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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4) (55/86)



〈 55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4)

[채점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제노다이스를 바라보며 넋을 빼놓고 있던 나는 제노드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 곳에 위치한 모든 학생이 제노드라의 말을 숨죽인 채 귀기울였다.


[기술력은 최상급입니다. 작년의 공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없어요.  부품의 마감도 깔끔하고, 연결부위의 움직임도 굉장히 매끄러웠습니다. 마정석을 이용한 마법의 가지수를 제한해 마법적 움직임보다 기계적 움직임을 더욱 중요시 한 점 또한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군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4학년과 5학년들은 손을 움켜쥐며 소리죽여 기뻐했고, 저학년들은 그런 선배들을 선망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다만, 프레데리카를 포함한 몇몇 6학년들은 조금 신중한 표정으로 제노드라의 말을 계속 경청하고 있었다.

[반면, 실용성은 낮은 점수를 드릴  밖에 없습니다. 몸체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너무 힘을 쏟은 나머지, 무언가를 운반하는 능력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처참하더군요. 그렇다고 내구성이 좋은 편도 아닙니다. 경사진 비탈길에서는 무릎 관절의 가동범위 한계 때문에 기동이 어렵다는 것이 눈에 보이며, 무엇보다도 부품이 너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어서 하나의 부품이라도 손상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부품 또한 망가지게 되는 구조로 보입니다. 정밀성은 대단히 뛰어나나, 불의의 상황에 너무나도 무력한 물건인지라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기엔 당장은 어려움이 따르겠네요.]


이번에는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프레데리카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제노드라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게 멋진 작품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멋있었잖아요."
"실용성부문에서 약점이 있는 건 사실이예요."


그래도, 거대로봇인데······.

조금 불만을 가진 채 제노드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프레데리카가  귀에 얼굴을 숙이며 말했다.


"그래도, 제노드라 교수님께서는 실용성 외에 다른 것도 중요시하세요."
"다른 거요?"
"네."


프레데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제노드라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창의력 부문의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창의력?
생각지도 못한 채점기준에 깜짝 놀라서프레데리카를 바라보았다. 들어보라며, 프레데리카가 미소짓고 있었다.


[먼 옛날. 제 아버지의 이전 세대부터, 인간의 모습을 본따 만드려는 시도는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그 방법도 다양했죠. 골렘, 목각인형, 인공정령······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그들은 결국 '자립'이라는 근본적인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작품은 그런 점에 있어서 자립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엿보이더군요. 마력을 주입하는 것 만으로 자율기동하는 강철인간······ 이 얼마나 멋진 울림인가요. 여러분의 작품을 기초하여 발전해나간다면,  많은 선배들이 실패했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법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창의력은 특히 공학과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조금이라도 높은 효율을 내기 위해 발상을 전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있도록 공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능력이니까요.

멋진 시도였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참신한 결과물이었어요. 창의력 부문에서 만점에, 학과장 권한으로 추가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오, 오오.


뭔가 대단한 칭찬이었다. 나는 상기된 표정으로 메디아와 루아를 바라보았다. 메디아는 감탄하고 있었고, 루아는 하늘을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실용성에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조금씩 발전시켜나가면 해결 될 일이지요. 축하합니다, 여러분. 합격이예요.]

짝짝짝.

허공에 제노드라의 박수소리가 몇 번 울렸다.
그리고 그를 따라, 메아리를 치듯, 거대한 함성소리가 대기를 가득 메웠다.

"우와아아아아!!!!!"
[합격, 합격입니다! 여러분!!! 300여 년 가까이 되는 공학과의 역사에서, 첫 시도에서 합격하는 경우가 20회를 겨우 넘긴다는 지옥의 시험, 합동시험을 첫 시도만에 합격했습니다!!]

흥분에 젖은 사회자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와 귀 사이를 방방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소란의 중앙에는, 초록색 눈을 발광시키는 제노다이스가,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용맹히 서 있었다.





사건은 그 때 일어났다.


"······위즈."
"네?"

제노다이스를 바라보던 루아가 내 옷자락을 살짝 끌었다. 루아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루아는 제노다이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제노드라의 음성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루아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엔 보라색 스파크가 일고 있었다.

"저게 뭐죠?"
"모르겠어······ 어디서 본  같지만."


루아가 조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메디아의 손을 잡아당겼다.

"메디아, 메디아."
"무슨 일인가요?"
"저게 뭐예요?"
"······잠시만요. 왜 소환진이?"

메디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보라색 스파크가 원을 그리자 사색이 되어, 나를 거칠게 잡아 끌었다.


"이리로 와요, 위즈!"

와락.

갑작스럽게 끌려간 나는 메디아의 품에 안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메디아를 올려보았다.


"무, 무슨 일이에요, 메디아?!"
"······잠시 귀좀 막고 있어요, 위즈."


메디아가 나를 안은 채 한 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일단 귀를 꼭 막았다. 메디아의 말이니 믿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굉음이 손을 뚫고 전해졌다.


[마법과 1학년, 메디아 리베른입니다. 원인 불명의 소환진이 상공에 생성중입니다. 강력한 마기가 느껴집니다, 빨리 도망쳐주세요!]

갑작스러운 굉음에 시끌시끌하던 광장이 한순간에 적막해졌다. 프레데리카를 비롯한 고학년들은 메디아의 말에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긴급 상황입니다. 고학년은 저학년을 데리고 이 곳에서 황급히 빠져나가세요. 학과장 명령입니다!]
[예? 학과장님?]
[제 말을 반복하세요, 데커드. 저는 나가봐야겠습니다.]

툭.
다급한 제노드라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이어서 제노다이스의 위에 제노드라의 모습이 나타났다.

"뭐 하고 있습니까, 상급생! 어서 하급생을 데리고 피난하세요! 학과장 명령입니다!"

제노드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박력이 담겼다. 멍하니 결계를 바라보고 있던 프레데리카는 제노드라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곤 루아와  손을 붙잡았다.


"가요, 여러분! 이 곳은 위험하니까─"
"······아니야."

그런 프레데리카에게 루아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예요, 루아 양! 학과장님의 명령인데─"
"하나만 열려있는게, 아니야······."


루아가 공포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메디아 역시 잠깐 멈칫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에요. 로페르 안에 열 다섯개의 포탈이 느껴져요."
"그, 그럼 어떡해요?!"
"차라리 여기에 있는게 안전할거에요, 위즈. 로웰 선배님, 위즈를 부탁드려요."
"메, 메디아 양은 어쩌려구요?"
"잊었나요, 로웰 선배님?"


메디아가 가디건을 벗었다. 그리고선 양 손에 불꽃을 휘감으며, 프레데리카에게 말했다.


"저는 영웅의 피를 이은 자. 메디아 리베른이랍니다."
"아······."

거센 돌풍과 함께 메디아가 제노드라에게로 날아올랐다.


"대피를 중단시켜야 해요, 제노드라 교수님!"
"무슨 말입니까?"

게이트를 결계로 감싸던 제노드라가 메디아에게 물었다. 메디아는 제노드라의 결계에 자신의 마력을 덧대었다. 그리고 말했다.


"로페르의 곳곳에 소환진이 생겨났어요. 무작정 이 곳을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오히려 위험해질거예요!"
"······맙소사."

제노드라가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선 메디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비셜의 학과장으로서 황녀 전하께 요청합니다! 이 곳의 결계를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영웅의 핏줄이여!"
"맡겨주세요."
"결계를 기동시키고 하비셜 본관에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학생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심려치 마세요. 기꺼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노드라가 메디아에게 한 차례 고개를 숙인 후 사라졌다. 메디아는 그녀가 사라진 공간을 잠시 바라보다, 한 차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위즈가 있는 방향을 힐끗 바라보았다.

위즈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설마 걱정해주고 있는 걸까요."


메디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메디아는 단 한번도 걱정이라는 감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메디아에게 모이는 감정은 언제나 비슷했다. 또래에게는 선망과 동경을,  사람에게는 영웅의 핏줄에서 나오는 신뢰와 의지를, 아버지에게서는 엄한 질책과 훈계를 받아왔다.

당연했다. 메디아는 영웅의 후계이며, 리베른의 미래를 짊어질 자였다.


'항상 앞에 서 방패가 되어라. 백성이 의지해온다면 내치지 말고 묵묵히 견뎌라. 리베른의 인간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니.'

입버릇처럼 아버지가 담았던 말이었다. 그리고 메디아는  말을 무겁게 여겼다.
무겁게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메디아의 아버지는 그 말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라는 짐을 홀로 짊어지고, 의지하는 이 하나 없이 만인의 의지를 받는 사람을 아버지로 둔 메디아는, 그 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메디아는 수많은 것을 손에서 놓았다. 또래와의 사귐을 포기했고, 소박한 꿈을 버렸고, 연약한 마음을 갈아내어 날카롭게 만들었다.


자꾸만 꺾이려고 하는 마음을 아버지와 비교해가며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그런 메디아에게, 위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되어주었다.


위즈의 곁에 있다 보면 메디아는 황녀라는 직책을 잊을 수 있었다. 영웅의 후손이 아닌, 그저 열 다섯살의 메디아로서 하비셜을 다닐 수 있었다. 황녀라는 직책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걱정받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의지받아야 하는 존재인 영웅의 핏줄을 걱정하는 소녀의 존재는, 메디아에게 있어 너무나도 놀랍고 새로운 것이어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제가 위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래서 였을까요.

메디아는 중얼거리며 손을 모았다.  손에 이글거리던 불꽃이 합쳐져, 붉고 짙게 일렁였다. 고순도의 마력이 밀집되어 손 위에서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펼쳐라. 감싸라. 모아라. 막아라."


메디아가 명령하며 팔을 뻗자, 그녀의 마력이 넓게 퍼져 소환진을 감쌌다. 적색 마력은 제노드라가 설치해놓은 결계를 덮는 거대한 구가 되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는 것 같았다. 저 높이 걸려있는 태양보다도 밝게 빛나는 화염구가 눈이 멀 것 같은 빛을 뿜어내었다.

"그대의 적을 멸하라, 홍염이여."

붉은 구를 거센 화염덩어리가 회전하며 감쌌다. 태양에서 솟구치는 플레어를 보는 것 같았다. 거센 열과 빛이 붉은 구를 회전하며 천천히 수축시켰다. 화염덩어리가 화염구의 표면에서 솟아나더니,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화염구로 곤두박질쳤다. 그럴 때마다 화염구는 응축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 구가  줌만도 못한 크기가 되자, 메디아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주먹을 쥐었다.
불길이 걷혀 사라지며, 하늘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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