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8)
"위즈, 황녀님의 마력이 가까이에서 느껴져······. 도망쳐야 해."
셰펠리에게 할 말을 찾고있던 와중에 루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있다간 사람들이 다친다. 메디아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만다.
생각해, 위즈 율릿.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거야.
아.
"제노다이스를 움직여서 함께 대피하는 방법은요?"
"기동시킬 마력이 부족해. 시험기동 때 전부 다 써 버렸어."
"으, 충전할 방법은 없어요?!"
"충전하려면 최소한 학과장님 정도 되는 마력이 필요해. 학과장님도 마수들을 막고 계실 텐데, 어디서 그런 막대한 마력을 구하겠어.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너희는 어서 피해."
셰펠리가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순간 울컥해서 따지듯 셰펠리에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래요? 선배 친구들도 선배때문에 여기에서 피난도 못가고 발만 동동 구르는데!"
"······!"
내가 다그치듯 말하자, 셰펠리가 깜짝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난간 쪽을 황급히 돌아보았다.
"너, 너희, 왜 아직도 피난을 안 가고······!"
셰펠리가 난간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셰펠리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항의하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너 두고 어떻게 피난을 가?!"
"맞아요! 우리 다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그래요!"
"윽······."
셰펠리가 침음을 흘렸다. 그들이 피난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울컥했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셰펠리에게부드럽게 말했다.
"선배가 계속 이 곳에 남는다고 한다면 선배의 지인 분들이 위험에 빠지고 말아요. 소중하지 않나요? 제노다이스의 제작을 도와줬던 친구들이 말이예요."
"그건, 그렇지만······."
셰펠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런 셰펠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제노다이스가 정말 소중한가요, 셰펠리 선배님?"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엮여있어. 아빠도, 친구들도, 후배들도.
버리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셰펠리는 이성적이라고 말 할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나는 셰펠리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했다.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요, 셰펠리 선배님."
"방법이라니. 하지만, 제노다이스를 움직이려면 마력이 필요하고, 내 마력으로 제노다이스를 움직이는 건 택도 없는데······."
셰펠리가 횡설수설 말했다. 나 역시 머리를 한계까지 굴리며 제노다이스를 움직일 방법을 생각했다.
······아, 잠깐만. 마력이 많은 사람, 또 있잖아?
"메디아의 마력이라면 제노다이스를 움직일 수 있을까요?"
"화, 황녀님? 황녀님이라면야······."
셰펠리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셰펠리에게 말했다
"메디아에게 마력 충전을 부탁드려볼까요? 아니지. 메디아라면 그냥 이걸 마법으로 들어서 옮길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황녀님이 마수를 막고 계시다고 했잖아······?"
"그건······ 어, 아?"
셰펠리의 반문에 인상을 찌푸리던 나는, 별안간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제노다이스를 옮길 수 있는 것은 메디아 뿐이지만, 메디아는 마수를 막아야 한다.
언뜻 양립할 수 없는 상황으로보인다.
하지만.
만약, 제노다이스를 옮기면서 동시에 마수를 막을 수가 있다면?
이거, 뭔가 각이 보인다.
나는 다급히 셰펠리에게 물었다.
"서, 선배님. 제노다이스 있잖아요, 흑빛 영철에 약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제노다이스는 마력으로움직이잖아요. 그런 제노다이스가 흑빛 영철에 닿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되나요?"
"아니, 그건 아니야. 애초에제노다이스 내부는 흑빛 영철로 들어차있는걸. 마정석끼리 이따금 일어나는 간섭현상을 차단하기 위해서 그렇게 설계해 놨어."
"······그러면요. 제노다이스를 움직여서 마수를 막을 수는 없을까요?"
"뭐?"
셰펠리가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도 내가 말을 꺼내놓고 이게 되나싶을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말했다.
"메디아가 상대하고 있는 마수는 테라 다칼리온이라고 하는 마수인데요, 마력을 약화시킨다는 흑빛 영철을 온 몸에 두르고 있어요. 그래서 메디아가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데······ 혹시 제노다이스로 마수를 막아낼 수는 없을까요?마수와 힘싸움을 벌이긴 힘든가요?"
내 물음에 셰펠리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믿기 힘들다는 투로 말했다.
"······출력 자체는, 가능할지도 몰라."
"정말요?"
"시험기동 때는 마력의 과소비를 막기 위해서 출력을 제한해놨거든. 기동시킬 마력만 충분하다면 출력을 내는 것 자체는 충분히 가능해."
"그럼, 시도할 만 한 건가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
셰펠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다급해져서 셰펠리에게 물었다.
"뭔데요?!"
"제노다이스는 내부에 있는 마정석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움직일 수 없게 돼. 마력이 충분하다면 부품의 복구는 가능하겠지만, 충격으로 인해 마정석의 위치가 어긋나는 순간 제노다이스는 움직임을 멈추고 말거야. 어긋난 마정석의 위치를 알 수만 있다면 바로 고칠 수 있겠지만, 내 능력으로는 200여개나 있는 마정석의 위치를 일일이 감지해 낼 수가 없어."
"······마정석의 위치만 감지할 수 있으면 되나요?"
"그게 안 되니까."
"루아?"
고개를 돌렸다. 눈이핑핑 돌아가고 있는 루아의 모습이 보였다.
"루아, 루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곘어, 어려워어······."
루아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나는 루아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루아. 혹시 제노다이스의 안에 있는 마정석의 위치가 어긋나는 걸 루아가감지해줄 수 있을까요?"
"······마, 마정석?"
정신을 차린 루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제노다이스에게 다가가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셰펠리······ 선배. 이거, 혹시 마정석끼리 연결 되어있어?"
"응. 그래서 어긋나면 안된다는 거야. 마정석의 위치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연결이 끊어져 버리니까."
"연결이 끊어진 부분이라면,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아."
"어, 어떻게?!"
"느껴지는걸?"
루아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셰펠리는 경악한 채 루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선 말했다.
"그, 그렇다면. 만약 연결이 끊어진 부분을 즉각적으로 알 수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아니······ 가능해. 황녀님의 마력 양이 관건이 되겠지만, 저 1학년이 알려주는 대로 내가 피해를 순간마다 복구하고, 출력을 최대한 높힐 수만 있다면, 마수를 처리하는 것도 꿈을 꾸는 것 만은 아닐거야."
흥분된 뺨을 살짝 상기시키고 있는 모습은 셰펠리의 모습은 스무살임에도 꽤나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나는 셰펠리에게 물었다.
"가능한가요?!"
"그래, 가능할 것 같아. 아니, 잠깐만, 하지만······."
"또 뭐가요?!"
내가 소리치자, 셰펠리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선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종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애초에 전투 목적으로 만든게 아니라서 어떻게 조종해야 할지······."
"······어떻게 싸울지 상상만 하면 되나요?
"응."
"그거라면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네가?"
"거대로봇끼리 싸우는 걸 얼마나 많이 봤는데요. 트랜스 포머라던가, 퍼시픽 림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
"그게 뭐야? 아니, 지금 그걸 물어볼 때가 아니지. 정말 가능하겠어?"
"네!"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셰펠리는 잠시 갈등하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위험할거야. 내 고집 때문에 너희가 말려드는 거잖아."
"어차피 마수를 막지 못하면 이 곳도 파괴되고 말거예요. 막을 방법을 시도해보면 좋을 거 아니예요?"
내 당당함에 셰펠리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너, 1학년인데 나보다 더 똑똑한 것 같아."
"진짜요?! 저보고 똑똑하다고 하셨어요?! 한 번도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었는데!"
"그러는 거 보면 1학년이 맞는데."
셰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염치없지만, 그럼 부탁할게."
"메디아 데리고 올게요!"
"알았어. 부탁할게, 1학년들! 나는 설계도 가지러 다녀올게!"
셰펠리가 다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다시 바닥에 손을 짚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루아에게 말했다.
"루아! 메디아 어디에 있어요!?"
"저 쪽이야······."
"고마워요!"
루아에게 인사한 뒤 메디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루아가 내 어께를 살짝찌르며 물었다.
"······위즈."
"네?"
"위즈, 사실 똑똑했어?"
"아닐걸요?"
"으으, 모르겠어······."
루아가 고개를 저으며 칭얼댔다.
뭐라고 할까. 귀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제 억지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요!"
"으응, 위즈의 부탁이잖아."
루아가 고개를 저으며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위즈가 원한다면 하늘호수의 폭풍 속에도 뛰어들 자신이 있는걸."
"······그, 그런 건 안 바래요. 루아가 다치는걸 제가 바라겠어요?"
"그래서 좋아해, 위즈."
루아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조금 더워지는 것 같아 뺨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