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7. 공학의 전당, 로페르 공작소 (10)
두 팔을 잃은 제노다이스가 하얀 빛을 머금었다.
양완 대파. 좌각 반파. 배면동력원 과열, 그리고 융해.
엉망이었다. 왼 다리가 망가진 지라 제대로 서 있을 수 조차 없어, 제노다이스의 몸은 비스듬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노다이스는 서 있었다. 검은 기운을 흩날리며 사라져가는 테라 다칼리온의 앞에 굳게 서서, 승리의 위용을 과시했다.
폐쇄구역으로 피해를 한정시킨 공적을 세운 제노다이스. 그 빛나는 어깨의 위에는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하게 미소짓는 위즈 율릿이 서 있었다.
마수의 소멸을 확인한 메디아는 위즈를 향해 날아갔다. 어딘가 다친 곳이라도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런 메디아에게, 위즈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겼어요!"
해맑은 미소였다. 걱정을 날려버리는 미소에 메디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위즈의 뺨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대었다.
"잘 했어요, 위즈."
"에헤헤."
메디아는 얼굴을 붉혔다. 볼을 긁적이는 위즈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위즈의 이마에, 자신의입술을 가져다대었다.
땀방울이 맺혀있는 위즈의 이마는 하얗고 부드러웠다. 주름 한 점 없이 매끄럽고 따뜻했다.
"메, 메디아아아?!"
"······아."
위즈가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이자, 메디아 역시 움찔 하며 황급히 입술을 떼내었다. 그리고선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얼굴을 붉혔다.
충동적인 일이었다. 메디아 자신도 모르게 벌인 행동이어서,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라버리고 말았다.
메디아는 떨리는 눈으로 위즈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무례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가족정도로 친밀하지 않고서야 벌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위즈는 메디아를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화를 내고 있는 걸까.메디아는 위즈의 그런 모습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위즈를 화내게 만들어버렸다. 만약 이걸로 위즈에게 미움받게 된다면, 메디아는 스스로가 미워서 견딜 수 없을 것같았다.
사과 해야 해.
메디아는 굳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잔뜩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위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위, 위즈······?"
사과를 전하려던 메디아의 목소리가, 일순간 어긋나며 물음을 담았다.
위즈의 등에서 꽃잎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얀 꽃잎.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기쁠때마다 저도 모르게 피우곤 하는 순백의 꽃무리.
"······기, 기뻐하는 거예요······?"
날개처럼 뻗어나오는 백합다발을 바라보며 메디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자 위즈는 잠시 메디아를 올려다보다, 핫 하고 정신을 차린 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메디아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게요, 메디아! 아니, 저, 사실, 그게 말이에요······!"
손을 내저으며 당황하는 위즈의 얼굴은 노을이 물든 것 같았다. 할 말을 찾으며 오물거리는 입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부끄러움을 담은 하늘색 눈동자.
메디아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소리가들린다.
내심장 소리다. 왼쪽 가슴에서 요동치고 있는 마음의 고동.
온 몸이 뜨거워졌다. 힐끗 내려다 본 손등도 홍조를 띄고 있는데, 얼굴은 얼마나 빨개져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이 망할 백합은 그만 나올 기색을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좀 그만나오면 안되냐고 속으로 빌어보았지만, 짙은 향기를 내보이는 백합무리는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뻗어나간다.
"아으?!"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내 목덜미를 감싸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비명같은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메디아가, 눈 앞에 있었다.
"자, 돌아가요. 기다리고 있어요."
메디아가 내 목을 받치며 들어안았다. 메디아의 마력이 나를 받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력으로 받칠 수 있다면 왜 굳이 제 목을 감싸는 거예요, 하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움 때문에 도무지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마력을 낭비한 나를 부끄러워 죽게 만들려는 메디아의 계략이 아닐까.
이러다 심장이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메디아는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까지 지어가며 나를 안은 채 발판으로 데려갔다.
메디아의 품에서 벗어나, 발판에 비틀거리며 올라섰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처럼 휘청이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괜찮아, 위즈······?"
"아, 루아······."
"걱정했어."
와락.
비실거리는 내 몸을 루아가 안았다. 내 시선보다 살짝 높은 곳에 위치한 루아의 눈동자에 걱정이 어려 있었다.
"하으으······."
심장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덜컥였던 심장이 한계라는 듯 경련했다. 루아의 얼굴을 지척의 거리에 담은 눈동자가, 루아의 달콤한 향을 맡은 코가, 루아의 따뜻한 체온을 느낀 촉각이, 견딜 수 없다며 비명을 질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루아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루아는 오히려 그런 나를 더욱 세게 안았다.
"이대로 있고 싶어······."
내 어깨에 턱을 걸친 루아의 목소리가 뺨을 간질였다.
루아까지 나한테 왜 이러는거지. 아, 안되겠다 이거. 버틸 수가 없어.
"······위즈?"
꼴깍.
"괘, 괜찮아요, 위즈? 위즈?! 정신 차려요!!"
"아, 싫어, 위즈, 죽으면 안돼······!"
저도 죽기 싫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좀 놔줘요, 제발······.
어렴풋이 자취방이 보였다.
나는 자취방의 바깥에서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제나와 같은 나의 자취방. 그 곳에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나다. 또 다른 내가 방 안에서 비명같은 환호를 내지르며 무언가를 보고 있다.
기립박수를 치며 흥분하는 또다른 나의 모습.
괜히 짜증이 일었다.
"으아?!"
"저, 정신이 들어요, 위즈?!"
"걱정했어어······!"
메디아가 내 손을 잡았다. 루아는 내 배에 얼굴을 파묻으며 나를 껴안았다.
"······뭔가, 나쁜 꿈을 꾼 것 같은데······."
이상한 느낌에 미간을 좁혔다. 꿈의 내용이 잘 생각나지는 않았지만, 굉장한 불쾌한 꿈이었다.
뭐, 하여간.
"여긴 어디예요?"
"임시로 지정된 피난구역이에요. 사태는 어느정도 일단락이 되었구요."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임시로 쳐진 막사의 밖에 5층 높이의 탑이 우뚝 서 있었다.
"공학의 전당이야."
"아, 셰펠리 선배."
"황녀님이 여기까지 너를 데려왔어. 교수님께서 널 보시더니 심장에 조금 무리가 있었다더라. 지병이라도 있어? 제노다이스를 움직인다고 심장에 무리가 가지는 않을텐데······."
"지병이요. 아하하."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지병이라. 있기야 있지. 메디아와 세렌을 바라보면 심장이 거세게 뛰는 병. 요즘은 루아도 그렇게 된 것 같고.
내가 우물거리자, 셰펠리가 그건 그렇고, 라며 운을 띄웠다.
"후배. 아니, 위즈."
"네?"
"고마워. 진심으로 고마워."
셰펠리가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인사에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눈을 크게 떴다.
"가, 갑자기요?"
"내 억지를 들어줬잖아. 생일이 지나면 성인이 되는 내가 1학년도 부리지 않는 억지를 부렸어.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릴 뻔 했어.
그런 나를 네가 막아준거야. 그것 뿐 만이 아니라, 제노다이스까지 구해줬고."
"에이, 뭘 그정도로요. 낯 간지러워요, 하지 마세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졌다. 뭐라고 할까, 깃털로 살랑살랑 매만지는 느낌 같달까.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그리고 말야."
"네?"
"제노다이스의 움직임."
"네에?"
"엄청 멋졌어.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상상한거야?!"
셰펠리가, 갑자기 나의 시야에 고개를 확 들이밀었다.
셰펠리의 돌발행동에 메디아가 움찔 몸을 떨며 셰펠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위즈도 셰펠리를 일정 이상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펠리는 말을 이었다.
"공부가 엄청 됐어. 네 움직임 하나하나가 제노다이스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모두 제시해 줬다구. 기동 방식의 교범으로 삼아도 손색없는 움직임이었어!"
셰펠리의 두서없는 칭찬에 다시 한 번 볼을 긁적였다. 온전히 내가 생각해 낸 움직임이 아니라 영화의 CG를 상상하며 움직인 것 뿐인데.
"두 번 다시 제노다이스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제노다이스의 개량형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어. 모두 위즈 너 덕분이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 그, 그래요."
"언제 밥이라도 한 번 사줄게. 아니, 사주게 해주세요. 제노다이스의 개량에 꼭 도움 좀 받고 싶어······!"
"서, 선배?"
"딱딱하게 선배라고 부르지 마. 그래,셰펠리 언니라던가, 편하게 불러도 돼! 그냥 셰펠리, 하고 반말로 불러도 상관 없어!"
"아뇨, 그, 그건 좀.
······잠깐만요. 셰펠리 '언니'요?"
조금 부담스럽기까지 한 관심에 얼떨떨하던 나는 셰펠리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응. 언니가 부담스러우면 아까 말했듯 반말로 불러도 상관 없는데─"
"오빠가 아니라요?"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셰펠리의 귀여운 얼굴이 잠시 시간이라도 멈춘 듯 굳었다. 메디아와 루아 역시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셰펠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두 사람을, 셰펠리가 천천히 번갈아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기. 위즈."
"네, 네?"
"혹시 나, 여자로 안 보이는거야?"
"······여자셨어요?"
쿠궁.
셰펠리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살짝이지만 눈물까지 고였다.
"아, 아니, 확실히 귀엽고 예쁘장하긴 했지만, 머리도 짧고, 어깨 아래로 굴곡도 없고, 목소리도 소년틱하고─"
"위, 위즈. 그만 해요."
메디아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제지했다. 나는 그제서야 핫, 하고 양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밥도 굶고 잠도 안 자면서 설계도를 만들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
히끅.
울음을 참으며 셰펠리가 대답했다.
자조하는 목소리였다. 어쩔줄을 모르겠어서, 나는 계속해서 변명을 입에 담았다.
"하, 하지만요! 프레데리카 선생님께 고백도 하셨다고······!"
"······여자라서 거절당했어."
셰펠리가 울먹이며 말했다.
콰광.
내 마음을 대포로 때리는 듯 한 충격이 들었다.
"프레데리카 선배가 좋았는걸······ 그게 나쁜 거야?"
셰펠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셰펠리를 제지하던 메디아와 루아도 적잖이 당황한 듯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을느꼈다.
눈 앞에 용기내어 백합을 꽃피우려 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백합을 피워내겠다고 다짐한 사람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수치다······!
나는 울먹이는 셰펠리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요, 셰펠리 언니."
"훌쩍, 뭐, 뭐?"
셰펠리가 울음을 삼키며 반문했다. 나는 그런 셰펠리에게 말했다.
"절대로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아름다운 마음인걸요."
"······저, 정말?"
"네. 사람을 좋아한다는 순수한 마음이 나쁠 리가 없잖아요!"
셰펠리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짓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안해요, 셰펠리 언니.제가 착각을 해버렸어요."
"어, 어."
"아직 프레데리카 선생님을 좋아하고 계신가요?"
"······응."
"얼마나요?"
"많이.엄청 동경하고 있어."
셰펠리가 대답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응원할게요. 셰펠리 언니와 밥을 먹는다면, 프레데리카 선생님도 동석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그,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사과의 의미에요!"
황망히 고개를 젓는 셰펠리의 손을 다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절대로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편견을 가지지 않겠다고, 말이다.
"······여자 끼리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으응······."
그런 나와 셰펠리를, 루아와 메디아가 조금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