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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6) (57/86)



〈 57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6)

흑철갑이 뒤틀리며 모든것을 파괴해 나갔다.


재건축 예정인 폐쇄 구역이기에, 주변에 사람은 없다. 몇겹인지 조차 가늠할 수 없는 먼지가 내려앉은 기구들. 낡고 부서져 경계선이라는 속성을 잃은 벽.


그 장소를 테라 다칼리온이 짓밟고 지나간다.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조차 벅차던 폐건물이 그 육중한 돌진에 저항할  있을 리가 없었다. 건물들이 힘없이 쓰러지며 먼지구름을 단말마로 남긴다.


"────!!!!"


오싹한 굉음이, 파괴되어가는 건물들의 마지막을 기리는 장송곡처럼 허공에 울려퍼졌다.





"······움직이고 싶은 방향을 손으로 누르면 그 쪽을 향해 움직이도록 해 놨어요."
"메디아?"


숨죽인  테라 다칼리온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메디아가 말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메디아가 공중으로 도약하며 양 손에 불을 머금었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손짓하며 외쳤다.

"위즈와 루아는 테라 다칼리온의 예상 경로를 따라서 움직이며 피난 권고를 해주세요. 저는  곳에서 최대한 발을 묶어  테니까."
"혼자서 괜찮겠어요, 메디아?"
"적어도 다치지는 않아요."

메디아가 미소지었다. 그러더니 땅으로 내려가 오른손을 바닥으로 뻗었다. 메디아의 손바닥으로부터 마력이 폭발하듯 흘러나와 대지를 덮었다.


"끓어올라라······!"


땅이 천천히 융해되기 시작했다. 대지는 흐물흐물해지더니, 이윽고 기포가 솟아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처음엔 흙이, 그 다음은 자갈이, 마지막으로 돌이 녹았다. 붉게달아오른 땅은 더이상 딛고 설  없었다. 마치 늪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용암지대로 변모한 것이다.



일대가 용암으로 뒤덮히고 나서야 메디아는 손을 거뒀다.. 메디아는 조금 힘에 겨웠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수를 경계하며 숨을 고르던 메디아는 이윽고 우리를 향해 말했다.


"부탁해요, 위즈!"
"무사해야 해요, 메디아!"
"후우······ 물론이죠."


한번 크게 숨을 들이 쉰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 다칼리온은 용암호수에 발을 딛었다. 이성이 없어보였다. 단지 한 방향으로 우직하게 돌격하는 그 모습은 모든것을 짓밟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테라 다칼리온이 광포를 내질렀다. 대기가 맹렬히 요동쳤다.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용암에서도 움직여······."

루아가 창백한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루아의 말대로였다. 테라 다칼리온은 용암호수 안에 발을 들였음에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몸체가 용암에 빠져 타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수의 다리는 다시 재생되며 조금씩 용암을 헤쳐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읏······!"


테라 다칼리온의 몸부림에 용암이 폭발하듯 용솟음쳤다. 용암을 제어하던 메디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앙다물었다.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메디아의 손이 떨렸다.


"······가요, 루아. 메디아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어요."
"응."

루아가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춘  바닥에 손을 대었다.


사각형의 바닥에서 메디아의 마력이 느껴졌다. 그 따뜻한 힘에게 부탁한다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루아, 마력을 느낄  있다고 했죠? 사람들의 마력도 분간할  있어요?"
"자세히는 못해······."

루아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사람들의 마력이 느껴지는 대략적인 위치만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거라면, 응."


잠시 고민하던 루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듣자마자 바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라 다칼리온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갈거예요. 우리가 가는 경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주세요, 루아!"
"노력할게······!"

바람이 머리카락사이를 타고 흘렀다. 이따금 난기류에 바닥이 조금씩 흔들릴 때 마다,  어깨를 잡고 있던 루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동차의 차문을 열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 한 오싹함이 온 몸을 전율시켰다.

바닥까지의 거리는 대략 20m.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던 내가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아마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바닥을 내려다 볼 때마다 머리속이 아찔해지곤 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내가 실수한다면, 루아마저 다칠  있었다. 내가 다치는건 그렇다 치더라도, 루아가 내 실수로 다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었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허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닥을 짚고 있는 손은 조금씩 떨렸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뻗은 팔은 당장이라도 바람에 꺾여 힘을 잃을 것 만 같았다.


하지만 견딜  있었다.
견뎌내야 했다.


메디아는 혼자서 저 괴물을 상대하고 있다. 마수와 직접 상대하고 있는 메디아에 비하면, 이 정도는 명함조차 내미지 못할 만큼 사소한 일이다.

무서워할 시간따위 없다.





"루아! 다음은요?"


건물에 숨어있던 사람들에게 창문을 통해 위험을 알린  루아에게 물었다.

"······우리가 아까 있었던 곳이야."

루아가 손가락으로 왼편 30도 방향을 가리켰다. 콜로세움처럼 생긴, 아까 제노다이스가 시험운전을 진행했던 건물이었다. 나는 바닥을 움직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미어지도록 들어차있던 건물은 이미 대부분 대피를 마쳐서. 몇몇 이들만 남아있었다. 주로 4학년에서 5학년 학생들이었다.

"선배님들! 피하셔야 해요!!"
"······마법과 1학년이잖아?"
"프레데리카 선배가 데리고 있던 애들이야. 분명 리베른의 황녀님도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메디아가 마수를 막고 있어요! 하지만 오래 묶어두진 못할 거고,  곳으로 마수가 들어닥칠수도 있어요! 피해야 해요!"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선배들이 당혹스러워 하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도 피난가고 싶어! ······젠장, 너희가 좀 설득해 봐."
"설득이요?"

5학년생 한 명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바닥을 천천히 내려 착지시킨 후 그에게 물었다.


"설득이라뇨, 무슨 소리예요?"
"······셰펠리가 피난을 거부하고 있어."


다른 5학년생이 초조한듯 손톱을 물어뜯었다. 분명 셰펠리는 제노다이스의 제작을 지휘한 5학년생이었다. 그런 그가 대피를 거부한다니?

"······일단 다른분들이라도 대피해주세요. 제가 설득해볼게요!"
"친구를 두고 어떻게 피난을 가······."


으.
좋은 사람들인건 알겠는데, 여긴 위험하다구요.


목구멍까지 내뱉은 말을삼켰다.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피난을 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셰펠리 선배님, 어디 계세요?"
"제노다이스에 있어."


선배의 말을 들은 나는 바닥을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건물의 중앙에 기동을 멈추고 서 있는 제노다이스를 향해 날아갔다.

제노다이스의 발치에 셰펠리의 모습이 보였다.

"셰펠리 선배님!"
"······너는."


셰펠리가 우리를 알아보고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런 셰펠리에게 말했다.

"피난가셔야 해요. 곧 여기에 마수가 들어닥칠 수도 있어요!"
"못 가."


나의 말을 셰펠리가 딱잘라 거절헀다. 그리고는 제노다이스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노다이스를 두고선 절대 못 가······."
"무슨 말이예요. 목숨이 달린 일이잖아요?!"
"목숨보다 중요해! ······아."


셰펠리가 버럭 소리질렀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나를 본 셰펠리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소리질러서 미안. 하지만 정말이야. 내게 제노다이스는 목숨보다 소중해."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제노다이스······ 아빠는 그냥 고철인간이라고 불렀지. 이 제노다이스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는 아빠와 내가 생각해 낸거야."

셰펠리가 덤덤히 말했다. 제노다이스의 매끈하고 하얀 장갑을 매만지더니, 한숨쉬듯 말을 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아빠는 이런 걸 좋아했거든. 내가 어렸을 때 녹슬어 못쓰는 농기구를 이어붙여서 인간 형태를 만들곤 했어."
"그래요······."
"그래. 아빠와의 추억중 기억나는 건 그거 밖에 없어."

셰펠리가 갑작스럽게 꺼낸 무거운 이야기에 숨이 턱 막혔다. 도망을 권유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쉽사리 권유할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제노다이스는 아빠의 꿈이고,  꿈이야. 그리고 이걸 만들기 위해 내 친구들과 후배들이 밤을 새가면서 부품을 만들고 설계도를 그렸어. 그래서 내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거고."
"지금 부서지더라도 설계도가 있잖아요. 다시 만들면······  될까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셰펠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평민이야. 이 제노다이스도 하비셜에서 지원해준 자금과, 그걸로도 모자라서 친구들, 후배들이 용돈을 모아줘서 겨우 재료비를 조달했어. 마정석을 조합하는데 다시 없을 천운도 몇 번이나 따라줬고.
······내 능력으로는 다시 못 만들거야."

그렇게 말하는 셰펠리는 너무나도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나는 그에게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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