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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5) (56/86)



〈 56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5)

땀범벅이된 메디아가 내려오자, 나는 메디아에게 달려갔다.


"괜찮아요, 메디아?!"
"물론이예요. 후후, 걱정해주는 건가요?"
"당연하죠, 친구니까!"

메디아를 살폈다. 다행히 땀을 흘리는 것 외에 상처는 없어보였다.


[대피하세요. 반복합니다, 상급생은 하급생을 대동하여이 곳을 빠져나가 주세요······!]

사회자가 벌벌 떨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반복했다. 메디아는 그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침착을 유지하며 건물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곳은어떻게든 처리했어요. 하지만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문제인데······."
"다섯 개의 마법진이 사라졌어."


메디아에게 루아가 말했다. 메디아는 깜짝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인가요?"
"응······."


루아가 살짝 시선을 내리깔며 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메디아는 눈을 감아 무언가에 집중하더니, 이내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잖아요. 당신,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 수가 있죠?"
"하지만, 느껴지는걸."


루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디아는 그런 루아를 바라보더니 작게 탄성을 내었다.


"······이제 기억이 나는군요. 소크타리에스 가의 혈계전승, 제6감각······."
"혈계전승이요?"
"그래요.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능력이요. 바른제국에서는  가의 용화(龍化)가 가장 유명하겠네요."

 가라고 한다면, 당연히 샤오리드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샤오리드는 팔뚝에 돋아나 있던 붉은 비늘을 보여주었었는데, 그게 혈계전승이었던 걸까.


"그런거, 몰라······."


루아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메디아는 그런 루아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되겠어요."

메디아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손가락을 향한 후, 사각형을 크게 그렸다.
그 손길에 따라 난간 바닥이 잘려나갔다.

"어?!"

바닥이 흔들거렸다. 시하 익스프레스의 추억이 넘실거리는, 그런 느낌.

"조심해요, 위즈. 이대로 날아갈테니까."
"네?!"
"······루아 양, 이라고 부를게요. 아직 그 가문의 이름을 입에 담고 싶진 않으니까."


내가 깜짝 놀라 반문했지만, 메디아는 그런 나의 말을 쿨하게 넘긴 뒤 루아를 향해 말했다.
조금 망설이는 메디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루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아 양. 힘을 빌려주세요. 당신의 감각이 필요합니다. 제 능력으로는 소환진의 정확한 위치까지는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응."

루아가 내 허리를 잡으며 메디아에게 대답했다. 순간 메디아가 몸을 움찔 떨며 나와 루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허리를 껴안아요, 위즈."
"그래도 돼요?"
"잡아요,어서. 떨어지면 안 되니까."


잘라진 바닥이 두둥실 떠올랐다. 균형을 잃을까 무서워 나는 메디아의 허리를 잡았다.
부드러운 향기가 전해져왔다. 허리가 이렇게 가늘 수 있나 싶다가도, 이렇게 부드러운 감촉을 감히 느끼고 있어도 되나 싶었다. 잡고 있는  만으로도 행복해서 마법 없이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즈으, 꽃이이······!"
"아, 죄송해요, 루아!"

내 등을 잡고 있던 루아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루아를 위해서라도 너무 기뻐하는 건 조심해야겠다.





"홍염이여!"

메디아가 주먹을 쥐며 외치자, 마법진이 불살라져 자취를 감췄다. 마법진을 타고 모습을 드러내려던 몇 마리의 마수또한 마석 두어 개 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이걸로 세 개 째예요!"
"네 개가 남았어.하지만······."


루아가 불안한 눈초리로 남서쪽을 바라보았다. 메디아는 그런 루아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나요?"
"엄청 큰게, 넘어왔어."
"어느 정도로요?"
"모르겠어. 엄청 큰데, 주위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위치를 알려 주세요, 루아 양."
"저쪽이야."

루아가 손가락을들었다. 메디아는 바닥을 돌려루아가가리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꽉 잡아요, 조금 빨리 날아갈게요."

메디아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말했다. 괜히 영웅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듯  메디아의 모습은, 멋있고 아름다웠다.
그런 메디아의 등을 붙잡고 있는 나는 사실 이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인게 아닐까.


"위즈으······."
"아, 미, 미안해요, 루아······!"


······으악. 기뻐하면  돼, 위즈 율릿. 정신차리자!


메디아와 함께 날아간 곳에는, 거대한 소환진이 하늘을 크게 잠식하고 있었다.


"이건······."


메디아가 말문이 막힌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도, 루아도 마찬가지였다.

소환진에서 나오고 있는 거대한 마수는 여느 마수와 다름 없이 그림자와 같은 검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가지 다른 점은, 온 몸에 검은 철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몸통 뿐만이 아니라 사지까지 갑각으로 뒤덮인 거북이 같은 모습이었다.


"······테라 다칼리온."
"아는 마수예요?"
"온 몸에 흑빛 영철을 두른 7석급 마수예요. 큰일인걸요······."


메디아가 침음을 흘렸다. 나는 다급해져서 메디아에게 물었다.

"강해요?!"
"······저와는 상성이 최악이네요."
"왜, 왜요?"
"흑빛 영철은 모든 마법적 작용을 약화시켜요. 마법을 쓰는 저로서는상극인거죠."
"말도 안돼······."

멍하니 중얼거리며 테라 다칼리온을 바라보았다.
공학과의 교수들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3층건물 크기의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테라 다칼리온의 움직임을 막기에는역부족이었다. 마법적인 간섭을 약화시키는지라 더더욱 그랬다.

"솟아올라라!"


메디아가 마수의 앞쪽에 손을 뻗으며 외쳤다. 그러자 테라 다칼리온 앞에 두껍고 거대한 벽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테라 다칼리온은 흙벽을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렸다. 메디아가 침음을 내었다.


"자꾸만 마법이약화되어서 벽의 강도를 유지할 수가 없어요······!"
"건물이라도 뜯어내서 막을 수는 없을까요?"
"하비셜 본관을 가져온다면 모를까, 얇은 벽을 지닌 건물은 시간끌기조차 안 될거에요."


그 때였다.  뒤에서 거센 고함이 들려왔다.


"교수님들! 비켜주세요!"
"······프레데리카 선생님?!"

프레데리카를 위시한 6학년이 그곳에 모여있었다. 그들은 길에 일렬로 서 있었는데, 각기 옆에 거대한 원통을 하나씩 구비하고 있었다.

"대포······네요?"
"그렇군요. 물리적 타격이라면 승산이 있겠어요! 방해하지 않도록 하죠!"


우리가 타고있는 바닥이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마수의 진로를 방해하던 교수들도 프레데리카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준비, 조준, 쏴!"

프레데리카가 고함치자, 대포가 불을 뿜었다. 지축을 뛰어넘어 공기마저도 진동시키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쿵, 콰과광.

"─────!!!"
"좋아, 먹힌다!"


테라 다칼리온이 괴성을 내지르자, 프레데리카가주먹을 불끈 쥐었다.

휘익, 휙.

테라 다칼리온은 자욱한 연기를 걷어내었다. 그리고 대포를 조준하고 있는 6학년들에게로 진로를 천천히 틀었다.


"전장식 대포는 잠깐 뒤로물러나! 후장식은 준비 완료 됐지?!"
"됐어!"
"나도!"
"좋아, 그럼 쏠 준비 해! 머리나 흑빛 영철이 비어있는 곳을 노려! 준비, 조준, 쏴!"

콰과과광.

 다시 굉음이 울렸다. 테라 다칼리온의 노성이 지축을 울렸다.


"───!!!!"

거센 폭발 뒤에도 테라 다칼리온은 자극을 받았을  그다지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온 몸을 뒤덮고 있는 흑빛 영철이 문제인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벗어난 교수들이 프레데리카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잘 가져왔다, 프레데리카! 학과장님께서는 어디계시냐!"
"결계를 해제중이세요! 로페르전체를 덮는 결계가 몇 겹이나 생성되어 있어요!"
"······지원이 도착하기 전 까지는 어떻게든 막아야 해. 저 녀석을 공학의 전당에까지가게 두면, 몇백년에 걸쳐 이룩된 공학과의 산물이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노력하겠습니다, 루모스 교수님!"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바로 도망치거라. 공학의 전당에서 쓸만한 것들을 가져오마!"
"네!"
"나는 대포 쪽을 돕지. 너희보단 내가 장전하는 편이 발사속도가 빠를거다."
"알겠습니다!"


몇몇 교수는 대포를 장전하기 시작했고, 몇몇 교수는 그들을 지나 길을 달려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킥보드를 탄 학생무리가 나타나 교수들을 킥보드 뒤에 태웠다.

쿵, 콰과광.

"지금 발사한 대포들은 뒤로 물러나서 다시 발사 준비를 해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번갈아가며 쏘는거다!"


프레데리카에게서 지휘권을 넘겨받은 교수가 대포들에게 명령했다. 조금 삐걱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 치고는 굉장히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대단하네요, 공학과. 저는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을거예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공학과에서는 워낙 위험한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지라,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그래요?"
"네. 하유가 공학과 출신이었거든요."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닥을 움직였다.


"다른 곳으로 가죠. 루아 양! 소환진은 또 어디에 있나요?"
"가장 가까운건  쪽이야."

루아가 손가락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이 곳과 비슷한 느낌이야."
"테라 다칼리온만 아니면 좋겠는데요······."

메디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구역. 버려진 공장이 즐비한 로페르의 변두리.

"······윽."

 곳에는 테라 다칼리온이 한 마리 더 소환되어 날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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