의 연속적인 움직임으로 구현됩니다!"
어지러운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설명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모든 감각이 눈 앞의 풍경에 쏠렸기 때문이었다.
로봇이었다. 그것도 거대로봇.
"율릿 양."
"······네?"
제노다이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프레데리카는 피식 웃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공학과가 율릿 양의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에요."
"네에······."
고개를 멍하니 끄덕이며 계속해서 제노다이스를 보았다.
조명을 받아 백색 유광을 내비치는 제노다이스.
언젠가 꼭 타보고싶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